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 샤넬 - 코코 샤넬 전기의 결정판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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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의 몸에 자유를 주었다. 그동안 여성의 몸은 레이스, 코르셋, 속옷, 심을 넣어서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샤넬이 아주 새로운 여성의 실루엣을 만들어내면서 사람들은 다른 세기로 접어들게 된다. (p.157-158)

가브리엘 샤넬은 장돌뱅이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가 사망하며 고아원에 버려진다. 12살에 모든 것을 잃은 가브리엘은 상점에서 보조 양재사로 일하고, 물랭의 뮤직홀에서는 가수로 일하며 ‘코코 Coco’라는 별명을 얻는다. 파리에서 모자 작업실을 연 가브리엘은 명성을 얻으며 의상 디자인도 시작한다.

그는 작은 체구와 빈약한 가슴을 가진 본인에게 잘 어울리도록 저렴한 소재로 단순한 디자인을 한 의상들을 만들어 수많은 부자들로부터 주문을 받는다. 세계대전 중에는 ‘메종 샤넬’의 다양한 의류에 더해 샤넬 향수로 막대한 부를 얻고, 그는 이 돈으로 여러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한다.

그의 전기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만난 여러 남자들과의 관계보다 그가 후원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였다. 책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한 그는 스트라빈스키, 콕토 등 자신이 후원해야 할 예술가들의 목록을 만들 정도로 그들을 살폈다.

또한 쉰살이 지나며 은퇴했던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흔 한살의 나이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여성을 옥죄는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자 가브리엘은 남들이 휴식을 취하는 나이에 다시 가위를 잡고 무관심 속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며 여성들을 또 한번 해방시켰다.

스스로 자수성가했지만 자신보다 더 돈이 많은 남성들에게 기대지 않고 외로움 속에서도 자립을 꿈꾼 코코도, 메종 샤넬의 가브리엘 샤넬도 분명 친해지기 쉬운 성격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가진 여러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과 남다른 심미안, 통찰력이 돋보인다.

"그들은 나를 버림받은 불쌍한 참새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맹수였다.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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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과의 산책 -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사이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 돌고래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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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인 구달,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가 각각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과 함께한 인생을 파헤친 독보적인 구성의 삼인 평전이다. (p.431, 옮긴이의 말)”

호모 하빌리스를 발견한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는 고인류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대형 유인원을 세심하게 관찰할 연구자로 대학 학위도 없는 세 여성을 채택합니다. 통제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남성 중심의 학문 세계에서는 이들의 연구 방법에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동물에 대한 통제를 그치는 데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것은 타자의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가능하게 하는 접근법이다. (p.20)” 그들은 숫자보다는 관계를 맺으며 관찰한 ‘이야기’로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전해옵니다.

저자인 사이 몽고메리는 동물 생태학자로서 위의 세 사람처럼 자연에 뛰어든 경험이 있습니다. 그는 루이스의 영장류 연구자로서 가장 유명한 제인 구달과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의 이야기를 자세히, 때로는 약점이나 단점까지 적나라하게 그려냅니다. 세 연구자들이 유인원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 각 연구자의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시간이 지난 후 객관적인 시각에서 세 사람에 대한 평가를 전달하는 이 책의 서술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럼 세 사람을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제인 구달: 탄자니아 곰베에서 침팬지 연구. 침팬지에게 약과 먹이를 주는 연구 방법에 대해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여러 마리의 침팬지들과 어울려 지내며 유인원 현장 연구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유명세를 얻은 이후로는 동물과 환경 보호 단체들로부터 앞장서서 발언할 것을 요구받기도. 침팬지 보호를 위해 공인으로 나서며 자신의 조용한 성격에 맞지 않는 활동들도 해낸다.

🦍다이앤 포시: 매우 위험한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 연구. 마운틴고릴라 ‘디짓’은 그가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며 평생 얻지 못한 진정한 가족이었다. 제인 구달에 가려진 2인자로서의 욕망과 실패한 여러 사랑 이야기들의 소유자. 마운틴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까지 사용하여 비판받던 다이앤은 살해당한 채 발견되어 고릴라들의 곁에 묻혔다.

🦧비루테 갈디카스: 인도네시아 탄중푸팅에서 야생 오랑우탄 연구.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오랑우탄의 특성상 오랜 시간에 걸쳐 각 개체들을 힘들게 관찰했고, 지원금과 시간에 비해 출판물이 적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첫 남편과 이혼 후 인도네시아 다야크족 남성과 결혼하고 현지의 관습을 익혀 오랑우탄 연구와 보존에 큰 도움이 되었다.

