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드 어웨이 뫼비우스 서재
할런 코벤 지음, 임정희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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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위험한 계약>에 이은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 <위험한 계약>은 그저그렇게 봤기 때문에 <페이드 어웨이>는 별 기대없이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재밌다. 

  스포츠 에이전트인 마이런 볼리타는 NBA에서 뛰라는 제의를 받는다. 무릎 부상으로 은퇴한 지 십 년, 프로 선수로 뛸 수 있을 리가 없다. 사실 스카웃한 분도 농구계의 새로운 별이 되라고 마이런을 스카웃한 것은 아니다. 훼이크다. 실체는 진짜 스타 농구선수인 그렉 다이닝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다. 

  작은 사건에서 큰 덩어리가 계속 기어나오는 것이 할런 코벤 소설의 특징. 마이런은 그렉의 행방을 찾고 싶을 뿐인데 이것 저것 그것까지 고구마 줄기 잡아당기듯 으스스 으스스 뽑혀져 나온다. 할런 코벤은 교묘하게 단서를 놓아두고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가 또 다른 카드를 꺼내서 보여준다. 사건이 커져 갈 수록 궁금증은 더 많아지고 더 커진다.

  <위험한 계약>의 경우, 약올리기가 너무 지나쳐서 지친 감이 있었다.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책 읽고 있겠냐! 라고 소리를 지르게 된달까. 마이런과 그의 유쾌한 친구들에 대한 설명에 시간을 할애한 것도 있고, 전체적으로 얘기가 늘어지고 흩어진 느낌인데 <페이드 어웨이>는 금방금방 장면이 지나가서 읽으면 휙- 빠져든다.

  마이런 볼리타는 잘생기고, 똑독하고, 능력있고, 정의감이 넘치고, 유머감각도 있고, 싸움도 잘하고, 뒷배도 있다. 똑똑하고 힘센 미인 여비서와 영리한 스타 작가 미녀 여자친구에다가 최종 병기 그이라고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 친구 윈저 혼 락우드 3세까지 곁에 버티고 서 있다. 그런 마이런의 약점, 농구계에 복귀하면서 마이런이 보여준 심리적 외상과 부족한 점은 마이런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 만들면서 <페이드 어웨이>를 이끄는 견인이 된다.

  "그렉은 어디로 갔는가?" "그렉은 왜 사라졌는가?"에서, "이 여자는 누구인가?"로, 또 "이 여자와 그렉의 관계는 어떤가?"에서 "살인범은 누구인가?"로. 종횡무진 증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페이드 어웨이>는 굳이 말하자면 해피 엔딩이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씁쓸함이 남는다. 사건 해결 후에 나오는 여분의 트랙 때문일 것이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확 열이 솟구치는데 다음 순간 확 죽는다. 아, 이걸 말하기 위해 이 책이 나왔군- 이라는 느낌?

  스토리 진행 속도, 주인공 싱크로율, 캐릭터 매력도(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는 에스페란자 빼고 다 마음에 안 들지만), 반전까지 모두 좋다.

 

  덧붙임. 

  주인공보다도 존재감 있는 윈저 혼 락우드 3세는 여전히 인간같이 않게 강하시다. <위험한 계약>보다 비중은 줄었지만 역시 강렬한 인상을 풍기며 마이런으로 인한 답답증을 풀어준다. 근데 얘는 왜 마이런과 친구하는 걸까? <페이드 어웨이>에서는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200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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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을 찾아라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4
패트리셔 매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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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는 Catch Me If You Can. 원제가 더 마음에 든다. 

  이 소설은 독특한 구성을 띠고 있다. 범인은 책 초반부터 당당하게 나와 있다. 그리고 범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범인은 '탐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탐정은 범인을 찾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2중 추리인 것이다.

  주인공인 마거트 웨더비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다. 그녀는 산골에 처박혀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부유하지만 병든 남편을 없애고 싶어한다. 마침내 자유를 찾았다 여긴 순간 청천벽력같은 일이! 남편이 탐정을 불렀다고 한다. 

  마거트는 혹시나 모를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탐정을 없애기로 하는데, 그 밤과 다음날 아침에 걸쳐 사람들이 줄줄이 쳐들어온다. 마이크 셸던, 찰리 밀러, 수잔 퀸, R 데이븐퍼트 케이츠- 이렇게 네 사람이 말이다. 

  다들 수상한 것도 같고 다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마거트의 심리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머리를 데구르르 굴려서 탐정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마거트의 의심이 향하는 곳을 그냥저냥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어쩌면 그 편이 외려 마거트의 심리를 더 잘 맛볼 수 있어 재미를 배가시킬지도 모른다.

  마거트의 연극적인 면모,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범죄를 저지르며 되뇌는 탁월한 자기 합리화를 보다 보면 어쩐지 안쓰러워지기까지 한다. 마거트는 자기가 영리하다고 자부하지만 제 3자가 보기에는 어설프다.

