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거: 대지 3부작 -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
대지 3부작(펄 벅)
-각설하고 고백합니다: 왕룽과 오란의 이야기를 정말,정말,정말 좋아했어요.
유년기에 읽는 책은 아무래도 특별하다. 어릴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보이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단순하게 아무 생각없이 좋아할 수 있었다. 대지(정확히 1부작)도 그런 책이었다. 아큐정전이나 작가의 다른 책인 서태후, 하다못해 세대가 좀 흐른 뒤인.. 그 뭐냐.. 장국영나오는... 그..그ㅡ.. 아 패왕별희. 그쪽이랑 비슷한 역사물이었을텐데 어린.나한테는.그런거 없고 그냥.. 흙의 땅의 대지의 농부의 이야기였다.
오란을 맞이하는 아침에 일어난 왕룽이 차를 끓이는 장면. 오란과 함께 농사짓는 장면. 열병같았던 연영(어릴 때 읽은 책에는 렌화였음, 아마 연꽃이라 그랬겠지)에 대한 집착이 흙을 밟은 순간에 빠져나가는, 칭 서방에게 쟁기를 가져다달라고 소리치는 장면.
아바타에사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의 발로 흙을 꽉 움켜쥐고 섰을때 저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음.
한참 오랜만에 읽었는데 거진 왠만한 구절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황 대인의 땅을 사는 장면, 남방과 배추와 고깃국. 아동판에서는 순화되어서 안 나왔던 이화의 동침. 음음.
2,3부작은... 되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책에서 흘리듯 스치고갔던 중국사의 변천사는 그대로 격동의 시대가 되어 2부와 3부를 겹쳐 흐른다. 군벌이 된 셋째아들, 다시 그의 아들이 농부를 동경하는 2부의 마지막은 아릿하게 역사가 되기 시작한 왕룽의 기억을 헤집어 드러내놓고 사라지더니, 3부에서는 왕룽의 손자와 신여성 메이링을 통해서 개화기 변천사를 겪는 젊은 세대의 단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농부에 대한 형체없는 동경, 서양에 대한 열망, 자국에 대한 멸시와 애국. 무너질 듯이 변혁을 시작하는 격동기에 주인공은 서로도 동으로도 흔들린다. 갈등하고 또 살아간다. 그래도 펄벅의 문체는 항상 따뜻하고 어딘가 희망이 배어있어서 주인공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자리에서 구와 신이 만나는 그 시대를 살아가겠다고 메이링과 혼약을 올리는 거다.
10년 이상 좋아한 책이 더 크고 또 다른 어떤 이야기의 첫장이었다는 거, 슬프지는 않은데 아쉬워서.
펄벅의 손으로 그린 중국은 가감없으면서도 아름답다. 위태로운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모두 더해서. 아 이건 역사였구나.. 하고 책장을 덮었다. 당분간 이 사람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책은... 못 읽을 것같았다. 마주하기전에 심호흡을 해야겠다 싶어서.
자매책: 서태후(청의 멸망까지를 그린 펄벅의 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국 남부의 역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운명의 딸(서부 개척시대를 그렸다는 점에서). 태백산맥이나 아리랑도 역사물이긴 한데 그건 남성작가의 책이니까 패스, 혼불이나 토지도 비슷하게 역사적이지 않을까 싶지만-여작가이기도 하구유- 다 안 읽었으니까 패스.
자매영화: 마지막 황제, 패왕별희.... 또 뭔가이런 긴 역사를 그려낸 영화가 있었던 것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 전쟁보다는 스칼렛의 이야기에 더 가까웠으니 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