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티븐 킹의 팬밍아웃(과 미스터 메르세데스 감상)


1. 킹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아주 많이. 저는 무진장 편협한 독서취향과 알맹이를 제외한 서문도 작가편력도 없는 취급하면서 읽는 치졸함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망설이는 편입니다.<셜록 홈즈>는 두라마 셜록을 보며 `좋은 셜록이네요 내 홈즈는 아니지만(쑻)`하고 어디의 게드 전기 작가같은 감상을 뱉을만큼 좋아하지만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쏘쏘했으니코난도일경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닙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구절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까지 좋아하고 집어들면 다 읽을 때까지 멈추지 많지만 <왕비 마고>와< 삼총사>는 뭔소린가 싶었으니 뒤마도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런 저에게 킹은 정말정말 오랫동안 ˝좋아하는 작품은 많은데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에요˝였습니다.

2. 그도 그럴게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고하면 호러소설 짱 좋아할 거같잖아요. 좋아하지만 그게 `님의 독서취향은 무엇이며 어떤 책에 정신을 못차리며 무슨 장르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까`를 종합한 질문인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에 걸맞는 대답이 <넵 스티븐 킹이요>는 아니었단 말이에요.

3. 라고 믿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4. 킹을 처음만난건 아마 중3~고1때쯤. 그 때 저의 독서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해서 이 도서관에서 다섯권 저 도서권에서 12권 합계 17권을 빌린 후에 집에 도착하면 마지막 한권까지 모조리 다 읽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아이였습니다. 아리랑도 하루만에 다 읽었지 아마. 수업 모조리 제꼈지만요(선생님들은 떠드는 애들은 봐줘도 책읽는 애들은 안잡으셨습니다) 그 시절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킹 전집을 잡았고 거짓말없이 백번은 더 읽었습니다. 그것 샤이닝 캐리 그린마일 돌로레스 클레이본 외.

5. 가장 좋아하는 킹의 책은 그린 마일이었어요. 마지막 한 복도를 걸으면서 긴 숨을 내쉬는 주인공. 그 길이 너무 길다는 짧막하게 떨어지는 지친 목소리. 딸랑 씨와 들라크루아. 난폭하고 거칠고 잔인한 장면들 가운데에서도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도자기로 만든 치아와 더어어어얼로오리스가 소름끼치던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도 그랬구요.

6. 킹에게 굴복한건 ...11/22/63이던가 (이 책제목 아직도 못외웁니다) `시간이 흐른뒤`인 킹의 책을 봤었을 때에요. 둠둠! 리듬을 밟는 걸음과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사랑. 처음과같은 마지막 춤. 아 나는 이 작가 좋아하는구나. 항복하는 기분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시위에 간 화살처럼 미친듯한 속력으로 흘러가는 페이지 수가 아까울만큼 좋았어요. 좋았어요.

7. 내가 진짜 이 작가의 전생애를 읽고 있구나 싶었던 건 닥터슬립. 샤이닝의 꼬마박사 토니가 오버룩이.아닌.전혀 다른 것들로 인생을 채우고 걸어가는 것을 봤어요. 30년의 세월응 느꼈고 극중 아브라가 대너리스를 이야기할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헐 이 작가분 리얼타임으로 나랑 같은 세대구나!;;

8. `고전 명작`같았던 10여년 전의 작품 캐리를 읽으면서 알게된 작가가 난데없이 저랑 같은 세대에 있더아구요. 아하 극중의 콜라병 뚜껑이나 새총을 리얼타임으로 접힌 세대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군. 하면서 다 읽어치웠습니다. (그 감상은 별도로 적었으므로 여기서는 패스합니다)

9. 그래서 여하튼 제 유년기에 만나 갑자기 저와 같은 세대가 되어버린 작가 킹. 전작품을 다 읽진 않았더라도 좋아하고 좋아하니 미저리에 나오는 광팬들-애니 윌크스말고 미저리 집을 구현화해내는 아주머니같은 거요-은 아니어도 나 이 작가좋아하는구나~하게되었습니다. 이 애정을 인정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후, 좋은 승부였다(엄지척)
일방적으로 패배한 느낌이다만 어째.

10. 그리고 가아아아장 최근 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결론부터 말하면 좋긴 좋은데 죽을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디. <킹 최초의 추리소설 도전>이라고 말한 분 저랑 싸워요...

