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으로 한창 떠들썩할 무렵이다. 연예인에 관한 루머 때문에 연예인이 고통받는다는 요지의 기사에, 어떤 네티즌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왜 신문은 쏙 빼놔? 나 기사 나기 전까지 그 루머 몰랐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으면서, 한참 전에 스치듯 보았던 그 댓글이 떠올랐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오르긴 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그것이었다. 우연의 산물이 계획적 행동으로, 침착하고 영리한 가정부가 살인자의 정부이자 음탕한 공산주의자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은 비단 카타리나 블룸 뿐만이 아니고, 카타리나 블룸의 진실을 알고 도우려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음탕하고 반정부적이며 믿을수 없게 파렴치한' 인물들로 바뀐다. 카타리나 블룸 및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사회적 명예 및 위치가 산산조각났다. 하지만 그들을 파멸시킨 자들은 전혀 저지른 일의 대가를 받지 않는다. 그 신문의 신문기자가 죽었지만, 일간지는 멀쩡하고 경찰들도 멀쩡하며 카타리나 블룸을 음탕한 창녀로 몰아간 물품와 상황의 실제 대상인 정치인도 자신의 오욕을 카타리나 블룸에게 뒤집어씌운 채 멀쩡하게 행세한다. 되려 카타리나 블룸 일행에게 '동정심과 관대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카타리나의 명예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격렬한 이야기를 하면서도(이것은 단 5일간에 일어난 일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시종일관 덤덤한 어조로 흘러간다. 이것은 '보고서'형식으로 쓰여졌으며, 언뜻언뜻 드러나는 화자의 느낌조차도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보통 소설에서 쏠리기 마련인, 살인 사건이나 살인사건의 원흉이 된 기사도 그다지 자세하게 쓰지 않는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다들 '적당한 선에 머무른 타인'인 것이다. 이런 무미건조함이 오히려 섬뜩함을 배가시킨다. 제 3자의 눈으로 보아도 사건이 흘러가는 흐름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이다.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단 한 마디를 스스로에게 물으면 된다. "만약 저기에 있는 게 나였다면?") 

  명예를 잃어버린 카타리나 블룸의 상황도 무섭지만, 그 신문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 왜곡된 기사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떠들면서 카타리나 블룸에게 편지와 전화를 해 대고 손가락질하는 시민들도 무섭긴 매한가지다. 그 신문 이외에 객관적인 보도를 한 신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본단 말예요!"라고 말한 카타리나 블룸처럼, 사실에 입각한 신문은 시민들에게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그저 자극'이라고 표현한 누군가의 생각을 증명하듯이(불행히도 이 말을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신문이, 카타리나 블룸이, 과연 하인리히 뵐의 소설 속에서만 등장할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생각보다 시궁창인가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다보면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땅에서 벌어지는 일과 섬뜩할 정도로 겹친다. 신문 속에 소설보다 사실이 많다고 단언할 수가 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런데 그 펜은 칼보다 교묘하기까지 하다. 언론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렌즈다. 그 렌즈가 굴곡지고 더러워서야 세상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는 것, 약간의 의심증은 그래서 꼭 필요한 것 같다.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막으면 남는 것은 고깃덩어리다.

2009. 8. 9.

픽션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단편이라고 해도 길이는 천차만별이다. 중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단편도 있고, 으악 소리가 날 정도로 짧은 단편도 존재한다. 247p라는 한정된 페이지 안에 10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이야기가 아주 짧다는 것이고(서문과 옮긴이의 말을 빼고 단순히 나눠보자면 한 편당 20p를 약간 넘는다) 달리 말해보면 이야기가 제대로 시작되거나 혹은 제대로 끝나지 않을 위험이 있다는 소리다. 요즘들어 느끼는 건데, 잘 쓴 짧은 소설을 찾는 것은 잘 쓴 긴 소설을 찾는 것보다 힘들다.  

  결론을 말하자면 꽤 괜찮은 짧은 소설들이다.

  <픽션;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은 어떤 사람이 광장에 앉아서 두루 앉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꾼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입 밖으로 소리내어 읽어도 부담이 없을 듯한 짧은 분량이 더더욱 그 느낌을 부채질한다. 안에 담긴 이야기는 몇 사람은 환타지라고 부르고 또 몇 사람은 동화라고 부를 법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다시 말해서 순전히 구라인 이야기, 또 달리 표현해서 뻔뻔한 거짓말들, 단 두 글자로 줄여보면 '픽션'이다. 

   짧은 글들인 만큼 거대하고 견고하게 쌓인 이야기를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런 건 대체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펼쳐나갈 종이의 양이 확보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깔끔하고, 유쾌하고, 때로는 뭔가 생각하면서 비식 웃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글들이다. 거친 구석이나 읽다가 멈칫하게 되는 구석이이 없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곁들여진 일러스트는 보너스다. 

