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가지 수수께끼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거서 크리스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명탐정, 미스 마플은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점잖은 할머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해 이야기만 듣고도 사건의 진상과 사람의 본성을 꿰뚫어본다.

  마지막 한 편을 빼고는 모두 '수수께끼 풀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이 겪은 기묘한 이야기를 문제로 내고,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한다. 여기서 범인을 밝혀내는 것은 미스 마플 뿐이다.

  단편이니만큼 놀라운 수법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냥저냥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가 반수 이상의 범인을 맞췄으니 말이다. 그러나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잘 되어있는, 단편다운 매력이 가득 넘치고 있는 책이다. 수수께끼 놀이 방식이 퍽 마음에 들었다.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은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 미스 마플의 쿨한 모습도 좋고.

  내 머리 속 미스 마플은 시니컬하면서도 능구렁이같은 부인이다. 나는 다 알고 있지~라는 미소라던가, 사건을 대할 때 보이는 태도(그 사람이랑은 안 친하니까 놔뒀지)라던가. 평범해 뵈지만 실은 비범한 할머니라는 갭도 좋다. 범죄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푸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녀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범인을 짚어내지만, 증거 수집이라는 영역에는 재능이 없다.)

  애르큘 포와로도 좋지만, 미스 마플 쪽이 더 좋다. 장편보다는 단편이 취향이기도 하고, 거창한 스케일보다 소소한 얘기가 좋다. 포와로는 장편에서 거창한 스케일을 다루는 쪽이 어울리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읽은 ABC살인사건보다 이 쪽이 더 좋았다.

 

2008. 6.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영목, 정태원 옮겨엮음 / 도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은 거창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 '세계'나 '걸작선'이라니 참 스테일이 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지만,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은 제목만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잔치다. 

  그러나 정확히는 <영미 미스터리 걸작선>이라고 하는 게 옳다.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은 영미문화권에서 이름난 미스터리 작가들의 단편집이다.  미스터리 하면 흔히 생각하는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물부터, 일반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심리에 중점을 둔 작품까지 다양하다.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로 분위기 다른 미스터리들이 왁자하게 모여 있다. 미스터리의 다양한 맛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책은 두껍고 종이는 얇고 (요즘 출판되는 책들에 비하면) 활자도 작다. 그래서 가뜩이나 두꺼운 책이 더 빵빵하게 느껴진다. 수록된 작품이 43개니 그럴 만도 하다. 취향에 맞는 것도 있고 맞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모두 나름의 재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수록작품 중에서 도날드 웨스트레이크의 <족보 연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족보 연주>의 화자인 '나'는 정말로 유니크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 외에도 스티븐 킹의 <금연주식회사>도 인상깊었다. 마지막에 손가락 하나 절단! ㅠㅠ 흐엉. 

  처음부터 한 번 쭉 읽은 뒤에는 그때그때 생각날 때 펼쳐서 단편 몇 개를 골라 읽고 덮고 하고 있다.

 
  덧붙임.
  내가 이 책에 대해 가지는 불만이 딱 두 개 있는데, 첫째로 영미문화권의 추리소설만이 대상이라는 거고(제목처럼 나라가 조금 더 다양했으면 좋았을 텐데), 둘째로 책을 두 권으로 나눠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주 꺼내 읽다가 하드커버가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무게도 장난이 아니다. 915페이지나 되는 책이니, 엔간한 근력과 깡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절.대. 밖에 가지고 나가 읽을 수 없다.
 

2008. 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회색 신사들은 [똑 떨어지는 엉터리 계산]을 한다. 쓸데없는 일을 할 시간을 줄이세요. 그리고 그 시간을 저축하세요. 하지만 회색 신사들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한 그 일이, 과연 나에게 쓸데 없는 일일까? 그 소소한 시간이 주는 만족감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가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시간을 아끼면 아낄 수록 시간이 없어지는 아이러니라니.

매끄럽고 따듯하며, 단지 하나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시간에 잡아먹히는 현대인을 돌이켜보게 한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주제.

내가 받은 느낌은 묘하게 다르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회색 신사들의 영업 장면이다. 내가 그 장면을 보며 얻은 훌륭한 교훈은, 번드르르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뭔가를 할 때 스스로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영업멘트와 광고와 달콤한 꼬심에 속지 말라는 것.