11. 추리소설에도 여러종류가 있잖아요. 추리스릴러나 트릭중시라던가.. 그중에서도 메르세데스는 어떤 반전이나 별다른 눈속임없이 평이하게 달리는 스타일리쉬한 벤츠같았습니다. 분류하면 <양들의 침묵>같은 거 있잖아요. 버팔로.. 뭐였더라, 하여간 이상살인마의 심리릉 끝까지 캐내지만 별다른 반전은 제시하지않고 이야기만으로 흡입력을 만드는 것.

12. 이야기는 ˝정신이상 쾌락살인마와 은퇴한 노형사와 다소 불행한 백만장자 금발미인˝ 이 단어 셋을 조합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딱 그대로 흘러갑니다. 살인마는 노형사를 도발하고 형사는 뒤를 쫓고 여인은 그를 돕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에 겁나 익숙해진저는 어떤 반전이 있을 줄 알고 겁나 긴장했는데 그런거 없었어요. ㅇㅇ 없었음.

13. 어머니와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상간관계와 억압과 정서적 학대로 쾌락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는 이미 겁나 많이 봤단 말이에요. 알버트 피쉬와 존 게이시가 있는 현실에서 어떤 미친놈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차라리 추리물이라는 단어를 못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잔뜩 반전이나 트릭을 기대하고 읽다보니까 정작 이야기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돔 콘서트에서 살인마를 막는 노형사와 아이들이라니 뭔가 드라마나 영화에사 백번쯤 본거같은데...

14. 이야기에서 더 집중하고 기대해야하는 건 작가의 필력과 더 유연해진 그의 따스함입니다. 벤츠에 걸려있는 팔조각이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에 뭉클해질 수 있고 폭파살인이 일어나는 와중에 검은 챙모자를 멋드러지게 쓰고 햇살같은 한줄기 미소를 던지던 여자를 생각할 수 있다는게.

15. 킹은 여전히 킹이고 그래서 저는 그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피와 죽음과 살인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같은 게 빛나는 따뜻한 시각이 좋아요.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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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형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흔히있는 사람치면 살인날 두께의 책입니다

1. 세시간정도 정줄 놓은 듯이 읽어치우고서 외치는 광란의 한마디 : 마가렛 미첼 이 망할 아줌마야 일생동안 이거 한권밖에 안쓸거면서 엔딩을 이렇게 내다니 으아아아아아아
..문학상 수상한 저 여작가님도 백년가까이 지나 이따위 저렴한 욕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하셨겠지요 죄송합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으아아아

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야기입니다. 넵.

3. 완역본으로 읽은 건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마음에 드는 책은 집요하게 다시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자주 읽은 적은 없는 것같아요. 왜냐면 무거워서. 진짜 무거워서. 880페이지로 두권이니까 1760페이지. 한번 각잡고 달리면 끝까지 읽어야하기 때문에 어디 갖고 나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여유롭게 읽었어요. 열두시반쯤 읽기 시작했던 것같은데 왜 벌써 오후지..

4. 비비안 리가 주연을 맡아서 세계 영화시장에 넘을 수없는 끝판왕이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이고˝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라는 대사로도 유명한 바로 그 책입니다. 1840년대쯤 남부 해방전쟁을 배경으로 목화 농장 타라의 첫딸인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는 그런 소설인데 뭐 다 아는 이야기일 거고.

5. 타라의 붉은 흙도, 전후의 비참함도, 아가씨다운 허영도, 잔혹하고 무지해지는 교만한 성품도. 뭔가 여러가지로 말하고 싶어지는 게 많은 책이긴 한데 그래도 뭐 도덕적으로 느낀 어떤 감상보다 이 책은 책 속에 묻어있는 그 땅의 냄새때문에 견딜 수 없어집니다. 마른 모래먼지와 진흙같은 비옥한 농장, 흑인 노예, 그 시절의 분위기. 노예 18년이었..아니다 28년이었나.. 거기서도 등에 내리쳐지는 채찍이나 매달린 밧줄 못지 않게 농장에 내리 쬐는 열기나 드레스 천같은 그 시절의 문화? 분위기? 때문에 숨이 막혔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지은지 200년쯤 된 오래된 대 저택의,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스러운 장식이나 벽지나 양식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무도회와 젊은이와 코르셋. 흑인 노예와 죄수들.

6. 열정적이고 불꽃같고 그만큼 무지하고 잔혹한 스칼렛은 보고있으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선의를 갖지 않고 했던 선의로 가득한 일들. 멜라니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내 목에 이 여자도 달려있어`하고 생각하는 부분같은 거요.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아마 스칼렛을 얼마간은 사모하고 또 존경했을 윌이 `녹색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입고 수탉의 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나서는 스칼렛같은 용기를 가진 이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커튼 드레스를 입고 나서는 스칼렛을 배웅하는 장면입니다.

