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울 속에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헬렌 맥클로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 세 개 반 정도?

 

  브리어턴 여학교의 미술교사인 포스티나 크레일은 어느날 교장에게서 갑자기 해고 통지를 받는다. 포스티나는 유일하게 학교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여교사 기젤라 폰 호헤넴스에게 이 일을 털어놓고, 기젤라는 자신의 약혼자 배질 윌링 박사에게 포스티나의 일을 알린다. 배질 윌링은 해고의 배후를 조사하기 시작하고, 포스티나의 생령이 학교 도처에서 목격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앨리스 에이치슨이라는 젊은 여교사가 포스티나의 생령에게 떠밀려 죽음을 맞이하는데.......

 

  미스터리한 사건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미스터리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두운 거울 속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구도를 지닌다. 공포물처럼 시작해서 추리물로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통상의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범인이 누구일까?"라기보다는 "생령은 존재할까?"에 가깝다.

 

  소설을 읽다 보면 처음에 포스티나의 생령에 의심쩍은 시선을 보내다가도 에밀리 사제의 사례를 비롯해서, 수많은 목격자들과 상황을 듣고 점점 생령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진다. 다만 분위기는 상당히 건조한 편이고, 그래서 으스스한 분위기는 별로 없다.  '생령이 나타났어! 꺅 무서워!' 이런 느낌이 아니라 '생령이 나타났어! 저 생령은 진짜 생령인가?' 이런 느낌에 가깝다.

 

  다만 포스티나의 배경이 드러나고 앨리스가 죽으면서 이 판단은 조금 흐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질 윌링 박사는 비로소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범인을 짚어내는데, 논거라던가 복선은 아무래도 약간 미심쩍은 감이 있다. 다시 말해 생령(페치, 도펠갱어)의 존재가 소설 전체에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결말조차도 불가사의한 일을 받아들이느냐/합리적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둘로 갈라진다. 과연 생령은 존재했는가? 아니면 사람의 장난인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찜찜함을 남긴다는 게 이 소설 결말의 독특함인 듯 싶다.

 

  막 사람을 빨아들이는 종류는 아니지만, 충분한 정도의 호기심을 끌어내는 글이다. 다만 결말은 보는 시각에 따라 좀 밍밍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나는 조금 밍밍했다.

 

 

p.s.

  책 중간중간에 물건의 세밀화가 들어 있는데 없는 편이 나은 듯 싶다. 중간중간 불쑥불쑥 튀어나와 가끔 글 읽을 때 방해되는 느낌을 받았다. 꼭 필요한 삽화가 아니라서 더 그런 듯.

 

 

 

2012. 11.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원제는 shut your eyes tight.

 

  두 번째로 읽는 존 버든 소설이다.

 

  모든 장면이 촬영되고 있는 결혼식, 헥터 플로레스의 오두막에 들어간 신부가 사망한다. 발자국은 흉기가 있는 나무 밑까지 이어져 있었고, 발자국과 함께 헥터 플로레스도 사라진 상태. 이웃집 유부녀도 헥터 플로레스와 같이 실종되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그로부터 6개월 후, 잭 하드웍 형사는 데이브 거니가 신부 어머니의 의뢰를 받아 이 사건을 수사할 수 있는지 묻는다. 2주 동안의 수사, 그 동안 드러난 것과 달리 복잡하고 거대한 배경이 있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힌트는 책의 뒤에 있는 문구. 물증에 매달리지 말 것, 증인들의 말에 귀를 닫을 것, 희생자를 애도하지 말 것, 유가족을 위로하지 말 것, 그리고 수사중에는 절대 가족과 신변을 노출하지 말 것 <- 이 부분 중에서 확실한 것은 '물증에 매달리지 말고 증인들의 말에 귀를 닫아야' 라는 부분이다. 그래야 비로소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신부 살해사건의 범인과 범행수법은 일찌감치 짐작했는데, 이 소설의 묘미는 '이 범행이 연속적인 어떤 범행의 일부일수도 있다'는 단서를 발견해나가면서 사건과 엮여 있는 커다란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에 있다. 오히려 이 범죄 때문에 처음 짐작했던 범인이 잠깐 아리송해지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단서와 사건을 엮어 서술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소재도 좀 독특하고. 신부는 왜 결혼식의 모든 장면을 촬영하려고 했는지를 조금 더 조명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슬쩍 언급하다 갑자기 흐지부지 되어버린 게 좀 아쉽다. 그리고 마지막 범인과의 조우 장면은 좀 급작스러운 감이 있었다. 그것만 빼면 아주 좋았다.

