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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요란 푸른아파트 ㅣ 문지아이들 96
김려령 지음, 신민재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0월
평점 :
지어진지 사십 년이 넘은 푸른아파트, 1동은 투덜이, 정이 많은 2동, 검정띠를 두른 3동, 구석진곳에 있는 4동 그리고 오지랖 넓은 상가, 그곳에 30년동안 살아온 할머니, 말썽쟁이 만화가 지망생인 이기동, 그의 짝꿍인 단아, 어미고양이, 그리고 만화가 천기호, 만두모자청년이 나온다.
작가의 생각이 기발하다, 아파트가 말을 한다, 그런데 대화가 재밌다. 재건축이 취소되어 인적이 드문 아파트에 자식들 뒷바라지에 월급도 못받은 교장선생님, 그의 손녀딸 단아. 그리고 말썽쟁이 아들을 맡긴채 연락도 없는 기동이 아버지, 아버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만화가 아닌 괴담을 그리는 만화가 천기호, 모두들 어렵고 힘든상황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둡지가 않다.
글속에 실린 그림도 재밌다. 임신한 어미고양이에게 밥을 가져다 주는 기동이의 따뜻한 마음이 있고, 만화가의 꿈을 키우는 기동이에게 만화의 묘사부터 차근차근 가르켜주는 만화가 천기호가 있다. 기동이가 3동에 낙서한 두개의 산봉우리에 작은집 처럼 힘들지만 희망이 있고, 꿈이 있다.
기동이가 푸른아파트에 거주한 1년후에 아파트는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재건축을 하게되었고, 푸른아파트도 철거를 하게되고, 할머니와 기동이도 이사를 하게된다. 할머니는 낡은 장판까지 일일이 들쳐 보며 혹시 남기고 가는 물건이 없나 확인하고, 문 앞에 서서 살림이 다 빠져나간 텅빈 집도 살펴본다. 세상에 나는 것들은 다 지 헐 몫을 가지고 나는 것이여, 허투루 나는 게 한나 없나니께. 고 단단하던 것들이 이렇게 제 몸 다 낡도록 사람들 지켜 주느라 얼마나 고생혔나 인자 지 헐일 다 허고, 저 세상 간다 생각하니 짠허다. 할멈은 2동벽을 손으로 문질렀다. (페이지 168)
푸른아파트에 와서 친구 단아도 사귀고, 정도 나누고, 그토록 만나고픈 만화가 천기호도 만난 기동이, 그에게 40년된 철거를 앞두고 있는 푸른아파트는 그렇게 정감있고, 추억이 깃든곳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지은지 20년이 되었다. 나의 아이들도 이곳에서 친구를 사귀고, 학교를 다니고,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녁외출길 돌아오는길에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2동, 3동, 4동, 우리동네에도 익숙한 번호가 보인다. 푸른아파트 덕분일까? 오늘은 웬지 올려다본 아파트에게 말이 걸고 싶어졌다. 혹 내가 잠든 사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들도 이야기를 나눌까? 잠시 상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