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덮었다.

  표지를 다시 보니 섬뜩하다. 파도의 무늬와 물방울과 사람을 은빛으로 반짝반짝하게 빛나도록 만든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단편 '보트'를 읽고 나니 표지가 너무나도 스산해보인다. 베트남의 보트피플, 나는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보트'를 읽을 때, 나는 왠지 내 할아버지와 내 할머니가 겪었던 6.25가 생각났고, 우울해졌다.


  소설은 때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보트>가 그랬다. 약간의 유머 정도는 섞을 법 한데, 아무 소스도 치지 않은 날것을 이야기한다. 격정적인 어조도 아니다. 그냥 일상을 얘기하는 듯, 덤덤하다. 차라리 <보트>가 전쟁이나 기아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덜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트>는 한 사람 혹은 그의 가정 혹은 그의 처한 환경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리고 딱, '일상에서 내가 처했을 때 그렇게 할 법한' 행동까지만 한다. 좁은 상자 안에 갖혀있는 느낌이다. 시원함이라고는 없다. 소설이 끝났지만 주인공의 위기는 실은 끝난 게 아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그 상황을 지나서 또 삶을 살아가야 할 테니까.


  짧은 이야기 한 편으로, 소설 속 인물의 인생을 상상하게 하는 것이 재능이라면, 남 레는 굉장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 한 사람에 인생을 들여다보게 되면, 객관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했다 해도, 동정하게 되는 법이다. '일리스 만나기'가 그렇다. 읽고 있자면, 헨리 러프를 만나주지 않는 일리스가 원망스러워진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면, 일리스가 헨리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엄마와 자신을 쫓아보내고 십 몇년 간 찾지 않다가(일리스 입장에서는), 애인이 죽고 다 늙은 뒤에 첼로신동으로 성공한 자신을 찾아오는 아버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있자면 역시 헨리가 가엾다. 그래서 답답해진다. 헨리가 어떻게 한들 일리스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진 않을 테니까. 세상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아주 많다. 역시나 우울해진다.


  '사랑과 명예와 동정과 자존심과 이해와 희생', '카르타헤나', '일리스 만나기', '해프리드', '히로시마', '테헤란의 전화', '보트'. 각각 다른 나라, 다른 상황, 다른 사람, 다른 성별의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어떤 이야기든 일말의 씁쓸함을 남긴다.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은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내가 느끼지 못하던 과거의 비극, 현재의 비극, 내 옆의 비극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딱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점점 우울해지니까. 문득, 내가 퍽 무심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기분을 바꾸게 하고,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는 것은 굉장하다. 그 점에서 <보트>는 굉장하다.




200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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