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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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맨 처음 이 제목을 보고 그 유명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탐정으로 나오는 팩션 소설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기 때문에 제목 이외의 것을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로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책을 슬슬 읽어보다가 이 책에 다다랐다. 그런데 주인공은 갈릴레오 갈릴레오가 아니고 그냥 일본 태생 천재 물리학자. 책을 다 읽고 나서 주변정보를 찾아보다가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오는 탐정이 여기 나오는 탐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갈릴레오 시리즈는 단편집 2 + 장편 3이 현재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은 갈릴레오 시리즈가 시작하는 책이고, 단편추리소설을 다섯 편 모아놓은 책이다.
 
  범인보다 범행수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주인공인 탐정은 물리학 조교수인 유가와 마나부이고, 그에게 사건을 물어다주는 사람은 형사인 구사나기다. 유가와의 성격이나 구사나기 움직임이나, 조금쯤 전형적인 홈즈/왓슨 콤비. 처음에는 데면데면한 동창생인가... 싶었는데 점점 둘이 절친 분위기로 변해가서 읽으면서 좀 놀랐다.
 
  범행수법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지, 아니면 단편집이라서 그런지 히가시노 게이고 특융의 뱃속 불편하게 하는 인간의 추한 본성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았다(아예 안 나오는 건 아니고...). 나는 그래서 좋았지만 그것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 뜨뜻미지근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타오르다
 - 폭주족이 옹기종기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한 명의 머리가 불타오르고 그가 쓰러지자 불길이 치솟았다. 폭발의 원인은 자판기 옆 석유통으로 밝혀졌지만 불씨가 될 만한 것이 없는 상태. 형사들은 당황하고 구사나기는 물리학 조교수인 친구 유가와를 찾아가는데......
 : 단서는 아이가 본 '붉은 실'. 실이 나왔을 때 대충 범행수법을 떠올려서 굉장하다 놀라지는 않았다. 바뀐 집 이야기는 조금 놀랐다. 생각해보면 몇 가지 단서가 있긴 했는데.
 
 * 옮겨 붙다
 - 중학교 아이들이 호수에서 주운 알루미늄 판으로 만든 데스마스크. 그 마스크는 실종자의 얼굴과 똑같았다. 호수를 뒤지자 과연 시체가 발견된다. 하지만 용의자에게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는데.......
  : 벼락과 알루미늄 판과 충격파가 합작으로 만든 데드마스크. 벼락이 친 날을 단서로 범인을 잡는다. 공범이 있었고 실제 살해일은 증언과 달랐다. 상황이 계속 바뀌어서 끝까지 흥미진진했던 단편이다.
 
* 썩다
 - 가슴에 지름 10cm 정도의 세포가 완전히 괴사한 수상한 시체. 이게 살인인가 심장마비에 의한 자연사인가도 확실치 않다. 구사나기는 죽은 이의 주변을 탐문해보는데......
  : 범인 시점 / 탐점 시점이 교하된다. 범인은 이미 밝혀졌으니 중요한 건 범행수법과 어떻게 진범을 추적해 가느냐 하는 것 뿐이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읽는 사람 찜찜하게 만드는 성품이라서 왜 죽였냐 보다는 대체 뭘 썼나가 더 궁금했다.
 
* 폭발하다
 - 바닷가에서 원인불명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노란 불꽃, 높이 솟은 물기둥). 그리고 구사나기의 관할에서는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되고, 시체의 모교가 유가와가 있는 대학이라는 것을 알아낸 구사나기가 대학을 방문한다.
  : 대학 주차장을 찍은 사진 한 장과 폭발이 일어난 바닷가에 시체가 들렀었다는 증거인 영수증 한 장이 주요 단서.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게 전공학문이라는 것을 알려준(이건 반어법입니다) 단편. 시체는 자살한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하기야 자기 뒷머리 내려쳐서 자살할 수 있는 능력자는 거의 없을 듯.
 
* 이탈하다
 - 여자가 죽었다. 용의자는 그녀와 선을 봤고 사건 당일 방문 메시지도 남겼던 보험회사원. 그는 그 시각 강가에 차를 세워주고 잤다고 주장하고, 그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면서 유체이탈 상태에서 그 차를 봤다 주장하는 아이와 아버지가 나타난다!
  : 유체이탈의 원인이 뭘까 정말 궁금했다. 중요한 건 공장!
 
