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왜? 1 - 그해 겨울의 까마귀
임종욱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는 간극에서 나온다고 어디서 읽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만들어내는 간극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에게는 미스터리가 있다. 1936년 도쿄로 간 이상의 마지막 행적이 비밀에 싸여있다는 것, 그리고 이상이 34일 간 구금되었다는 것, 작가는 이 미스터리 때문에 <이상은 왜?>를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상의 그 행적은 비단 작가 뿐 아니라 나의 궁금증도 자극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936년 겨울, 이상은 불쑥 도쿄로 떠난다. 거기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그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소속되어 활약하는 까마귀가 천황을 살해할 거라며 표식을 남긴다. 문서보관실에서 묻혀 살던 노무라 대위는 까마귀를 잡으라는 명령을 받고 수사를 하던 중에, 뭔지모를 시를 쓰는 이상이 까마귀와 관련이 있지 않나 의심한다. 실제로 까마귀는 이상에게 "암호시를 당신 이름으로 신문에 실어달라."고 말하며 접근하고.......
  한편, 2009년 나(정문탁)는 차기작을 위한 자료조사 겸 도쿄로 온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우에하라 교수의 후의로 자료를 조사하는데 도움을 줄 학생 가와무라 소조를 소개받는다. 그 때, 마침 가와무라 소조의 후배 도리타니 다다오가 대학생 살인사건에 휘말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에서 도주한다. 가와무라는 도리타니가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오가사와라 형사를 찾아가는데.......
 
  1936년과 2009년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어 진행된다.
  역사를 배경으로 깔고 있지만, 일정부분 추리소설 같은 부분이 있다. 1936년에는 까마귀의 정체와 움직임에 대해서, 그리고 2009년에는 대학생 살인사건에 대해서 추적하는 모습들이 나오니까 말이다. 하지만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범인이 누구일까?' '트릭이 무엇일까?'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거대한 어떤 흐름이 아닐까 싶다.
 
  2010년은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자 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고 한다. 나는 2010년이 지나가는 동안 그 사실에 대해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시사교양프로그램에서 몇 번 다루기는 한 것 같지만, 2010년이 한일강제합방 100주년이라는 것을 그렇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기념하는 해는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만 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모르고 넘어갔지 않나. <이상은 왜?>는 그런 2010년과, 그런 2010년을 살았던 나를 되새겨보게 했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생각하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떨리고 화가 난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외려 머릿속으로는 일제강점기와 일본의 행동, 일본 사람들, 현재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상은 왜?>를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 일본 교포, 일본의 우파, 한국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일본의 태도에 이러니저러니하며 화를 내지만, 사실 나는 일본과 일제강점기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별로 알아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상은 왜?>에서 이상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에 의심을 품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상이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1936년과 1937년 즈음의 일본과 조선의 풍경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명성황후 살해사건, 1920년 간도대참살, 동경대지진으로 시작된 한국인 학살까지 아울러 나온다. 역사책에서 볼 때는 그저 하나의 서술이던 것이 피부에 오싹하게 와 닿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1936년이 아닌 2009년의 사건을 보면 어떤가, 하면 이 쪽도 심각하다. 1936년 도쿄에 흐르고 있던 불안으로 들썩들썩한, 모두 어느정도는 정신병자로 만들 것 같은 그 분위기가 2009년의 사건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설 속 산케이 신문에 실린 논평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뛰어넘고 싶었다. 아주 불쾌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논평, 사설,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 해에 몇 번씩 일본 우파들이 어쨌다 하는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 않나.
 
  1936년 경의 일본 제국주의도 2009년의 일본 우파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시대와 사상에 사람과 인간성이 묻혀버린다. 그것을 보는 느낌은 간접경험이지만 끔찍했다. 그리고 이게 완전히 소설 속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자체는 우울하지만은 않았다. 각권 413p이니 양이 상당히 많은데, 시대상과 벌어지는 사건이 잘 버무려져서 매우 속도감이 있었다. 본격적인 사건은 1권 277p 정도에서야 시작되지만, 그 전에는 배경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와서 지루하지 않고, 그 이후에는 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가 궁금해서 지루하지 않다. 때로 굉장히 유쾌한 표현이 있어서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1936년 이상의 시를 노무라 대위가 의심하는 부분이나, 2009년 오가사와라 형사의 비듬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결말이 아쉬웠다. 작가가 보여주려는 게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었더라도 결말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 전의 내용이 차근하게 잘 진행되어 온 것에 비해서 끝부분이 너무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있었다. 특히 2009년 사건에서 범인을 잡는 것도 너무 급하고, 범인이 자백하는 것도 너무 급해서 얼떨떨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이 체포되는 부분도 중간 과정을 떼어먹은 느낌이었다. 급박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걸까? 설명하는 문장들 대신에 등장인물의 대화나 등장인물의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2권의 393p~397p는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 꼭 필요해서 써넣은 부분이 아니라 작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삽입한 느낌? 작위적이다.)
 
