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티븐 킹의 팬밍아웃(과 미스터 메르세데스 감상)


1. 킹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아주 많이. 저는 무진장 편협한 독서취향과 알맹이를 제외한 서문도 작가편력도 없는 취급하면서 읽는 치졸함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에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망설이는 편입니다.<셜록 홈즈>는 두라마 셜록을 보며 `좋은 셜록이네요 내 홈즈는 아니지만(쑻)`하고 어디의 게드 전기 작가같은 감상을 뱉을만큼 좋아하지만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쏘쏘했으니코난도일경은 좋아하는 작가가 아닙니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구절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까지 좋아하고 집어들면 다 읽을 때까지 멈추지 많지만 <왕비 마고>와< 삼총사>는 뭔소린가 싶었으니 뒤마도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런 저에게 킹은 정말정말 오랫동안 ˝좋아하는 작품은 많은데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에요˝였습니다.

2. 그도 그럴게 스티븐 킹을 좋아한다고하면 호러소설 짱 좋아할 거같잖아요. 좋아하지만 그게 `님의 독서취향은 무엇이며 어떤 책에 정신을 못차리며 무슨 장르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까`를 종합한 질문인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에 걸맞는 대답이 <넵 스티븐 킹이요>는 아니었단 말이에요.

3. 라고 믿었던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4. 킹을 처음만난건 아마 중3~고1때쯤. 그 때 저의 독서량은 타의추종을 불허해서 이 도서관에서 다섯권 저 도서권에서 12권 합계 17권을 빌린 후에 집에 도착하면 마지막 한권까지 모조리 다 읽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는 아이였습니다. 아리랑도 하루만에 다 읽었지 아마. 수업 모조리 제꼈지만요(선생님들은 떠드는 애들은 봐줘도 책읽는 애들은 안잡으셨습니다) 그 시절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킹 전집을 잡았고 거짓말없이 백번은 더 읽었습니다. 그것 샤이닝 캐리 그린마일 돌로레스 클레이본 외.

5. 가장 좋아하는 킹의 책은 그린 마일이었어요. 마지막 한 복도를 걸으면서 긴 숨을 내쉬는 주인공. 그 길이 너무 길다는 짧막하게 떨어지는 지친 목소리. 딸랑 씨와 들라크루아. 난폭하고 거칠고 잔인한 장면들 가운데에서도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도자기로 만든 치아와 더어어어얼로오리스가 소름끼치던 돌로레스 클레이본에서도 그랬구요.

6. 킹에게 굴복한건 ...11/22/63이던가 (이 책제목 아직도 못외웁니다) `시간이 흐른뒤`인 킹의 책을 봤었을 때에요. 둠둠! 리듬을 밟는 걸음과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사랑. 처음과같은 마지막 춤. 아 나는 이 작가 좋아하는구나. 항복하는 기분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시위에 간 화살처럼 미친듯한 속력으로 흘러가는 페이지 수가 아까울만큼 좋았어요. 좋았어요.

7. 내가 진짜 이 작가의 전생애를 읽고 있구나 싶었던 건 닥터슬립. 샤이닝의 꼬마박사 토니가 오버룩이.아닌.전혀 다른 것들로 인생을 채우고 걸어가는 것을 봤어요. 30년의 세월응 느꼈고 극중 아브라가 대너리스를 이야기할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헐 이 작가분 리얼타임으로 나랑 같은 세대구나!;;

8. `고전 명작`같았던 10여년 전의 작품 캐리를 읽으면서 알게된 작가가 난데없이 저랑 같은 세대에 있더아구요. 아하 극중의 콜라병 뚜껑이나 새총을 리얼타임으로 접힌 세대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군. 하면서 다 읽어치웠습니다. (그 감상은 별도로 적었으므로 여기서는 패스합니다)

9. 그래서 여하튼 제 유년기에 만나 갑자기 저와 같은 세대가 되어버린 작가 킹. 전작품을 다 읽진 않았더라도 좋아하고 좋아하니 미저리에 나오는 광팬들-애니 윌크스말고 미저리 집을 구현화해내는 아주머니같은 거요-은 아니어도 나 이 작가좋아하는구나~하게되었습니다. 이 애정을 인정하기까지 10년이 걸렸어요. 후, 좋은 승부였다(엄지척)
일방적으로 패배한 느낌이다만 어째.

10. 그리고 가아아아장 최근 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 결론부터 말하면 좋긴 좋은데 죽을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디. <킹 최초의 추리소설 도전>이라고 말한 분 저랑 싸워요...

11. 추리소설에도 여러종류가 있잖아요. 추리스릴러나 트릭중시라던가.. 그중에서도 메르세데스는 어떤 반전이나 별다른 눈속임없이 평이하게 달리는 스타일리쉬한 벤츠같았습니다. 분류하면 <양들의 침묵>같은 거 있잖아요. 버팔로.. 뭐였더라, 하여간 이상살인마의 심리릉 끝까지 캐내지만 별다른 반전은 제시하지않고 이야기만으로 흡입력을 만드는 것.

12. 이야기는 ˝정신이상 쾌락살인마와 은퇴한 노형사와 다소 불행한 백만장자 금발미인˝ 이 단어 셋을 조합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딱 그대로 흘러갑니다. 살인마는 노형사를 도발하고 형사는 뒤를 쫓고 여인은 그를 돕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에 겁나 익숙해진저는 어떤 반전이 있을 줄 알고 겁나 긴장했는데 그런거 없었어요. ㅇㅇ 없었음.

13. 어머니와의 기괴하게 일그러진 상간관계와 억압과 정서적 학대로 쾌락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는 이미 겁나 많이 봤단 말이에요. 알버트 피쉬와 존 게이시가 있는 현실에서 어떤 미친놈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차라리 추리물이라는 단어를 못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잔뜩 반전이나 트릭을 기대하고 읽다보니까 정작 이야기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돔 콘서트에서 살인마를 막는 노형사와 아이들이라니 뭔가 드라마나 영화에사 백번쯤 본거같은데...

14. 이야기에서 더 집중하고 기대해야하는 건 작가의 필력과 더 유연해진 그의 따스함입니다. 벤츠에 걸려있는 팔조각이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는 사실에 뭉클해질 수 있고 폭파살인이 일어나는 와중에 검은 챙모자를 멋드러지게 쓰고 햇살같은 한줄기 미소를 던지던 여자를 생각할 수 있다는게.

15. 킹은 여전히 킹이고 그래서 저는 그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기대했던 것과 달랐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피와 죽음과 살인가운데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같은 게 빛나는 따뜻한 시각이 좋아요.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