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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
이장희 글.그림 / 지식노마드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할 만큼 지방과 서울의 거리가 부쩍 가깝게 다가왔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방학 때 서울에 다녀왔다고 하면 친구들의 질문 세례를 받았었다. 그러면 웬일인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부모님 손을 잡고 방학 때마다 들렀던 서울은 크고 넓은 도시였다. 특히 열두 살 때 오른 63빌딩 전망대에서 느꼈던 아찔함은 서울이란 도시의 위용을 가슴에 새기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가끔 들르게 되는 서울은 성인이 되어서도 친숙해지지 않고 요란하고 복잡한 도시란 이미지만 커져갔다.
‘풍경과 함께 한 스케치 여행’이란 부제가 붙은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2011.3.14. 지식노마드)》를 펼친 순간 내가 그동안 간직해온 서울이란 도시의 오래된 이미지가 지우개로 삭삭 지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서울의 모습들 하나하나 정성을 쏟아 손으로 그린 그림 때문이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이 어느 순간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듯 친숙해졌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는 경복궁에서 시작해서 인사동까지 서울 도심 구석구석에 숨겨진 역사적 흔적을 되살려 낸 책으로 실물을 보는 것과 같이 정교하게 손으로 그린 스케치가 인상적이다. 경복궁이나 근정전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없었다는 부끄러움이 책을 읽으면서 슬며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땅으로 유명한 명동에서는 쓸쓸하게 잊혀져가는 역사적 인물들을 흔적으로만 만날 수 있었고, 처음 자리에서 구석으로 밀려나 존재감이 희미해진 세종대왕의 생가 터와 고종 칭경 기념비전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탑골공원, 청계천의 파란만장한 역사와 대한제국 말기 정동의 모습이 되살아났으며, 대학로의 소란스럽고 분주한 분위기가 아닌 역사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의 혜화동을 만날 수 있었다. 병원의 현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경교장은 우리 역사에서 김구 선생이 차지하는 비중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어서 놀랐다.
우리나라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선까지 올라가야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성장을 위해 뒤로 제쳐두었던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바로 우리의 역사 말이다.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적 흔적과 유물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초단위로 빠르게 움직이는 서울의 시간 안에서 우리의 역사는 오랫동안 조용히 머물렀을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해져온다. 소소한 아름다움이 많은 도시, 서울이 다르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