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사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사랑과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이다.  특히 왕세자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나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한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한 전단계라고 할 수도 있는 세자 중에서도 왕의 자리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한 세자들의 이야기라니.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걸까?  왠지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일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조선의 세자들은 대부분 우울했다. (p157)

 

조선의 세자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권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음에도 정작 그들의 의지대로, 신념대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전무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최초의 세자 이방석을 시작으로 조선왕조의 마지막 세자인 영친왕 이은까지 총 11명의 왕이 되지 못한 세자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버지 이성계의 바람으로 어린 나이에 세자 자리에 앉은 이방석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조선의 세자들이 대부분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의 최초의 세자인 이방석이 칼을 맞고 쓰러지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세종에게 세자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미친 체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 양녕대군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도 흥미롭다.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저자가 ’잠수함의 토끼’라 부른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이선과 평생 모호한 정체성으로 고통 받은 영친왕 이은의 이야기이다.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 같은 두 명의 세자는 지독히 불행하고 불운했다고 말할 밖에, 다르게 설명할 길이 없다.

 

저자는 책의 처음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할 때는 그의 공적인 맥락과 사적인 맥락을 모두 살펴야 한다. (...)  지나치게 권력의 맥락에서만 해석해서도, 심리적 접근으로만 이해해서도 안 된다.  이 책은 미흡하나마 두 가지 시각을 모두 사용하여, ’불행했던 세자들의 역사를 온전히 살피려’ 한 노력의 결과다. (p6) 라고 이 책의 전반적인 특징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전체에서 저자가 역사를,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 잘 알려져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견해도 저자는 실록과 다른 정황들을 함께 포괄적으로 해석하여 다양한 견해를 독자에게 선보인다. 

 

무엇이 진실인지 죽은 사람들은 말이 없기에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기에 단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객관적은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게 역사적 사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 책처럼 말이다.  <왕이 못 된 세자들>을 다룬 이 책은 재미있지만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문 - 나의 뱀파이어 연인 트와일라잇 2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변용란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와일라잇>에 이어 <뉴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먼저 내가 왜 이 소설에 이토록 열광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이렇게 깊이 빠지게 되었을까.  잘생기고 멋있는 주인공 때문에?  아마 이 부분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트와일라잇>이 지금까지 접해왔던 인간과 뱀파이어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리라.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 즉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위험한 사랑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트와일라잇>의 2부인 <뉴문>은 벨라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에드워드보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벨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워드 가족들은 벨라의 생일 파티 준비로 들떠있다.  에드워드의 집에서 열린 벨라의 생일 파티에서 그동안 에드워드가 걱정해왔던 일(사고)가 일어나고, 그 일이 발생한 후 에드워드는 자신이 벨라의 곁에 머무는 한 언제든지 벨라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벨라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에드워드가 떠난 포스크에 홀로 남은 벨라는 숨만 쉬고 있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학교나 아르바이트를 빠진 적도 없고 성적도 훌륭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러다가 제이콥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드디어 조금씩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이콥이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빅토리아가 벨라를 노리고 포스크로 돌아오면서부터 벨라는 다시 위험에 빠진다.  그리고 갑작스런 앨리스의 등장으로 에드워드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벨라는 제이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를 구하러 집을 떠난다.

 

<뉴문>에서는 이미 만인의 연인이 되어버린 에드워드가 등장하는 분량이 적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벨라와 에드워드 그리고 벨라와 제이콥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더욱 궁금해진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슬픈 사랑, 위험한 사랑은 이상한 마력을 지녔다.  평탄하고 안정적인 사랑보다 힘들고 불안한 사랑에 더 빠지게 되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에드워드와 벨라는 헤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래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
이채윤 지음 / 러브레터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몇 달 사이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여러 권 읽었다.  지금의 어렵고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바로 가족 내 화합과 믿음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 길을 잃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그리는 이야기,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꿈을 접고 고향집으로 내려 온 아들 이야기 등 가족의 사랑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러브레터에서 출간된 이채윤의 <아버지> 역시 이러한 흐름과 연결된 작품으로, 이야기는 다섯 장으로 구분되어 전개된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된 동기는 '아버지의 가출'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석 달째 되는 어느 아침, 승희는 책장에서 아버지가 쓴 일기를 발견한다.(p8)  승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 진 일기를 읽으면서 자신이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부모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간다.  그러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원근은 식구들에게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와 부산으로 내려갔다.  가정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 사회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 등 모두 뒤죽박죽이 된 상태였다.  무능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과 아버지로 지내 왔던 모습과는 다른,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진 채였다.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 부산으로 내려와서 청소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슬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면 오해도 불신도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라고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리고 진실한 삶을 위해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잊은 것 같다. 