  덧붙이자면 가와무라 소조의 할아버지가 쓴, 책 속의 책 구성은 훨씬 좋을 수도 있었는데 매력을 못 살린 것 같다. 최소한 1936~1937년(수기부분)과 2009년(현실부분)을 구분해서 써줬다면 초반에 혼란도 덜했을 테고(시점은 3교대로 바뀌는데(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 설명이나 표시가 없어서 1권 초반을 읽을 때는 계속 헛갈렸다), 나중에 1936부분이 가와무라 할아버지의 수기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그렇군!"하는 느낌이 있었을 텐데. 그냥 별 느낌없는 구성이 된 것 같아서 아쉽다.
 
  결말에서 다소 아쉬운 구성이 있었지만 총 800p를 사흘도 되기 전에 독파하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는 있다. 3교대로 돌아가는 시점(1936.이상-1936.노무라 대위-2009.정문탁/오가사와라)이 속도감을 더하고 다음 이야기를 더 궁금하게 한다. 시간 짬이 날 때마다 펼쳐들 정도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이상이라는 작가는 별 관심이 있는 작가가 아니었다. 교과서 속에서 단편 <날개>로 처음 이상을 만났을 때, 나는 이상을 아주 싫어했다. 지금은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별 관심 없는, 천재인지는 몰라도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작가로 분류되어 기억 속에 묻혀 있었다. <이상은 왜?>에서는 이상의 시와 소설 구절이 자주 나온다(책의 소제목은 모두 이상의 글귀에서 따왔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작가가 참조했다는 <이상 전집>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 현대의 일본에 대한 생각 이외에 이상이라는 작가도 다시 보게 만든 책이다. 내가 이상의 문학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상의 문학을 잘 알고 이 책을 읽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기 때문에 뒤늦게라도 한 번 보려 한다. 
  
   


2011.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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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왕을 위한 팬클럽은 없다>라는 제목을 보고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떠올랐다.
  구조를 보면 패러디가 거의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내용이 제목과 좀 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목을 의역한 것이었다.
  원제는 <어떤 왕>이라고 한다.
  글 내용과는 딱이지만 문제는 이 제목으로 책을 냈으면 처음에 독자의 흥미가 팍팍팍팍 줄었을 거 같다는 거?;;
 
  한 마디 정리 : 만년 꼴찌팀인 센다이 킹스의 팬인 부부에게서, 센다이 킹스의 감독이 사망한 날 태어난 야마다 오쿠의 일대기.
  독특하게도 2인칭을 사용했다.
  누군지 모를 화자가 연신 오쿠를 '너'라고 지칭하고 있다. 게다가 시제는 현재형. 덕분에 이 글이 과거의 일인지, 현재의 일인지, 아니면 미래의 예언인지도 헛갈린다. 게다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드>에 나오는 세 마녀의 모습이 작품 곳곳에 나오면서, 이 글은 묘하게 운명론적인 냄새를 풍긴다.
 
  천재, 하면 보통 빛나는 영광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글은 어째 <맥베드>같은 어두침침한 느낌이다. 야구천재인 오쿠는(타율이 무려 9가 넘는다) 어렸을 적부터 그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서 경멸당하거나, 사람들의 경외를 사서 숭배당한다. 읽다보면 야마다 오쿠는 없고 야구천재만 있는 느낌이다. 부모조차도 오쿠=야구 라고 생각한다. 오쿠의 인생은 야구로 점철되어 있을 뿐인 것 같다. 보고 있자면 씁쓸해지고, 저게 인생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종일관 무미건조해 보이는 오쿠의 모습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쿠의 삶이 야구 뿐이고 진짜 무미건조한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이 글은 2인칭이니까.
  세세한 부분을 생각하면 오쿠는 친구도 있었고(구단시험을 보게 이름을 빌려준 그 친구), 애인도 있었고,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 책이 야구를 하는 오쿠만 보여준 것이 아닐까.
  그러면 보이는 것만큼 오쿠는 무미건조하지도 않고, 고독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운명론적인 색채를 쭉 빼고 보면, 사실 오쿠는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열심히 야구를 하는 건실한 야구소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쿠가 왕인 이유는 타율이 9인 야구천재기 때문이 아니라, 꿋꿋이 야구라는 자기 길을 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자퇴했을 때, 시합에 나갈 수 없고 구단에 들어갈 수 없었을 때도 오쿠는 야구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쿠를 미워하거나 오쿠를 경외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오롯이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가는 길이 어떤 영역이든 왕으로 보일 것 같다. 자기를 지키고 자신의 길을 지키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본 것 같다. 
  