  처음에는 조금 시큰둥하게 읽다가, 그 다음에는 낄낄거리며 읽다가, 마지막에는 한 번 더 돌아가서 읽었다. 10개의 단편(정확히 말하면 9편의 단편과 1편의 만화)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특히 구미에 맞는 글을 꼽아보라면 한심한 도적 이야기,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 이야기를 뽑아들겠다. 굳이 하나만 말하라면, 역시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 이야기일까. 재미있으면서도 달리 생각하면 다른 뜻으로도 읽히고. 여러 번 돌아가면서 읽게 될 것 같다.



  덧붙임 1.
  서문과 옮긴이의 글 또한 '서문'과 '옮긴이의 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치 유쾌하다. 서문 / 옮긴이의 말이라고 넘어가지 말고 한 번 읽어보시길.


  덧붙임2.
  꽤 취향을 탈 거 같다. 코드가 맞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듯.

2009. 8. 5.

스켈레톤 크루 (상)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ㅣ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스티븐 킹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 : 상>은 무서운 이야기이다. 무서운 이야기는 내 전공이 아니다. 나는 겁이 많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의 단편집을 꽤나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끔찍하고 무서운 상황'이 아니라 '무서운 상황에 닥친 인간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인 것 같다. 

  정체불명의 안개가 덮친 슈퍼마켓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안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어째서 이런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는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그리고 중요한 건 원인론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살아나가는 것이다. 사람을 죽여나가는 슈퍼마켓 밖의 괴생명체들도 섬찟하지만, 나중에는 이 상황에서 엿보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섬찟했다. 지금의 상황을 기반으로 자신의 권력을 구축한 커모디 부인-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점점 더 공포가 짙어지는 상황이 될수록 생생해지던-의 모습이 인간을 죽이는 괴생명체들보다 더 끔찍하다는 건 제일 무서운 건 결국 인간이라는 것의 반증일까. 그리고 그보다 더 섬찟한 것은 안개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는 건 현재 처한 상황보다 더 비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하게 만든다. 만약 안개가 없었다면, 괴물들이 눈에 잘 보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했을까. 

  10월의 밤 뗏목 근처를 떠다니는 검은 덩어리와 대치하는 이야기인 '뗏목'은 어쩐지 '안개'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안개'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네 명의 사람이 있는 곳은 뗏목이고, 그들은 물에 젖은데다가 날씨는 차갑고 먹을 것도 없다. 검은 덩어리는 제대로 감시할 수조차 없다-사람을 홀려서 잡아먹으니까-. 게다가 검은 덩어리를 어떻게 해야 해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안개'에서 나오는 괴생물체는 최소한 죽기는 한다. 하지만 이 덩어리는 어떻게 공격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느긋하게 주변을 떠다니면서 때를 노리는 검은 덩어리는 초조한 사람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조운트'는 조금 뜬금없이 시작한다. 조운트란 말하자면 텔레포트를 하는 것이다. 이 쪽에서 저 쪽으로 텔레포트하는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공포라기보다는 SF 같았던 이 이야기는, 마지막에 확실히 반전한다. 대체 조운트하는 0.000062초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고 싶어했던 아이가 보여주는 모습으로. 

  그 외의 단편- '호랑이가 있다', '원숭이', '카인의 부활', '토드 부인의 지름길', '결혼축하연주', '편집증에 관한 노래'는 그만그만한 느낌이었다. '토드부인의 지름길'은 알수 없는 괴생명체가 나타나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안개'와의 접점이 살짝 보였지만, 본질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신비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다. 제일 별로였던 건 '편집증에 관한 노래'였고. 

  <스켈레톤 크루 : 상>의 총 페이지 수는 489페이지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절반이 '안개'에 쓰였다. 다른 이야기들은 상당히 짧다. 짧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안개'만큼 강한 글이 없었다. 아무래도 스티븐 킹은 단편보다 장편에 강한 걸까 잠시 의심을 가지면서 다른 글을 좀 더 읽어봐야겠다.

2009. 7. 31.

멸종

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내가 속한 카테고리의 멸종은 비극이지만 남이 속한 카테고리의 멸종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볼 때는 안타깝고 아쉽고 무섭고 또 손 내밀어 막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일상에 잡아먹혀 잊혀지고 마는. 

