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는 간극에서 나온다고 어디서 읽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만들어내는 간극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에게는 미스터리가 있다. 1936년 도쿄로 간 이상의 마지막 행적이 비밀에 싸여있다는 것, 그리고 이상이 34일 간 구금되었다는 것, 작가는 이 미스터리 때문에 <이상은 왜?>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상의 그 행적은 비단 작가 뿐 아니라 나의 궁금증도 자극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6년 겨울, 이상은 불쑥 도쿄로 떠난다. 거기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소속되어 활약하는 까마귀가 천황을 살해할 거라며 표식을 남긴다. 문서보관실에서 묻혀 살던 노무라 대위는 까마귀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수사를 하던 중에, 뭔지모를 시를 쓰는 이상이 까마귀와 관련이 있지 않나 의심한다. 실제로 까마귀는 이상에게 "암호시를 당신 이름으로 신문에 실어달라."고 말하며 접근하고.......
  한편, 2009년 나(정문탁)는 차기작을 위한 자료조사 겸 도쿄로 온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우에하라 교수의 후의로 자료를 조사하는데 도움을 줄 학생 가와무라 소조를 소개받는다. 그 때, 마침 가와무라 소조의 후배 도리타니 다다오가 대학생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에서 도주한다. 가와무라는 도리타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오가사와라 형사를 찾아가는데.......
 
  1936년과 2009년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진행된다.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일정부분 추리소설 같은 부분이 있다. 1936년에는 까마귀의 정체와 움직임에 대해서, 그리고 2009년에는 대학생 살인사건에 대해서 추적하는 모습들이 나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범인이 누구일까?' '트릭이 무엇일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거대한 어떤 흐름이 아닐까 싶다.
 
  2010년은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자 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나는 2010년이 지나가는 동안 그 사실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몇 번 다루기는 한 것 같지만, 2010년이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라는 것을 그렇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기념하는 해는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 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르고 넘어갔지 않나. <이상은 왜?>는 그런 2010년과, 그런 2010년을 살았던 나를 되새겨보게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떨리고 화가 난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외려 머릿속으로는 일제강점기와 일본의 행동, 일본 사람들, 현재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은 왜?>를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 일본 교포, 일본의 우파, 한국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일본의 태도에 이러니저러니하며 화를 내지만, 사실 나는 일본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별로 알아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상은 왜?>에서 이상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상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1936년과 1937년 즈음의 일본과 조선의 풍경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 살해사건, 1920년 간도대참살, 동경대지진으로 시작된 한국인 학살까지 아울러 나온다. 역사책에서 볼 때는 그저 하나의 서술이던 것이 피부에 오싹하게 와 닿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1936년이 아닌 2009년의 사건을 보면 어떤가, 하면 이 쪽도 심각하다. 1936년 도쿄에 흐르고 있던 불안으로 들썩들썩한, 모두 어느정도는 정신병자로 만들 것 같은 그 분위기가 2009년의 사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 속 산케이 신문에 실린 논평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뛰어넘고 싶었다. 아주 불쾌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논평, 사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해에 몇 번씩 일본 우파들이 어쨌다 하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 않나.
 
  1936년 경의 일본 제국주의도 2009년의 일본 우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대와 사상에 사람과 인간성이 묻혀버린다. 그것을 보는 느낌은 간접경험이지만 끔찍했다. 그리고 이게 완전히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자체는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각권 413p이니 양이 상당히 많은데, 시대상과 벌어지는 사건이 잘 버무려져서 매우 속도감이 있었다. 본격적인 사건은 1권 277p 정도에서야 시작되지만, 그 전에는 배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그 이후에는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해서 지루하지 않다. 때로 굉장히 유쾌한 표현이 있어서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1936년 이상의 시를 노무라 대위가 의심하는 부분이나, 2009년 오가사와라 형사의 비듬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결말이 아쉬웠다. 작가가 보여주려는 게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었더라도 결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전의 내용이 차근하게 잘 진행되어 온 것에 비해서 끝부분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었다. 특히 2009년 사건에서 범인을 잡는 것도 너무 급하고, 범인이 자백하는 것도 너무 급해서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이 체포되는 부분도 중간 과정을 떼어먹은 느낌이었다. 급박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걸까? 설명하는 문장들 대신에 등장인물의 대화나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권의 393p~397p는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꼭 필요해서 써넣은 부분이 아니라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삽입한 느낌? 작위적이다.)
 
  덧붙이자면 가와무라 소조의 할아버지가 쓴, 책 속의 책 구성은 훨씬 좋을 수도 있었는데 매력을 못 살린 것 같다. 최소한 1936~1937년(수기부분)과 2009년(현실부분)을 구분해서 써줬다면 초반에 혼란도 덜했을 테고(시점은 3교대로 바뀌는데(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 설명이나 표시가 없어서 1권 초반을 읽을 때는 계속 헛갈렸다), 나중에 1936부분이 가와무라 할아버지의 수기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렇군!"하는 느낌이 있었을 텐데. 그냥 별 느낌없는 구성이 된 것 같아서 아쉽다.
 
  결말에서 다소 아쉬운 구성이 있었지만 총 800p를 사흘도 되기 전에 독파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3교대로 돌아가는 시점(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오가사와라)이 속도감을 더하고 다음 이야기를 더 궁금하게 한다. 시간 짬이 날 때마다 펼쳐들 정도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이상이라는 작가는 별 관심이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교과서 속에서 단편 <날개>로 처음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이상을 아주 싫어했다. 지금은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별 관심 없는, 천재인지는 몰라도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작가로 분류되어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이상의 시와 소설 구절이 자주 나온다(책의 소제목은 모두 이상의 글귀에서 따왔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작가가 참조했다는 <이상 전집>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현대의 일본에 대한 생각 이외에 이상이라는 작가도 다시 보게 만든 책이다. 내가 이상의 문학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상의 문학을 잘 알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한 번 보려 한다. 
  
   


201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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