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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쪽 눈을 뜨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얼마 전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새 학기가 시작될 때면 새 책을 받는 게 가장 기뻤습니다. 예쁜 종이로 책 표지를 입히고 정성스럽게 이름을 써 넣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바로 집단 따돌림, 이른바 왕따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에는 집단 따돌림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가 누군가를 때리고 괴롭히는 장면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유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동생에게 물었더니 중학교 때는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어도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에게 물었더니, 친구 역시 동생과 같은 말을 합니다. 지금과는 강도가 많이 낮은 따돌림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가까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있었을 텐데요. 왜 나는 몰랐는지 정말 이상하기만 합니다.
그럼 왕따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역사는 오래 되었다(http://navercast.naver.com/dna/story/3431)고 합니다. 그 예로 김홍도의 그림 「서당」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1963년 중학교 1학년생이 친구들이 먹을 물에 양잿물을 쏟은 사건, 1972년 초등학교 6학년생이 학교에 불을 지른 사건 등에서 과거에도 학교 내에서의 집단 따돌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을 읽다가 문득 ‘이지매’라는 단어가 전혀 생소하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희미했던 기억이 선명해지면서 친구 이름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집단 따돌림이 사회문제로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기는 8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따돌림을 이기지 못해 전학을 가거나 자살을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학교폭력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집단 따돌림을 걱정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아직까지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의 역사가 진행 중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너희 하는 짓을 보면 꼭 정글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이따위 야만적인 것만 있는, 인간적 도리니 정의니 양심이니 하는 것들은 몽땅 사라지고 주먹만 판치는 정글 말이다. 그저 자기만 좋으면 남들은 어떻게 되든 눈 하나 꿈쩍 안 하는 곳 말이다. p92
《괴물, 한쪽 눈을 뜨다(2011.2.21. 문학동네)》는 한 학급 안에서 일어난 집단 따돌림 사건을 세 명의 시선을 통해 입체적으로 바라본 소설입니다. 따돌림 대상자인 임영섭과 반장인 민태준 그리고 담임교사 이렇게 세 명이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세 개의 엇갈리는 시선을 통해서 독자는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단 따돌림과 학교폭력 문제 앞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획일화되어 있는 문제해결방법을 재고하고 보다 복합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바라봐야한다는 진실을 알려줍니다.
또한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세 명의 주인공 안에 숨어있는 각각의 괴물을 발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피해자인 임영섭과 방관자인 민태준, 보호자인 담임교사의 괴물성은 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사춘기 소년인 임영섭과 민태준에게 있어서 자기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나와의 만남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입니다. 괴물과의 동침을 인정하고 괴물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해나가면서 성인이 되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담임교사의 괴물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약자 입장에 섰던 사람도 언제든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할 수 있는 여지가 잠재되어 있음을 알려주려는 걸까요? 어쩌면 내 안에도 그런 괴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에게 도요.
자폐 기질이 있는 임영섭은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원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도는 한 명을 몇몇 아이들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때리고 빼앗고 괴롭힙니다. 주눅들어있던 아이는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정진과 하태석 무리가 임영섭을 괴롭히는 것을 두고만 보는 반장 민태준은 괜히 그들의 일에 상관했다가 그 화가 자신에게까지 미칠까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닥친 일 앞에서는 앞뒤재지 않고 바로 행동에 들어갑니다. 임영섭의 보호자 역할을 자청한 담임교사는 정진과 하태석 무리를 괴롭히는 입장으로 바뀝니다. 아이들을 상대로 힘자랑을 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자괴감에 빠집니다.
한 명을 따돌리는 여러 명의 아이들, 이를 구경하는 아이들 그리고 한 명을 보호하려는 어른이 이 소설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학교에서 그리고 학교 내 많은 학급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일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이 이야기가 사실보다 과장되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잔혹하고 섬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다는 걸압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서운 일들 말입니다.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없이 밝고 명랑한 학교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요? 마음이 무겁고 머리가 뒤죽박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