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김에, 즐겨볼까? - 암경험자의 다사다난 일상 회복 분투기
용석경 지음 / 샘터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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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일이 제일 중요한 것처럼 살았다. 잦은 야근에도 남편과 아이 살뜰히 챙기고, 운동도 하고, 더 잘 살아 보겠다며 돈 공부도 했다.

그저 열심히 살던 마흔 살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유방암이란다. 왜 하필 자신에게 암이 찾아온 건지 억울했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여럿이고 꼭 살고 싶은 마음으로 고통스러운 치료도 잘 견뎌냈다.

치료는 끝났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매일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항암치료로 짧아진 머리카락으로 사람들 만나기가 무서웠고, 휴직했던 회사에 복직하고 보니 직전 해의 근무 기간이 없어서 연차가 없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연차가 없다.

나름 일 잘하는 에이스였는데 이전만큼 못 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내가 (암 투병) 전에(는) 잘 나갔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직장상사의 말이 가슴에 날카롭게 박힌다.

확 떨어진 체력에 기억력 저하, 피로감, 수술부위 통증 등 여러 후유증까지 겪느라 힘든 몸과 마음에 사회적 편견의 무게까지 얹어진다.

투병 이후 사회 복귀를 결심하고 무사히 복귀해 적응하기까지, 가족과 친구, 가까운 이들뿐만 아니라 글로 만난 블로그 이웃, 환자 모임에서 만난 이들, 모두의 공감과 응원,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는 작가.

암경험자로서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디디면서 자신이 겪었던 두려움, 막막함을 담담히 고백하고 자신의 글이 암, 또 다른 병, 실연 등 각자의 아픔을 겪어내고서 '다시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란단다.

관련기관 통계에 따르면 암환자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행히 의학 발달로 암환자의 생존율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생존자들의 사회 복귀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치료하느라 일을 그만뒀는데, 치료 후에 구직을 하려 하니 병력이 발목을 잡는다. 치료하느라, 돈 안 벌며 생활 꾸려가느라 돈을 많이 썼는데, 다시 돈을 벌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휴직 후 복직한 직장에서는 전보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질 테고 병원 가느라 근태에 문제가 생길 테니 결국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는 편견과 싸워야 한다.

일단 조직에 들어온 후엔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잘리지 않는 직장에 다녔던 나는 암경험자 몇의 직장복귀를 목도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부터도 직장에선 아파도 아픈 티 못 내고 살았으면서, 그들의 복귀를 보면서 그저 막연히, 가벼이, 그래도 이럴 땐 철밥통이 좋네, 라는 생각을 했다. 알게 모르게 겪었을 커리어에서의 자괴와 사람들의 편견 등 그들이 복귀 이후 견뎌냈어야 할 다른 모든 것에는 의미를 두지 못한 채.

무엇보다 그들은, 생과 사의 기로에서 힘겹게 병과 싸우다 살아 돌아온 이들이었는데, 심리적 막막함, 실재한 신체의 아픔, 살아있다는 안도...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막막할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공감과 위로, 당신도 나처럼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는 응원에 더해 암환자에게 도움될 제도 등 실질적인 정보까지, 병 많고 아픔 많은 이 세상에서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고통을 딛고 살아보려는 모든 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샘터)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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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구독해주세요
정태화 지음 / 더블북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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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제 가정 꾸려 나간 아들딸은 아비에게 관심도 없고, 늘그막에 아내마저 병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촌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던 기택. 신세 한탄하며 마시던 술에 만취해 주정 부리는 영상이 빵 터진 덕에 온라인에서 유명 인사가 된다.

