-
-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가니스탄, 그 땅을 밟은 경험은 없지만 전혀 모르는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이라는 부정적인 매개체와 연결되어 이미 오래 전 세상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살아가는, 즉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란 게 존재하는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바보 같은 말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러나 나는 아프가니스탄을 사람이 살지 않는 나라, 아니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전쟁만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해왔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이미지는 그렇게 굳혀져 있었기에, 나와 다르지 않은 나약하고 평범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내게 얼마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란 사람들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겪었었는지 나는 모른다. 전쟁으로 인하여 그곳이 고향인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나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불행은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그들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진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들이 처한 실상에 관심이 없었다. 내게 일어난 불행이 아니란 이유로 잠시 안타까워만 하고 지나쳐버렸던 내 모습이 나를 이토록 창피하게 만드는 이유는 바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는 소설 때문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일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 한 가운데는 마리암과 라일라라고 불리는 두 여성이 있다. 두 여성이 겪었던 불행은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사람들이 겪은 불행과 다르다고, 사실과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작가가 허구로 창조해 낸 소설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단순히 허구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아프가니스탄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빼앗긴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여자가 남자의 재산에 불과했던 때는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그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소설 안에서 그려진다. 한 사람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잔인한 전통과 그보다 더 잔인한 전쟁이 합쳐져 마리암과 라일라는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두 여성은 서로 의지하고, 희생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두 여성의 마지막은 그리 나쁘지 않다. 마리암은 죽는 순간에 하라미(사생아)로 태어난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다. 죽는 순간에 자신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라일라는 마리암의 희생 덕분에 타리크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쉬운 행복, 고통이 없는 행복(p515)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행복이다. 마리암과 라일라가 남편의 폭행과 폭언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미래에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희망은 마리암과 라일라만의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그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처럼 놀라운 작품을 쓴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궁금해진다. 그는 무엇을 희망하면서 살아갈까. 내 마음도 희망으로 꽉 채워야겠다.
"안됐군요." 라일라는 아프간에 관련된 얘기마다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죽음, 상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지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라일라는 자신의 삶과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자신이 살아서 이 남자의 이야기를 택시 안에서 듣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p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