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애처롭게 생각해요. 하지만 무방비상태의 인간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은 없잖아요.



˝부인께서는 사람보다 동물에 대해 더 연민을 느끼시는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애처롭게 생각해요. 하지만 무방비상태의 인간을 향해 총을 쏘는 사람은 없잖아요.˝
148 점성학자 듀세이코 부인이 경관에게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으로 바꿀 기회역시 우리에게 있다. 별들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가두었기에 우리를 도울 수 없다. 그들은 그저 그물을 디자인할 뿐이다. 그들이 우주의 베틀로 날실을 짜면 우리는 거기에다 우리의 씨실을 엮어야한다. 문득 흥미로운 가설이 떠올랐다. 어쩌면 별들은 우리가 개를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바라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우리는 때로 개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개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가죽끈으로 묶어 놓기도 하고, 쓸데없이번식하지 않도록 불임 수술을 시키기도 하며, 아플 때는 치료받게하려고수의사에게 데려가기도 한다. 하지만 개는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으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우리의 결정을 따를 뿐이다. 어쩌면 우리 또한 그런 방식으로 별의 영향력에 굴복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도 인간의 감수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둠 속에서 계단에앉아 생각했던 건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294 두세이코 부인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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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많고 휘어진 거목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수세기 동안 살아남는다.



보로스의 손이 마술을 부리며 신비한 신호를 보내자 곤충과 유충, 그리고 조그만 알들이 모인 덩어리들이 나타났다. 그중 어느 것이 유용한지 물더니 보로스가 격분했다.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어떤 생물도 유용하거나 무용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적용하는 어리석은 구별일 뿐입니다.˝
223 곤충학자 보로스가 두세이코 부인에게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엉겅퀴에게는 생명권이 없는가? 창고의 곡식을 훔쳐먹는 쥐는 또 어떤가? 꿀벌과 말벌, 잡초와 장미는?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못한지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구멍이 많고 휘어진 거목은 사람에게 베이지 않고 수세기 동안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그 나무로는 어떤 것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보기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유용한 것으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이익은 누구나 알지만, 쓸모없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40 괴짜, 기쁜소식, 디지오와 함께있는 듀세이코 부인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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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세상이란 것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슬픈 것도 기쁜 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라며 포기한 신세에는 괴로울 때는‘괴로운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하고, 기쁠 때는 ‘기쁜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해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을까요.
79


꽃속에 잠겨
히구치 이치요




좋아하는 작가인데,
얼마전 민음사에서 예쁜 표지로 조르르 나온 것을 보고 다시 읽었다. 번역은 예전에 읽었던 을유문화사의 임경화 님의 일본색 짙은 번역이 취향이지만. 이번 민음사의 번역에서도 히구치 이치요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체를 잘 느낄 수 있었다. 한문장 한문장이 그림같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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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보살핀다, 누에에서 실을 얻는 것이 아니라 누에 님이 실을 주신다고 한다. 벚꽃 마을을 비롯하여 둥근 산들이 지켜주던 땅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누에로부터 얻은 비단실이 어떤 의미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표현이다.
123. 오하나




죄를 묻는다면 내게도 생각나는 바가 있네. 현세를 살아가는 중생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야. 무엇 하나 짐작 가는 죄가 없다고 단언하는 사람이야말로, 스스로를 강하게 믿고 교만을 부리는 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 아닐까.
542. 긴에몬.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미야베 미유키
눈물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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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야, 오늘은 내 집앞을 스쳐 지나, 또 어느 가여운 곳으로 가려 하느냐.˝
145. 이사카가 혼마에게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나는 소비자신용 같은게 없었던 옛날로 돌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7조엔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큰돈이 움직이는 산업을 어떻게 없앨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해요. 이것은 이미 일본의 경제를 지탱하는 하나의 큰기둥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기둥을 지탱하기 위해 해마다 몇만 명씩 되는 사람 기둥을 세우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 그만두자는 겁니다. 자살하거나, 가족이 동반자살하거나, 야반도주를 하거나, 범죄로 치달아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비극을 초래하는 사태로 내몰리는, 다중채무자라는 인간 기둥을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그리고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인 고금리를 단속하자는 겁니다. 대기업 신용대출의 금리는 연이자로 무려 25퍼센트에서 35퍼센트에 이르는데, 이것은 이자제한법과 개정출자법 틈에 끼어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일일이 탓할 수는 없다‘는, 이른바 그레이 존에 속하는 금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채무자 개개인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변호사가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다시 빗금을 그었다. 20도 정도 각도로 시작해서 완만하게 상승하다 마지막에는 45도 정도로 바뀌는 빗금이었다.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다가 상환이 힘들어져 신용대출에까지 손을뻗는다. 이런 패턴으로 빚이 이백만 엔이고 연이자가 30퍼센트라고 가정한다면, 칠 년째에는 천육백만 엔 정도로 불어나죠. 이것이 그 곡선입니다.˝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빗금을 그렸다.
˝내 의뢰인 중에 천이백만 엔의 부채를 떠안은 삼십대 남성이 있었는데, 그중 무려 구백만 엔 정도가 이자였습니다. 그야말로 뻥튀기죠. 눈깜짝할 사이에 불어난 겁니다. 처음 빌릴 때는 금리의 무서움을 알지못해요. 현금서비스 기계는 카드를 꽂을 때 금리까지 설명해주진 않으니까.˝
158.미조구치 변호사가 혼마 형사에게


˝제가 한 얘기를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세키네 쇼코 씨는 유달리 낭비벽이 심한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했어요. 그녀 신상에 일어난 일은 상황이 조금만 바뀌면 나나 당신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주위 상황을 늘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녀도, 그녀 행세를 한 여자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손을 들어 보이고 변호사는 등을 돌렸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어서 조그만 그의 등은 곧바로 인파 속에 파묻혀버렸다.
무수한 나무들 속으로, 숲속으로.
보이지 않는 흐름에 떠밀려가는,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171.미조구치 변호사가 혼마 형사에게



˝저기, 뱀이 탈피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요?˝
˝탈피?˝
˝뱀은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실은 목숨 걸고 하는 거래요. 그러니에너지가 엄청나게 필요하겠죠. 그런데도 허물을 벗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혼마보다 앞서 다모쓰가 대답했다. ˝성장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후미에가 웃었다. ˝아니에요. 목숨 걸고 몇 번이고 죽어라 허물을 벗다보면 언젠가 다리가 나올 거라 믿기 때문이래요. 이번에는 꼭 나오겠지, 이번에는, 하면서.˝
346.후미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영화와 좀 달랐다.
신조 교코를 동정하게 되었다. 부모 빚에 어린 시절이 뽑아내지고 의지할 곳없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자로 지내고. 좀 살만하다 싶으면 찾아내서 괴롭히고 팔려가고 한다면. 타의에 의해 궁지에 몰리고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미조구치 변호사의 다중 채무등에 대한 설명들이 이 책의 주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냥 신분을 훔치는 여자 이야기 같은 간단한게 아니고 도시와 짤랑거리는 금융의 어두운 늪과 함정에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이야기야.
구제활동 단체들이 있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지만, 읽은 후 몇일 마음이 찹찹했다. 미미 여사 현대물은 가끔 이래. 끝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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