루이스 리키가 전폭적으로 지원한 세 사람의 영장류학자들은 학위 없는 여성들이라는 점과 연구 대상과 오랜 시간에 걸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특별한 관계를 맺는 관찰 방법으로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그들은 흐린 경계선을 두고 인간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영장류들을 구하기 위해 연구자이자 전사, 때로는 샤먼이 되기도 했지요. 저자는 30년 전에 이 책을 썼지만 개정판을 읽는 30년 후의 독자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동물과 더불어 사는 방법과 인간이 끼치는 영향,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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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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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제목부터 신기한 이 책은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작가 정지돈의 연작 소설집입니다. ‘모빌리티’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파리와 서울에서 이동하는 인간들의 ‘이동’이 가져오는 사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차와 비행기를 타고 도시를 건너 이동할 수 있으며, 도시의 거리에는 공유 킥보드와 자전거가 가득한 세상이죠. 책에는 이동이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고 계급 문제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어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형식과 구조의 이동이 자유롭고(p.220), 동시대는 어느 때보다 구조와 형식이 빠르게 이동한다(p.221)’는 작가의 말처럼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집이라서 더 낯설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의 예술 작품은 종종 난해하고 끊임없는 의문을 자아냅니다. 저에겐 이 책도 그랬어요. 하지만 현대 미술이 어렵다고 피하기만 할 수는 없듯, 정지돈 작가의 신작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문학을 만나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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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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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이 아름다운 표지와 함께 19년 만의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후각부터 공감각까지 여섯 가지 감각을 따라 우리와 이 세계를 조명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페이지가 줄어드는 걸 아쉬워하며 아껴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각의 박물학>은 독자에게 시집을 읽는 듯, 이끼와 버섯 향이 나는 숲 속을 걷는 듯, 키스를 하는 듯, 천둥 소리를 듣는 듯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저자는 철학과 과학, 문학과 예술, 역사와 사적인 경험들을 넘나들며 우리를 장미 꽃잎이 어지러이 향을 내는 가운데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났던 침실부터 따뜻한 손길로 안마를 받는 아기들이 있는 조산아 병동, 초콜릿 봄브를 맛볼 수 있는 맨해튼의 포시즌 식당으로 데려갑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듣고, 시시각각 변해가는 가을 단풍을 살펴보고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나보코프의 공감각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창 밖의 바람을 느껴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겨우내 말라서 바스락 소리를 내는 들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차갑게 얼어붙은 온 몸의 감각이 긴긴 잠에서 깨어나는 이 봄에 너무나 어울리는 <감각의 박물학>. 이 책에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은 것 같아요. 서문의 몇 문장을 인용하며 제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 여름철, 우리는 침실 창 문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에 이끌려 잠에서 깨어난다. 망사 커튼에 비쳐든 햇빛이 물결무늬를 만들어내고, 빛을 받은 커튼은 바르르 떠는 듯 보인다. 겨울철, 사람들은 동트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잠결에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향기로우면서도 조금 씁쓸한 커피를 끓이는 것이다. (p.7,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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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윤미연 옮김 / 망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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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말로 이렇게 생각했다. 거리로 나가 맨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야, 그리고 바로 그 사람이 내가 쓸 책의 주제가 되는 거다. (p.8)”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이번 소설 <안녕하세요, 마르탱네 사람들입니다>에서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작가인 ‘나’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마음을 먹죠, 길에서 만난 사람을 글로 담아내겠다고요.

그렇게 길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나’를 집으로 초대합니다. 할머니와 딸, 사위, 손주들을 소설에 담기로 한 작가는 종종 그 집에서 식사를 하며 가족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가족들은 서서히 자신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을 인식하며 변해가는데...

•할머니: “나에게는 갑자기 헤어진 첫사랑이 있어. 그를 만나러 가보고 싶어!”
•딸: “남편이랑 이혼할테야! 작가님.. 저랑 술 한 잔 할래요?”
•사위: “회사에서도 잘릴테고, 아내도 잃게 될 거야... 흑흑..”
•손자: “...(관심 없음)”
•손녀: “내 남자친구랑 자도 될까요?”

‘나’는 가족들 모두 한없이 평범하면서도 각자에게는 소설같은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작가와 대화를 나누며 가족들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작가인 ‘나’ 스스로도 용기를 내어 오랫동안 고민해온 일을 하게 되고요.

겉으로는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행복과 고통은 사소하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가족을 비집고 들어간 작가,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가 가족들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소설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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