   


2011.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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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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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세 개 반 정도.
 
  개인적으로, 이사카 코타로 소설 중에서 제일 난해했다.
  읭? 엉? 엥? 이런 기분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달까.
  소재부터 좀 어렵긴 하다. 인과관계, 구제, 집단 무의식, 오컬트, 악마퇴치 등등.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엔도 지로는 타인이 보내는 SOS 신호에 약하다. 어린시절 알고 지냈던 헨미누나가 히치코모리가 된 아들 마사토를 만나달라고 엔도에게 부탁한다. 엔도는 자신이 손오공의 분신의 힘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사토에게서 미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가라시 마코토와 300만엔의 오발주 사건의 원인 이야기를. 그로부터 반년이 지나서 진짜 오발주 사건이 일어나는데.......
 
  -> 이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펼쳐지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와 '원숭이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처음에는 원숭이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접점이 있는지 몰랐는데 중간을 넘어서 딱 알았다. 이런 구성은 좋다. 그런데 절정 부분에서 김이 팍 빠져서 전의 긴장감이 사라졌다.
 
  이렇게 김이 빠진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보니, 골판지 상자로 쌓은 성이 아무 활약도 못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스도는 다른 곳에서 경찰에게 잡히고, 엔도와 이가라시 그리고 편의점 직원은 골판지 성 때문에 잔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예언과 그들의 행동은 어떤 의미가 잇었던 걸까?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골판지 상자를 쌓고 있다는 희망?
 
  그렇다면,
  내가 한 일은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읽을 때에는 꽤 불만에 차 있었다. 이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김빠져, 하고.
  하지만 감상을 쓰면서 생각하니 그물에 걸린 생선처럼 뭔가가 줄줄이 딸려 올라온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위해 골판지 성을 쌓고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내가 한 일은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 결국 그 사람은 구원받았다는 말도 다섯 번쯤 곱씹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세상에서 나만 죽도록 힘들 것 같은 때가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은 내 힘이 너무나도 약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있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내가 못 도와줘서 괴로운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그런 걸 생각해보면, 보이는 결과가 없어도 너는 누군가에게 구원받았고 너는 누군가를 구원하고 있다고 이 책이 도닥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난해하다. 
  
 

 
201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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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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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가형사시리즈 7번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와는 다소 다른 궤적을 그리는 글이다. 전의 두 글이 본격에 가까웠다면 <붉은 손가락>은 사회 현상을 지적하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가깝다. 처음부터 범인, 범행과정, 은폐과정이 다 밝혀져 있다. 따라서 범인&추리보다는 다른 쪽(사람들의 발언, 분위기, 행동 등)에 신경이 더 쓰인다. 치매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부 사이의 관계 등.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려내는 인물은 진짜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라서, 뭐라 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일으킨다. 47세의 중년가장 아키오, 아내 야에코, 중학생 아들 나오미, 그리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 넷이 살고 있는 집은 일견 평범해보인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들의 관계는 어그러져 있다. 잔뜩 꼬인 실뭉치처럼, 어디서 잘못됐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글자일 뿐인데 읽는 사람 숨이 막혀올 정도다.
 
  아키오는 어머니와 아내와 아들의 갈등에서 도망치기 위해 밖으로 나돈다. 아내는 시어머니를 경멸하고 싫어하며 아들을 싸고돈다. 아들인 나오미는 뭐든지 부모탓을 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면 부모에게 화를 낸다. 데면데면한 일상을 유지하던 어느 날, 나오미가 7세 여아를 유괴하여 살해한다. 1. 아키오는 아내와 함께 시체를 공원에 유기하기로 하고, 2,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치매 걸린 어머니를 범인으로 몰려고 한다.
 
  <붉은 손가락>을 읽는 내내 기분이 나빴다.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합리화가 쩔고, 상황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남탓만 하고, 그런 사람들만 뭉쳐있는 글에서 풍겨나는 건 일종의 독기다. 마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상처주기 위해서 살아가는 생물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이 글의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도 하지 않고 배려도 하지 않는다. 피해자인 아키오의 어머니도 잘 생각해보면 대처 방식이 아키오 가족과 똑같다. 치매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 치매가 아니고,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고 일부러 루주를 손에 칠했다는 부분 때문이다.
 