7. 그렇다고 스칼렛의 허영이나 무지(˝보르지아 가문이 어디 사람들이죠? 처음들어보는데요.˝)가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고 아무런 인간적인 애정이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공작새같은 성향을 좋아할리도 없어서, 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아가씨를 좋아하는 장면은 병사를 쏘아죽일 때의 처절함과 더불어 멜라니의 죽음 이후 눈을 뜨는 장면입니다. 남북전쟁의 현실이야 어떻든간에 스칼렛의 결혼반지만큼 알바 아니라고요. 스칼렛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는데, 이제 스물 여덟살인데, 그런데 이야기가 끝난다구요 마아아아아가아아아아렛 미이이이이체에에에에에엘

8. 여튼 이어서. 레트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명 스칼렛을 보는 동안 표현하지 못한 사모의 정이 있었을 거고 저 스칼렛에서 설탕과자며 비단을 쥐어주는 동안에서도 심장은 타들어가고 있었을 거고. 하지만 이 수탉 대가리 같은 남자야 너도 잘한 거 하나 없거든! 애초에 아내가 죽어갈 때 옆에 있으란 말이지! 담배말고! 너도 멜라니한테 어리광부리지 말고!!! 아니 그 이전에 너님 딸을 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완벽하게 아내를 팔아먹었거든요?!

9. 살아있으되 정신은 오래전에 늙어죽은 애슐리 윌크스는 말할 가치가 없고, 멜라니는 분명히 고결하고 아름답고 그 마음만으로 이미 스칼렛이 살인과 도둑질을 저질러서라도 얻고 싶은 풍요를 안고 있었고 그리고 스칼렛에게 길을 제시해준 이정표같은 사람이기도 했고, 군도를 들고 나오고 임신 후의 몸으로 시체를 묻었을만큼 멋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음... ...아 젠장 좋아하는 거 맞네요 이 아가씨.. 아니 이 레이디..

10. 레트와 애슐리가 정신적으로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두 사람이라고 나왔던 것처럼, 스칼렛과 멜라니는 전혀 다른 인간처럼 보였지만 그 마음에 똑같은 격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멜라니가 그렇게 스칼렛을 좋아하고 의지했던 건 멜라니 안에도 불꽃이 있었기 때문일 거에요. 동전의 양면처럼.

11. 이 문학사의 명작인 책은 철저하게 남부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랑 비교해서 읽으면 겁나 재밌습니다. 책 안에서 대놓고 `엉클 톰스 캐빈을 새로운 성서처럼 여기는 북부의 인간들은 채찍이나 사냥개나 노예 낙인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런 건 있지도 않은데 말이지`하고 까기도 합지요. 적어도 주인공의 남자들이 죄다 KKK단에 가입해있다는 건 오늘 시점으로 보면 참 충공깽이기는 합니다. 마가렛 미첼은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현대는 상상도 못했겠죠.

12. 흑인노예제도가 나오는 책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적은 없네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간접적이라면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헙, 남부적 입장이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정도이려나요. 노예춤은 시대가 다른 것같고.. 어째 요새 초원의 집도 그렇고 미국 역사에 관한 책들을 알음알음 읽게 되는 것같은데 시대 연표별로 모아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원의 집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순일 거같기는 한데.

13. 모든 게 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세계가 바뀌어도 스칼렛은 다시 또 일어납니다. 아직 스물 여덟살밖에 안된 젊은이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원래 불꽃과 열정으로 채워진 사람이서일 수도 있고.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고 래트와 다시 만나든 그렇지 않든 스칼렛은 스칼렛으로 살아갈 거에요. 이 주인공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했습니다.

14. ...하지만 이런 열린결말 엔딩 진짜 싫은게 답답해 미칠 것같은데 작가가 쓴게 아닌 후속작같은 게 출판되서 나와있으니까 읽기는 읽어야한단 말이에요 아니 이미 읽은 적 있는 것같긴 하지만 기억 안나고.. 거기서는 스칼렛이 또 임신했었던가 그랬던 것같은데 아우 꿍얼꿍얼.. 뭐 어떤 후속작이든 오페라의 유령2같은 불쏘시개는 아닐테니까 읽기는 읽어볼랩니다. 아우,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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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거: 대지 3부작 - 대지, 아들들, 분열된 일가

대지 3부작(펄 벅)
-각설하고 고백합니다: 왕룽과 오란의 이야기를 정말,정말,정말 좋아했어요.

