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마션을 보고왔습니다.
해프닝 : 1) 영화시간 착각해서 40분 일찍감 2) 일찍 간 김에 결제 포인트로 다시하려고 시도 3) 전산 오류로 자리 날아감 4) 복구 불가 5) 울먹울먹울먹 6) 4D로 자리 다시 잡아주심 5) 할렐루야!
1.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 알라딘의 원작소설 프로모션이 아니었다면 개봉하는지도 몰랐을 테지만 이래저래 기다렸습니다. 원래 과학자가 쓴 SF소설이라는 데에서 흥미를 느꼈고 알게모르게 쌓인 편견아닌 편견으로 부우우우운명히 덕후일 거야 라고 믿었는데 맞았어요 오예 엘론드 회의.
2.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미국이 구하는 사나이였던 맷 데이먼은 이제 세계의 구원을 받습니다(으쓱으쓱) ...이 아니라. 화성에 혼자 남겨진 동료 우주비행사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이며, `과학자 소설가`가 쓴 소설이 원작인만큼 충실한 계산과 계획화와 구조화가 잘 드러나있어요.
3. <그래피티>도 비슷하게 광활하고 공허한 우주에서 살아남아 돌아가는 이야기였지요. 그 영화가 조난-구조라는 클리셰안에 우주의 적막함과 아름다움을 영상미로 쏟아냈다면 이 영화는 조난-구조라는 과정 안에 과학자의 수식을 남아냅니다. 어떻게 식량이 남았고, 어떻게 구조를 계획하고, 어떻게 궤도를 계산하고, 어떻게 수리하고.
4.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그 모든 것이 정말로, 정말로 미치도록 아름다워요.
5. 가끔 위키에 들어가서 이야기들을 무작정 읽어내려가는 걸 좋아합니다. 예전에 블로그가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링크를 타고 블로그에 기어들어가 거기 올려져있는 모든 글을 읽곤했어요. 위키를 뒤지는 것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거미줄같은 선을 타고 흘러가면 거기에 물방울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걸려있어요. 역사, 문학, 사람, 학문, 과학, 요리, 우주... 우주.
6. 아폴로 계획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참동안 읽었었어요. 소련과 미국의 경쟁에서 시작되었던 그 원대한 계획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순수했습니다. 저 우주로 가기 위한 계획들이요. 궤도 계산, 사고, 귀환과정, 계산..
7. 학문은 순수해요. 과학은 특히 더. 물론 현실에는 로비가 있고 정치가 있지만 적어도 과학은 1+1이 2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는 분야잖아요.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야. 도와야해.` 그런 대사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성실함이 웃음이 나왔고 또 사랑스러웠어요. 아무런 조건도 타산도 없이 그저 순수하게, 있어야할 것이 있는 것처럼.
8. 반드시 오류는 발생하고 또 오차는 나타나지만 그 빈 공간을 메꾸는 것은 또 사람입니다. 의자의 줄을 풀고 손을 뻗어서, 금발해적에서 아이언맨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내는 거에요. 그 과정에 단 하나의 의구심도 없이, 비참함도 없이 이야기는 순수하게 사람을 믿고 또 좋은 모습들만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또 믿을 수 있는 거에요. 어떻게나 순수하고 아름다운지.
9. 엘론드 회의에 참석한 국장님이 `엘론드 회의라고 할 거면 내 코드네임은 글로르핀델로 해줘 ㅡㅡ` 하는 가운데 저는 숀빈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습니다. 보로미르도 있으니 뭐 나쁠 거 없잖아요(영화관에서 미친듯이 빵터졌는데 저만 터지더라는..)
10. 영상미는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데이빗이 에일리언의 유산에 접촉하는 것같은 화면을 기대했는데 퍽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었어요. 화성의 메마른 땅이 주무대라서 그저 그랜드 캐니언을 보는 기분이... 그래도 아무 것도 없는 그 땅을 가로질러가는 로버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11. 자매영화 <그래피티(우주의 조난과 구조와 적막함에 대해서)> <인터스텔라(우주선 도킹과 궤도계산이라는 점에서)> <킹덤 오브 헤븐(적막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감독도 같고요.. 같던가?)>
자매소설 <마션(원작이에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인류를 긍정한다는 점에서, SF이기도 하고요)> <로빈슨 크루소(조난 생존을 위해서는 노동과 식사제한과 궁리가 필요합니다)>
자매만화 <문 라이트 마일(우주는 아름답고 사람은 눈부시고 또 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