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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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이 아름다운 표지와 함께 19년 만의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후각부터 공감각까지 여섯 가지 감각을 따라 우리와 이 세계를 조명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페이지가 줄어드는 걸 아쉬워하며 아껴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각의 박물학>은 독자에게 시집을 읽는 듯, 이끼와 버섯 향이 나는 숲 속을 걷는 듯, 키스를 하는 듯, 천둥 소리를 듣는 듯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저자는 철학과 과학, 문학과 예술, 역사와 사적인 경험들을 넘나들며 우리를 장미 꽃잎이 어지러이 향을 내는 가운데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났던 침실부터 따뜻한 손길로 안마를 받는 아기들이 있는 조산아 병동, 초콜릿 봄브를 맛볼 수 있는 맨해튼의 포시즌 식당으로 데려갑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듣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가을 단풍을 살펴보고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나보코프의 공감각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창 밖의 바람을 느껴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겨우내 말라서 바스락 소리를 내는 들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온 몸의 감각이 긴긴 잠에서 깨어나는 이 봄에 너무나 어울리는 <감각의 박물학>. 이 책에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은 것 같아요. 서문의 몇 문장을 인용하며 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 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향기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커피를 끓이는 것이다. (p.7,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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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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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이렇게 생각했다.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내가 쓸 책의 주제가 되는 거다. (p.8)”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이번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에서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인 ‘나’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먹죠, 길에서 만난 사람을 글로 담아내겠다고요.

그렇게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나’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할머니와 딸, 사위, 손주들을 소설에 담기로 한 작가는 종종 그 집에서 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가족들은 서서히 자신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을 인식하며 변해가는데...

•할머니: “나에게는 갑자기 헤어진 첫사랑이 있어. 그를 만나러 가보고 싶어!”
•딸: “남편이랑 이혼할테야! 작가님.. 저랑 술 한 잔 할래요?”
•사위: “회사에서도 잘릴테고, 아내도 잃게 될 거야... 흑흑..”
•손자: “...(관심 없음)”
•손녀: “내 남자친구랑 자도 될까요?”

‘나’는 가족들 모두 한없이 평범하면서도 각자에게는 소설같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가족들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작가인 ‘나’ 스스로도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고민해온 일을 하게 되고요.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행복과 고통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가족을 비집고 들어간 작가,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가 가족들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소설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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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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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면봉으로 볼 안쪽을 문지른다
② 두 손을 모아 행운을 빌어본다
③ 당신의 인생이 바뀐다

“즉석사진 부스처럼 커튼이 달려 있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이 기계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DNA를 측정해 당신 인생의 가능성, 그리고 당신의 신체와 정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준다고 한다. 게다가 값은 고작 2달러다.(p.16)”

루이지애나 남부의 작은 마을 디어필드의 식료품점에 새로운 기계가 하나 들어옵니다. 2달러면 나의 DNA를 측정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알려준다는 이 기계를 통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봅니다. 시장은 카우보이가 되기 위해 차를 팔고 올가미를 휘두릅니다. 교장은 목수가 되겠다며 다른 교사에게 교장직을 넘기고 떠납니다. 뮤지션은 꿈이었던 마술사가 되려고 하죠.

평생을 사랑하며 살았던 허버드 부부에게도 인생이 바뀔 위기(?)가 찾아옵니다. 아내 셰릴린은 무려 ‘왕족’이라고 적힌 결과지를 받지만, 남편 더글러스는 ‘휘파람 부는 사람’에 실망하죠. 한편, 고등학생인 제이컵은 쌍둥이 형인 토비의 음주운전 사망사고 이후로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접근해오는 형의 여자친구 트리나 때문에 심란합니다. 이 와중에 아빠는 카우보이가 되겠다며 난리고!

“테스트 결과 중 대부분은 말도 안 되잖아요. 다들 자기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다들 그저, 자기가 아닌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거잖아요? (p.470)"

책 속에서는 트리나의 삼촌인 피트 신부님, 더글라스의 아내를 오랫동안 짝사랑한 듀스와 같이 여러 인물들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마을 축제 준비, DNA믹스 기계, 토비의 죽음에 관한 진실로 떠들썩한 작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보아온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됩니다.

