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향연 - 최후의 금기어를 논하다
크리스티아네 취른트 지음, 오승우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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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향연>은 실패에 대해 추적한 인문서이다.

  비록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는 했지만 다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실패라는 개념이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부터 생긴 개념이며 성공의 신화와 실패의 공포가 타고난 것이 아님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위대한 패배자>에서 느꼈던 의문, 왜 우리는 패배를 그렇게 괄시하고 두려워하는가, 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더 많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시간을 들여 천천히, 완독해야겠다. 

  개인적으로 '한계체험' 챕터까지는 쫓아가는데 무리가 없었는데... 으음... 여러모로 아쉽다.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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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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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와 B의 영혼이 바뀐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설정이다. 이 밑에는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별개의 존재이다.’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뇌에 있다. 즉, 영혼과 육체는 하나로 존재한다. 수천 년을 이어왔던 영혼-육체의 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처럼 우리가 아무렇잖게 받아들였던 사실이 있다. ‘생물과 무생물은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생물이다. 책상은 무생물이다. 이것이 뒤집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발달해가는 과학은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흐려놓고 있다. <위험한 생각들(존 브록만 엮음, 겔리온)>에서도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문장이 나온다. 읽어보면 또 나름 납득이 가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나와 책상을 생물이라는 카테고리와 무생물이라는 카테고리로 각각 편입시킬 수 없다는 건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난 뒤, 나는 이 책이 <위험한 생각들>에서 본 특이한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책을 집었다.

  '생명이란 자기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이 명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생물이라고도 무생물이라고도 하기 모호한 존재, '바이러스'가 있다. 바이러스는 자기복제가 가능하지만 개인차가 없는 기계적 오브제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위의 명제에 따르면 바이러스는 의심할 여지없는 생물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이러스를 무생물로 본다. 즉, 위의 명제에 덧붙는 제 2의 명제가 있다는 것이다.

  제2의 명제를 찾기 위해서 저자는 DNA에 대한 서술에서 원자의 역동성 그리고 동적 평형의 개념까지 다가간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고 생명을 재정의한 뒤, ‘끊임없이 파괴되는 질서는 어떻게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단백질의 구조와 녹아웃 마우스 실험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있다. 
  저자는 왜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는 명제를 세균-바이러스의 차이점에 빗대어 다시 설명하지 않았는가? 어떤 예를 설명하기에 A 명제가 불충분하다고 여겨서, B라는 명제를 끌어냈다. 그러면 어떤 예를 설명하기 위해서 B명제를 적용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의문은, 재정의된 명제에서 끌어낸 ‘끊임없이 파괴되는 질서는 어떻게 그 질서를 유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생물은 무생물과 틀리다. 따라서 A라는 부분이 사라져도 여전히 작동한다. 다른 부분이 A의 구멍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상에 대한 기술이다. 존재하는 상황에 대해 표면적인 것을 나열했을 뿐이다. 그 의미를 ‘설명’해야 진정한 답이 될 수 있는데,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그것을 포기했다. 대신 생명의 신비로움에 대한 납득할 수 없는 묘사를 슬그머니 내밀었을 뿐이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라는 맨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는 화가 났다. 저자는 독자에게 불성실하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된다.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에 놓여있는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천재가 등장해야 한다고,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면 납득할 수 있다. 나는 과학적으로 풀어낸 파격적인 제안을 보고 싶었지, 정확한 근거도 없이 내민 고전적인 주장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대중에게 잘 먹힐 거라는 생각은 한다. 그건 ‘안전한’ 생각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와, 지나간 과학자들의 에피소드와, 과학자들의 승진(?) 시스템, 연구하는 과정, 연구 장비, 그리고 생물학 정보가 뒤섞여 있다. 


  솔직히 말해서 과학책은 까다롭다. 지식이 없으면 읽기가 힘들다. 나는 과학에 대해 아주~아주 기본적인 지식만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분자생물학에 관한 책을 넙죽 읽는다고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더구나 분자생물학 같은 아주 최근에 알게 된 분야에 대해 서술할 경우에는 소화하기가 더 힘들다. 이건 저자가 쉽게 써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일반인을 충분히 배려했다. 이야기의 두서없음은, 뻑뻑한 과학 얘기로 피곤한 머리에 기름칠을 해 주고, 너무 풀어지는 것 같다 싶을 때 과학 얘기가 쑥 튀어 나와서 지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셰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듣는 술탄처럼 푹 빠지고 만다. 

 

  이 훌륭한 완급조절은 독자가 쥐가 난 머리를 붙잡고 흔들다가 급기야 책장을 덮어버리는 일을 방지했다. 그러면서 주고 싶은 과학정보는 충분하다. 군데군데 곁들여진 그림은 글자만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을 훌륭히 커버한다.

  개개의 이야기는 아주 훌륭하다. 재밌고 신기하고 흥미롭고 신난다. 저자는 이 얘기에서 저 얘기로 뛰어다니며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독자는 마냥 신나서 새로운 것을 흡수하며 저자 꽁무니를 쫓아다닐 수 있다.

  그러나 책에는 주제라는 것이 있는 법. 이것저것 나열하다가 중간에서 주제가 흐려진다면 독자는 혼란스럽고, 결과적으로 책을 덮은 뒤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세부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저자는 멋진 이야기를 하나의 꼬치에 꿰는 것은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것이 매우 아쉽다. 아주 훌륭한 책을 하나 만날 뻔 했는데 한 발 삐끗해서 완전히 틀어져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생물과 무생물 사이>는 별이 네 개다. 마지막 하나가 논점이 흐려진 값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싸려나. 
  