 

  <658, 우연히>에서 갈등이 종결되고 행복만 남은 것 같던 거니의 가정도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오히려 더 조마조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수사와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상황(타협책으로 거니는 2주 간만 맡기로 한다) 때문에 수사가 더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매들린과 거니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는 게 문제인 것 같은데, 이번에는 거니의 상황 뿐 아니라 매들린의 입장도 어렴풋하게 드러난다. 내가 싫어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 싫어하는 부분을 빼고는 그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은 참 복잡한 일인 것 같다.

 

  <악녀를 위한 밤>을 읽으며 생각했는데, 등장인물 각자 가정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시리즈가 되어서 그런지 조금씩 주변 인물들도 사연을 입고 구체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이번 편에서는 잭 하드웍 형사가 꽤 활약을 해서 반가웠다.

 

 

2012. 11. 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58, 우연히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올 때부터 관심은 있었는데 이럭저럭 하다 지금에서야 읽었다. 1년이 다 되었네. 게으르다.

 

  은퇴한 경찰 데이브 거니는 어느 날 동창인 마크 멜러리에게서 도움을 청하는 이메일을 받는다. 자신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거니는 멜러리를 만나러 간다. 협박 비슷한 쪽지를 받은 멜러리는 얼마 후 살해당하고, 거니는 멜러리에게 있었던 기묘한 일을 증언하다가 수사팀에 합류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매력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는 데에 있다. 보통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1/4 정도를 굉장히 일상적이지만 '기묘한 일'을 설명하는데 보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느끼는 혼란들이 밑에 깔리고 나서야 '첫 살인'이 일어난다. 리뷰를 먼저 찾아본 뒤 이 책을 읽었는데, 다른 리뷰에서 '지루하다'는 평이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인 듯 하다. 실제로 1장은 몇 번이나 끊어읽어야 했다. 1장 뒤부터는 한 호흡에 읽은 것과 상당히 비교된다. 과연 1장을 이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에 대충 서술하고 넘어갔다면 뒤에 있는 기묘한 일로 인한 증폭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

 

  범인은 어떻게 멜러리가 생각한 숫자, 658과 19를 맞췄을까? 그것은 멜러리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숫자였고 우연히 떠오른 숫자였다. 살해 현장에서 눈밭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발자국, 발자국이 사라진 곳에서 걸려있던 구두, 총으로 살해한 뒤 병으로 다시 찌르는 이상한 수법 등 이상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트릭들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설명할까 싶었는데, 그게 가능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다. 트릭 자체는 심플하고, 범인도 심플한데,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당연하지만 당연해서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그런 것.

 

  이 소설의 한 축이 살인사건과 트릭이라면, 소설의 다른 축은 거니가 겪고 있는 갈등이 담당한다. 데이브 거니와 부인인 매들린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말이다.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지만 균열이 있는, 그런 이상한 관계다. 매들린은 거니가 살인과 범죄에 연관되는 것을 싫어하고, 거니는 살인과 범죄와 연관된 것에서 발을 뺄 수 없기에 둘 사이는 삐꺽거린다. 그런데도 사실 이 소설의 서브 탐정은 매들린이 아닐까 싶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핵심을 짚어내는 눈이 있는 그녀는 확실하게(아마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거니의 추리에 도움을 준다.