 

이채윤의 소설 <아버지>에서는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어떤 창피한 일이라 할지라도 가족 내에서는 이해받지 못할 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소설의 마지막처럼 가족의 사랑이면 극복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빨래터
이경자 지음 / 문이당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인터넷 검색창에 '빨래터 위작 논란'이라고 입력한 후 엔터키를 눌렀다.  마치 내가 궁금해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새끼손가락이 컴퓨터 자판에 닿자마자 관련 내용의 게시글이 주르륵 올라왔다.  박수근 화백도, 그 분의 그림 [빨래터]도 모두 내게는 낯설다.  그래서 [빨래터]가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 2천만 원에 낙찰됐었다는 사실도, 그 후 위작 논란에 휩싸였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위작 논란은 예술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지 않으니 모를 수도 있다 치더라도,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됐다는 소식은 풍문에라도 들었음 직한데 왜 나는 몰랐을까 싶다.  그 때 나는 달나라에라도 가 있었던 걸까.  이경자 작가의 소설 <빨래터>를 읽은 직후라서 인지 박수근 님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던 게시글들을 읽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져왔다. 

 

성남은 아버지의 그림 [빨래터]의 위작 혐의가 미술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소식을 기자로부터 전해 듣는다.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고 모든 의혹을 풀 열쇠를 찾아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빨래터]의 소장자였던 존 릭스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까지 아들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남의 눈에 비친 박수근은 무섭고 무능하고 창피하다.  가족의 배를 곯게 만들고 특히 어머니를 힘들게 만드는, 가난한 그림만 그리는 능력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게 되면, 아버지 같은 가난한 그림을 그리게 될까봐, 아버지처럼 살게 될까봐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멀리 달아나지도 않고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다.

 

김복순의 남편이자 성남의 아버지이며 그림 밖에 모르는 화가 박수근은 가난해서 춥고 미안했지만 '선함과 진실함, 소박함과 순박함'을 그리겠다는 꿈이 있어 기뻤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 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아 낸 자신만의 표현 기법의 가치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냉대와 냉랭함 속에서 박수근의 여린 마음은 점차 병들어 쓰러져 갔다.  

 

무섭고 미웠고 그래서 애써 무시해 오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성남에게는 스스로도 놀랄만한 변화가 찾아온다.  강한 자성에 이끌리듯 아버지가 남긴 그림들을 바라보게 되고 자꾸만 찾게 된다.  '아버지는 누군가'라는 복잡하고 끈끈하고 덥고 냉혹한 질문이 생겼다. (p208)  두렵고 죄송하고 궁금하고 그리운 아버지라는 존재에 천천히 다가간다.

 

생전에 불우했던 아버지와 달리 작품이 누리는 영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p19

 

당대에는 '버림받은 화가'였던 박수근의 첫 개인전 - 그가 세상을 떠나고 다섯 달 후에 열린 - 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에 아무것도 모른 척 환호만 보낼 수가 없다.  박수근이 그토록 바라던, 그의 그림이 제대로 평가받는, 일은 그가 이미 죽은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후에라도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가난한 전업화가로 활동한 박수근은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어렵고 힘들 때 기댈만한 학연이나 지연이 없어 외롭고 쓸쓸했다.  그가 바랐던 것은 그의 그림이 화단(畵壇)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 떳떳한 남편,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마음 한구석에 켜켜 쌓기만 한 슬픔과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는 한 문장이 있다.  '술까지 못 마시면... 미칠 것 같아...' p161  그러나 이제 박수근은 더 이상 외롭거나 슬프거나 서럽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누구의 인정보다 아들 성남의 따뜻한 이해와 관심과 존경을 얻었기 때문에.

