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엄마는 무남독녀이십니다.  그래서 엄마가 외할머니를 모셨지요.  어릴 때부터 한 집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제게 외할머니는 항상 어렵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섭던 외할머니도 세월이 흐르면서 눈에 띄게 약해져 가셨습니다.  하지만 저와 외할머니의 사이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외할머니의 왼쪽 손바닥에 큰 상처를 입으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는지 거의 사경을 헤매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와 외할머니와의 사이로 짐작해 볼 때는 제가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외할머니가 혹시 잘못되실까봐 전전긍긍하더란 말입니다.  그 사건 이후 외할머니를 바라보는 제 시선은 180도 바꿨습니다.  이빨도 빠지고 쪼글쪼글한 외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더란 말이죠.  예전에는 갖지 못했던 감정으로 외할머니 곁으로 다가섰더니 외할머니도 달라지셨습니다.  그 후 우리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딱 5년을 지냈습니다.  그 5년은 제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때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 즈음이었던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집이 발칵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집에 안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 모두 얼굴이 하얘져서는 집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외할머니 혼자서 밖을 나가실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이의 부축 없이 걸으시는 게 힘들 뿐 더러 정신이 맑으셔서 혼자 밖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요.  다른 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저는 외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부자리에는 외할머니가 누워계셨던 흔적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옆을 슬쩍 보았더니 욕실 문이 슬며시 열려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거실에 있는 욕실까지 나오기 곤란할 때 할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욕실을 사용하시곤 하셨습니다.  아주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사실, 바로 앞에 있는 욕실로 들어가는 게 더 빠르니까요.  열려있는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문을 슬쩍 밀어보았지요.  변기에 앉아 계시는 외할머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외할머니가 활짝 웃어주셨어요.  아주 환하고 예쁘게.  ^^  저는 기세등등하며 가족들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우리 할머니는 혼자서 말도 없이 나가실 분이 아니라니까.'라고요.  그 사건은 그렇게 한바탕 소동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엄마가 제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게 모시다 보내드릴 수 있어서 엄마 마음이 편하다고요.  아주 오랜 시간 냉담했던 딸과 친정어머니 사이를 아프게 바라보았을 엄마를 생각하니 목이 따가워왔습니다.  제가 외할머니를 더 빨리 사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바보 같았던 내 모습이 부끄럽고 후회돼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흐른 후 생각이 조금 바꿨습니다.  늦었지만 그때라도 사랑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엄마를 부탁해>는 내가 무관심했던 때의 외할머니의 모습과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그리운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 나의 엄마가 아팠던 때, 나의 변화로 인해 나의 엄마가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많은 감정 중에서 후회라는 감정만큼 몹쓸 것이 또 있을까요.  후회라는 감정만큼 지독하게 아픈 것이 또 있을까요.  <엄마를 부탁해>에서 그려내는 엄마의 갑작스런 실종 그리고 다시 찾을 수 없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시는 후회할 행동은 하지말자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작가 신경숙은 엄마의 모습을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들은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는 엄마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고 털어놓습니다.  벽에 붙어있는 붙박이장처럼 언제나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에 계셨던 엄마가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탓이었겠지요.  그들의 후회는 그동안 모른 채 지냈던 엄마의 모습 아니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줍니다.  그들이 엄마를 추억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쓸쓸하고 안타깝습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이 따가워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마를 대상으로는 후회되는 점을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렇거든요.  오늘부터라도 좀 더 다정하게 불러드리고, 좀 더 따뜻하게 안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마는 다른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세상의 모든 엄마를 잘 부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