 
  꽤 재미있다. 과학에 대해 잘 알면 더 흥미진진할 거 같다. 다음 시리즈도 읽을까 생각 중이다. 
  
   


201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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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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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건진 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4월에 읽고, 장 자끄 상뻬라는 작가를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이다. 이런저런 책에 치여 살짝 잊고 있었는데, 2011 서울 국제 도서전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얼른 사왔다.
 
  라울 따뷔랭은 자전거 장인. 그의 마을에서는 자전거를 '따뷔랭'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라울은 사실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라울이 이 비밀을 어찌나 잘 숨겨왔는지, 어느 날 그가 그걸 고백했는데도 들은 사람이 믿어주지 않는다. 라울은 사진사 피구뉴를 만나 친구가 되고, 피구뉴는 라울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찍고 싶어한다. 라울은 등을 떠밀려 피구뉴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절벽 위로 멋지게 날아오른다. (덕분에 큰 상처를 입는다) 사람들은 라울과 피구뉴가 만들어낸 사진을 칭찬하지만, 라울은 그 사진이 정말 싫다. 그러던 어느 날 피구뉴가 라울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데.......
 
  내가 만들어낸 모습과 내 본래의 모습이 다르면 점점 괴로워지는 것 같다. 따뷔랭처럼. 따뷔랭은 처음에는 자신의 약점(자전거를 못 탄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졌다. 아마 그건 피구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따뷔랭이 자전거를 못 타는 자전거 장인이 아니었다면,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사진사 피구뉴를 이해할 수는 없었을 거다. 피구뉴가 중요한 순간을 놓치는 사진사가 아니었다면 따뷔랭의 고백을 들으며 같이 웃어줄 수 없었을 거다. 사람들은 자신만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감추기 위해 필사적이지만 사실은 모두들 약점을 가지고 있고, 그 약점 때문에 서로서로 관계를 가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사람은 아픈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장 자끄 상뻬의 이야기는 짧지만 그 짧은 이야기를 읽는 동안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가슴 속을 따듯하게 데워준다. 그래서 읽어도 읽어도 또 읽고 싶다. 멋진 이야기다. 
   


201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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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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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그레 시리즈 1권.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국제적인 사기범 피에트르가 파리로 온다는 소식을 매그레 반장이 들으면서 시작된다. 매그레 반장은 기차역으로 피에트르를 마중나가지만, 피에트르와 꼭 닮은 남자가 화장실에서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그러나 매그레 반장은 시체를 발견하기 전, 시체와 꼭 닮은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매그레 반장은 그 남자를 미행한다. 그 남자는 백만장자 모티머 부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호텔에서 사라진다. 곧이어 백만장자 모티머도 사라진다. 매그레 반장은 시신에게서 몇 가지 단서를 얻어 남자를 추적하는데......
 
  처음에는 좀 단순하게 시작하나 싶은데, 이게 쫙쫙 갈래를 가지고 넓어지더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라면서 매그레의 행적을 추적하기 바빠진다. 사람들과 행동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기 바쁘다. 글이 매우 속도감이 있어지면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소설 속 매그레 반장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뛰어다니며 보고, 보여주고, 끈질기게 추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서는 갈래길에 대한 설명이 다 붙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깔끔한 해결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희생이 좀 컸지만 ;ㅁ;
 
  "죽은 것은 피에트르인가, 피에트르가 아닌 다른 사람인가?" <- 이게 미스터리의 핵심인 것 같다.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는 그 동안 국내에 몇 권 안 들어왔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매그레 반장이다. 말 그대로 환상의 작품이라고 할까(대부분의 작품은 읽을 수가 없으니까!). 추리소설의 고전이며 세계에서 유명한 명탐정들이면서도 국내에 소개되지 못한 작품들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으면서 그 안타까움이 더 심해졌다. 매그레 시리즈는 총 70여 권이나 된다고 하는데 내가 읽은 것은 고작 1권 뿐이니 앞으로가 기대된다.
 
