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의 카드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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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범인은 브릿지 게임을 하고 있던 네 명 중 한 명이지만, 누구도 살해되는 세이터나 씨를 목격하지 못했다. 다들 한 번씩은 자신의 자리를 떠났다. 범인은 누구일까? 밀실에서 일어난 범행만큼이나 범인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테이블 위의 카드>는 몇 개의 범죄를 파헤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세이터나 씨가 '일류 범죄자'들을 모아놓았다는 소리를 한 모임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범죄가 밝혀지기 두려워한 범인이 세이터나 씨를 살해했다는 추측이 가능하고, <테이블 위의 카드>는 이중 구조를 가진다. 세이터나 씨의 살해범을 잡기 위해서는 과거의 범죄 또한 캐내야 하는 것이다. 

 

  용의자는 네 명(로버츠 박사, 로리머 부인, 디스파드 소령, 앤 메리디스 양)이지만, 혐의가 고루 분산되는 것은 아니다. 두 명 정도로 압축되다가 다른 한 명이 범인으로 지적되다가 반전이 있어 진짜 범인이 밝혀진다. 게임처럼 느긋하게 흘러가는 초중반과는 달리 마지막은 호흡이 빠르다. 자칫 잘못하면 "어???"라는 생각이 든다. 힌트는 애르큘 포와로의 대사, "그렇지만 범죄의 유형이 같으리라는 점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부분에서는 다를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본질적인 점들은 같을 겁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범인들은 언제나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죠.(p.81)"을 되새기면서 읽는다면 그다지 당혹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테이블 위의 카드>는 물리적인 단서보다는 심리적인 단서를 중시한다. 모두가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 있었으며 도구는 세이터나 씨의 집 안에 놓여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사실상 물리적 단서는 거의 없다. 성격으로 범행을 짐작하다니 이상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마지막에 롤러코스터처럼 뒤집혔다 펴졌다 뒤집히는 반전도 그렇고. 

 

  읽는 내내 범인을 짐작하면서 즐거웠다. 내가 짚어낸 범인이 사실 진짜 범인이 아니었다는 게 좀 아쉽지만.


  덧붙임.

  내용과는 별개로 오싹한 대사가 있었다. 이건 내가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피에르 바야르 지음, 여름언덕 펴냄)>를 읽었기 때문에 더 오싹했던 것 같지만. 그 순간은 범인보다도 애르큘 포와로가 더 무서웠다. 다음의 대사다.

  "문제는... 애르큘 포와로가 틀릴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중략)... 아닙니다. 나는 언제나 옳습니다. 그점이 나도 이상합니다만, 그런데 지금은 내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렇다면 내가 미쳤다는 말이 되는데, 미쳤을리가 없죠.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늙었다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옳습니다. 아니, 옳을 수밖에 없습니다.(p.244~p.245)"

 

  자신이 '옳을 수밖에 없다'니, 이처럼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2009.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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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완전판) - 파커 파인 사건집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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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은 참 많다. 그 유명한 '회색 뇌세포' 애르큘 포와로, '안락의자 탐정' 미스 제인 마플, 이름부터 유쾌한 사랑의 탐정 할리 퀸, 그리고 지금 읽은 책에 나오는 탐정 파커 파인이 모두 애거서 크리스티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파커 파인 사건집>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런던에서 "행복하십니까? 아니라면 17번 거리에 사는 파커 파인에게 상담하세요"라는 문구를 신문광고에 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부분과, 영국 런던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지만 사건에 휘말려서 해결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파커 파인의 매력은 책의 전반부에서 더 특별하다 생각한다. 

 

  파커 파인은 과거 통계청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불행은 고작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파커 파인은 몇 명의 협력자와 함께 훌륭한 연극을 만든다.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그래서인지 전반부는 의뢰인의 상황을 나타내는 '중년 여인' '괴로워하는 여자' '불만스러운 군인' 등의 제목이다. 굉장히 심리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사건을 일으켜서 사람들의 불행을 없애주는 파커 파인의 방법이 흥미롭다. 

 

  하지만 후반부는, 뭐랄까, 파커 파인의 매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통계를 신봉하는 모습이나 협력자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이 없어서 그런지, 파커 파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저그런 탐정 이야기 같다. 누구를 가져다 놓아도 똑같은 이야기일 것 같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탐정의 개성이 사라져서 아쉬웠다. 

 

  어쨌든 서로 다른 매력의 탐정들을 만들어낸 애거서 크리스티는 대단하다. 할리 퀸 탐정의 이름을 읽었을 때 애거서 크리스티는 재치있고 유쾌한 성격의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파커 파인 사건집>을 읽고 그 생각이 더 굳어졌다.
 


2009.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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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 3
포송령 지음, 김혜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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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이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복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재지이>는 권수를 거듭할 수록 조금씩 이야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인데, 3권에서 정점을 찍었다. 어쩌면 3권의 시작이 '전칠랑-사나이 의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호에게 의리를 입은 사냥꾼 전칠랑이 부호의 복수를 대신 해 주고 죽는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입안이 씁쓸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오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옛이야기에서 누차 볼 수 있는 미덕이다. 그런데 <요재지이>를 보자면, 현실과 빗겨있는 기이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께름칙하다. 받은 것을 몇 배로 돌려주는 복수 대신에 현실의 논리가 그대로 들어있다. 돈과 권력이 없으면 피해자임에도 가해자가 된다. '전칠랑'이 그렇고, '촉직'도 매한가지다. 귀뚜라미가 되었던 아들로 인해 가족이 부유해지긴 했으나, 과연 그게 끝일까? (나는 자꾸만 그들이 조만간 관리에게 트집을 잡혀서 평온을 빼앗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세계에서는 개인의 선량함과 덕행이 별 소용이 없다. 그것을 눈여겨 보는 것은 소위 말하는 "요괴"들 뿐이다. 

