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의 비밀
폴 크리스토퍼 지음, 민시현 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한 자리에서 감정을 주고받는 정적인 소설보다는 아무래도 사건도 좀 터지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고생도 좀 하는 소설이 취향이다. 그래서 모험 소설을 꽤 좋아한다. 

 

  <아즈텍의 비밀>. 제목에서 인디아나 존스가 떠오른다. 광고에서도 '21c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이야기가 있었고, 책 커버 뒤의 소개에서도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여주인공'이라는 부분이 있었고, 심지어 책 안에서 핀과 빌리가 인디아나 존스 운운하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인디아나 존스와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아즈텍의 비밀>의 줄거리는 아주 매혹적이다. 아즈텍의 보물이 있고, 그것을 찾아가는 보물 사냥꾼이 있고, 도중에 음모자들이 얽히고, 위기에 처하고...... 하지만 실제로 <아즈텍의 비밀>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지루했다. 마치,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 설명만 잔뜩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실제로 보물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책 중반 이후에서 시작한다). 

 

   게다가 폴 크리스토퍼의 전작 <미켈란젤로 그림>이나 <루시퍼 복음>, 그리고 <렘브란트의 유령>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써는 누가 주인공인지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핀과 빌리의 등장 비중은 적었고, 등장인물은 너무나도 많았다. 마약왕, 함장, 거대제약회사의 사장, 비밀결사대, 정보거래상....... 그들은 열심히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으며, 작가는 성실하게 그들이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이것이 섬세한 묘사라기보다는, 독자의 이해를 돋우려는 배려라기 보다는, 교수님의 지루한 강의라고 느꼈다면 내가 너무 나쁜 독자일까?(어라, 책 뒤의 작가약력을 보니 진짜 교수님이다;;) 

 

  내가 모험소설에서 원한 것은 모험이다. 제목처럼, 아즈텍의 보물과 얽힌 모험. 그러나 <아즈텍의 비밀>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음모이고 보물은 중간에서 약간, 마지막에서 약간,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나도 있긴 있어, 라고 말하는 듯. 더구나 사건이 풀려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설명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면목을 짐작할 만한 단서도 없었다. 무기가 저렇게 쉽게 해체되는 거던가? 보물이 저렇게 쉽게 발견되는 거던가? 세상에 안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제목에 얽힌 반전- 그리고 등장인물과 각자의 사연이 하나로 합쳐지는 시점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아즈텍의 비밀>이 아주 불만스럽다. 양배추 샐러드가 메인요리로 나오고 새끼손가락만한 제육볶음밥이 전채로 곁들여진 코스 요리를 먹는 기분이다.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 모험 소설에서 기대했던 장면들은 모두 대수롭지 않은 한 문단으로 처리되었다. 

 

  만약에 <아즈텍의 비밀>에서 쓰인 소재가 시시했다면 나의 실망도 덜했을 거다. 하지만 소재가 너무 환상적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배웠다.


  덧붙임.

  1. 이 책이 시리즈물인 만큼, 전작을 읽지 않은 내가 제대로 맛을 음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2.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스펙터클했던 것은, 총알개미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압도적이었다.




2009. 12.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덮었다.

  표지를 다시 보니 섬뜩하다. 파도의 무늬와 물방울과 사람을 은빛으로 반짝반짝하게 빛나도록 만든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단편 '보트'를 읽고 나니 표지가 너무나도 스산해보인다. 베트남의 보트피플, 나는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보트'를 읽을 때, 나는 왠지 내 할아버지와 내 할머니가 겪었던 6.25가 생각났고, 우울해졌다.


  소설은 때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보트>가 그랬다. 약간의 유머 정도는 섞을 법 한데, 아무 소스도 치지 않은 날것을 이야기한다. 격정적인 어조도 아니다. 그냥 일상을 얘기하는 듯, 덤덤하다. 차라리 <보트>가 전쟁이나 기아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트>는 한 사람 혹은 그의 가정 혹은 그의 처한 환경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딱, '일상에서 내가 처했을 때 그렇게 할 법한' 행동까지만 한다. 좁은 상자 안에 갖혀있는 느낌이다. 시원함이라고는 없다. 소설이 끝났지만 주인공의 위기는 실은 끝난 게 아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 상황을 지나서 또 삶을 살아가야 할 테니까.


  짧은 이야기 한 편으로, 소설 속 인물의 인생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재능이라면, 남 레는 굉장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 한 사람에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면, 객관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했다 해도, 동정하게 되는 법이다. '일리스 만나기'가 그렇다. 읽고 있자면, 헨리 러프를 만나주지 않는 일리스가 원망스러워진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면, 일리스가 헨리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엄마와 자신을 쫓아보내고 십 몇년 간 찾지 않다가(일리스 입장에서는), 애인이 죽고 다 늙은 뒤에 첼로신동으로 성공한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자면 역시 헨리가 가엾다. 그래서 답답해진다. 헨리가 어떻게 한들 일리스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진 않을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다. 역시나 우울해진다.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 '카르타헤나', '일리스 만나기', '해프리드',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 '보트'. 각각 다른 나라, 다른 상황, 다른 사람, 다른 성별의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어떤 이야기든 일말의 씁쓸함을 남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은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느끼지 못하던 과거의 비극, 현재의 비극, 내 옆의 비극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점점 우울해지니까. 문득, 내가 퍽 무심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기분을 바꾸게 하고,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굉장하다. 그 점에서 <보트>는 굉장하다.




