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속한 카테고리의 멸종은 비극이지만 남이 속한 카테고리의 멸종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볼 때는 안타깝고 아쉽고 무섭고 또 손 내밀어 막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일상에 잡아먹혀 잊혀지고 마는. 

  로버트 J. 소여의 <멸종>은 제목에서 풍기는 비장미와는 달리, 일상적 색채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의 '멸종'은 6500만년 전 멸종한 공룡의 멸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여행을 통해서 6500만년 전의 과거에 80여 시간동안 머물게 된 40대의 두 고생물학자, 브랜디와 클릭스는 공룡의 멸종을 막고자 간 것이 아니라 그저 공룡의 생태와 멸종 원인을 알아보고자 학술연구의 일환으로 간 것일 뿐이다. 브랜디가 공룡의 멸종보다 아버지의 안락사 문제와 이혼한 전 부인 테스를 떠올리며 느끼는 괴로움, 그리고 테스와 사귀는 클릭스에 대한 질투에 마음을 쏟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총 두어 자루, 사진기와 낡은 지프차, 구급상자만을 지닌 그들이 공룡의 멸종을 막을 수는 없다. 멸종을 막는 것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그들이 공룡의 멸종을 적극적으로 막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책장을 좀 넘기다보면 공룡의 멸종 이외에 곧 다른 종류의 멸종이 끼어든다. 두 고생물학자가 2013년의 지구와 화성에서는 볼 수 없는, 존재한다고 생각도 못했던, 화성인을 만난 것이다. 파란 젤리같은 모양의 화성인들을 멸종되도록 둬야 하는가, 아니면 미래로 데려가야 하는가? 공룡을 미래에 샘플로 데려가도 좋다면, 화성인도 미래에 데려가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걸로 멸종을 막을 수 있다면. 

  이 논의는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브랜디도 클릭스도 열과 성을 다하여서 이 문제에 달려들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부록으로 딸린 문제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멸종이 일어날 수도 있는 문제로 발전하자, 전세는 역전된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멸종을 막기 위해서. 설혹 그게 다른 종들의 멸종을 불러올지라도 말이다. 남의 멸종은 나의 멸종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예견되어 있던 것이라면 더더욱. 그 자리에 브랜디와 클릭스가 아닌 어떤 인간이 있더라도 그 외의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로버스 J. 소여의 <멸종>을 읽고 머리가 멍했다. 처음에는 좀 신기하지만 소소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다가 눈덩이처럼 점점 살을 붙여서 감당하기 벅차 보이는 문제로 발전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는데, 마찬가지도 짐작도 못 했던 방식으로 문제가 끝난다. 하나씩 짜맞춰지는 조각에 입을 떡 벌렸다. 시간여행, 화성인, 공룡, 멸종, 바이러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6500만년 전 지구의 환경에 대한 묘사, 제목까지 하나의 조각이 되어 딱딱 맞아 떨어진다. 공룡에 대한 박학한 설명이나 시간여행에 관한 설정 등 탄탄하게 그려진 배경과 촘촘하게 잘 짜진 이야기의 그물망에 걸려서 마지막에는 조금 넋을 빼고 다시 처음부터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그 뒤에는 그저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덧붙임.

  책 페이지 곳곳에 새겨진 검은 실루엣 처리된 공룡그림과 그 안에 자리잡은 글자 도안이 귀여웠다.

 

2009.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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