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아저씨 (책 + CD 1장) 삼지사 명작영한대역 5
진 웹스터 지음 / 삼지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키다리 아저씨>이다.

  <키다리 아저씨>를 다시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었다. 

  착하고 똑똑한 고아 소녀가 친절한 아저씨를 만나서 대학 교육을 받게 된다. 고아 소녀는 아저씨에게 일상보고를 겸하여 편지를 보낸다. 알고보니 그 아저씨는 친구의 삼촌이었다. 고아 소녀는 아저씨랑 사귄다. 끝.

  뭔가 신데렐라 이야기와 혹은 할리퀸 로맨스로 보인다. 그러나 나이 먹고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예전의 기억과 사뭇 달랐다.
 

  첫째, 주디는 착한 고아소녀가 아니다.

  고아원에서 나고 자랐다는 콤플렉스 덩어리고, 감성이 풍부하고 칭찬받기 좋아하고 으쓱하기 쉽고, 뒤에서 친구 욕도 한다. 자기에게 부족한 면을 메우기 위해 필사적이고 자존심이 세다. 남에게 어쩔 수 없이 도움받으면서도 나중에 갚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 마디로, 자존심 강하고 자립심 있는 소녀이다. 성격이 불같다. 키다리 아저씨와 불화가 있으면 막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다음 날 전의 편지는 제발 좀 태워달라고 편지를 써서 보낸다. 심술궂은 우체국아저씨가 안 돌려줬다;;고 하면서.

  "아저씨가 저를 키워주셨어요. 아저씨는 저의 은인~ 폴 인 러브~"라고 하는 캐릭터와는 억만광년정도 떨어져 있다. "당신이 돈을 주어서 나를 대학에 보냈지만 내가 당신과 사귀는 건 그와 별개지. 돈은 나중에 다 갚을 거야. 그리고 당신 돈은 당신 돈, 내 돈은 내 돈. 오케이?"라고 말하는 쿨한 여성에 가깝다.


  둘째, 키다리 아저씨는... 좀 음흉한 분이다.

  가만히 다시 읽어보니 이 분 좀 능글맞은 게 아닌 거다. 게다가 소인배. 친구의 삼촌이라고 모르는 척 하면서 주디를 만나고, 주디가 지미 맥브라이드와 가까워지는 것 같으니까 거기 놀러가지 말고 이리로 오라고 (키다리 아저씨 이름으로) 명령하고, 주디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막 보내주고 안 받으니까 삐지고. 내용이 모두 주디의 편지로 진행되기 때문에 그분의 진의야 할 수는 없지만 저비 도련님(키다리 아저씨)이 나오는 부분이 되면 막 뱃속이 간지러웠다. 뭐냐 당신! 주디가 저비 도련님에 대해 쓴 편지를 읽으면서 이 사람 얼마나 기분이 묘했을까?


  셋째, 주디의 연애담보다는 그녀의 학창시절이 메인이더라.

  아마도 막판에 키다리 아저씨와 주디가 사귄다는 부분이 마음에 닿아서, <키다리 아저씨>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연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주디가 고아원을 벗어나서 대학에서 살아가고 작가로 서기까지의 과정에 더 중점을 둔 것 같다. 그래도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능글맞은 저비 도련님과 쿨한 주디의 연애담.


  그 어린 시절에 읽었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그 책을 몇년이 지나 다시 읽었는데도 낄낄거릴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장수하는 책은 장수하는 나름의 맛이 있는 거다. 확실히 그렇다.


 

   덧붙임. 

   영어의 뉘앙스가 한글과 달라서, 둘을 비교하며 보면 퍽 재밌다.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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