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조각들
연여름 지음 / 오리지널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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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유일한 바깥이거든요. 꿈은.” (p.69)

SF가 이렇게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울 수가 있나요? 여기는 신체를 강화하고 우주 곳곳을 다니는 것이 가능해진 미래의 세상. 신체 강화 수술을 받지 않은 ‘오가닉’의 작품만을 인정하는 예술계 때문에 천재 화가 ‘소카’는 폐 질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고로 인해 ‘흑백증’을 앓는 화자 ‘뤽셀레’는 신체 강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카의 저택에 청소부로 고용됩니다. 색을 잃은 뤽셀레와 예민한 예술가 소카는 질문을 통해 서로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결핍과 진실을 마주합니다.

“저 아득한 시간 속에서 하필 우리가 지금 함께 있는 건, 사실 엄청난 확률인 거지. 당신은 운이 좋아.” (p.45)

‘그 풍경을 꼼짝없이 오래 응시했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을. 또 나를 하필 지금 이곳에 있게 한 모든 확률을.’ (p.227)

따스하고 아름다워서 다가오는 겨울에 읽기 좋은 뤽셀레와 소카의 쌍방 구원 서사는,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가진 결핍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요.

<빛의 조각들>은 밀리의서재 별점 4.7의 믿고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이옥토 작가의 아름다운 표지에다, 종이책에만 ‘외전’인 <물거품 씨에 대하여>가 실려있답니다. 그러니 꼭 실물 종이책으로 만나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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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먹는 존재들 - 온몸으로 경험하고 세상에 파고드는 식물지능의 경이로운 세계
조이 슐랭거 지음, 정지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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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의 가장 역동적인 주제 '식물지능'의 놀라음을 전하는 책입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전기 신호를 주고 받는 식물 감각 체계의 최신 연구 결과를 모두 모아 경이로운 식물의 세상으로 안내합니다.

식물은 서로 소통하고, 주변 동식물을 이용하고 흉내냅니다. 기억을 가지고 자신이 터득한 기술을 자식에게 물려주고요. 식물들이 이동 없이 한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강인하고 똑똑하다는 증거죠.

“시계꽃passionflower의 몇몇 종은 작고 노란 공들로 장식한 것처럼 보이는 잎을 내는데, 이 둥근 구들은 나비의 알과 상당히 닮았다. 나비들은 자기 알들이 부화했을 때 경쟁이 심한 환경에 처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미 다른 알들이 있는 잎에는 자기 알을 잘 낳지 않는다. 시계꽃은 굶주린 수십 마리 애벌레의 첫 식사가 되는 시련을 모면한 셈이다.” (p.294)

“노란 물꽈리아재비는 포식자들에게 노출되면, 잎에 가느다란 방어용 가시가 돋아선 자식들을 만든다. 파괴적인 애벌레들의 대대적 공격을 뚫고 살아 같은 서양무아재비는 잎에 유난히 억센 털이 무성한 아기 서양무아재비를 만드는데, 이에 더해 이 아기들은 적의 위협을 더 잘 막아내도록 방어용 화학물질까지 미리 장전하고 있다.” (p.369)

식물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식물의 생태에도 관심을 갖게 될텐데요. <빛을 먹는 존재들>은 페이지마다 최신 연구 성과들로 가득 차있어 놀라움의 연속이랍니다. 인간, 인간과 유사한 동물만이 지적이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이제 벗어나 볼까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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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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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인 애나 펀더는 권력에 관해 잘 알고 있음이 분명한 조지 오웰에 대해 찾아보다가 그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를 알게 됩니다. 심리학 교육을 받은 옥스퍼드 졸업생이었던 아일린은 오웰에게 <동물농장>을 '우화'로 쓰기를 권유하고 <세기말, 1984>라는 시를 써서 이후 오웰에게 소설 <1984>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공하죠. 그런데, 우리는 아일린에 대해 들어본 적 있나요?

저자는 오웰과 그의 전기 작가들이 ‘아일린 오쇼네시’를 의도적으로 지웠음을 주장합니다. 오웰이 스페인 전쟁에 참전하고 부상을 입은 동안 아일린은 정보부 검열과에 들어가서 아픈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오웰에게 정보부(이후 <1984> ‘진리부’의 모티프) 일을 알아봐 주었고요. 그럼에도 오웰은 아일린을 서른일곱 번의 ‘내 아내’라고만 언급할 뿐입니다.