생각해보면 회색신사들은 모두 영업의 왕이다. 현대에 살았다면 돈 좀 만졌을 거다. 그들은 어리숙하게 "저기요... 시간 좀 저축하실래요...이거 좋은 건데."라고 말하지 않았다. 정확한 숫자와 정확한 계산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숫자조차도 쉽게 사람을 속인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열심히, 열심히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모모는 회색 신사들의 계산에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의 느낌을 소중히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모는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간 시간을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모모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든 일이지만(회색 신사들에게서 시간을 찾아내는 것만큼 힘들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회색 신사들에게 끌려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숫자과 계산에 홀리는 순간 잃어버리는 소중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모모는 경제/경영 혹은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르겠다.
 

 

2008. 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테드 창의 단편 소설집이다. 그는 많은 작품을 내놓은 작가는 아닌데, 글을 쓸 때마다 상을 받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수상경력이 화려하다. 그리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의 경력에 납득이 간다. 단편집은 흔히 좋은 글도 있고 별로다 싶은 글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게 없다. 모두 나름의 느낌을 가지고 재미를 준다.

  테드창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이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 싶다. 발단 부분에서부터 "이건 이런 얘기다!"라고 까발려놓고 시작하는 여타의 책과 틀리다. 그러나 심심한 초반부에 책을 덮는다면 손해다.  한 겹씩 베일을 벗고 결국 내어놓은 주제를 보면 운동장 열 바퀴를 돌고 냉수를 들이켰을 때의 시원함이 느껴진다. 읽을 수록 천천히 뭔가 짜맞춰져 가면서 결국은 '이런 얘기구나'하고 깨닫게 된다. 앞부분에서 심심하고 별 것 아닌 것 같던 이야기가 실은 이야기 완성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는 것은, 앞부터 뒤까지 치밀하게 짜여있기 때문이다.

  테드 창의 단편들은 모두 과학과 수학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먼 미래에나 있을 법한 과학의 모습이나 수학의 내용이 아니다. 현실 세계의 논리, 과학, 수학이 저 과거와 미래, 혹은 다른 세계의 기저에 깔려있다. 그것을 통해서 테드 창은 여러가지 주제를 내어놓는다.

  아주 현실적이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 과학과 수학이 세계의 축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 놀라움에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있다.
 

2008. 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의 멸망은 어떤 식으로 올 것인가?

  혜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좀비 바이러스가 퍼질 수도 있고,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로봇이 인간을 없애고 인공지능의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빙하가 녹아 모두 물에 잠길 수도 잇고, 빙하기로 인해 모든 게 얼어버릴 수도 있고, 지구가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다. 개구리가 무한 증식해서 사람들이 개구리에 묻혀 질식사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상상하면서 지쳐버릴 만큼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멋진 징조들>은 인류 멸망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멸망"의 순간이 어떻든, 멸망이라는 단어의 무게 만으로도 사람들은 무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 무섭고 비정한 상황(정확히 말하면 무섭고 비정해야 하는 상황에서)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어이없을만큼 유쾌하다. 그들의 행동은 심각한 상황을 대수롭잖은 일, 나아가 우스운 얘기로 만든다. 제일 급박한 장면에서조차 그렇다.

  가만히 <멋진 징조들>을 보고 있자면 멸망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진다. 한 편의 보드게임을 보는 것 같다. 멸망해도 그만이고(<멋진 징조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죽을 만큼 심심하겠지만), 그리고 멸망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고.

  생각해보면, 세상이 끝나는 것을 막으려고 뛰어다니는 인물이 꼭 심각하고 진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구에는 60억의 인간이 살고 그들은 다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는 사람은 박사가 아니라 백수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멋진 징조들>은 그런 가능성의 얘기다. 마지막 날 이런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퍽 유쾌해서 좋다.

  패러디가 난무하고, 어딘지 깨는 구석이 있는 인물들이 멸망의 날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설. 웃고 웃고 또 웃으면서, 신나고 즐겁게 세계 멸망의 날을 감상할 수 있다. 추락했다기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갔다고 할 정도의 타락천사 크롤리와 천사이며 부업으로 희귀서적상을 하고 있는 아지라파엘을 만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임 :

책디자인은 좋지 않다. 양장본이 아니고 페이지가 더 얇았다면 (책의 글씨크기와 행간 그리고 주위 여백을 보면, 이 책을 더욱 얇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양장본은 무겁고, 자칫 잘못하면 커버가 뜯어질 수 있다. 포장이야 어쨌든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조금 아쉽긴 하다.
 

 

2008. 6.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