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말은 조금 차갑게 들린다. 금요일, 닷새간 쌓여있던 일이 마무리되고 조금 늘어져도 좋은 시간, 내일은 휴일이니까 늦잠 자도 되니 밤 늦게 놀아도 된다. 한 숨 돌리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금요일 저녁이다. 그런데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니. 맞는 말이다. 항상 금요일처럼 밤 늦게까지 놀 수 없고, 항상 금요일처럼 일을 조금 미뤄둘 수 없고, 항상 금요일처럼 대책없이 낙관적일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저 말이 조금 섭섭하게 들렸다.

  "세상은 놀고만 살 수 없어! 부지런을 떨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제목과 달리, 속에 든 것은 "게을러도 돼~ 언젠가는 하겠지~"라면서 한껏 게으름을 부리는 내용이다. 세 시간 째 오늘 일할 목록을 작성하는 첫번째 이야기부터 머리를 땅- 때린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고 혀를 차고 싶지만 어딘지 익숙하다. 시험기간을 다음 주로 앞두고 공부시간표를 짜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공부가 하기는 싫은데 하기는 해야겠고, 일단 시간표를 짜면서 여유를 둬 보자, 라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 식의 게으름이 이 책 전체에서 춤을 추고 있다.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은 서로 큰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모든 이야기를 꿰뚫고 있는 것은 게으름과 나태함과 늘어짐 같은, '금요일'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느긋함이다. 아주 우스운 상황들이라 실소가 터지지만 진지하게 그 상황을 생각하면 도저히 웃을 수 없다. 내 삶의 한 구석에서 실제로 그런 얼빠진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금요일 저녁이라던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라는 제목엔 뒤엣말이 생략된 것 같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하지만 난 항상 금요일처럼 살고 있어>정도가 아닐까. 이 책은 '이렇게 살아도 괜찮고 저렇게 살아도 괜찮아, 숨 좀 쉬고 달리라고, 헉헉, 나는 숨 차서 못 가겠더만!'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읽은 사람은 생각한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는 항상 금요일처럼 살고 있지만 그건 좀 심하고, 금요일 정도는 좀 게을러져도 되겠다>.

 

2008.12. 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스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2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지혜와 학문의 도시 <<안술>>은 사막의 나라 알드에서 진군해온 병사들에게 지배당한다. 알드 병사의 눈에 띈 모든 책은 바다에 처넣어지고, 안술의 시민들은 노예가 되어 알드의 눈치를 보면서 지낸다. 안술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의 사당은 발견되는 족족 부숴진다. 개중에는 알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메메르는 알드의 병사가 안술 시민인 어머니를 강간해서 생긴 아이다. 그녀는 저택에서 수장 어른과 살면서 몰래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는다.

  <보이스>를 펼치는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있었던 일인데다가 국사 시간에 심도깊게 다룬 적도 없고, 굳이 찾아서 파헤치고 머릿속에 새겨넣을 정도의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일제강점기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일제강점기!"라고 외치면 치가 떨린다. 오십 여년 이상 지난 뒤의 나도 이런데, 현재진행형으로 알드에게 점령당한 안술 시에서 살고 있는 메메르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알드를 영원히 미워하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다 죽여버릴거다'라는 메메르의 맹세는 진심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영웅이 쨘 하고 나타나서 안술 시를 구하고 안술 시를 괜히 침략한 알드 인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참 통쾌할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잔인함에는 잔인함. 메메르가 바란 것은 바로 그런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흑과 백으로 딱 나누어져 있지 않고 한없이 두루뭉실한 회색의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보이스>는 그것에 충실하다. 저 멀리 사막에 있는 알드의 왕(간드 중의 간드)이 죽은 것과, 시인 오렉 카스프로가 알드의 간드에게 초청받아 온 것과, 사람들이 봉기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그 모든 것이 촘촘히 엮여서 안술의 자유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메메르도 변한다. 순수한 증오는 아이이기 때문에 품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치와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증오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고 싶었던 메메르는, 안술이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와 타협을 알고 그것들이 왜 필요한지를,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안다. 흰 색과 검은 색만이 있는 세계에서 스펙트럼을 보고 자신의 감정을 굽히고 이성의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메메르는 한 걸음 성장한다. "부서진 것이 부서진 것을 고치리라." 그리고 메메르는 자신의 혈족 '갈바'가 타고난 힘과 역할을 수긍한다. 메메르가 즐거워했던 책읽기는 '신들이 들려주는 목소리'가 되어 메메르에게 돌아오고, 메메르는 그것을 버거워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부여된 것임을 알고 받아들인다.

