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시클 다이어리 - 누구에게나 심장이 터지도록 페달을 밟고 싶은 순간이 온다
정태일 지음 / 지식노마드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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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내아이에게는 어린 시절 자전거를 배울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만, 상대적으로 계집아이는 그렇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엄마와 나 그리고 주변의 여자들을 볼 때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간혹 드라마에서 2인용 자전거를 타는 장면을 보면 한 번쯤 타고 싶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커플 자전거는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실력이 중요하지, 뒷자리에 앉은 사람의 실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해 버렸다.  그런데 내가 말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내가 자전거를 배우고 싶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바로 우리 엄마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왜 자전거를 배울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2005년 봄, 갑자기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선포하셨다.  시에서 운영하는 자전거 교실에 등록해서 앞으로 석 달 동안 자전거를 배울 계획이라고. 

 

엄마는 땅에서 처음으로 다리를 때고 자전거 두 발로 달리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과 매일 운동장에서만 돌다가 처음 도로로 주행연습을 나갔을 때의 두려움 그리고 매일 조금씩 더 멀리 달릴 수 있게 되었을 때의 흥분된 느낌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나날이 향상되는 실력에 엄마 자신도 뿌듯해 하셨지만, 그런 엄마의 모습이 우리 가족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었다.  엄마는 지금 '자전거 타는 시민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 중이시다.  가끔 나들이에만 얼굴을 비치는 나이롱회원이 아니라, 시에서 주최하는 각종 환경보호 캠페인 및 먼 거리로의 자전거 여행에도 참가하시는 열심회원이시다.  그런데 간혹 부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오래 쉰 후 운동을 하고 오시면 언제나 하는 말씀이 있다.  평소에 거뜬히 오르던 오르막길이 쉬다가 오르면 처음 오르는 길처럼 힘이 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먼 길로의 여행이 잡히면 매일, 꾸준히 자전거를 타신다. 

 

'엄마의 자전거 타기 도전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엄마는 나이를 핑계 삼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고 주저앉지 않으셨다.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멀리 달리고 싶다는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자전거 타기에 도전하셨고 성공하셨다.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몸소 보여주셨다.  용기와 열정, 꾸준함 이것은 비단 자전거 타기에만 적용되는 공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닐까.  그리고 하루살이 삶이 아닌 인간의 삶을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듯이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64일간 유럽에서의 자전거 여행'을 담았다.  그런데 저자의 여행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혼자 하는 여행이다.  고행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저자는 길을 잃기도 하고 기차를 탈까 고민을 하면서도 꾸준히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길에서는 원하는 바를 얻는다.  

 