 

2008.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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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의 역사 - 빵을 통해 본 6천년의 인류문명, 개정판
하인리히 야콥 지음, 곽명단.임지원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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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서양에서 주식으로 먹는 밋밋하고 둥그런 발효빵을 매개로 삼아서,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1943년까지의 시간동안 인간이 이루어낸 정치, 경제, 역사, 화학, 생물학, 농업, 기계공학, 종교, 법, 문학의 분야에 대해 얘기한다.

  로마 제국의 붕괴, 프랑스 혁명,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산업혁명, 세계 1-2차 대전에 빵이 미친 영향은 실로 놀랍다. 세계는 빵 위에 세워져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방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전혀 부담이 안 간다는 점이다. 너무너무 흥미로워서 책장이 휙휙 넘어간다.

  엘레우시스 신전의 얘기부터 이차 세계대전의 기근협정까지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역시 중세 농부의 가난함일까. 중세가 잘 못 사는 시기였다는 건 역사책에서 들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먹는 빵이 흙과 톱밥, 동물의 피를 섞은 엉터리 빵이고 그나마도 없어 굶어죽거나 인육을 먹었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농기구가 망가지고 땅은 소출을 내지 않고, 손으로 땅을 파헤치는 농부, 농부가 먹을 것을 숨겨놓고 있다는 도시 노동자들의 오해. 내가 본 적 없는 세계가 있었다.

  오늘날 세계의 풍요는 아메리카에서 발견한 옥수수와 감자, 매코믹이 발명한 수확기, 질소-칼륨-석회-인산이라는 땅의 필수양분을 밝혀낸 토양화학자 리비히, 멘델의 법칙을 활용한 종자개량연구가, 기후조건에 단련된 리센코의 씨앗이 합쳐져 일구어낸 것이다.

  빵은 정말 위대하다. 굶주리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빵을 두둑히 먹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빵이 넘쳐나는 현대는 확실히 풍요롭다.

  별 다섯개까지밖에 없어서 다섯 개를 줬지만, 열 개 스무 개를 주고 싶을 정도로, 하인리히 E. 야콥의 지식과 입담은 굉장하다. 정말 좋은 책이다. 

 

 덧붙임. 

 2011년 현재 절판되었다. 아쉽다. ;ㅅ; 

 

2008.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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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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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문득 드는 궁금증이 있다. 이 책은 왜 재미있고 저 책은 왜 재미가 없을까? 작가의 능력이라고 하는 건 너무 두루뭉실하다. 그러니까 작가의 '어떤' 능력이 글을 재미있게 하고 재미 없게 하는 걸까?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가지 플롯(이하 스무가지 플롯이라 씀)>은, 재미있음과 재미없음의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플롯flot이라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스무 가지의 기본 플롯을 제시한다. 플롯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엉뚱한 곳에 가 버린다고. 정석을 알아야 변주도 있다. 플롯을 알아두면 헤매지 않는다. 

  그런데 <유혹하는 글쓰기>의 스티븐 킹 아저씨는 다른 말을 한다. 플롯을 미리 구성하고 글을 쓰면 인위적인 느낌이 나서 재미없다고 했다. 스토리에 따라 흘러가다보면 적절한 '변명'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고개가 갸우뚱갸우뚱. 한참 생각을 해 보니, 스티븐 킹 아저씨는 "매사 너무 꼼꼼하게 정해놓으면 어색해~"라고 말하는 거고 <스무 가지 플롯>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건지는 확실히 파악했어?"라고 묻는 듯 하다. "기본 플롯은 확실히 잡되, 사소한 부분까지 꽉꽉 묶어 숨통 조이지 말아라."라고 말하면 둘 사이에 양다리 걸치는 게 불가능하진 않은 것 같다.


  <스무 가지 플롯>의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

  첫째, 긴장감이 중요하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사람을 '잘' 집어넣는 게 관건이다.

  둘째, 마음의 플롯인가 몸의 플롯인가를 구분하라(심리적인가 활동적인가).

 
  기본이라 분류한 스무 가지 플롯은 흥미진진. 예로 든 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재미도 있고, 내가 아는 소설이나 영화를 대입해 분석하는 재미도 있다. 꼭 글을 쓰기 위한 사람들만 보는 책이 아니라 소설과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도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에서 느끼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야기를 분석하는 즐거움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덧붙임 .  

이론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예시가 많아 재미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책이라 영화가 예시로 나온다.

2008.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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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결정 - 역사를 바꾼 고뇌 속의 선택들
앨런 액설로드 지음, 강봉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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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이상을 주기가 힘들었다. 위인전에서 한 장면을 ctrl+c -> ctrl+v 해 놓은 것 같다. 

이 책은 A5사이즈에 351페이지이다. 그런데 다루고 있는 사례는 34개나 된다. 서문과 목차에 할당된 페이지를 빼고 나면 한 사례 당 10페이지 정도가 할당된다. 사례를 분석하기에는 지면이 너무 짧다. 그러니 대충 "A는 a란 결정을 내렸다." "B는 b를 선택했다."는 짤막한 얘기에서 끝나버린다.더구나 사례를 보는 시선도 주류의 것에 충실하다. 보수적이고 교육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따라서 역사적 사건을 보는 색다른 관점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루비콘 요소'에 대해서 말한다. 그 결정을 내린 데에는, 결정을 내리게끔 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분명 위대한 결정이 허투루 내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위대한 결정의 에피소드를 나열할 뿐이지, 무엇이 '루비콘 요소'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사례 수를 줄이더라도, 의사결정의 모듈을 설명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많이 실망했다.  

이 책을 집어든 나를 한 대 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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