  포송령은 당시 사회를 지긋지긋해 했던 것 같다. 그는 '다른 곳'- 다시 말해서 요괴의 세계에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꿈꿨던 듯 하다. <요재지이>에 나오는 요괴들이 혐오스럽다거나 사람을 해한다거나 심한 악행을 저지른다거나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2009.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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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 2
포송령 지음, 김혜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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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은 1권과 조금 색채가 틀리다. 말하자면 드디어 원혼이 나왔다. 그래도 피와 살이 튀는 복수라던가 그런 것은 없고, 요괴(여우, 귀신, 오통)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몇 개의 이야기가 보인다. 여우를 퇴치하려던 군자가 외려 여우에게 홀려 도둑질을 하는 이야기, 부녀자를 겁탈하는 오통을 처단하는 이야기, 그리고 농담으로 인해 죽은 부인이 곡을 하거나 꿈에 나타나 대상이 급살하거나 이유모를 혹이 생기는 이야기 등등. 하지만 역시 <요재지이>의 주인공은 귀신이라기보다는 인간이다. 귀신이 말썽을 피우는 것보다는 인간이 하는 해꼬지 쪽이 훨씬 소름끼친다. 

  <요재지이> 2권째를 읽다보니, 포송령은 인간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비슷비슷한 이야기지만 또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은 참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다. 사람 됨됨이보다는 돈을 보고 딸을 주기를 거절하는 모습이라던가, 사람의 변명은 들어보지도 않고 장난에 놀아나 부정한 여자 취급을 하는 모습이라던가. 자신이 요괴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군자라던가. 호의가 반드시 호의로 돌아오지 않고, 적의가 때로 호의로 돌아올 수도 있고, 그렇게 때때로 굉장히 날카로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모습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요재지이> 2권은 읽을 때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어두운 면을 담은 이야기가 더 많이 기억나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1권보다 더 강렬했다. 이제 3권으로 넘어가야지.

 
 
  덧붙임.
  현실도 <요재지이>에 나오는 것처럼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좋은 사람은 행복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에 드문 일이라 '기이한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든다.

 
 

200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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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재지이 1
포송령 지음, 김혜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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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영화 속 오컬트 X-파일>을 읽었다. 강시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읽다가, 문득 동양의 요괴에 대해 궁금해져서 <요재지이>를 읽기로 결심했다. 중국의 3대 기서라고 불린다는 것 정도만 알고 실제로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방대했다. 6권이나 되다니! 거기다가 한 권이 만만한 두께가 아니다. 더구나 하드커버. 다행인 것은 짧은 이야기들은 엮어 놓은 형태라는 것이다. 단편이라는 것은 확실히 장편보다 호흡이 짧아 읽기가 쉽다. 자주 끊어 읽어도 되고. 

  <요재지이>는 기이한 이야기다. 인간이 아닌 다른 것들이 나오지만, 평화롭다. 요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다. 한을 품고 나와서 사람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어울리고 사람과 사귀고 그런 이야기다. 설혹 원한을 가져 귀신이 되었다 해도 딱 당한 만큼, 유하게 풀어낸다('임수-귀신의 복수'). 이백 냥의 은자를 가지고 도망친 사람에 대한 원한을 귀신이 갚는 방법은 자못 유쾌하고 통쾌하다. 더구나 이야기 속에서 귀신, 여우, 석상 등 이상한 것과 얽혔을 때에 찾아오는 것은 보통 요괴라고 하면 떠올릴 법한 음습한 원한이나 불화, 재앙이 아니라 복이다. 가장 많은 이야기는 요괴(귀신이나 정령이나 여우 등)인 절세미인이 남자와 혼인을 치르고 잘 살기까지의 이야기인데, 비슷비슷한 구조에 진력이 날 수도 있지만 가끔 놀랄만큼 독특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요재지이> 1권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는데, '육판-육 판관의 수술'과 '홍옥', '임수-귀신의 복수-' 그리고 '석청허'였다. '종리'는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인데, 원래 <요재지이>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신기했다. 

  <요재지이>를 읽으면서 또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 그리고 생활모습이다. 생원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고 글공부 하는 모습을 보고 문장가를 보며 감탄하는 것을 볼 때, 남자에게서 중요하게 보는 것은 시재인 것 같았다. 서자도 벼슬을 한다는 부분에서는 의외로 적서 구별이 엄격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첩을 '산다'고 표현하는 데에서 놀랐다. 원래 부인이 있는데도 미인을 보면 탐하고 아무렇잖게 사랑을 나누는 것에서는 영웅호색이라는 사상의 향기를 느꼈다. 아름답고 재능있는 여자가 열 중 아홉이 요괴로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는, 이 시대에 자기 주장이 강하고 솔직하며 능력있는 여자는 요괴처럼 느껴졌구나 혹은 요괴가 되어서야 여자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또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옛 중국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도 있고,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즐겁게 1편을 읽고 이제는 2편을 읽을 참이다. 몇 장 안 되는 짧은 이야기속에 몇 가지 사건들이 듬뿍 들어 있으니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고, 그 시대를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다양한 요괴가 나오고 그에 대한 설명이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옛 중국인들의 상상력은 무척 재미있다. 나는 원래 전설이나 신화, 민담을 좋아해서 더욱 그렇다. 읽기를 잘 한 것 같다.

200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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