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1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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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TV+에서 드라마로 방영되며 많은 호평을 받은 <파친코>의 원작이 인플루엔셜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쓴 가족 대서사로, 일제강점기의 부산에 사는 부부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딸이 일본에 건너가 펼쳐지는 4대에 걸친 가슴 아픈 역사다.

"너한테는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아버지가 있데이."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했고 선자는 어머니와 자신을 아끼는 아버지의 사랑을 자랑스러워했다. (p.120)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장애가 있는 훈이에게 시집온 양진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식인 선자를 애지중지 키운다. 선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하숙집을 꾸리며 생계를 유지한다. 선자는 일본에 가정을 둔 사업가 한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지만 하숙집에 묵으며 결핵을 치료한 백 목사의 청혼으로 구원받는다. 이들 부부는 형의 집이 있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고,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재일교포로서 가정을 이루며 힘들게 살아간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겠지만 넌 네 아이들을 보호해야 해. 그 집은 잿더미가 될 거야. 집이 없어져도 일본은 그의 고통에 대한 대가로 1센도 주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전쟁이 곧 끝날 거라 캤십니더."
"전쟁이 곧 끝날 테지만,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는 아니야." (p.316)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의 처절한 삶과 이들을 버티게 해주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현대의 후손들인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 <파친코>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팍팍한 삶,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자이니치들의 복잡하고 힘겨운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와 목사 가족의 기독교라는 신앙, 가부장적 사고가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준다. 가족에게 한없이 다정한 인물마저도 힘든 삶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운명에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된 주인공 일가의 모습에 뜨거운 사랑이 느껴진다.

<파친코>는 총 3부작,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4대의 가족들 중 3대인 백노아, 백모자수까지 만나볼 수 있다. 선자의 두 아들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두 형제의 이야기가 이어질 <파친코 2>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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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레이첼 카슨 외 지음, 스튜어트 케스텐바움 엮음, 민승남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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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저마다 보금자리를 찾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들이 공중 가득 눈송이처럼 소용돌이쳤다. 날개 달린 단풍나무 씨앗 하나가 나무에서 떨어져 내가 읽던 책 위에 내려앉았다. 세상은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문자 그대로 생존과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p.18)"

코로나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던 시기에 만들어진 이 한 권의 책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 <자연Nature>에서 시작되어, 팬데믹 속에서도 각자 제 할일을 하고 있는 자연의 모습을 담았다.

스물 한 명의 작가들은 바다에서, 산에서, 숲과 연못에서,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움막 그리고 야생 정원에서, 야간 비행을 하는 새들에게서, 로키산에서 천년을 넘게 살아가는 소나무들에게서 자연의 느낀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해준다.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슬콘 소나무를 찾아서: 이 굽힐 줄 모르는 다발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면 공기가 찢기며 쉭쉭 소리를 낸다. 오랜 세월 눈의 무게와 강풍을 견디면서 억센 잎과 탄력적인 가지를 지닌 나무로 진화한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이 이곳에선 수천 년을 간다.(p.64)

🌊산호초가 부르는 더 깊은 곳으로, 프리다이빙!: 수중 세계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하리라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린하다. 산호들이 펑펑, 비늘돔이 오도독오도독 소리를 낸다. 귓속 수압은 한결같은 모노톤으로 울린다. 그리고 사방이 움직임이다. (p.131)

코로나 시대에 우리는 자연을 집 안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는 꽃이 피고 단풍이 지는 자연을 느끼고 싶어서 간절했던 마음을 위로하는 책이다. 책에 담긴 스물 한 곳의 자연과 스물 한 가지의 경이로움 속에서 누구나 밑줄 치는 문장과 귀퉁이를 접게 되는 페이지를 만날 수 있다. 누구나 자연의 웅장함에 겸허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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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발리 카우르 자스월 지음, 작은미미 외 옮김 / 들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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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니키는 우연히 여성들의 글쓰기 수업 강사 자리를 맡는다. 알고보니 학생들은 인도에서 영국으로 넘어왔지만 영어를 읽고 쓸 줄 모르는 과부들.

죽은 남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재혼도 안되고 평생을 정숙하게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은 니키의 수업에서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들의 은밀한(!) 판타지를 글로 옮겨 책을 만드는 것!