 

  이 두 가지 축이 어우러지면서 큰 긴장을 유발한다. 범인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범인을 지목하는 과정에서 좀 갑작스럽게 옛날 일들이 터져 나오는 느낌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특히 트릭을 풀어나가는 방법이 흥미로웠다.

 

  p. 307.

 "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숫자 놀음하고 똑같아."

 "무슨 뜻이지?"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가 뭐가 중요해?"

 "더 얘기해봐."

 거니가 재촉했다. 짜증보다 호기심이 조금 더 컸다.

 "어떻게는 중요하지 않아. 문제는 왜이고 그 대답은 빤하잖아."

 "그래서 그 빤한 대답은?"

 "당신들이 바보 천치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지."

----중략----

 "658이라는 숫자와 19라는 숫자는 아주 구체적이었지."

 "하지만 그 숫자는 멜러리한테 아무 의미도 없었어. 그 숫자를 생각해냈다는 것 말고는. 그리고 어쨌든 그것도 속임수일 거고."

 

 

 

2012. 10.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꽤 재밌게 읽은 게 생각나서 집었음. 전작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를 읽은 날짜를 찾아보니 작년 9월이었다. 1년만에 뒷편이 나온 셈이다. 여전히 주요 등장인물은 셋-집사 가게야마, 아가씨 레이코, 가자마쓰리 경부-이고, 딱히 설정이 덧붙거나 빠진 것은 없는 듯 하다. 셋의 관계도 기본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뒤쪽의 단편에서 뭔가 등장인물이 연애를 할 것도 같지만 역시 추리물이니까 연애는 안 되겠지만 왠지 연애를 할 것도 같은데 싶은 정도의 양념이 첨가되기는 했다).

 

  1편처럼 트릭 위주의 미스터리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1편처럼 재미가 들쭉날쭉하지 않고, 여섯 편 모두 비슷비슷하게 재미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특출나게 재미를 느낀 단편도 없다는 점. 게다가 1편과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가서 그런지 신선함은 좀 떨어진 느낌이다.

 

* 완벽한 알리바이를 원하십니까?

: 인적 드문 거리의 빌딩 계단에서 회사원 A양이 죽었다. 사망추정시각은 7~9시 사이이고, 피해자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와 7시 45분~9시로 좁혀진 상태. 유력한 용의자인 전 남친 A군은 그 시간대에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다. 어찌된 일일까?

 

-> 알리바이 트릭. <달리의 고치>와 비슷한 착각이 사용됐다. A군이 사용한 방법은 아마추어적이고 간단하지만 일이 한 번 꼬인 덕에 까다로워진 스타일. 초점을 잘 맞추면 쉽게 풀 수 있다.

 

* 살인할 때는 모자를 잊지 마시길

: 집으로 개조한 폐공장에서 B양이 죽었다. 사인은 욕조에서 익사, 다리에 흔적으로 보아 살해당한 것이 분명하다. 기묘한 것은 옷장 속에 있어야 할 모자 한 줄이 사라진 것. 모자는 어째서 사라졌으며 용의자 넷 중 B양을 죽인 사람은 누구일까?

 

-> 문제 자체가 상당히 재밌었다. 모자가 사라졌는데 모든 모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옷장 선반에 놓여있던 한 줄의 모자'만 사라졌다. 이 미스터리를 제대로 풀어내면 범인도 지목할 수 있는데, 모자가 사라진 이유가 꽤 기발하다! 이건 짐작을 못해서 가게야마에게 호통 듣는 레이코 심정이 되었다.

 

* 살의 넘치는 파티에 잘 오셨습니다

: 호텔에서 열린 친구 아버지의 회갑연에 참석한 레이코. 옥상정원에서 이전에 알던 C언니가 습격당하고, 얼굴이 눈에 익은 듯도 하지만 잘 모르는 여자(붉은 드레스에 녹색 보석을 한)가 자신을 습격했다 말한다. 하지만 C언니의 진술에 근거해 지목한 용의자는 C언니와 확실한 안면이 있는 상태. 범인은 누구일까?

