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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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청 수사 1과 가부라기 데쓰오 님에게.. 데드맨이라고 합니다. 저는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이 수사 중인 연속살인사건의 여섯 시체에서 잘라낸 부분으로 만들어진 사람입니다. 당신이 우리 여섯 명을 죽인 범인을 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p.205)

한 남자의 머리가 잘린 몸통만이 장기보존액이 담긴 욕조 안에서 발견된다. 머리를 깨끗하게 잘라서 가져간 범인은 이후 연쇄 살인을 저지른 뒤 시신에서 각각 몸통, 오른팔, 왼팔, 오른쪽 다리, 왼쪽 다리를 가져간다.

가부라기 데쓰오는 이 연쇄살인의 특별수사본부를 맡게 된다. 수사에 열심인 후배들과 범죄 프로파일링에 머리를 써가며 수사를 하지만 범인은 변태, 정신이상자도 아니고 피해자들과 원한관계가 있는 사이도 아니다. 어째서 그는 신체를 훼손해서 가져간 것일까?

<데드맨>은 출간 10주년 기념 리커버 에디션이다. 형사 가부라기가 기괴한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파트와 데드맨(피해자들의 신체를 모아 소생시킨 새로운 인간이자 피해자)이 눈을 뜨고 재활 훈련 끝에 인간의 모습을 갖춰나가는 파트가 번갈아 나와서 독자의 추리를 더 재미있게 해준다.

포기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사건을 손에서 놓지 않는 수사본부의 이야기도,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나름의 수사를 해나가는 데드맨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나에겐 스릴있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이 모든 사건을 불러일으킨 슬픈 사연과 형사 가부라기의 직업관이 마음에 남았다.


•작가정신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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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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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를 다 쓰고 지하련 작가의 리라이팅 작업이 수록된 책이 출간되고 나면, 나는 지하련 작가의 원고를 원래의 자리로 옮겨놓을 것이다. 임시로 두는 내 책상이 아닌, 영구히 둘 어느 자리. 그곳이 어디든, 지하련 작가가 더는 어느 ‘그늘’에 가려딘 곳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p.269)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는 활발한 창작활동에도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다.

시리즈 첫 번째인 백신애와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 이어 두 번째 <제법 엄숙한 얼굴>이 출간되었다. 1940년대에 활동한 지하련은 한 사람의 작가라기 보다 시인 임화의 아내로 알려졌고, 월북을 하며 잊혀지고 말았다.

지하련의 소설에는 말보다는 생각이 많고 어딘지 쓸쓸한 인물들이 나온다. <체향초>에서 삼희는 고향 산호리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어려서 헤어졌던 오라버니와 오랜만에 재회한 그는 오라버니를 지켜보지만, 오라버니는 자기혐오가 가득한 우울한 지식인이다. 무기력한 오라버니가 훌륭한 사나이라며 자랑하는 친구 태일은 학교를 졸업한 뒤 별반 하는 일이 없을 뿐이다.

임솔아가 <지향초>에서 빌려온 제목이 붙은 <제법 엄숙한 얼굴>은 조선족 영애의 이야기다. 에어비앤비와 카페에서 일하는 영애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 사람처럼 표준말을 쓴다. 카페 사장인 제이는 자신이 외국에서 겪은 인종 차별 경험으로 영애에게 자신의 말을 쓰며 당당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영애로 하여금 오히려 연변말(+이상한 사투리들의 조합)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낳는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자랑도 시대에 맞춰 변화를 했구나. 그 시대의 남성들이 그 시대의 남성답게 깨어 있었듯, 지금의 남성들도 지금의 남성답게 깨어 있구나.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소설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p.267)

•작가정신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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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코코 샤넬 전기의 결정판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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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의 몸에 자유를 주었다. 그동안 여성의 몸은 레이스, 코르셋, 속옷, 심을 넣어서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샤넬이 아주 새로운 여성의 실루엣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은 다른 세기로 접어들게 된다. (p.157-158)

가브리엘 샤넬은 장돌뱅이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가 사망하며 고아원에 버려진다. 12살에 모든 것을 잃은 가브리엘은 상점에서 보조 양재사로 일하고, 물랭의 뮤직홀에서는 가수로 일하며 ‘코코 Coco’라는 별명을 얻는다. 파리에서 모자 작업실을 연 가브리엘은 명성을 얻으며 의상 디자인도 시작한다.