2009. 12.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
에트가 케렛 지음, 이만식 옮김 / 부북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저 피상적인 (어디에 붙어있는지,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와 같은 뉴스나 세계사 속에서 배울 수 있는) 이야기일 뿐이고, 그 나라가 간직하고 있는 감성은 모른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굉장히 이상한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굉장히 짧고, 굉장히 무덤덤하다. 반쯤은 현실에 반쯤은 환상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그 환상은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사소하다. 읽다 보면 왜 이 책이 찬사를 받았다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몇 번이고 곱씹다보면, 어렴풋이 뭔가가 걸린다. 끝난 듯 끝나지 않은 듯 혹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듯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는 이야기를 곱씹게 하는 힘이 있고, 그래서 생각하게 하지만, 딱히 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마치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신이 되고 싶었던 버스 운전사>를 꿰뚫고 있는 것을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모두에게 공평하고자 시간에 칼같던 버스 운전사가 모두의 시간의 희생시키며 한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던 돼지가 가장 아끼는 친구가 되고, 한 끗발 차이로 계속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외려 나쁜 결과가 오기도 하고, 장자는 살아있지만 가정이 파괴되기도 하고, 편법을 통해 위기에 처하지 않았지만 그게 외려 소외감을 불러오기도 하고....... 

 

  작가가 내가 잘 모르는 나라 사람이고, 내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도, 결국에 인간이 느끼는 것은 한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낯설 뿐이지. 하지만 한편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감성에 대해 알고 있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이 책에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번이고 곱씹은 지금도 이 책은 아직 조금 낯설다.



2009. 12.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명왕성
권정현 지음 / 문이당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굿바이! 명왕성>은 이상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머리가 혼란해진다. 회색의 세상이다.   

 

   <달빛 달밤>에서는 환상과 현실이 섞이고, <장마가 온다>에서는 게임과 현실이 겹쳐진다. <360>과 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여러 사람의 증언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호랑이 능선에서>는 분명 목격한 것을 계속 의심하게 만들어 환각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충성! 계속 근무하겠음>은 군인과 인간의 경계선에 대해 논하고, <무지개가 떴다>는 고물이 된 차와, 치매가 걸린 노모와, 아들을 교묘하게 겹치게 나열하고, <수(繡)>는 모슬린에 수놓아지는 목어와 수를 놓는 ‘당신’의 모습을 혼재시킨다.  

 

   책을 읽고 나면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하지만 알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안개가 낀 것 마냥 흐릿히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명확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는 세상을 조각조각 나뉘어져 인식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 틈바구니는 못 보는 게 틀림없다. <굿바이! 명왕성>은 뚜렷하게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펠라티오 자판기를 찾아가는 동성애자, 환각통 혹은 신경증을 앓는 환자)과 겉보기엔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들(고양이를 쏜 군인들, 호랑이를 본 국어교사)을 같은 줄에 세워놓는다. 결국 나도 변두리에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은 이상하게 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중앙에 놓는다. 그들의 고민과 아픔, 이상함이 결코 차갑거나 더럽게 보이지 않도록.

 
 2009. 12. 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를 읽기 시작했을 때, 공교롭게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파커 파인 사건집>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하나는 일본, 하나는 영국이고 작가가 살고있는 시대도 다르지만 '추리물'이면서 '연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닮아있다. 

 

  <항설백물어>는 독특한 추리물이다. 이 책은 기담을 바탕으로 한다. 맨 처음에는 괴담을 듣는 듯 으스스하다. 팥 이는 귀신, 늙은 여우, 사람 죽이는 버들, 입으로 드나드는 말의 영혼, 썩어가는 여인의 시체.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이 기이한 일들이 실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소악당 패거리(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산묘회 오긴, 신탁자 지헤이, 곰곰궁리 모모스케)'는 이러한 기이한 일을 이용해 의뢰받은 일을 해결한다. 

 

  <항설백물어>를 읽다보면 퍼즐을 맞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 사람들의 행동들, 그 뒤에 어떤 논리가 있는지는 뒤에 가서야 밝혀진다. 처음에는, 범죄도 뭣도 아닌 그저 기이한 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범죄가 있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들 한다. <항설백물어>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귀신이 어디있는가, 있다한들 뭐가 무서운가, 무서운 것은 다 사람의 소행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의 진상을 맞춰보는 것은 재미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소악당들은 통쾌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남는다.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범죄자. <항설백물어> 속에서는 소악당들이 처벌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덧붙임.

  이건 다른 말이지만, 처음에 생소한 단어라던가 익숙하지 않은 문체로 인해 집중이 안 됐었더랬다. 불평을 하면서 읽을까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일곱번째 이야기까지 읽은 지금은 꽤 적응이 되었따.




2009. 12. 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