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디 머더 -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다보면 "탐정은 어디로 사라졌을까?"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요즘 나오는 추리소설에도 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이전'이라는 것도 꽤 어렴풋한 기준이기는 한데, 어쨌든 그렇다. 요즘 고전추리문학이 속속 번역되어 들어오고 있는데(반가운 현상이다. 예전엔 읽고 싶어도 못 읽는 게 꽤 많았다 ㅠㅠ) 그 책들을 볼 때도 비슷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딱히 그에 답을 찾으려고 <블러디 머더>를 읽은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신간이 나왔다고 하는데 제목을 보고 어라 이게 뭐지 하고 봤다가 내용 설명이 재미있어서 봤다. 그런데 그 동안 어렴풋이 생각했던 내용들에 답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다.

 

  <블러디 머더>는 시간대 별로 추리소설을 추적한다. 시작은 애드거 앨런 포가 등장하기도 전부터다. 어디서부터 추리소설이 탄생했을까? 추리소설의 시작은 어디일까? 어렴풋한 흔적은 애드거 앨런 포에서 비로소 구체적 형태를 띠고,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부터 탐정형 추리소설을 따라 흘러가다 세계사와 맞물려 범죄와 인간성이 더욱 중시되는 현재까지 이른다(2012년이 아니라 저자가 개정판을 낸 무렵이다).

 

  책을 쭉 따라서 읽다 보면 왜 전지전능한 탐정이 인간으로 변했는지, 수수께끼풀이가 중요했던 추리소설에서 왜 무엇을 어떻게 서술하는가가 중요하게 됐는지, 그 맥락이 짚어진다. 전지전능한 탐정이 인간으로 변한 데에는 사회적 변화와 사람들의 도덕관념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저자는 자신의 시각이 개인적임을 별로 부정하려 하지 않으며 호쾌하게 자신의 취향인 책을 추천하고 아닌 책을 깐다. 그와 이견을 가진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가 전혀 얼토당토않은 평을 하는 게 아닌 만큼 추리소설 읽을 때 가이드라인으로 참고하기 좋을 것 같다. 저자가 얼마나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다만 이 책도 영미 추리소설이 중심이고 프랑스도 꽤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북구와 일본의 추리소설은 살짝 언급되는 정도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견해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추리소설을 별로 못 읽었으면 책 추천을 받고 추리소설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은 절반이 조금 넘고, 나머지는 부록들인데 부록도 알차고 좋다.

 

  덧붙이자면 책이 상당히 예쁘게 나왔다. 글자 크기도 행간도 여백도 읽기 편하고 오타도 별로 눈에 띠지 않고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다만 22페이지에서 번역 오류가 있었다. 왜냐하면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금세 초자아가 만족됨으로써 추리와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은 왜냐하면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금세 추리와 처벌이 뒤따름으로써 초자아가 만족되기 때문이다"로 고쳐야 한다. 초자아란 쉽게 말해서 우리 안에 내재된 도덕률이다. 따라서 초자아의 만족으로 추리와 처벌이 생기는 게 아니라 추리와 처벌에 뒤따른 결과로 초자아가 만족된다.

 

  다음은 메모한 문장들.

 

p.26.

태초에 죄가 있었다.

 

p.27.

영미 추리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단호하게 법과 질서의 편을 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늘 그랬던 것은 아니고, 지금도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p.28.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범죄문학이 1802년부터 반세기 가량 독자들에게 제공한 것은 안심해도 좋은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확립된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사람은 모두 발각되어 처벌받았다.

 

p.33.

 추리소설은 범죄소설보다 열등하지만, 가장 융통성 없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더없이 개성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이중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우선 전형적인 추리 소설에는 문학적 가치가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다음에는 그래도 그것이 창의적이며, 얄밉도록 현혹적이고, 정교하게 구성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p.49.

 후대 추리소설의 거의 모든 플롯은 포가 쓴 다섯 편의 단편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그 단편들은 여기저기 약간 무리한 면은 있어도 대체로 추리 소설의 형식에 들어맞는다.

 

p.115.

 그 이야기들에는 작가가 사반세기 뒤에 선언할 한 가지 원칙이 구현되어 있었다. "아무리 평범한 스릴러라도, 유일한 스릴은 어떤 식으로든 양심과 의지에 관련된 문제에서 나온다"는 원칙이다.

 

p.148.

 황금기의 동화 속 나라는 아무도 다치는 일 없이 살인이 벌어지고 또 벌어지는 세상이었다. / 그러면 왜 안 되는가? 황금기 평론가의 유령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나 삶의 불쾌한 것들에서 벗어나 동화로 도피하지 않는가? 그것이 동화의 목적이 아닌가? 우리가 늘 사회를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수한 동화였다. 그 속에는 사회적 태도, 심지어 정치적 태도가 함축되어 있었다. ...(중략)... 이런 이야기들 속의 사회질서는 잉카 제국 만큼이나 고정적이고 기계적이었다.

 

p.172.

'기발함'이라는 단어는 황금기를 설명할 때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다. 퀸의 초기 장편들에 대해서도 누구나 기꺼이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퀸의 기발함은 카의 기발함과는 상당히 다른 종류로, 가능한 모든 단서들과 논증들을 끊임없이 분석적으로 검증하는데 있다. ...(중략)... 그 추리문제들은 정말 단 하나의 해답만을 허용한다.

 

p.193.

"행동은 3차원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에 관여하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p.282.

이윽고 밝혀진 살인자의 정체는 과연 놀랍지만, 이는 작가의 논지에서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작가의 논지는 정의의 속성, 그리고 폭력으로라도 악을 근절해야 할 필요성이다.

 

p.367.

문학 형식으로서의 범죄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나란히 발달했고, 그 발달 방식에는 사회적 사건들이 주로 영향을 미쳤다. (이후 과정 요약)

 

 

201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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