 

->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착각이 미스터리에 적용된 스타일. 범인과 동기를 짚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데, 사람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맹점을 이용해 단편을 꾸렸다는 게 재미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심증이라 서브 물증으로 보석이 활용된다. 보석으로 이용되는 어떤 광물의 특징 또한 덤으로 알 수 있는 유익한(?) 단편.

 

* 성스러운 밤의 밀실은 어떠십니까?

: 사다리에서 떨어져 D양이 사망했다. 눈이 쌓인 골목길에는 최초 목격자가 왕복한 한 쌍의 발자국과 한 줄의 자전거 바퀴 흔적만 남아있다. 10시경 쿵 하는 소리 이후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이웃집 할머니의 증언을 보아 D양은 살해당한 듯 하다. 범인은 어떻게 밀실에서 탈출했으며, 범인은 누구일까?

 

-> 밀실의 고전, 눈으로 만들어진 밀실. 왜 밀실을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확실히 이해되는 점이 좋았다(이웃집 할머니 증언만 없었다면 영락없는 사고사니까!). 가게야마가 밝힌 트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꽤 엄청난 균형감각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한 발만 삐끗해도 바로 드러날 트릭이라서.

 

* 머리카락은 살인범의 생명입니다

: 친척집 저택에서 칼에 찔려 죽은 E양. E양이 살아생전 자랑하던 긴 머리카락은 짧게 잘린 채 벽난로에서 타고 있었다. 범인은 누구이며 왜 E양의 머리카락을 잘랐고, 왜 E양을 살해한 걸까?

 

-> 추리는 추리일 뿐 물증을 제시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가게야마의 말로 확인할 수 있는 단편. 가게야마의 말대로 과연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물증이 없어서, 과연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두근두근한 기분이 드는데 뒷이야기가 없어 좀 아쉽다.

 

* 완전한 밀실 따윈 없습니다

: 유명한 화가가 자택 아틀리에에서 습격당한다. 창문에는 방범창이 있고, 화가가 비명을 지른 직후 두 사람이 현관부터 아틀리에를 향하는 복도를 지나 아틀리에에 왔고, 문은 스프링으로 자동으로 닫히는 문이었다. 범인은 어떻게 도망쳤을까?

 

-> 회화 기법을 이용해 사람의 맹점을 찌르는 트릭!

 

 

  이 시리즈는 추리로 읽어도 그렇지만 시트콤처럼 읽어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기분전환하기 괜찮은 시리즈라 3편이 나오면 또 읽지 싶다.

 

 

2012.10. 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러디 머더 -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다보면 "탐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에도 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이전'이라는 것도 꽤 어렴풋한 기준이기는 한데, 어쨌든 그렇다. 요즘 고전추리문학이 속속 번역되어 들어오고 있는데(반가운 현상이다. 예전엔 읽고 싶어도 못 읽는 게 꽤 많았다 ㅠㅠ) 그 책들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딱히 그에 답을 찾으려고 <블러디 머더>를 읽은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신간이 나왔다고 하는데 제목을 보고 어라 이게 뭐지 하고 봤다가 내용 설명이 재미있어서 봤다. 그런데 그 동안 어렴풋이 생각했던 내용들에 답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블러디 머더>는 시간대 별로 추리소설을 추적한다. 시작은 애드거 앨런 포가 등장하기도 전부터다. 어디서부터 추리소설이 탄생했을까? 추리소설의 시작은 어디일까? 어렴풋한 흔적은 애드거 앨런 포에서 비로소 구체적 형태를 띠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부터 탐정형 추리소설을 따라 흘러가다 세계사와 맞물려 범죄와 인간성이 더욱 중시되는 현재까지 이른다(2012년이 아니라 저자가 개정판을 낸 무렵이다).