반드시 저자처럼 자전거로의 여행을 통해서만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만히 앉아서 입으로 떡이 들어오길 기다리기 보다는 저자처럼 찾길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라진 나를 느끼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 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책에서 중요한 건 자전거가 아니다.  자전거는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게 해 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매개체의 역할을 무시할 수만은 없으나 그보다 중요한 건 바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즉, 한 걸음 내딛을 때 마다 주춤거리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전거의 페달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가 쉬지 않고 밟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듯, 내 인생도 반드시 내가 움직여야 전진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저자의 열정을 되찾게 도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자전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두 달 동안 약 2500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충분히 짐작하지만, 편하고 즐겁기만 한 여행이 아니기에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올 여름,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을 수 있는 여행을 계획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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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를 선택했는가 - 낭만적 사랑에 빠진 남녀의 뒤로 숨긴 속마음을 분석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짝짓기의 심리학
볼프강 한텔-크비트만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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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거리를 지나다보면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만날까'가 궁금해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커플을 만나게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사람은 만나봐야 아는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만나봐야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에 나도 동의한다.  겉모습으로 사람의 전부, 마음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을 무턱대고 만날 수는 없지 않을까.  어떤 약간의 끌림이라도 있어야 만남이 시작될 수 있는 게 아닐까.  그 끌림이란 게 도대체 어떤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탓할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 관계를 정리하는 건 더 쉽지 않은 일임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나 역시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저렇게 만나고 헤어지고를 빠른 시간에 할 수 있을까, 라고 말이다.  배꼽친구 중에 연예 경험이 많은 친구가 있는데 항상 궁금했었다.  도대체 비결이 뭔지.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 내게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비법을 이 책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법은 없었다.  비법은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고 말하련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파트너를 선택하는 다양한 동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어디선가 남자와 여자가 상대방을 선택할 때 단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만이 우선시 되는 건 아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아니 몸 전체로 상대방이 나의 부족한 면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파트너를 선택할 때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에 대해 설명한다.  이 책은 처음에는 호기심에 열심히 책장을 넘기다, 중반부에서는 지루해서 억지로 읽다가, 후반부에 다시 재미있어졌다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지.  여하튼 흥미로운 사실들이 이 책 곳곳에 숨어 있다.  한 번쯤 읽어봄 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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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만납시다
지그 지글러 지음, 이은정 옮김 / 산수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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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 책은 처음이 아니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을 빼어 보니 종이 빛이 바래 있다.  보통 맨 앞 페이지에 읽은 날짜를 기록하여 두는데, 이 책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정확하지 않지만 어렴풋한 짐작으로는 대학교 3학년 혹은 4학년 때였던 듯하다.  강의 시간에 한 선배의 언급으로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그 때 나는 정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가 돌아보며, 다시 만나 반가운 이 책의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는 1975년도에 출간된 후 여러 번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끊임없이 사랑 받은 책이다.  이 책은 내게도 특별한데,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찾아서 읽는 자기계발 서적 중 내가 가장 먼저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섯 계단을 중심으로 글을 이어 나간다.  여섯 계단은 저자가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요건이라고 제시한 비결이다.  그러나 그 비결은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건전한 자기 이미지를 가진 자,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자,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 자, 올바른 자세를 갖춘 자, 최선을 다해 하는 자, 강한 욕망을 가진 자만이 정상에 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공하기 위해서 단지 이 여섯 가지만이 필요하다는 말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공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의 갈림길은 '고작 이것뿐이야' 라고 생각하는데서 부터 인 듯하다.  기본만 잘 지키면 된다는 말도 있듯이 성공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저자가 말하는 여섯 계단이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에는 온통 성공한 자들만이 존재하겠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성공하지 못한 자의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새겨 들어야하지 않을까.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섯 계단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자기이미지'와 '목표'이다.  '자기이미지'는 여섯 계단 중 첫 번째 계단, 전체의 기초가 되는 단계로서, 건전하고 긍정적인 자기이미지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이외의 5가지를 지니고 있는 자라 하더라도 불건전한 자기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자에게 성공은 모래성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목표'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계단이다.  목표가 필요한 이유에서부터,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 그리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까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내게는 이 부분이 상당히 유익했으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목표가 없는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 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는 힘들지 않는가.  이 책을 통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p209

사람들은 갈팡질팡하는 게 진짜 문제임에도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불평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시간을 낭비하면 살인죄로 체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 건 살인이 아니라 자살이다.

  

이 책의 강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예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각 단계마다 성공한 사람들의 실제 경험을 빌어 설명하고 있기에 저자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다음 개정판에는 내 경험담이 포함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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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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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수님의 글을 읽으면 나는 유쾌해 진다.  간지러운 곳만을 골라내어 삭삭 긁어주시는 그 분의 글에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외수님의 글을 읽으면 나는 상쾌해 진다.  그 분의 글과 만나는 시간 동안만은 평소의 소심한 나는 사라지고 대담한 나의 모습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수님의 글을 읽으면 나는 통쾌해 진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 입속에서만 맴 돌던 말을 그 분의 글 속에서 발견했을 때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의식 속에 감춰져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유쾌, 상쾌, 통쾌, 한마디로 시원하다.

 

2.

하악하악, 숨이 턱까지 찼을 때 사람에게서 나는 소리 같다.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면 숨이 턱까지 차서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가 저절로 나오리라.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자국 뒤쳐져 앞선 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정신없이 달렸을 때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를 낼 수밖에 없으리라.  이도저도 아니면 쫓아오는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을 때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나는 어떤 소리를 원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소리이기를 바란다.  그래, 내게 하악하악은 타인을 따라잡기 위해 내는 소리도 아니며 타인에게 쫓겨 도망갈 때 내는 소리도 아니다.  내게 하악하악은 타인의 시선, 주위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 때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3.