  문제를 건드릴수록 안 좋아지는 것이 제 3자에게는 보이지만 당사자는 모를 때가 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데 완벽하게 하려니 지저분한 흔적이 남는 것이다. 

  마거트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는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덕분에 마음에 걸리는 일은 점점 늘어난다. 완전범죄에 어깃장을 놓은 것은 물리적인 증거나 탐정의 존재가 아니라, 실낱같이 남아있던 '혹시나-'라는 생각이었던 셈이다. 

  연쇄살인에 대한 탁월한 비틀기라고 생각한다. 눈 오는 산장, 안면이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고, 차례로 살해당한다. 남은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고 그 중에서 한 사람이 드디어 범인을 찾아낸다. <탐정을 찾아라>는 이 클리셰의 앞과 뒤를 비틀어놓는다. 범인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마거트가 잡힐 수 있을지, 탐정은 누구일지, 조마조마하는 두뇌게임을 한 느낌이었다. 

  <탐정을 찾아라>가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서 패트리셔 매거의 다른 작품을 찾아봤지만 국내에 그녀의 작품은 <탐정을 찾아라> 하나뿐인 듯 하다. <피해자를 찾아라>라던가 <범인을 찾아라>라는 다른 작품들도 무척 신선한 설정이라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다.
 

2008.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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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계약 1 뫼비우스 서재
할런 코벤 지음, 김민혜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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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에서 <페이드 어웨이>를 보고 흥미가 생긴 차에 <페이드 어웨이>가 '마이런 볼리타 시리즈'의 2편이라는 것과 1편에 해당되는 <위험한 계약>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야 맛이다. <위험한 계약>을 먼저 손에 잡았다.

  퍽 이상한 소설이다. 손에 잡으면 놓기가 싫지만, 일단 놓으면 한동안 잡지 않아도 괜찮다. 다시 말해서 읽어나가는 재미는 있는데 몰입해서 보지는 못했다.

  스포츠 에이전트 마이런 볼리타가 계약을 맡고 있는, 거물급 미식축구선수 크리스천 스틸의 약혼녀 캐시 컬버가 실종된지 18개월, 캐시의 누드사진이 실린 도색잡지가 발견된다. 캐시 컬버가 살아있는 걸까? 마이런 볼리타는 수사에 착수하는데, 이거 파면 팔수록 수상쩍은 구석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뭐랄까, 나는 이 범인찾기놀이에서 애저녁에 손을 놔 버렸다. 그저 작가가 보여주는 것을 보고 데려가는 곳에 간다. 이런 수동적인 독자는 재미가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별로 의욕이 솟질 않는걸.

  마이런 볼리타는 잘생겼고, 똑똑하고, 능력있고, 정의감이 넘치고, 유머감각도 있고(불행히도 나는 미국시민이 아니어서 그의 유머감각이 이상해 보였지만), 싸움도 잘하고, 뒷배도 있고. 힘세고 미인인 여비서 에스페란자가 일을 돕고, 유명작가인데다 미인인 옛애인이 있다. 무엇보다도 굉장한것은 사상 최강의 무기(!)라는 느낌이 드는 윈 락우드와 베스트프랜드라는 점이다(왠지 윈만 마이런에게 봉사를 해 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긴 하지만). 외모와 달리 물불 안 가리는 과격남 윈이 곁에 있다보니 법의 테두리 밖에서의 일처리도 가능하다. 스펙이 이 정도 되면 슈퍼히어로라는 딱지를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 고민된다.

  이렇게 강력한 주인공이 나오다보니 몰입이 쉽지 않다. 누군가 마이런을 죽이려 한다. -> 윈이 나타나 구해주겠지! 이런 식으로 흘러흘러 가는 것이다.

  더구나 캐시 컬버의 실종사건은 지극히 사적이고, 일이 얽히면서 용의선상은 넓어져만 가고, 마이런의 본업이 스포츠 에이전트다보니 사건 외의 부분에 시간을 쏟아서 집중이 떨어진다.

  개인적인 몰입도를 철저히 배제하고 보자면, <위험한 계약>은 좋은 글이다. 사건이 잘 짜여져 있다. 누드 사진을 보낸 사람, 캐시는 살아있는가, 범인은 누구인가, 캐시는 왜 변했는가, 캐시의 아버지는 왜 죽었는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이야기가 결말부분에서 남는 것 없이 한 점에 모인다. 범인도 납득할 만하고 동기에 대한 복선도 슬쩍 들어있고...... 손에 쥐고 읽으면 책장이 넘어가고 어느 새 한 권을 다 읽은 나를 발견한다.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긴장감과는 거리가 있지만, 제3자의 눈으로 사건을 훑어보고 등장인물을 살펴보는 것은 유쾌하다.

  마이런 볼리타에게 흠이 있었다면 더 재미있었겠지,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왜, 슈퍼히어로란 자고로 한두 번쯤 진탕에 처박히는 게 인간미있어 재미있지 않은가!).