유년기에 읽는 책은 아무래도 특별하다. 어릴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보이는데 그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단순하게 아무 생각없이 좋아할 수 있었다. 대지(정확히 1부작)도 그런 책이었다. 아큐정전이나 작가의 다른 책인 서태후, 하다못해 세대가 좀 흐른 뒤인.. 그 뭐냐.. 장국영나오는... 그..그ㅡ.. 아 패왕별희. 그쪽이랑 비슷한 역사물이었을텐데 어린.나한테는.그런거 없고 그냥.. 흙의 땅의 대지의 농부의 이야기였다.

오란을 맞이하는 아침에 일어난 왕룽이 차를 끓이는 장면. 오란과 함께 농사짓는 장면. 열병같았던 연영(어릴 때 읽은 책에는 렌화였음, 아마 연꽃이라 그랬겠지)에 대한 집착이 흙을 밟은 순간에 빠져나가는, 칭 서방에게 쟁기를 가져다달라고 소리치는 장면.

아바타에사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의 발로 흙을 꽉 움켜쥐고 섰을때 저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음.

한참 오랜만에 읽었는데 거진 왠만한 구절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황 대인의 땅을 사는 장면, 남방과 배추와 고깃국. 아동판에서는 순화되어서 안 나왔던 이화의 동침. 음음.

2,3부작은... 되게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책에서 흘리듯 스치고갔던 중국사의 변천사는 그대로 격동의 시대가 되어 2부와 3부를 겹쳐 흐른다. 군벌이 된 셋째아들, 다시 그의 아들이 농부를 동경하는 2부의 마지막은 아릿하게 역사가 되기 시작한 왕룽의 기억을 헤집어 드러내놓고 사라지더니, 3부에서는 왕룽의 손자와 신여성 메이링을 통해서 개화기 변천사를 겪는 젊은 세대의 단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농부에 대한 형체없는 동경, 서양에 대한 열망, 자국에 대한 멸시와 애국. 무너질 듯이 변혁을 시작하는 격동기에 주인공은 서로도 동으로도 흔들린다. 갈등하고 또 살아간다. 그래도 펄벅의 문체는 항상 따뜻하고 어딘가 희망이 배어있어서 주인공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자리에서 구와 신이 만나는 그 시대를 살아가겠다고 메이링과 혼약을 올리는 거다.

10년 이상 좋아한 책이 더 크고 또 다른 어떤 이야기의 첫장이었다는 거, 슬프지는 않은데 아쉬워서.

펄벅의 손으로 그린 중국은 가감없으면서도 아름답다. 위태로운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모두 더해서. 아 이건 역사였구나.. 하고 책장을 덮었다. 당분간 이 사람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책은... 못 읽을 것같았다. 마주하기전에 심호흡을 해야겠다 싶어서.

자매책: 서태후(청의 멸망까지를 그린 펄벅의 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국 남부의 역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운명의 딸(서부 개척시대를 그렸다는 점에서). 태백산맥이나 아리랑도 역사물이긴 한데 그건 남성작가의 책이니까 패스, 혼불이나 토지도 비슷하게 역사적이지 않을까 싶지만-여작가이기도 하구유- 다 안 읽었으니까 패스.

자매영화: 마지막 황제, 패왕별희.... 또 뭔가이런 긴 역사를 그려낸 영화가 있었던 것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 전쟁보다는 스칼렛의 이야기에 더 가까웠으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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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책덕후, 서브로 영화덕후, 서브로 만화덕후, 요즘에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뮤지컬도 찔러볼락말락, 만사가 귀찮고 얌전히 일하는 선량한 사무직 여직원으로 전직한지도 어연 2년차. 안녕하세요 아만입니다. 이름은 그때그때 따라서 조조 맹덕의 아명에서 따온 닉네임이라고 주장하거나 눈물을 마시는 새의 아실我失을 보다가 반대말로 아만我滿을 생각했다던가 여러 그럴듯한 유래가 있지만 아마도 아만다냐 (아 뭐한다냐)의 줄임말이었던 것같습니다. 죄송해요 잘몰라요 적당히 지었어요.


여하튼 나이도 꽃다운 (---)세,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취미라고 한다면 그저 끝도없이 주절주절주절 흘러넘치는 감상문이 전부. 쓰는 족족 감상문은 죄다 핸드폰으로 두들겨서 페이스북 SNS로 보냈더니 근 1년에 걸쳐서 이게 사람사는 SNS인지 하루하루 밥먹고 감상문만 적어 써갈기는 기계인지(*아마도 후자입니다) 의심이 가기 시작했더랬습니다.