 

  책을 쭉 따라서 읽다 보면 왜 전지전능한 탐정이 인간으로 변했는지, 수수께끼풀이가 중요했던 추리소설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 서술하는가가 중요하게 됐는지, 그 맥락이 짚어진다. 전지전능한 탐정이 인간으로 변한 데에는 사회적 변화와 사람들의 도덕관념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저자는 자신의 시각이 개인적임을 별로 부정하려 하지 않으며 호쾌하게 자신의 취향인 책을 추천하고 아닌 책을 깐다. 그와 이견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가 전혀 얼토당토않은 평을 하는 게 아닌 만큼 추리소설 읽을 때 가이드라인으로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얼마나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이 책도 영미 추리소설이 중심이고 프랑스도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북구와 일본의 추리소설은 살짝 언급되는 정도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견해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추리소설을 별로 못 읽었으면 책 추천을 받고 추리소설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은 절반이 조금 넘고, 나머지는 부록들인데 부록도 알차고 좋다.

 

  덧붙이자면 책이 상당히 예쁘게 나왔다. 글자 크기도 행간도 여백도 읽기 편하고 오타도 별로 눈에 띠지 않고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다만 22페이지에서 번역 오류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금세 초자아가 만족됨으로써 추리와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은 왜냐하면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금세 추리와 처벌이 뒤따름으로써 초자아가 만족되기 때문이다"로 고쳐야 한다. 초자아란 쉽게 말해서 우리 안에 내재된 도덕률이다. 따라서 초자아의 만족으로 추리와 처벌이 생기는 게 아니라 추리와 처벌에 뒤따른 결과로 초자아가 만족된다.

 

  다음은 메모한 문장들.

 

p.26.

태초에 죄가 있었다.

 

p.27.

영미 추리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단호하게 법과 질서의 편을 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지금도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p.28.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범죄문학이 1802년부터 반세기 가량 독자들에게 제공한 것은 안심해도 좋은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확립된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사람은 모두 발각되어 처벌받았다.

 

p.33.

 추리소설은 범죄소설보다 열등하지만, 가장 융통성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더없이 개성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중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전형적인 추리 소설에는 문학적 가치가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다음에는 그래도 그것이 창의적이며, 얄밉도록 현혹적이고, 정교하게 구성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p.49.

 후대 추리소설의 거의 모든 플롯은 포가 쓴 다섯 편의 단편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그 단편들은 여기저기 약간 무리한 면은 있어도 대체로 추리 소설의 형식에 들어맞는다.

 

p.115.

 그 이야기들에는 작가가 사반세기 뒤에 선언할 한 가지 원칙이 구현되어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스릴러라도, 유일한 스릴은 어떤 식으로든 양심과 의지에 관련된 문제에서 나온다"는 원칙이다.

 

p.148.

 황금기의 동화 속 나라는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살인이 벌어지고 또 벌어지는 세상이었다. / 그러면 왜 안 되는가? 황금기 평론가의 유령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불쾌한 것들에서 벗어나 동화로 도피하지 않는가? 그것이 동화의 목적이 아닌가? 우리가 늘 사회를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수한 동화였다. 그 속에는 사회적 태도, 심지어 정치적 태도가 함축되어 있었다. ...(중략)... 이런 이야기들 속의 사회질서는 잉카 제국 만큼이나 고정적이고 기계적이었다.

 

p.172.

'기발함'이라는 단어는 황금기를 설명할 때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다. 퀸의 초기 장편들에 대해서도 누구나 기꺼이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퀸의 기발함은 카의 기발함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로, 가능한 모든 단서들과 논증들을 끊임없이 분석적으로 검증하는데 있다. ...(중략)... 그 추리문제들은 정말 단 하나의 해답만을 허용한다.

 

p.193.

"행동은 3차원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에 관여하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p.282.

이윽고 밝혀진 살인자의 정체는 과연 놀랍지만, 이는 작가의 논지에서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작가의 논지는 정의의 속성, 그리고 폭력으로라도 악을 근절해야 할 필요성이다.

 

p.367.

문학 형식으로서의 범죄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나란히 발달했고, 그 발달 방식에는 사회적 사건들이 주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과정 요약)

 

 

2012. 9. 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