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멋진 징조들 ㅣ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의 멸망은 어떤 식으로 올 것인가?
혜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좀비 바이러스가 퍼질 수도 있고, 핵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로봇이 인간을 없애고 인공지능의 세상을 만들 수도 있고, 빙하가 녹아 모두 물에 잠길 수도 잇고, 빙하기로 인해 모든 게 얼어버릴 수도 있고, 지구가 펑 하고 터져버릴 수도 있다. 개구리가 무한 증식해서 사람들이 개구리에 묻혀 질식사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상상하면서 지쳐버릴 만큼 많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멋진 징조들>은 인류 멸망의 위기를 다루고 있다. "멸망"의 순간이 어떻든, 멸망이라는 단어의 무게 만으로도 사람들은 무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 무섭고 비정한 상황(정확히 말하면 무섭고 비정해야 하는 상황에서)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어이없을만큼 유쾌하다. 그들의 행동은 심각한 상황을 대수롭잖은 일, 나아가 우스운 얘기로 만든다. 제일 급박한 장면에서조차 그렇다.
가만히 <멋진 징조들>을 보고 있자면 멸망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진다. 한 편의 보드게임을 보는 것 같다. 멸망해도 그만이고(<멋진 징조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죽을 만큼 심심하겠지만), 그리고 멸망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고.
생각해보면, 세상이 끝나는 것을 막으려고 뛰어다니는 인물이 꼭 심각하고 진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구에는 60억의 인간이 살고 그들은 다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인류의 멸망을 막으려는 사람은 박사가 아니라 백수일수도 있다. 그러니까 <멋진 징조들>은 그런 가능성의 얘기다. 마지막 날 이런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것도 퍽 유쾌해서 좋다.
패러디가 난무하고, 어딘지 깨는 구석이 있는 인물들이 멸망의 날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설. 웃고 웃고 또 웃으면서, 신나고 즐겁게 세계 멸망의 날을 감상할 수 있다. 추락했다기보다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갔다고 할 정도의 타락천사 크롤리와 천사이며 부업으로 희귀서적상을 하고 있는 아지라파엘을 만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덧붙임 :
책디자인은 좋지 않다. 양장본이 아니고 페이지가 더 얇았다면 (책의 글씨크기와 행간 그리고 주위 여백을 보면, 이 책을 더욱 얇게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양장본은 무겁고, 자칫 잘못하면 커버가 뜯어질 수 있다. 포장이야 어쨌든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조금 아쉽긴 하다.
2008.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