그리고 페북이라는 SNS로 말할 것같으면 마크 주커버그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개인정보 보안에 대해서는 매우 불건전했던 것같지만- 적어도 글의 보존성은 깔끔하고 깨끗하고 완전하게 무시한 것만큼은 분명한 곳이었더랩니다. 거의 5년에 걸쳐 쓰고있는데 심심하면 글이 사라지더라고요. 호모나 세상에. 뭐 없어졌다가 나타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거 글렀네 안되겠어 여길 탈출해야지 여기저기에 적어놔볼까~ 생각해서 궁시렁대던 찰나에 평소 즐겨 통장을 털어가시는 알라딘에 블로그가 있길래 들어왔고, 책감상을 신나서 몇개 옮겨서 붙여넣기 했고, 영화도 하려다 보니 영화는 그냥 쓰기 좀 머쓱했고, 그래서 뒤적뒤적하다보니 창작블로그라는 게 나왔습니다. 오 좋아써 이거야 역시 알라딘이지 덕후를 알아! 하면서 클릭했고 등록했는데


어음 뻘글을 쓸수없는 분위기야... 어떡하지........ 다들 사진같은 거 막 올리는데.......




분위기 잘못 보고 엉뚱한 데에 쓰는구나 싶어서 전전긍긍했지만 뭐 페북에쓰나 여기에 쓰나 저 빼고 잘 안보는 글이에요. 자기변명은 신나서 길게 써갈겼으니 영화감상은 내키는대로 쓰려고합니다. 되게 아마.. 영양가 없을 거에요.. 음.. 진짜로..(자신없다)


여튼 잘부탁드립니다. 안 맞으시면 안 읽어주셔도 괜찮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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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읽은 것: 그로테스크(기리노 나쓰오)


책은 저마다 맛이 있는데 가끔 복용주의 딱지를 붙이고싶다. 오래된 책장의 냄새와 먼지쌓인 창가에 내리쬐는 햇빛같은 책입니다. 급하게 읽으면 체합니다. 천천히 보세요. 매끄러운 문체에 오렌지같이 달콤한 책입니다. 단게 필요할때 읽으세요. 봄의 라일락같이 생기넘치는 책입니다. 행복하고 싶을 때 보세요.


그런 식으로 분류하면 이 책은: 악의를 긁어모아 독기와 일그러진 광기를 듬뿍 넣었습니다. 독이 필요할 때 드세요.


기리노 나쓰오는 원래 독기가 배인 작가지만 이 책은 특히 독하다. 돈 워리 마마도 그렇고 일본 현대 사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모티브로해서 쓰는 책들이 많은데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건을 배경으로 보여주는 인간의 단면이 독하다. 이 건 보고나면 속이 뒤집혀온다. 탐미적이지도 않고 장식적이지도 않고, 그냥 추하고 기괴하고 독이 배어있다. 여자가 괴물이 되는 걸 제일 잔인하게 쓴 책이라고 생각함.


도쿄전력 여직원 매춘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쓴 책이지만 사건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고 등장하는 여자들이 조명하는 이야기가 메인이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자신의 변을 늘어놓는 모습들이 중첩되지만 진상은 보이지 않고 몸부림치듯이 반짝이는 추한 단면만 섬세하다. '덤불 속(영화 라쇼몽)'은 좀더 편했는데 으으...



대학교때에 한번, 이번에 한번해서 두번밖에 안 읽은 책인데 처음 읽을 때와 다르게 이야기를 하되 진실이 없는 부분을 짚어나가며 읽은 건 좀 즐거웠다. 하지만 그 때도 토할 것같았고 지금도 독에 취한 느낌이니 행간을 읽는 능력과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건 별 상관없나보다..


이 책의 불쾌함은 원빈을 보다가 일반인을 봤을 때의 실망감이란 비슷하다. 예쁜 껍질을 보고 꿈에 차 있는데 그 코앞에 추한 현실이 들이밀어지는 그런 감각. 차라리 '3천엔에 몸을 파는 마흔살의 추하고 괴물같은 창녀' 라고 정의지어주었으면 선을 그을 수 있었을텐데. 그걸 입에 담지 않는대신 돌려돌려 확정지어버리는게..으으...


자매 책: 돈 워리 마마, 다크-둘다 기리노나쓰오-, 아라포(오쿠다 히데오), 기법적인 면에서 '덤불 속'.

사회고발 소설 이라는 점에서 모방범이나 화차나 준 장르급인 이야기를 많이 꼽을 수 있는데 이 기괴함에 가까운 건.. 도구라마구라도 비슷하지만 그건 너무 현학적이라 다른가.


자매 영화: 헬터 스켈터(미와 여자와 날것, 하디만 이쪽이 훨씬 예뻐요),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이쪽이 훨씬 구원에 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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