 

진실은 진실 자체로 이미 그것의 중심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다. p26

 

이 소설은 경매사상 최고가로 낙찰된 기록을 가지게 된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가 위작 논란에 빠졌다는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 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단순히 진실과 거짓을 밝혀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책은 아니다.  소설 <빨래터>는 박수근 화백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면서 아들 성남이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와 화해하며 성숙해져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성남의 변화를 지켜보는 독자에게 인간 박수근을 제대로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제공한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여럿 접하였다.  소설 <빨래터>는 표면적으로는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 세계를 그리는 이야기이지만 그 내부는 남편과 아내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이 담긴 소설이다.  영원히 지켜주고 싶고 아낌없이 주고도 모자란 사랑으로 똘똘 뭉친 가족을 <빨래터>에서 만날 수 있다.  애처롭고 짠하지만 정겨운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이 소설 <빨래터>를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은 평소의 독서 방식과는 다른, 조금 정신없는 방식으로 읽게 된다.  제일 처음 장을 읽은 후 제일 마지막 장을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읽은 후 다시 뒤로 돌아가서 읽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읽는 버릇이다.  유독 주제의 작품을 읽을 때만 나타나는 이 버릇은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앞부분을 읽을 때는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뒷부분을 읽을 때는 앞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드디어 뒤로도, 앞으로도 갈 수 없는 중간 지점에 도착하였을 때 나는 더 이상 탐구할 대상이 사라졌다는 데 실망감을 느끼고, 더 알고 싶다는 궁금증에 시달린다.  실망감과 궁금증, 이 모든 것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증과도 같다.  주제의 작품에서는 타인이 해결해 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는, 오로지 나만이 해결할 수 있고, 반드시 내가 해결해야만 하는 허기증과도 같은 욕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시작해서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로 끝나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는 죽음이 죽이는 일을 중단했다(p44)는 아주 낯선 사건이 이야기의 발단이다.  태초부터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과정이었다.  그러나 희망과 기쁨을 상상하게 되는 탄생과는 달리, 두려움과 슬픔을 떠올리게 되는 죽음은 피하고 싶기만 하다.  그런 죽음이 사라졌을 때 사회, 나아가 국가는 영원히 살고 싶은 희망과 절대 죽지 않는다는 공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p94) 사람들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죽어야 할 시점에 죽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비롯하여 그들이 생존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 앞에서 갈등한다.  그런데 죽음이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죽음이 사라졌을 때와 동일하다.  단지 7개월을 떠나있었던 것에 불과했지만 죽음에 이른 대기자 명단은 육만 명이 넘었고,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동시에 그리고 갑작스럽게 죽음의 강을 건넘으로써 그에 따른 문제들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인간에게 죽음은 가능한 늦추고 싶은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죽음이 다시 돌아오길 원한다.  그런데 죽음이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지금까지 죽음이란 대상에게 가지고 있던 두려움은 절망과 고뇌가 합쳐져 더 큰 두려움과 고통으로 바뀌게 된다.  사라졌던 죽음과 돌아온 죽음은 동일하지만 인간은 이전의 죽음과 지금의 죽음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의 중지>는 죽음이 죽이는 일을 그만두었을 때와 죽음이 죽이는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돌아왔을 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죽음은 두 부분에서 동일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이전의 죽음과 지금의 죽음을 다르게 느끼듯이, 두 부분에서 느껴지는 죽음은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그렇기에 첫 장의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와 마지막 장의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의 느낌 역시 다르다.  무엇이 다르게 느끼도록 만든 걸까. 

 

소설의 후반부에서 죽음은 여자로 바뀐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  그리고 한 번도 잠들어 본 적이 없는 죽음이 남자 곁에서 잠든다.  죽음이 영원히 인간 곁에 머물게 된 것이다.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만드는 괴기한 모습이 아닌 평범하고 편안한 인간의 모습으로 영원히 머물게 된 것이다.  이로써 죽음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고 오로지 삶만이 존재하게 된다.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이지만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주제의 소설들을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읽는 과정이 참 힘든 작품들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읽기를 마치면 눈앞이 환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저절로 '아'하는 탄성이 나오는 게 신기했었다.  어렵다고 느껴지다가도 전혀 어렵지 않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주제의 글은 참으로 신비롭다.  주제가 이야기하는 사건들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쩌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들이라고 느껴지는 것과 같이 그의 신비로움은 끝이 없다.  그러나 그 신비로움은 언제나 인간의 삶과 존재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언제나 마음은 숙연해진다.  <죽음의 중지>에서 주제 사라마구가 이야기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