  사립탐정이 아니라 법 안에서 움직이는 수사반장이기 때문에 매그레의 움직임은 그동안 봐 왔던 탐정들의 행동과 다소 다르다. 법과 조직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게 더 재미있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소설일 뿐이지만, 이 소설 속에서 모티머의 죽음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보면 입안이 씁쓰레해진다. 소설의 배경은 옛날의 파리지만, 현대와도 논리는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01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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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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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스터리'는 간극에서 나온다고 어디서 읽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만들어내는 간극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에게는 미스터리가 있다. 1936년 도쿄로 간 이상의 마지막 행적이 비밀에 싸여있다는 것, 그리고 이상이 34일 간 구금되었다는 것, 작가는 이 미스터리 때문에 <이상은 왜?>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상의 그 행적은 비단 작가 뿐 아니라 나의 궁금증도 자극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6년 겨울, 이상은 불쑥 도쿄로 떠난다. 거기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소속되어 활약하는 까마귀가 천황을 살해할 거라며 표식을 남긴다. 문서보관실에서 묻혀 살던 노무라 대위는 까마귀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수사를 하던 중에, 뭔지모를 시를 쓰는 이상이 까마귀와 관련이 있지 않나 의심한다. 실제로 까마귀는 이상에게 "암호시를 당신 이름으로 신문에 실어달라."고 말하며 접근하고.......
  한편, 2009년 나(정문탁)는 차기작을 위한 자료조사 겸 도쿄로 온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우에하라 교수의 후의로 자료를 조사하는데 도움을 줄 학생 가와무라 소조를 소개받는다. 그 때, 마침 가와무라 소조의 후배 도리타니 다다오가 대학생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에서 도주한다. 가와무라는 도리타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오가사와라 형사를 찾아가는데.......
 
  1936년과 2009년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진행된다.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일정부분 추리소설 같은 부분이 있다. 1936년에는 까마귀의 정체와 움직임에 대해서, 그리고 2009년에는 대학생 살인사건에 대해서 추적하는 모습들이 나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범인이 누구일까?' '트릭이 무엇일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거대한 어떤 흐름이 아닐까 싶다.
 
  2010년은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자 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나는 2010년이 지나가는 동안 그 사실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몇 번 다루기는 한 것 같지만, 2010년이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라는 것을 그렇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기념하는 해는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 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르고 넘어갔지 않나. <이상은 왜?>는 그런 2010년과, 그런 2010년을 살았던 나를 되새겨보게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떨리고 화가 난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외려 머릿속으로는 일제강점기와 일본의 행동, 일본 사람들, 현재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은 왜?>를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 일본 교포, 일본의 우파, 한국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일본의 태도에 이러니저러니하며 화를 내지만, 사실 나는 일본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별로 알아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상은 왜?>에서 이상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상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1936년과 1937년 즈음의 일본과 조선의 풍경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 살해사건, 1920년 간도대참살, 동경대지진으로 시작된 한국인 학살까지 아울러 나온다. 역사책에서 볼 때는 그저 하나의 서술이던 것이 피부에 오싹하게 와 닿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1936년이 아닌 2009년의 사건을 보면 어떤가, 하면 이 쪽도 심각하다. 1936년 도쿄에 흐르고 있던 불안으로 들썩들썩한, 모두 어느정도는 정신병자로 만들 것 같은 그 분위기가 2009년의 사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 속 산케이 신문에 실린 논평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뛰어넘고 싶었다. 아주 불쾌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논평, 사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해에 몇 번씩 일본 우파들이 어쨌다 하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 않나.
 
  1936년 경의 일본 제국주의도 2009년의 일본 우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대와 사상에 사람과 인간성이 묻혀버린다. 그것을 보는 느낌은 간접경험이지만 끔찍했다. 그리고 이게 완전히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자체는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각권 413p이니 양이 상당히 많은데, 시대상과 벌어지는 사건이 잘 버무려져서 매우 속도감이 있었다. 본격적인 사건은 1권 277p 정도에서야 시작되지만, 그 전에는 배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그 이후에는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해서 지루하지 않다. 때로 굉장히 유쾌한 표현이 있어서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1936년 이상의 시를 노무라 대위가 의심하는 부분이나, 2009년 오가사와라 형사의 비듬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결말이 아쉬웠다. 작가가 보여주려는 게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었더라도 결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전의 내용이 차근하게 잘 진행되어 온 것에 비해서 끝부분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었다. 특히 2009년 사건에서 범인을 잡는 것도 너무 급하고, 범인이 자백하는 것도 너무 급해서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이 체포되는 부분도 중간 과정을 떼어먹은 느낌이었다. 급박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걸까? 설명하는 문장들 대신에 등장인물의 대화나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권의 393p~397p는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꼭 필요해서 써넣은 부분이 아니라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삽입한 느낌? 작위적이다.)
 