그는 작은 체구와 빈약한 가슴을 가진 본인에게 잘 어울리도록 저렴한 소재로 단순한 디자인을 한 의상들을 만들어 수많은 부자들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세계대전 중에는 ‘메종 샤넬’의 다양한 의류에 더해 샤넬 향수로 막대한 부를 얻고, 그는 이 돈으로 여러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한다.

그의 전기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만난 여러 남자들과의 관계보다 그가 후원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였다. 책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한 그는 스트라빈스키, 콕토 등 자신이 후원해야 할 예술가들의 목록을 만들 정도로 그들을 살폈다.

또한 쉰살이 지나며 은퇴했던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흔 한살의 나이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여성을 옥죄는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자 가브리엘은 남들이 휴식을 취하는 나이에 다시 가위를 잡고 무관심 속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며 여성들을 또 한번 해방시켰다.

스스로 자수성가했지만 자신보다 더 돈이 많은 남성들에게 기대지 않고 외로움 속에서도 자립을 꿈꾼 코코도, 메종 샤넬의 가브리엘 샤넬도 분명 친해지기 쉬운 성격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가진 여러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과 남다른 심미안,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들은 나를 버림받은 불쌍한 참새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맹수였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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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과의 산책 -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사이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 돌고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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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가 각각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함께한 인생을 파헤친 독보적인 구성의 삼인 평전이다. (p.431, 옮긴이의 말)”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고인류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형 유인원을 세심하게 관찰할 연구자로 대학 학위도 없는 세 여성을 채택합니다. 통제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성 중심의 학문 세계에서는 이들의 연구 방법에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동물에 대한 통제를 그치는 데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것은 타자의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하는 접근법이다. (p.20)” 그들은 숫자보다는 관계를 맺으며 관찰한 ‘이야기’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전해옵니다.

저자인 사이 몽고메리는 동물 생태학자로서 위의 세 사람처럼 자연에 뛰어든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루이스의 영장류 연구자로서 가장 유명한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때로는 약점이나 단점까지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세 연구자들이 유인원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 각 연구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시간이 지난 후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달하는 이 책의 서술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럼 세 사람을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제인 구달: 탄자니아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 침팬지에게 약과 먹이를 주는 연구 방법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여러 마리의 침팬지들과 어울려 지내며 유인원 현장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유명세를 얻은 이후로는 동물과 환경 보호 단체들로부터 앞장서서 발언할 것을 요구받기도. 침팬지 보호를 위해 공인으로 나서며 자신의 조용한 성격에 맞지 않는 활동들도 해낸다.

🦍다이앤 포시: 매우 위험한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 연구. 마운틴고릴라 ‘디짓’은 그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며 평생 얻지 못한 진정한 가족이었다. 제인 구달에 가려진 2인자로서의 욕망과 실패한 여러 사랑 이야기들의 소유자. 마운틴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까지 사용하여 비판받던 다이앤은 살해당한 채 발견되어 고릴라들의 곁에 묻혔다.

🦧비루테 갈디카스: 인도네시아 탄중푸팅에서 야생 오랑우탄 연구.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오랑우탄의 특성상 오랜 시간에 걸쳐 각 개체들을 힘들게 관찰했고, 지원금과 시간에 비해 출판물이 적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첫 남편과 이혼 후 인도네시아 다야크족 남성과 결혼하고 현지의 관습을 익혀 오랑우탄 연구와 보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루이스 리키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세 사람의 영장류학자들은 학위 없는 여성들이라는 점과 연구 대상과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 관찰 방법으로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흐린 경계선을 두고 인간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영장류들을 구하기 위해 연구자이자 전사, 때로는 샤먼이 되기도 했지요. 저자는 30년 전에 이 책을 썼지만 개정판을 읽는 30년 후의 독자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동물과 더불어 사는 방법과 인간이 끼치는 영향,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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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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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제목부터 신기한 이 책은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작가 정지돈의 연작 소설집입니다. ‘모빌리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파리와 서울에서 이동하는 인간들의 ‘이동’이 가져오는 사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차와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건너 이동할 수 있으며, 도시의 거리에는 공유 킥보드와 자전거가 가득한 세상이죠. 책에는 이동이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고 계급 문제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어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형식과 구조의 이동이 자유롭고(p.220), 동시대는 어느 때보다 구조와 형식이 빠르게 이동한다(p.221)’는 작가의 말처럼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집이라서 더 낯설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의 예술 작품은 종종 난해하고 끊임없는 의문을 자아냅니다. 저에겐 이 책도 그랬어요. 하지만 현대 미술이 어렵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듯, 정지돈 작가의 신작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문학을 만나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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