가장 노릇을 하고, 작품의 아이디어를 주고, 전쟁 속에서 자신과 동료들을 구해냈던 아일린을 두고 오웰은 오히려 다른 여성들을 갈망(+수차례 강간미수)합니다. 아일린은 아들을 입양하는 법적 절차를 밟는 날에도, 암 수술을 받는 날에도 혼자였다가 서른 아홉에 사망합니다. 아일린의 인생을 바쳐 조지 오웰은 역사에 위대한 작가로 기록되고요. 이 책은 그런 아일린의 이름을 되살리는 책입니다.

“이 세상은 여성들의 무급 노동 위에서 굴러갑니다.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돌봄노동이 여성 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분리되는 것, 그래서 남성 동반자와 좀 더 공평하게 노동을 분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574, 한국 독자들을 위한 짧은 해설)

“여성의 행위를 누락하는 가장 교묘한 방법은 수동태를 사용하는 것이다. 원고는 타자 치는 사람 없이 타자로 쳐지고, 목가적인 환경은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 없이 존재하고, (중략)” (p.101)

“가부장제야말로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한’ 남성이 여성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도록 허용해 주는 이중사고다.”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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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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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 주연으로 드라마가 제작 중인 <모스크바의 신사>의 원작 소설가 ‘에이모 토울스’가 지난 10년 동안 쓴 단편들을 모은 신간 <테이블 포 투>가 나왔습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여섯 편의 단편이 있고요,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전작 <우아한 연인>에 등장하는 ‘이브’의 이야기가 담긴 중장편이 있습니다.

남편이 재미있고 따뜻한 장편 소설을 읽고 싶을 때마다 에이모 토울스의 작품을 읽을 만큼, 늘 재치있고 사랑이 듬뿍 담긴 소설을 쓰는 작가랍니다. 첫 단편인 <줄 서기>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던 시절, 팍팍한 삶 속에서도 따스한 천성을 가진 주인공 푸시킨과 공산주의 속에서 기회를 포착해 삶을 바꿔나가려는 아내 이리나의 이야기랍니다.

배급표를 받아도 온종일 줄을 서야 물건을 살 수 있는 러시아! 농민이었던 푸시킨은 공장에 적응하지 못해 해고됩니다. 반면 이리나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이며 승승장구하고, 남편에게 배급표를 쥐어주면서 식료품을 받아오도록 합니다. 푸시킨은 바쁘고 아픈 이들을 대신해 다정하게 배급 줄을 서주며 이웃들과 정을 나누고 음식을 얻어오곤 하는데...

‘그러나 푸시킨이 어떻게 사탕을 얻었는지 설명하저, 이리나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어려움에 처한 아이 엄마를 위해 기꺼이 줄을 대신 서준 남편의 행동은 속속들이 동지적인 것 처럼 보였다. 며칠 뒤 푸시킨이 소시지를 들고 돌아왔을 때, 이리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것 역시 전적으로 옳은 행동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가 공산주의로 성공적으로 이행하면 모두가 소시지를 조금 더 갖게 될 것이라고 레닌도 예언하지 않았던가.’ (p.32, 줄 서기)

•현대문학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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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이 이야기 암실문고
김안나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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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뿌리가 있어요. 나한텐 분명한 뿌리가 있다고요. 이렇게 말한 뒤 나는 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사람들은 나만 보면 뿌리가 없냐는 노래를 해대기 시작했어요. 뿌리를 잊고 사는 거냐는 말을 해댔다고요.” (p.137)

1950년, 미국. 백인 미혼모가 흑인 혼혈아를 낳자 병원과 사회복지국은 경찰까지 동원해 아이의 생부를 추적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미혼모 캐럴은 자살까지 시도합니다. 2013년, 같은 도시. 오스트리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프란치스카는 머무를 숙소를 찾다가 과거에 일어난 위의 사건을 알게 됩니다.

소설은 1950년의 사회복지국 서류철에 담긴 보고서와 2013년의 화자(작가 프란치스카)가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교차됩니다. 흑인 혼혈아 대니얼이 태어나자마자 겪은 차별적 삶에 프란치스카도 자신의 과거를, 친해질 수 없었던 생모를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보여지고 드러나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선을 긋고 있나요?

•을유문화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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