 


  덧붙임.
  마이런이라는 이름이 도대체 뭐가 어떻기에, 주인공은 그렇게도 자신의 이름을 싫어하는 것인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lllorz
 

2008.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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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책 + CD 1장) 삼지사 명작영한대역 5
진 웹스터 지음 / 삼지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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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키다리 아저씨>이다.

  <키다리 아저씨>를 다시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착하고 똑똑한 고아 소녀가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서 대학 교육을 받게 된다. 고아 소녀는 아저씨에게 일상보고를 겸하여 편지를 보낸다. 알고보니 그 아저씨는 친구의 삼촌이었다. 고아 소녀는 아저씨랑 사귄다. 끝.

  뭔가 신데렐라 이야기와 혹은 할리퀸 로맨스로 보인다. 그러나 나이 먹고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예전의 기억과 사뭇 달랐다.
 

  첫째, 주디는 착한 고아소녀가 아니다.

  고아원에서 나고 자랐다는 콤플렉스 덩어리고, 감성이 풍부하고 칭찬받기 좋아하고 으쓱하기 쉽고, 뒤에서 친구 욕도 한다. 자기에게 부족한 면을 메우기 위해 필사적이고 자존심이 세다. 남에게 어쩔 수 없이 도움받으면서도 나중에 갚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 마디로, 자존심 강하고 자립심 있는 소녀이다. 성격이 불같다. 키다리 아저씨와 불화가 있으면 막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다음 날 전의 편지는 제발 좀 태워달라고 편지를 써서 보낸다. 심술궂은 우체국아저씨가 안 돌려줬다;;고 하면서.

  "아저씨가 저를 키워주셨어요. 아저씨는 저의 은인~ 폴 인 러브~"라고 하는 캐릭터와는 억만광년정도 떨어져 있다. "당신이 돈을 주어서 나를 대학에 보냈지만 내가 당신과 사귀는 건 그와 별개지. 돈은 나중에 다 갚을 거야. 그리고 당신 돈은 당신 돈, 내 돈은 내 돈. 오케이?"라고 말하는 쿨한 여성에 가깝다.


  둘째, 키다리 아저씨는... 좀 음흉한 분이다.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이 분 좀 능글맞은 게 아닌 거다. 게다가 소인배. 친구의 삼촌이라고 모르는 척 하면서 주디를 만나고, 주디가 지미 맥브라이드와 가까워지는 것 같으니까 거기 놀러가지 말고 이리로 오라고 (키다리 아저씨 이름으로) 명령하고, 주디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막 보내주고 안 받으니까 삐지고. 내용이 모두 주디의 편지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분의 진의야 할 수는 없지만 저비 도련님(키다리 아저씨)이 나오는 부분이 되면 막 뱃속이 간지러웠다. 뭐냐 당신! 주디가 저비 도련님에 대해 쓴 편지를 읽으면서 이 사람 얼마나 기분이 묘했을까?


  셋째, 주디의 연애담보다는 그녀의 학창시절이 메인이더라.

  아마도 막판에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가 사귄다는 부분이 마음에 닿아서, <키다리 아저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연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디가 고아원을 벗어나서 대학에서 살아가고 작가로 서기까지의 과정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래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능글맞은 저비 도련님과 쿨한 주디의 연애담.


  그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그 책을 몇년이 지나 다시 읽었는데도 낄낄거릴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장수하는 책은 장수하는 나름의 맛이 있는 거다. 확실히 그렇다.


 

   덧붙임. 

   영어의 뉘앙스가 한글과 달라서, 둘을 비교하며 보면 퍽 재밌다.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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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챔피언
로알드 달 지음, 정해영 외 옮김 / 강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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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얄드 달이 보여주는 세계는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 상상력이란 게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아니라 국어 책에 나오는 소설의 정의처럼 딱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읽다보면 말려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의 상상력은 좀 문제있다. 상상력- 보통은 아주 기발하거나, 즐겁거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로얄드 달의 상상력의 세계는 어딘가 어그러져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재미있게 읽어가다가 막판에, "어," 하고 반전을 보며 넋이 빠진다. 클로드의 꿩 잡는 법의 결말이라던가. 개경주에서 한 탕 사기를 치려하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견권업자에게 뒤통수 맞는다던가.

  읽고 나면 씁쓸하고 가끔은 우울해진다. 이렇게 상상력이 판을 치고 있는 책도 현실을 지배하는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소설은 많든 적든 작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세계 챔피언>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은 로얄드 달이 세계2차대전을 겪으면서 닦은 세상을 보는 눈 때문일까. 

  로얄드 달의 이야기 속 뒤통수 후려치는 반전처럼, 세상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세계 챔피언>의 클로드처럼, 세상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탕 해 보려는 인간들이 있기에 사는 게 유쾌한 것 아닐까.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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