  아키오의 어머니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신고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힐 수도 있었다. 루주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주장할 뿐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키오의 어머니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하나다. 아키오의 어머니는 치매 노릇을 하면서 얻어낸 평화를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회피했던 아키오, 야에코, 나오미와 똑같다. 아키오의 어머니는 회피하고 있다. "네 스스로 잘못을 알기 바랬어."라니 그게 말이냐 소냐. 가가형사가 없었다면, 대충 넘어갔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니 소름이 돋는다.
 
  애초에 이 가족 중에서 누구 한 명이 용기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아키오의 어머니가 "이런 되먹지 못한 것들. 난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더 좋다. 늬들은 나가라."라고 말했다면? 아키오가 "당신 좀 그만해. 적당히라는 걸 몰라? 이게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나오미 너도 정신 차려!"라고 말했다면? 야에코가 "나오미, 아닌 건 아닌 거야. 너 언제까지 남 탓만 할래? 그리고 당신도 집안에 관심 좀 가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면? (나오미의 경우에는 각이 안 잡히기는 한다.)
 
  맞는 걸 맞는다고 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맞는 걸 맞는다고 하고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다. 하지만 인간은 되게 이상해서, 모든 사람들이 두 개의 선 중에서 짧은 쪽을 가리키며 "이게 더 길다"라고 말하면, 그 선이 짧다는 걸 명백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 이게 더 길어."라고 동조해 버린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는 순간 져야 하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미움받기 싫기 때문이다. 사회는 그래서 점점 더 비뚤어지는 게 아닐까.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폭력고발르포를 한 편 본 기분이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고 눈 감는 불의. 책임져야 할 것에 책임을 미뤄버리는 불의.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불편했다. 책의 마지막까지 아키오 가족에게서 변하는 것이 없어서 더 그렇다. 책을 중간에 놓을 수는 없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머릿속이 한참 어지러웠다. 나는 이래서 사회파 추리소설이 싫다.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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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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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를 재미있게 봐서, 가가형사 시리즈를 더 봐야지 하고 빌린 책이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서 용의자가 둘이었다면, <내가 그를 죽였다>는 용의자가 셋이다. 이 책도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처럼 범인이 누군지, 범인이 어떻게 그를 죽였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독자가 직접 알아봐야 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비염을 앓고 있는 호색속물작가 호다카 마코토는 떠오르는 인기여류시인 간바야시 미와코와 결혼하려 한다. 그런데 결혼식장에서 독을 먹고 죽는다. 호다카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나미오카 준코와 사인이 같아서 일견 동반자살 얘기로 흘러가나... 싶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비염약을 담아둔 필케이스를 만질 수 있었던 셋이 용의자로 급부상한다. 미와코의 오빠 다카히로, 호다카의 비서 스루가 나오유키, 호다카와 비밀애인관게였던 편집자 유키자사 가오리다. 셋 다 동기도 있고 기회도 있다.
 
  <내가 그를 죽였다>에서는 세 명이 1인칭을 사용, 번갈아가면서 사건을 진술하게 만든다. 진술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고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사람(피해자의 오빠)가 서술자였던 <둘 중 누군가~>와 달리 이번에는 용의자 세 명의 시점을 번갈아가면서 써서 색달랐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보면 사람의 악한 면을 보게 되어 뱃속이 불편해진다. 피해자가 나쁜 놈인데 피해자를 죽인 놈도 정의의 편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둘 중 누군가~>에서 피해자였던 소노코도 친구의 과거를 무기로 둘을 협박하는 모습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그를 죽였다>도 마찬가지다. 특히 혐의를 피하려고 물고 물리는 폭로전을 하는 부분이 압권!
 
  일단 모두의 혐의를 한 번 없앤 뒤, 다시 한 번 혐의를 부여한 게 흥미를 더 높여줬다. 그리고 고조됐을 때 "범인은 당신입니다."라고 종료하는 센스. 근데 퍼즐은 <둘 중 누군가~>보다 쉬웠던 것 같다. 좀더 친절하게 범인을 안내해주는 느낌이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약의 개수 / 약의 경로이다. 긴장감이 끝까지 풀어지지 않는 게,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그나저나 초반부를 보면 호다카는 독약 먹고 죽지 않았어도 언젠가 칼침 맞아 죽을 상으로 보이긴 했다. 애가 아주 나쁘다. 최고로 나쁘다. 그리고 좀 무섭기도 하다. 헤어지게 되면 아내의 비밀을 폭로/팔아먹겠다는 게 할 말일까. 
  
   


2011.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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