"인도에서 우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에요." 아르빈더가 말했다. "영국에 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우린 이런 것들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이니까." (p.113)

오랜 시간 억눌려서 가슴 깊숙한 곳에만 간직했던 과부들의 욕망은 실타래처럼 풀려나와 글이 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교류하는 그들 사이에서는 단단한 연대가 생겨난다.

"이 스토리텔링 수업은 아주 재미있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게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내가 정확히 원하는 게 뭔지를요." (p.418)

한편, 사람들과 친해진 니키는 쿨빈더의 죽은 딸 마야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녀는 '우리 문화권 여성들이 수치스러울 때 선택하는 방법(p.270)'인 분신으로 자살한 것이었다. 하지만 젊은 여성인 마야가 그런 사고 방식으로 목숨을 끊은 것은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대학을 중퇴한 이후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던 니키는 글쓰기 수업, 제이슨과의 연애, 마야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파헤치는 일을 해나가며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의 결말은 직접 확인하시길!

여성들의 연대와 욕망을 다룬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나이의 여성들이 솔직하게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책은 이 소설이 차음이었다. 이렇게나 책 속의 사람들을 응원한 것도 처음! 소설 마지막의 추리 한 스푼,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삶의 목표를 세우는 니키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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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문구점 아저씨 - 좋아하는 일들로만 먹고사는 지속 가능한 삶
유한빈(펜크래프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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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유한빈은 온오프라인에서 손글씨 쓰는 법을 강의하면서 부업으로 망원동 동교 초등학교 앞에서 동백문구점을 운영하는 아저씨(라고 자칭하지만 93년생이신 분)다. 그는 어려서 연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문구 덕후가 되었고, 자신이 쓰고 싶은 문구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어쩌다, 문구점 아저씨>에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에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추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구들이 나온다. 얇고 다양한 색의 하이테크 펜, 향기가 나는 미피 펜, 말랑해서 손이 덜 아픈 에어 샤프와 젤리 샤프를 안다면 싸이월드 사진첩 만큼이나 반가울 이야기다.

군대 선임의 어른스러운 글씨체를 보고 사람이 달라보이는 경험을 한 저자는 오랜 시간의 손글씨 연습을 통해 아름다운 자신만의 필체와 유튜브 채널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퀄리티의 노트와 잉크를 제작하여 고양이 석봉이와 함께 동백문구점에서 판매하고 있다. 작지만 우아하고 멋스러운 문구점이다.

책을 펴내고 손글씨 강의를 활발히 하며 자신만의 문구점까지 차리는 그의 '덕업일치'를 지켜보며 마음 속으로 그가 더 잘되기를 응원했다. 자신뿐 아니라 제품을 사가는 고객, 환경까지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좋았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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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아주아주 오래 하자 - 거친 세상에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삶의 기술
그랜트 스나이더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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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덕후들의 마음을 담은 <책 좀 빌려줄래?>의 저자 그랜트 스나이더의 세 번째 카툰 에세이가 나왔다.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그림을 그대로 이어가는 이번 책의 주제는 '거친 세상에서 나를 부드럽게 만드는 삶의 기술'.

140개의 카툰이 아홉 가지 '깨어 있는 삶을 위한 선언'에 녹아 있다. 어지러운 머릿속, 혼란스러운 세상,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씨에서도 내면을 단단히 하고 그 속에서 꽃과 버섯,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법을 소개한다.

<깨어 있는 삶을 위한 선언>
•눈앞의 사물을 관심 있게 보자
•매일 빈 공간을 만들자
•한 번에 한 가지만 하자
•생각을 종이에 적자
•날씨가 어떻든 밖에 나가자
•지루함을 겁내지 말자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겪어보자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자
•늘 경이로움에 눈을 뜨자

<The Art of Living>이 원제인 이 책을 읽으면 정말로 삶을 사랑하는 기술을 하나씩 터득하게 된다. 하늘을 한번 더 올려다보고, 들꽃의 이름들을 검색하고, 새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샤워를 오래오래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망한 아이디어도 다시 보고, 때로는 망했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인다.

이 책을 처음부터 하나씩 읽어도 좋겠지만,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들기 전에 여기저기 들춰보며 읽으면 다시 내 삶을 사랑하기 되지 않을까. 140개나 되는 카툰 제목을 주제로 일기도 몇번 써보고, 그림도 그려보며 요즘의 나는 하루하루를 좀 더 깊이 있고 귀하게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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