  <보이스>는 오렉의 이야기에 맞춰져 있던 <기프트>보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주인공인 메메르의 변화보다 안술 시가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닐까 하는 것에 더 시선이 간다. 그러나 책을 덮었을 때, 메메르는 안술의 자유와 함께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꽤나 단시간에 벌어진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를 시작할 때의 메메르와 이야기를 끝낼 때의 메메르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메메르의 변화에는 오렉과 그라이가 있다. <기프트>의 등장인물들이 성장한 뒤의 모습은 참 신기한 느낌이고, 그들이 메메르의 성장과 안술의 자유를 돕는 모습을 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능력 때문에 괴로워하던 소년이 자라서 다른 소녀의 성장과 도시의 성장을 도와주다니, 굉장하다. 세상은 이렇게 톱니바퀴 맞물리듯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돌려주며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2009. 3. 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프트 서부해안 연대기 3부작 1
어슐러 K. 르귄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슐러 르귄의 <기프트>는 분명히 판타지인데 판타지같지가 않다.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실상은 가난하기 그지없는 고원지대의 '주술사'들의 모습이라던가, 그들이 아옹다옹하면서 싸우는 이유는 인류의 멸망이나 위대한 사상 때문이 아니라 소 한 두마리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부족하고 욕망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보듬고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고. <<서부해안>>은 낭만적인 환상이라기보다 현실적인 환상이라서 괜히 보고 있자면 답답해지고 그만큼 더 몰입하게 되는 그런 세계다.

  이처럼 현실적인 세계에 환상적인 주인공이 나올 리 없다. 서부해안에는 "나의 위대한 힘으로 세상을 구하겠어! 왓핫핫!"이라고 외치는 자신만만하고 능력이 있는 주인공은 없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어머니에게서 딸로 물려내려오는 '선물', 자신의 집안에서 선물로 내려오는 '되돌림'의 능력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오렉 카스프로가 있을 뿐이다.

  주변에서 쏟아붓는 기대와, 그 기대를 채우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소년. 이것이 비단 오렉만의 이야기일까? TV드라마나 영화나 신문이나 잡지나 소설이나, 그런 곳에서야 말할 것도 없고, 길을 가다 슬쩍 옆을 쳐다보면 학원 가방 서너 개를 들고 허덕거리면서 거리를 뛰어다니는 어린이를 솔찬히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아니, 그렇게 갈 필요도 없다.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돌아보기만 해도 오렉의 고민은 단순한 이야기 속 주인공의 고민이 아닌 나의 고민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오렉에게 제어할 수 없을만치 강한 힘이 생긴다. 이야, 이거 해피엔딩이로군. 이야기만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선물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고 알려진 오렉에게 선물의 힘이, 그것도 아주 아주 강한 힘이 생겼다. 영지를 지키고 더욱 크게 키울 수 있는 기반이 생긴 셈이다. 멋지다. 그런데 오렉은 기쁘지가 않다. 그는 자신의 힘이 정말 자신의 것인가 의심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힘이 소중한 것을 파괴할까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눈을 천으로 꽁꽁 묶는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오렉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눈을 가린 오렉을 두려워한다. 오렉이 어둠 속에서 곱씹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삶의 불편함, 바뀐 주변 사람들의 태도, 그런 것이다.

  만약에 오렉에게 저지대출신인 어머니가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오렉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째서 눈을 가리고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오렉의 눈을 보고 싶어한다. 그녀는 아들이 천을 풀어버리고 세상을 보기를 소망한다. 그녀가 죽어가는 와중에 계속해서 책을 썼던 것은, 그녀가 자신의 빈 자리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자신의 지식을 담은 책 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오렉이 주변의 기대(그러니까, 여기서는 '선물')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찾아서 천을 벗고 세상을 보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의 선물만 있지 않다. 오렉은 자신이 타고난 선물이 집안에 내려오는 선물과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달았다. 하나의 선물도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다르게 쓸 수 있다. 오렉의 소꿉친구 그라이는 대대로 선택한 선물의 모습(부름)이 아닌, 자신이 발견한 선물의 모습(듣기)을 선택한다. 길은 무한히 뻗어있고, 그 길에는 다른 갈래길이 있다는 것을,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고 더 자유롭다는 것을 오렉과 그라이는 알아냈던 것이다. 그들은 태어나고 자란 고원지대를 떠나서 더 넓은 '저지대'-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 그들의 능력은 고원지대에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뒤에 오렉과 그라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내면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자신이 받은 진정한 선물을 찾고, 그리고 선택한 그들의 삶은 행복했을 것이다. 때로 고원지대가 그립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만족하면서 삶을 살아내겠지. 책을 덮고 숨을 들이키니 즐겁게 웃는 오렉의 모습이 보였다. 책을 읽던 중에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던 오렉의 행복한 모습이다. 읽는 동안에는 답답하고 씁쓸하고 참 오묘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맛보았지만, 책을 덮고 느낀 감정이 즐거움이라서 기쁘다.