  로버트 J. 소여의 <멸종>은 제목에서 풍기는 비장미와는 달리, 일상적 색채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의 '멸종'은 6500만년 전 멸종한 공룡의 멸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여행을 통해서 6500만년 전의 과거에 80여 시간동안 머물게 된 40대의 두 고생물학자, 브랜디와 클릭스는 공룡의 멸종을 막고자 간 것이 아니라 그저 공룡의 생태와 멸종 원인을 알아보고자 학술연구의 일환으로 간 것일 뿐이다. 브랜디가 공룡의 멸종보다 아버지의 안락사 문제와 이혼한 전 부인 테스를 떠올리며 느끼는 괴로움, 그리고 테스와 사귀는 클릭스에 대한 질투에 마음을 쏟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총 두어 자루, 사진기와 낡은 지프차, 구급상자만을 지닌 그들이 공룡의 멸종을 막을 수는 없다. 멸종을 막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공룡의 멸종을 적극적으로 막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책장을 좀 넘기다보면 공룡의 멸종 이외에 곧 다른 종류의 멸종이 끼어든다. 두 고생물학자가 2013년의 지구와 화성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한다고 생각도 못했던, 화성인을 만난 것이다. 파란 젤리같은 모양의 화성인들을 멸종되도록 둬야 하는가, 아니면 미래로 데려가야 하는가? 공룡을 미래에 샘플로 데려가도 좋다면, 화성인도 미래에 데려가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걸로 멸종을 막을 수 있다면. 

  이 논의는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브랜디도 클릭스도 열과 성을 다하여서 이 문제에 달려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부록으로 딸린 문제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로 발전하자, 전세는 역전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멸종을 막기 위해서. 설혹 그게 다른 종들의 멸종을 불러올지라도 말이다. 남의 멸종은 나의 멸종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예견되어 있던 것이라면 더더욱. 그 자리에 브랜디와 클릭스가 아닌 어떤 인간이 있더라도 그 외의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버스 J. 소여의 <멸종>을 읽고 머리가 멍했다. 처음에는 좀 신기하지만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다가 눈덩이처럼 점점 살을 붙여서 감당하기 벅차 보이는 문제로 발전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는데, 마찬가지도 짐작도 못 했던 방식으로 문제가 끝난다. 하나씩 짜맞춰지는 조각에 입을 떡 벌렸다. 시간여행, 화성인, 공룡, 멸종, 바이러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6500만년 전 지구의 환경에 대한 묘사, 제목까지 하나의 조각이 되어 딱딱 맞아 떨어진다. 공룡에 대한 박학한 설명이나 시간여행에 관한 설정 등 탄탄하게 그려진 배경과 촘촘하게 잘 짜진 이야기의 그물망에 걸려서 마지막에는 조금 넋을 빼고 다시 처음부터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그 뒤에는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덧붙임.

  책 페이지 곳곳에 새겨진 검은 실루엣 처리된 공룡그림과 그 안에 자리잡은 글자 도안이 귀여웠다.

 

2009. 7. 23.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9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는 독특하다. 어느 부분에서 독특한가 하면, 미래를 보는 능력자가 등장하는 연작 추리소설 단편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뒤통수를 딱 때리는 기발한 반전과 명쾌한 설명이 기대되지만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사건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범죄가 등장하는 사건은 두 편, '6시간 후 너는 죽는다'와 '3시간 후 나는 죽는다' 정도다. 나머지 세 편은 사소한 일상의 사건들을 적고 있다. 따라서 이 단편집은 미스터리단편선이라고 부르는 쪽이 나을 거 같다.

  다섯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미래가 불확실한 20대이다. 누군가는 꿈을 가지지 못해서 방황하고, 또 누군가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함을 가지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언젠가 "누군가 내 미래를 말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허공에 외쳐보지 않았을까 싶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래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 미래는, 뭐랄까, 비일상적이긴 하지만 아주 사소하다. 6시간 뒤 칼에 찔려 죽는다는 예지를 들은 미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기하게 마주하게 되는 미쿠,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날을 예지받은 미아, 자기가 처한 상황 순간순간에 강한 데쟈뷰를 느끼는 미호, 세 시간 후 자신이 죽을 것을 알게 된 케이시. 빵빵하게 터지는 사건이나 명쾌하게 풀리는 해답은 없지만, 고민하고 걸어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보다 보면 미래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에필로그로 나온 <미래의 일기장>은 무척 짧지만 앞의 다섯 편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강한 느낌을 준다. "내일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는 말이 적힌 페이지와, 내 일기장에 미래를 적어나갈 사람은 나 뿐이라는 독백이 푸근하다. 그것은 아마 미래를 알게 된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올 일은 오고, 오지 않을 일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올 일을 오지 않게 하기도 하고 오지 않을 일을 오게 하기도 한다.  현재가 혼란스러워도- "내일은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보듬어야지. 그런 사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2009.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