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엄숙한 얼굴 소설, 잇다 2
지하련.임솔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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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를 다 쓰고 지하련 작가의 리라이팅 작업이 수록된 책이 출간되고 나면, 나는 지하련 작가의 원고를 원래의 자리로 옮겨놓을 것이다. 임시로 두는 내 책상이 아닌, 영구히 둘 어느 자리. 그곳이 어디든, 지하련 작가가 더는 어느 ‘그늘’에 가려딘 곳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p.269)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는 활발한 창작활동에도 충분히 회자되지 못한 근대 여성 작가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시리즈다.

시리즈 첫 번째인 백신애와 최진영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 이어 두 번째 <제법 엄숙한 얼굴>이 출간되었다. 1940년대에 활동한 지하련은 한 사람의 작가라기 보다 시인 임화의 아내로 알려졌고, 월북을 하며 잊혀지고 말았다.

지하련의 소설에는 말보다는 생각이 많고 어딘지 쓸쓸한 인물들이 나온다. <체향초>에서 삼희는 고향 산호리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 어려서 헤어졌던 오라버니와 오랜만에 재회한 그는 오라버니를 지켜보지만, 오라버니는 자기혐오가 가득한 우울한 지식인이다. 무기력한 오라버니가 훌륭한 사나이라며 자랑하는 친구 태일은 학교를 졸업한 뒤 별반 하는 일이 없을 뿐이다.

임솔아가 <지향초>에서 빌려온 제목이 붙은 <제법 엄숙한 얼굴>은 조선족 영애의 이야기다. 에어비앤비와 카페에서 일하는 영애는 차별을 피하기 위해 한국 사람처럼 표준말을 쓴다. 카페 사장인 제이는 자신이 외국에서 겪은 인종 차별 경험으로 영애에게 자신의 말을 쓰며 당당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영애로 하여금 오히려 연변말(+이상한 사투리들의 조합)을 사용하게 되는 상황을 낳는다.

“그들도 아는 것이었다. 자랑하는 남자가 별로라는 것을. 그러나 자랑을 포기할 수는 없었으므로, 자기가 자랑하고, 자기가 자기 자랑을 씁쓸해하고, 그 씁쓸함도 자랑했다. 자랑도 시대에 맞춰 변화를 했구나. 그 시대의 남성들이 그 시대의 남성답게 깨어 있었듯, 지금의 남성들도 지금의 남성답게 깨어 있구나. 약간의 다름과 미묘한 같음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소설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p.267)

•작가정신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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