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형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흔히있는 사람치면 살인날 두께의 책입니다

1. 세시간정도 정줄 놓은 듯이 읽어치우고서 외치는 광란의 한마디 : 마가렛 미첼 이 망할 아줌마야 일생동안 이거 한권밖에 안쓸거면서 엔딩을 이렇게 내다니 으아아아아아아
..문학상 수상한 저 여작가님도 백년가까이 지나 이따위 저렴한 욕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 안하셨겠지요 죄송합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으아아아

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야기입니다. 넵.

3. 완역본으로 읽은 건 두번째인가 세번째인가. 마음에 드는 책은 집요하게 다시 읽는 편이지만 이 책은 자주 읽은 적은 없는 것같아요. 왜냐면 무거워서. 진짜 무거워서. 880페이지로 두권이니까 1760페이지. 한번 각잡고 달리면 끝까지 읽어야하기 때문에 어디 갖고 나가 읽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이번에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여유롭게 읽었어요. 열두시반쯤 읽기 시작했던 것같은데 왜 벌써 오후지..

4. 비비안 리가 주연을 맡아서 세계 영화시장에 넘을 수없는 끝판왕이었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원작이고˝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라는 대사로도 유명한 바로 그 책입니다. 1840년대쯤 남부 해방전쟁을 배경으로 목화 농장 타라의 첫딸인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는 그런 소설인데 뭐 다 아는 이야기일 거고.

5. 타라의 붉은 흙도, 전후의 비참함도, 아가씨다운 허영도, 잔혹하고 무지해지는 교만한 성품도. 뭔가 여러가지로 말하고 싶어지는 게 많은 책이긴 한데 그래도 뭐 도덕적으로 느낀 어떤 감상보다 이 책은 책 속에 묻어있는 그 땅의 냄새때문에 견딜 수 없어집니다. 마른 모래먼지와 진흙같은 비옥한 농장, 흑인 노예, 그 시절의 분위기. 노예 18년이었..아니다 28년이었나.. 거기서도 등에 내리쳐지는 채찍이나 매달린 밧줄 못지 않게 농장에 내리 쬐는 열기나 드레스 천같은 그 시절의 문화? 분위기? 때문에 숨이 막혔었는데 이 책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지은지 200년쯤 된 오래된 대 저택의,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스러운 장식이나 벽지나 양식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무도회와 젊은이와 코르셋. 흑인 노예와 죄수들.

6. 열정적이고 불꽃같고 그만큼 무지하고 잔혹한 스칼렛은 보고있으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선의를 갖지 않고 했던 선의로 가득한 일들. 멜라니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내 목에 이 여자도 달려있어`하고 생각하는 부분같은 거요.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아마 스칼렛을 얼마간은 사모하고 또 존경했을 윌이 `녹색 커튼으로 드레스를 만들어입고 수탉의 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나서는 스칼렛같은 용기를 가진 이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커튼 드레스를 입고 나서는 스칼렛을 배웅하는 장면입니다.

7. 그렇다고 스칼렛의 허영이나 무지(˝보르지아 가문이 어디 사람들이죠? 처음들어보는데요.˝)가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고 아무런 인간적인 애정이나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 공작새같은 성향을 좋아할리도 없어서, 제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아가씨를 좋아하는 장면은 병사를 쏘아죽일 때의 처절함과 더불어 멜라니의 죽음 이후 눈을 뜨는 장면입니다. 남북전쟁의 현실이야 어떻든간에 스칼렛의 결혼반지만큼 알바 아니라고요. 스칼렛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는데, 이제 스물 여덟살인데, 그런데 이야기가 끝난다구요 마아아아아가아아아아렛 미이이이이체에에에에에엘

8. 여튼 이어서. 레트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분명 스칼렛을 보는 동안 표현하지 못한 사모의 정이 있었을 거고 저 스칼렛에서 설탕과자며 비단을 쥐어주는 동안에서도 심장은 타들어가고 있었을 거고. 하지만 이 수탉 대가리 같은 남자야 너도 잘한 거 하나 없거든! 애초에 아내가 죽어갈 때 옆에 있으란 말이지! 담배말고! 너도 멜라니한테 어리광부리지 말고!!! 아니 그 이전에 너님 딸을 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서 완벽하게 아내를 팔아먹었거든요?!

9. 살아있으되 정신은 오래전에 늙어죽은 애슐리 윌크스는 말할 가치가 없고, 멜라니는 분명히 고결하고 아름답고 그 마음만으로 이미 스칼렛이 살인과 도둑질을 저질러서라도 얻고 싶은 풍요를 안고 있었고 그리고 스칼렛에게 길을 제시해준 이정표같은 사람이기도 했고, 군도를 들고 나오고 임신 후의 몸으로 시체를 묻었을만큼 멋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음... ...아 젠장 좋아하는 거 맞네요 이 아가씨.. 아니 이 레이디..

10. 레트와 애슐리가 정신적으로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두 사람이라고 나왔던 것처럼, 스칼렛과 멜라니는 전혀 다른 인간처럼 보였지만 그 마음에 똑같은 격정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멜라니가 그렇게 스칼렛을 좋아하고 의지했던 건 멜라니 안에도 불꽃이 있었기 때문일 거에요. 동전의 양면처럼.

11. 이 문학사의 명작인 책은 철저하게 남부의 시선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랑 비교해서 읽으면 겁나 재밌습니다. 책 안에서 대놓고 `엉클 톰스 캐빈을 새로운 성서처럼 여기는 북부의 인간들은 채찍이나 사냥개나 노예 낙인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런 건 있지도 않은데 말이지`하고 까기도 합지요. 적어도 주인공의 남자들이 죄다 KKK단에 가입해있다는 건 오늘 시점으로 보면 참 충공깽이기는 합니다. 마가렛 미첼은 흑인 대통령이 나오는 현대는 상상도 못했겠죠.

12. 흑인노예제도가 나오는 책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적은 없네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간접적이라면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헙, 남부적 입장이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정도이려나요. 노예춤은 시대가 다른 것같고.. 어째 요새 초원의 집도 그렇고 미국 역사에 관한 책들을 알음알음 읽게 되는 것같은데 시대 연표별로 모아보면 재밌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원의 집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순일 거같기는 한데.

13. 모든 게 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세계가 바뀌어도 스칼렛은 다시 또 일어납니다. 아직 스물 여덟살밖에 안된 젊은이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원래 불꽃과 열정으로 채워진 사람이서일 수도 있고.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고 래트와 다시 만나든 그렇지 않든 스칼렛은 스칼렛으로 살아갈 거에요. 이 주인공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만큼은 확신했습니다.

14. ...하지만 이런 열린결말 엔딩 진짜 싫은게 답답해 미칠 것같은데 작가가 쓴게 아닌 후속작같은 게 출판되서 나와있으니까 읽기는 읽어야한단 말이에요 아니 이미 읽은 적 있는 것같긴 하지만 기억 안나고.. 거기서는 스칼렛이 또 임신했었던가 그랬던 것같은데 아우 꿍얼꿍얼.. 뭐 어떤 후속작이든 오페라의 유령2같은 불쏘시개는 아닐테니까 읽기는 읽어볼랩니다. 아우, 즐거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