  덧붙임.

  제목이 <기프트>가 아닌 <선물>이었다면, 제목의 의미가 더 잘 와 닿았을 것 같다.

 

2009. 3. 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성탐정록 경성탐정록 1
한동진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1930년대란 나에게 있어서는 조선시대, 아니 고려시대, 혹은 삼국시대보다도 더 먼 시간이다. 중고등학교 시간에 국사를 그리 열심히 들었는데도 왜 일제강점기의 경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이다지도 없는지 미스터리다. 국사책의 끄트머리 쪽에 위치한 덕에 기말고사 시험범위에 간당간당하게 빠져서 그럴까, 아니면 그다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우울한 시대여서 그럴까. 어쨌건 그 경성에서 한 탐정이 살았다는 가정에서 <경성탐정록>은 시작한다. 그 탐정의 이름은 설홍주다. 

  탐정 설홍주, 뭔가가 떠오르는 이름이다. 그의 파트너인 의사 왕도손의 이름을 보자 추측은 확신이 된다. 아아, 셜록 홈즈와 와트슨 박사. 경성이라는 생소한 시대와 공간에서 유명한 명탐정의 이름을 따온 탐정이라니 구미가 돋는다. 도대체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것은 어떻게 해결될까. 

  그런데 사건들에 붙은 제목마저도 너무나 익숙하다. <운수 좋은 날>, <광화사>, <소나기>라니. <황금사각형>과 <천변풍경>은 잘 모르겠지만 그것들도 어떤 소설의 제목을 따왔겠거니 짐작이 선다. 익숙한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속의 이름과 대화와 사건은 친숙하여 애정이 간다. 그리고 호화찬란번뜩번뜩한 현대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두뇌로 미스터리의 아귀를 다듬고 맞추어 범인을 찾아내는 퍼즐 미스터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달리는 탐정을 숨가쁘게 따라가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범인을 추측하고 수법을 짐작해보는 재미를 준다(특히 여러가지의 반전이 뒤섞인 광화사는 두근두근하며 두 손 꼭 맞잡고 읽었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두 편, 납치 사건의 범인을 잡는 이야기가 한 편, 선대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이야기가 한 편, 그리고 중화요리집에 나타나는 이상한 남자의 비밀을 푸는 이야기가 한 편이다. 범죄에만 집착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건드리고 있어 각 편마다 조금 더 색다른 재미를 주는 듯 하다. 

  하지만 가장 즐거운 것은 하나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건너가면서 벌어지는 배경과 인물의 변화이다. <운수 좋은 날>에서는 1930년대 경성이라는 배경이 그다지 큰 의미로 와닿지 않는다. 설홍주는 그저 셜록 홈즈와 지독히 닮은 인물로 보인다(이 사건은 몇 가지 사건을 연결하여 짜맞추는 과정에서, '맞추다니 운이 좋았다'라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살짝 들었다. 논리의 비약이랄까.) 그러나 황금사각형에 들어서면서 1930년대 경성이라는 배경은 조금씩 색채를 가지고 살아나기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들이 설홍주와 왕도손의 입에 언급되고, 때로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소설 속에 나타나면서 말이다. 그에 맞추어 설홍주는 조금씩 셜록 홈즈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나름의 개성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한 캐릭터를 덮고 있던 밀랍이 자연스럽게 녹아 생기를 찾아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아 매력적이다. 

  설홍주가 셜록 홈즈의 패러디로 시작해 패러디로 끝났다면, 뭐 그것도 재미있었을 테지만, 나는 셜록 홈즈와 닮았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갖춰가는 설홍주가 더 좋다. 흥미롭다. 그리고 그가 살아가는 경성의 모습은 우울하지만 아주 매력적이다. 설홍주는 사건을 풀고 범인을 잡으면서 동시에 1930년대 경성이라는 미지의 시간과 공간을 나에게 안내해주고 있다.