처음 영상을 보았을 때 기택의 아들 태경은 늘 무뚝뚝하던 기택의 낯선 모습에 당황하고 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만, 곧 아버지를 유튜브 스타로 만들어 큰돈을 벌어 보겠다는 꿈을 꾼다. 좋은 학교 나와 좋은 회사 다니던 잘난 아들이었는데 회사 나와 벌인 사업이 망해 빚더미에 앉아 있는 태경. '해준 것 없는 아버지'가 이번엔 날 위해 뭘 좀 해줄 수 있을 거라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한편, 기택의 딸 지영은 아버지의 옛사랑과 아버지를 재혼시키고 싶어 한다. 서로의 첫사랑이었지만 각자 다른 이와 결혼했다가 지금은 모두 혼자가 된 기택과 영숙. 말로는 말년에 아버지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남편의 명예퇴직으로 생활이 어려운 지영에게는 부자라는 영숙의 재산도, 아버지가 벌어들일 유튜브 수입도 전부 간절하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아이돌 댄스까지 배우며 자식들을 위해 유튜브에 열심인 기택. 그의 옛꿈은 가수였다. 청춘에 꾸던 꿈은 지금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제라도 아들딸에게 내가 필요해졌다니 그 사실이 반갑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가끔은 즐겁기도 하다.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지만 일상에 치여서, 내 새 가족 챙기느라 바빠서,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표현도 못 하고 멀어져 가던 아버지와 자식들. 좌충우돌 성공도 맛보고 실패에도 부딪히던 그들은 고난 속에서 결국 서로에 대한 진심을 깨닫는다.

'웃기고 짠한 가족 성장 시트콤' 이라는 책. (수많은 오타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술술 잘 읽히긴 하는데, 결말 전까지 내내 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현세를 반영하였으나 굉장히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게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받고도 (안 받았다 해도) 더 받고 다 뜯어내고 싶은 게 자식의 마음인가. 나도 그런가.

어릴 때야 이런저런 생각도 하지만, 아니 나이 들어서도 어떤 생각은 할 수도 있지만 자기들 살자고 저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부모를 '착취'한다고? 물론 아버지는 착취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도전은 신중하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무한 희망회로에 빠지지 말 것.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세상 탓 부모 탓 하지 말 것. (피해망상임)

자식 걱정만 한가득인 외로운 친구한테 가서 신나게 제 자식 자랑하지 말 것. (공감 능력 부족, 친구를 가장한 분명한 적)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지기도 하니, 진짜 그를 아낀다면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살뜰히 들여다볼 것. 다른 이의 마음을 알아챌 여유가 있고 너그럽게 이해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내 건강도 마음도 지갑도 여유로울 것. (잘 사는 방법은, 힘 빼고 '허허허'가 아닐까.)


여러모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면에서는 뭔가 남긴 듯.


출판사(더블북)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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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남긴 365일
유이하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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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색맹인 유고, 소년의 세상은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유고의 곁에서 말로써 계절의 빛, 자연의 색,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려 늘 애쓰던 소꿉친구 가에데.


유고는 가장 가까웠던 존재이자 유일했던 친구 가에데가 병으로 떠난 뒤 곧 '무채병' 으로 시한부 1년을 선고받는다.

눈에 보이는 색을 하나씩 잃어가는 게 일반적인 무채병의 증상이지만, 날 때부터 색을 보지 못한 유고는 반대로 죽음에 다가갈수록 볼 수 있는 색이 하나씩 늘어간다. 그렇게 색을 알려주고 싶어 하던 가에데를 잃었는데 이제 색을 볼 수 있게 되다니.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친구의 죽음을 깊은 슬픔이나 마음의 동요 없이 그저 어떤 사실로만 받아들였던 유고는 가에데가 병상에서 작성했다는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대신 하나씩 실행해 나가며 무기력했던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비로소 세상의 색을 알아가고, 자기 안의 여러 감정을 깨닫는다. 반향이 없어도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던 가에데의 다정함은 '남과 다름' 때문에 세상에, 타인에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유고를 숨 쉬게 한 원동력이었다.


아, 아깝다. 소년 소녀의 삶이 너무 짧다. 리스트를 작성할 때 가에데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하면, 그 마음을 알아버렸을 때 유고의 심정을 헤아리면 참 애틋하고 슬프다.


2000년대 중반 일본 청춘 멜로영화를 한편 본 느낌. 뻔하더라도 몰입해서 읽을 만했던 이야기.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지워나가며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색을 하나씩 볼 수 있게 되면서 가에데가 이 아름다움을 얼마나 자신에게 전하고 싶어 했는지, 자신의 행복을 얼마나 바랐는지를 새삼 느끼며 그녀를 그리워하는 유고. 치유와 성장의 시간 끝에 남은 삶이 더 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먹먹하다.


남은 삶이 딱 1년이라면, 어떤 마음으로 뭘 해야 할까.