500페이지 가량을 책을 읽으며 여러 사건들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오해로 오랫동안 쌓아 온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장면에 안타까워지기도 합니다. 토비와 트리나의 이야기는 미스터리도 선사합니다. 애플TV+에서 2023년 상반기에 드라마 방영이 확정되었다고 하니, 미스터리 휴먼 판타지 <빅 도어 프라이즈>를 원작 소설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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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열여덟 어른 - 자립준비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남겨진 과제
김성식 지음 / 파지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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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은데’라는 쪽지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립준비청년이 있었습니다. 만 18세가 되어 보육원을 퇴소하고 받은 지원금 700만원을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로 쓰고 난 뒤 금전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아동복지시설에 사는 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시설에서 나와 소액의 지원금을 가지고 자립을 해야만 합니다. <안녕, 열여덟 어른>은 그 돈으로 거주지를 마련하고 직장이나 대학교에 들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열여덟 어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거쳐가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 힘든 아동기, 혹여나 복지시설에 사는 것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청소년 시절을 거쳐 힘들게 자립을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재정이나 진로를 상담할 가족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미디어에서 악하거나 약하게 다뤄지는 ‘고아’ 캐릭터를 포함해 사회에서 받는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요.

“자립준비청년은 실수하면 혼나고, 말을 잘 듣고 성취를 해내야 칭찬받는, 실패에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다. 잘하든 못하든 칭찬하고 감싸 주는 세상에서 살았다면 좀 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p.224)"

열여덟 어른 프로젝트는 매년 2500명 정도인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세지를 줍니다. 벌써 시즌3을 맞이한 ‘열여덟 어른’ 시즌3에서는 자립준비청년 캠페이너들이 여러 문제들을 탐구해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사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오를 일반화하여 아동보호시설 전체의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오랜 시간 정부는 물론 얼론, 대중들까지 지원은커녕 관심과 응원도 많지 않았다. 특히 정부는 이제 와서 책임을 현장 시설에 미뤄서는 안된다.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보고 지원을 강화하고 정책을 마련했어야 했단 정부가 남 일처럼 문제를 지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p.187)"

사회로부터 필요한 지원을 받는 것인 당연한 권리임에도 ‘고밍아웃(고아+커밍아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립준비청년들이 스스로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리뷰로 다시 전달해 드립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여러 캠페인을 살펴보고 소액이나마 기부를 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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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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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베라크루스 주의 라 마토사에서 부패된 시체가 발견됩니다. 목덜미에 깊숙이 찔린 상처가 있는 일명 ‘마녀’의 시신.. 마을 사람들은 마녀를 두려워하고 혐오하면서도 아프거나 고민이 생기면 그를 찾아가 주술을 의뢰하고, 약을 받고, 돈을 빌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녀가 치료와 주술을 업으로 삼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새끼 마녀라 불렸고, 그러다 산사태가 나던 해에 홀로 남게 된 뒤부터는 그냥 마녀가 되었다. (p.16)”

마녀의 동네에는 극빈층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입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속어와 폭력이 난무해서 마치 스너프 필름을 책으로 읽는 듯 불쾌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생각 없이 저지르는 악행들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휘몰아쳐서 독자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기도 합니다.

각 장마다 다른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의 입장에서 마녀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 놓습니다. 아들이 버리고 간 손주를 애지중지 알콜과 마약 중독으로 길러낸 할머니는 손주와 손녀에게 배신당한 채 분노하며 죽어갑니다. 새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어린 여자아이는 마녀에게 받아온 약을 먹고 피를 쏟고, 청년들은 동성애자와 잠자리를 하며 돈을 법니다.

“항간에는 조만간 이 지역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해병대를 파견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사람들은 그 비정상적인 더위가 그곳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고 말핬다. 다가올 태풍철은 만만치 않을 듯했다. 불길한 징조가 보이더니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p.346)"

이 책의 사건들은 작가가 실제로 일어난 일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절대로 순화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폭력성을 그려냈습니다. <태풍의 계절>이2020년에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을 때에 다소 논란이 있았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을 정도로요.

선하고 훌륭한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작품에서만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히려 비인간적이고 악한 현실과 이야기에서 우리는 깊은 생각에 빠집니다.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고요. 이 작품 또한 저에게 성찰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강렬한 어두움을 느껴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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