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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를 읽기 시작했을 때, 공교롭게도 애거서 크리스티의 <파커 파인 사건집>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하나는 일본, 하나는 영국이고 작가가 살고있는 시대도 다르지만 '추리물'이면서 '연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닮아있다.
<항설백물어>는 독특한 추리물이다. 이 책은 기담을 바탕으로 한다. 맨 처음에는 괴담을 듣는 듯 으스스하다. 팥 이는 귀신, 늙은 여우, 사람 죽이는 버들, 입으로 드나드는 말의 영혼, 썩어가는 여인의 시체.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이 기이한 일들이 실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소악당 패거리(잔머리 모사꾼 마타이치, 산묘회 오긴, 신탁자 지헤이, 곰곰궁리 모모스케)'는 이러한 기이한 일을 이용해 의뢰받은 일을 해결한다.
<항설백물어>를 읽다보면 퍼즐을 맞추고 있는 기분이 든다. 눈 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들, 사람들의 행동들, 그 뒤에 어떤 논리가 있는지는 뒤에 가서야 밝혀진다. 처음에는, 범죄도 뭣도 아닌 그저 기이한 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범죄가 있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들 한다. <항설백물어>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귀신이 어디있는가, 있다한들 뭐가 무서운가, 무서운 것은 다 사람의 소행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의 진상을 맞춰보는 것은 재미있고, 범죄자를 처벌하는 소악당들은 통쾌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남는다.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범죄자. <항설백물어> 속에서는 소악당들이 처벌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덧붙임.
이건 다른 말이지만, 처음에 생소한 단어라던가 익숙하지 않은 문체로 인해 집중이 안 됐었더랬다. 불평을 하면서 읽을까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일곱번째 이야기까지 읽은 지금은 꽤 적응이 되었따.
2009.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