출판사(모모, 오팬하우스)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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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 - 컨디션 난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법
야마자키 아쓰코.도리이 린코 지음, 원선미 옮김 / 마인드빌딩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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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몸이 전투 모드'. 지난 여름 등허리 통증으로 찾은 한의원에서 식적(食積) 진단을 받던 날 맥을 짚던 한의사가 하던 말. 표현만 바뀌었을 뿐 처음 듣는 내용은 아니었다. 교감·부교감신경 얘기 섞인 설명보다는 조금 신선했지만.

특별히 어딘가가 아프다기보다는 체력이 약하고 기력이 달리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노력으로 조금씩 컨디션을 개선해 가며 지낸다. 그리고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책 제목 너무 잘 지은 듯하다. 얼마나 많은 여자가 저 문장에 공감할까.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신체적 특성(자궁-호르몬) 때문에 남성과 비교하면 몸이 더 약하고, 몸과 마음은 결국 연결되어 있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며 컨디션 난조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 모두 편해질 방법들을 제시한다.

어차피 사람 상대하고 대화하고 돕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며 교사에서 침구사로 직업을 바꾸었다는 특이한 이력의 여성 침구사와 자율신경 균형이 무너지면서 고통에 시달리다 환자로서 그 침구사를 만난 작가, 이 책은 그 둘이 나눈 대화에서 출발했다. 28년 동안 침구사로 일하며 환자들의 신체 증상 완화를 돕고 마음의 이야기를 들어온 야마자키 아쓰코, 그녀가 그동안 만난 7만 명의 환자 중에는 여성 비중이 월등히 높았고 아쓰코 자신도 여성인 만큼 그들의 증상, 생활, 생각 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여자들이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마음도 힘들어 찾은 병원에서 갖은 검사를 해도 특별한 질병은 없고 그저 '갱년기'라 겪는 증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자율신경실조증'이란 진단을 받는단다.

저자는 늘 무리하고,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쓰고, 너무 열심히 사는 이들이 자율신경계 이상을 겪기 쉽고 그래서 몸이 아프고 힘들어진다고, 약물치료보다는 사고방식이나 생활 습관 개선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하며 증상 개선을 위한 방법들과 개선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젊은 여성과 갱년기 여성에게 특히 많이 나타난다는 '자율신경실조증', 나를 포함해 떨어지는 기력으로 몸과 마음이 힘든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마인드빌딩)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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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김희숙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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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사는 것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쉽지 않다.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나보다 먼저 인생을 출발한 이들의 이야기들이 와닿지 않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 본 이제는 잘 안다. 평범과 보통이 얼마나 엄격한 기준인지, 무난하고 무탈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커다란 이벤트성의 기쁨보다 자잘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이 더 궁극적인 행복이라고들 한다. 책의 초반에는 불평도 불만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섞인 이 평범한 일기가 행복을 말하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 한 편 한 편 글을 마저 읽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평범함의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행복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어 열심히 찾아 헤매야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가족과 함께 좋아하는 음식을 두고 둘러앉은 저녁 시간, 정성으로 농사지은 싱싱한 채소를 잔뜩 안겨준 이웃집 할머니 덕에 계획에도 없던 김치를 남편과 오손도손 한밤중까지 담근 일, 그 밤에 전화해 김치 레시피를 물을 엄마가 계신다는 것, 내가 가치를 부여하고 행복이라 느끼면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젊은이(4, 50대도 물론 충분히 젊지만!)가 같은 내용으로 행복을 말했다면 크게 공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직장생활도 가사도 열심히, 남편과 두 자녀, 부모를 챙기며 열심히 살아온, 여전히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중년 여성의 글이기에 글에서 나의 엄마가 보이고, 미래의 내가 보이기도 했다. 행복을 말하면서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후회, 불안, 걱정, 허무 등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반차 내고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려다가 길에서 남편에게 '발견 당한' 일, 시장에서 마지막 족발 세 팩을 사버려 뒤에 서 있던 임산부가 아쉬워하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 그 집 첫째 아이에게 족발 한 팩을 건네고 엄마랑 맛있게 먹으라던 것, 귀엽고 정 넘치는 에피소드들에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책을 읽은 누구나 생각해 보게 되겠지. '나는 언제 행복했더라.'


출판사(클북)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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