'이외수의 생존법'이란 부제가 달려있는 <하악하악>은 쩐다, 캐안습, 흠좀무 등 따로 뜻을 찾아봐야 알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짤막한 글들로 한 권을 채우고 있는 이 책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을 수 없다.  이 책은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쓴 글을 꺼내어 읽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인지 가볍게 쓴 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결코 단순하게 쉽고 가벼운 글로 치부할 수는 없다.  촌철살인의 유머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정곡을 찔러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외수님 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성 넘친다.  글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이외수님의 삶의 방식 역시 그러하다.  유쾌, 상쾌, 통쾌하다.

 

4.

이 책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민물고기들이 볼거리이다.  중간 중간에 조금 징그럽다싶은 물고기도 등장한다.  그러나 낯선 민물고기들의 생김새와 이름을 맞춰보다 보니 징그럽다는 느낌은 간데온데없이 사라지고 신비롭다는 느낌만 남는다.  민물고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민물고기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어디선가에서 하악하악 거친 숨소리를 내며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쾌하게 상쾌하게 그리고 통쾌하게 마지막까지 살아 내리라.  하악하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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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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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가 박경리님을 알게 된 계기는 어머니를 통해서이다.  박경리님의 팬이신 어머니의 영향으로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 약국의 딸들>과 <토지>를 반강제적으로 읽어야만했다.  '또 읽기 시작해볼까?' 생각하다가도 느낌이 어떠했는지 어머니께서 물으시면 이상하게 읽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불쑥 불쑥 튀어나와 그 당시 나는 많이 힘이 들었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그렇게 채근하셨건만 <토지>는 아직 완독하지 못했고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역시 미지수이다.  오랜 시간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던 와중에 박경리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고, 많은 이가 그렇듯 나 또한 안타까움에 사로잡혀 지내다 시집의 발간 소식을 접하였다.  박경리님의 시는 처음이다.  박경리님의 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약간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어느 새 사라지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시집에 담겨진 시는 시라는 느낌보다 에세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시의 형식을 빈 이야기 책 같다.  조근 조근, 잔잔히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마치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흥미 있으면서도 유익한 옛날이야기 말이다.  옛날이야기가 재미있고 유익한 이유, 옛날이야기의 매력은 이야기의 내용이 할머니께서 살아낸 삶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박경리님의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가 그와 같다.
 




바람

 
   / 박 경 리

흐르다 멈춘 뭉게구름
올려다보는 어느 강가의 갈대밭
작은 배 한 척 매어 있고 명상하는 백로
그림같이 오로지 고요하다

어디서일까 그것은 어디서일까
홀연히 불어오는 바람
낱낱이 몸짓하기 시작한다
차디찬 바람 보이지 않는 바람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뚫고 지나가는 찬바람은
존재함을 일깨워 주고
존재의 고적함을 통고한다

아아
어느 始原에서 불어오는 바람일까


박경리님은 시에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지혜를 풀어놓는다.  먼 길 떠나기 전, 그동안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놓는 도구로 시를 이용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이 시들이 뒤따라 걸어오는 많은 이들에게 앞선 자로써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라고 느낄 뿐이다.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마지막 시간 즈음에 느끼는 감정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있을 수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만 안타까워하지 말고 나 자신을 흐르도록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느낀다.  미풍(微風)에도 저항하지 않고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세월에 나를 맡겨야겠다고 느낀다. 
 





 
  /  박 경 리
 
육신의 아픈 기억은
쉽게 지워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덧나기 일쑤이다
떠났다가도 돌아와서
깊은 밤 나를 쳐다보곤 한다
나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때론 슬프게 흐느끼고
때론 분노로 떨게 하고
절망을 안겨 주기도 한다
육신의 아픔은 감각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삶의 본질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그것을 한이라 하는가


 


이 시집은 선물보따리다.  옛날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 내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 미래의 삶을 수정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박경리님을 다시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무더위가 기승하는 지금, 이 시집으로 잠시나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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