  
  덧붙임.
  그런데 글씨가 너무 크고 행간이 넓다. 조금 더 줄였어도 괜찮았을 듯.
  미주가 아니라 각주였으면 보기가 더 편했을까?

2009. 3. 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바이어던 살인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형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한 책이 다 좋은 책인 건 아니지만, 유명하다고 하면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더구나 러시아의 추리소설작가, 몇백만부를 팔았고, 역사에 기반을 두었고, 고전추리소설을 생각나게 하고, 이런 짤막한 정보들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귀가 솔깃해 지는 것이다. 

  <아자젤의 음모>가 1편이기는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2편부터 읽게 되었다. 1편을 안 읽고 그 뒤부터 읽기 시작하면 살짝 떨린다. 전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그래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까봐. 결과적으로 보면 전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리바이어던 살인>은 완전히 독립적인 이야기여서 전편을 읽지 않았어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1878년 파리, 유명한 수집가인 리틀비 경의 집에서 10명의 사람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살해당한다. 하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편안한 표정과 앉은 자세로 죽어 있었다. 그리고 리틀비 경은 2층에서 머리가 깨진채 죽어있고 도난당한 것이라고는 황금시바상과 스카프 한 장 뿐이다. 현장 수색 중에 초호화 유람선 리바이어던 호의 일등실 승객만이 소유할 수 있는 황금뱃지가 발견되었다. 프랑스의 형사 고슈 경감은 범인을 밝히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리바이어던 호에 탑승한다. 

  <리바이어던 살인>은 처음부터 흥미를 확 잡아끈다. '리틀비 경 살해사건'의 현장과 상황은 신문기사와 고슈 경감의 사건보고일지(?)를 통해서 술회된다. 기본 정보를 가지고 나면 고슈 경감의 시선으로 사건이 시작된다. 고슈 경감 뒤에는 바톤터치를 한 듯이 밀포드스톡스 자작의 시선으로, 르네 클레버의 시선으로, 또 클라리사 스탬프의 시선으로, 긴타로 아오노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차례차례 말해진다. 고슈 경감을 제외한 넷은 리틀비경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들이며, 서술하는 방법도 성격도 틀려서 처음에는 꽤 혼란스러웠지만 익숙해지면 외려 한 사람의 시선만 고집하는 것보다 재미가 있다. 말하는 사람들이 용의자이기 때문에 누가 진짜 범인인지 추측하기가 쉽지 않고, 다들 수상쩍은 구석을 한두 개 씩 가지고 있다. 

  시리즈에 떡하니 이름이 붙은 '에라스트 판도린'은 외려 조연으로 등장한다. 리바이어던 호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탐정은 고슈 경감이다. 에라스트 판도린은 말도 더듬고 소심한 구석이 있는 러시아인 외교관이라는 설정에 맞게 한 쪽 구석에서 흐릿하게 존재할 뿐이다. 판도린은 앞에 나서서 자신의 추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뒤에 있다가 수사가 영 잘못된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살짝 궤도를 수정하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잊을 만 하면 톡톡 튀어나오는 명석한 감초랄까. 이렇게 존재감이 약한 탐정은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초반과 중반은 읽으면서 굉장히 신이 났다. 그러나 A가 범인으로 몰려 위기를 맞았지만 판도린의 논리정연한 이야기로 풀려난 뒤에는 긴장감이나 몰입도가 확 낮아져버렸다. 게다가 범인의 정체라던가 범행의 수법은 상당히 평이해서(그나마도 파트 2가 끝나면 거의 밝혀진다) 뒷부분은 지루한 감마저 있었다. 범인이 밝혀진 뒤에도 자잘한 반전이 터지는데 속도감이 없어서 없어도 되는 이야기가 덧붙은 느낌이었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보통 탐정과 범인의 두뇌싸움에 초점을 두는데, <리바이어던 살인>은 초점을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국적이나 문화에 따라 일어나는 갈등이나 인물의 성격,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사연들, 인물들 사이의 묘한 심리전에 시선을 두는 편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 

  <리바이어던 살인>은 신선하다. 추리소설이긴 한데, 추리소설답지 않다고 해야 할까. 진짜 탐정의 비중이 작고, 등장인물 모두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을 표현에 내세워서 다른 것을 캐보고 싶었던 것 같다. 재물에 대한 욕망, 물질의 소유권, 문화의 차이, 인물의 성격, 관계의 변화에 따른 시선의 변화, 그런 것 말이다. 그래서일까, 범인은 잡혔고 일은 끝났는데 뒷맛이 깔끔하지 않다. 마치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2009. 3. 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