  덧붙이자면 가와무라 소조의 할아버지가 쓴, 책 속의 책 구성은 훨씬 좋을 수도 있었는데 매력을 못 살린 것 같다. 최소한 1936~1937년(수기부분)과 2009년(현실부분)을 구분해서 써줬다면 초반에 혼란도 덜했을 테고(시점은 3교대로 바뀌는데(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 설명이나 표시가 없어서 1권 초반을 읽을 때는 계속 헛갈렸다), 나중에 1936부분이 가와무라 할아버지의 수기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렇군!"하는 느낌이 있었을 텐데. 그냥 별 느낌없는 구성이 된 것 같아서 아쉽다.
 
  결말에서 다소 아쉬운 구성이 있었지만 총 800p를 사흘도 되기 전에 독파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3교대로 돌아가는 시점(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오가사와라)이 속도감을 더하고 다음 이야기를 더 궁금하게 한다. 시간 짬이 날 때마다 펼쳐들 정도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이상이라는 작가는 별 관심이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교과서 속에서 단편 <날개>로 처음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이상을 아주 싫어했다. 지금은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별 관심 없는, 천재인지는 몰라도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작가로 분류되어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이상의 시와 소설 구절이 자주 나온다(책의 소제목은 모두 이상의 글귀에서 따왔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작가가 참조했다는 <이상 전집>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현대의 일본에 대한 생각 이외에 이상이라는 작가도 다시 보게 만든 책이다. 내가 이상의 문학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상의 문학을 잘 알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한 번 보려 한다. 
  
   


201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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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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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라는 제목을 보고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올랐다.
  구조를 보면 패러디가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내용이 제목과 좀 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의역한 것이었다.
  원제는 <어떤 왕>이라고 한다.
  글 내용과는 딱이지만 문제는 이 제목으로 책을 냈으면 처음에 독자의 흥미가 팍팍팍팍 줄었을 거 같다는 거?;;
 
  한 마디 정리 : 만년 꼴찌팀인 센다이 킹스의 팬인 부부에게서, 센다이 킹스의 감독이 사망한 날 태어난 야마다 오쿠의 일대기.
  독특하게도 2인칭을 사용했다.
  누군지 모를 화자가 연신 오쿠를 '너'라고 지칭하고 있다. 게다가 시제는 현재형. 덕분에 이 글이 과거의 일인지, 현재의 일인지, 아니면 미래의 예언인지도 헛갈린다. 게다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드>에 나오는 세 마녀의 모습이 작품 곳곳에 나오면서, 이 글은 묘하게 운명론적인 냄새를 풍긴다.
 
  천재, 하면 보통 빛나는 영광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글은 어째 <맥베드>같은 어두침침한 느낌이다. 야구천재인 오쿠는(타율이 무려 9가 넘는다) 어렸을 적부터 그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서 경멸당하거나, 사람들의 경외를 사서 숭배당한다. 읽다보면 야마다 오쿠는 없고 야구천재만 있는 느낌이다. 부모조차도 오쿠=야구 라고 생각한다. 오쿠의 인생은 야구로 점철되어 있을 뿐인 것 같다. 보고 있자면 씁쓸해지고, 저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해 보이는 오쿠의 모습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쿠의 삶이 야구 뿐이고 진짜 무미건조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이 글은 2인칭이니까.
  세세한 부분을 생각하면 오쿠는 친구도 있었고(구단시험을 보게 이름을 빌려준 그 친구), 애인도 있었고,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 책이 야구를 하는 오쿠만 보여준 것이 아닐까.
  그러면 보이는 것만큼 오쿠는 무미건조하지도 않고, 고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운명론적인 색채를 쭉 빼고 보면, 사실 오쿠는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야구를 하는 건실한 야구소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쿠가 왕인 이유는 타율이 9인 야구천재기 때문이 아니라, 꿋꿋이 야구라는 자기 길을 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 시합에 나갈 수 없고 구단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오쿠는 야구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쿠를 미워하거나 오쿠를 경외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가는 길이 어떤 영역이든 왕으로 보일 것 같다. 자기를 지키고 자신의 길을 지키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본 것 같다. 
  
   


201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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