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의 키 에단 게이지 모험 시리즈 2
윌리엄 디트리히 지음, 이창식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 이은 에단 게이지 두 번째 시리즈, <로제타의 키>. 

  전작보다 재미있다.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흥미도 있다. 인디애나 존스나 007시리즈를 보는 듯한 속도감이 있고, 전쟁 묘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에단 게이지가 전작보다는 적극적으로 토트의 서를 찾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에단이 '전기 기사'라는 특기를 십분 발휘해서, 주인공 활약을 보는 것도 쏠쏠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껄적지근했다. 

  에단은 껄덕대는데다가 거들먹거린다. 보고 있자면 얘가 아스티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스티자가 튕겨서 오기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상식으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사랑을 말하지 못한달까. 아스티자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에단은 미리암을 만나는데, 아스티자의 생사를 모를 때부터 미리암에게 껄덕거린다. 그리고 미리암과 마음이 통해 잔 날 저녁,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미리암에게 아무 말 없이 나간다. 에단 나름으로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만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냥 개자식이다. 

  작가는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는 아스티자, <로제타의 키>에서는 미리암을 영리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용감한 미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가는 그녀들이 활약할 공간을 책에서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다. 

  미리암이 한 일은 히암 파리를 소개한 것, 그리고 성전 산 지하에서 잠긴 문을 연 것 정도다. 그 외에 그녀의 지식을 발휘할 곳은 없다. 그나마 성전 산에서도 수확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리암은 아스티자가 없을 때 여자가 없으면 팍팍하니까 등장시킨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갔던 에단이 토트의 서를 들고 돌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에단이 아스티자냐 미리암이냐의 선택에 직면했을 때 미리암은 다른 남자랑 이미 약혼한 뒤였다. 교활한 방법으로 여주인공 역할에서 제거했다고 해야하나. 

  아스티자의 경우는 더 고약하다. 아스티자는 에단을 꼬여내고 백작에게 협력하게 만드는 수단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여성관은 아주 고루하다.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해지고 조금 더 지나면 불쾌해진다.
 
  모험물에서 여자는 그냥 감초 역할만 맞는 게 정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고 생각해 봐도 이 책은 껄적지근하다.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 에단 게이지는 이상한 메달 때문에 사건에 휘말려서 책을 찾아다녔다. 아스티자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을 비롯한 다른 이에게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유해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들의 책을 찾아다닌 이유는, 가만 두면 실라노가 찾아낼 거 같아서였다. 

  <로제타의 키>에서 이들의 행동은 좀 이상하다. 에단은 그 책을 조용히 지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라노 백작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아스티자는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 백작과 협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그 책을 지키려고 하고 숨기려고 한다면 굳이 그 책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을까? 로제타 석을 깨면서 왜 베껴뒀을까? 그 내용을 꼭 알아야 그들이 말한 목적(실라노의 야욕을 저지하고 안전하게 지식을 지키는 것)이 지켜진단 말인가?? 그 시점에서 나는 에단과 아스티자가 실라노 백작과 다른 이유를 모르게 되었다. 실라노 백작이 에단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에단은 계속 거기 붙어있었을 테고, 실라노 백작을 없애는 과정에서 휘말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토트의 서를 없애지 않았을 거다.
 
  일단 인물에 대한 의문은 이 정도다. 사건에 대한 의문으로 들어가면 한층 고약하다.
 
  에단은 전작에서 그레이트 피라미드에 들어가서 '모세의 지팡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순금으로 된 천사장식물을 떼어냈다. <로제타의 키>에서는 천사장식물이, 템플 기사단이 토트의 서를 숨겨둔 곳을 가리키는 단서가 된다(에단의 피보나치 수열도 그걸 기준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러려면 1. 템플 기사단이 이집트에 가서 그레이트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그 단서를 놓고 나왔다 / 2. 모세가 몇천년 전 놓고 나온 것과 똑같은 장식물을 그들은 만들었고 그걸 이용할 방법을 찾다가 열쇠로 이용하기로 했다 / 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없고, 솔직히 있음직하지도 않다. 천사장식물이 해답이 될 유일한 길은 성전산 지하에서 그걸 발견해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인데, 그건 명명백백하게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 나왔으며 성전산 지하에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나폴레옹은 마지막 순간 에단과 아스티자를 총살에서 구해냈을까? 그가 그렇게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 솔직히 있음직하지 않다. 토트의 서를 이용해 사람 마음을 바꿨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다. 아슈라프는 어떻게 그렇게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타났을까? 그가 에단을 찾아다닌 이유는 뭐란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개미굴에 빠지는 느낌이다.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실라노는 로제타 석을 어디서 발견했을까? 우연히? 

  이건 사건이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보물을 찾는 두뇌싸움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사건을 생각없이 즐기는 것에 가깝다. 작가도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몰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글 자체의 짜임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1부에서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에게 뺏기고 / 2부에서는 실라노 백작이 해석할 수 없게 로제타 석을 파괴하고 토트의 서를 되찾아 숨기는 내용이 나왔으면 짜임새가 있어 보였을 듯 하다. 이 시리즈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 작가 편의적으로 돌아간다. 왜 그렇게 예전에는 단서도 없었던 얘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지. 게다가 600페이지에 걸쳐 얘기를 쫓아갔더니 토트의 서는 없었다, 는 급한 결말의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토트의 서가 사실 42권이고 그들이 찾아낸 건 1권 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변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처음에 차근차근 진행한 얘기가 끝에 가면 설명도 없이 반전만 틱틱틱틱 빠른 속도로 던져진다.
 
  이런 이유들로 이 글은 재미있지만 짜증나고 허무하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읽는 자세가 처음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드라마 보듯이 아무 생각 없이, 작가가 주는 떡밥을 물고 쫓아갔다면 그냥 스트레스 확 날리는 재미있는 오락책으로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별은 세 개다.
 
 
p.s. 전작의 지루하고 쓸데없어보이는 설명이 줄은 건 다행인데, 그 대신 곳곳에 전작 홍보가 들어가 있다. 1인칭 주인공 주제에 '전작 <나폴레옹의 피라미드>를 보면 다 나와있다.' 식의 이야기를 하다니... 조금만 있으면 자신이 책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자각할지도.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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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행성 샘터 외국소설선 6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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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노인의 전쟁>과 <유령여단>의 명성을 듣고 잔뜩 호기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읽었다는 사람마다 극찬에다가 평점 또한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책에 치여서 잊고 있다가 이번에 나온 <마지막 행성>을 먼저 읽게 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허클베리라는 행성에 정착하여 살던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 그리고 그들의 양녀 조이. 어느 날 리비키 장군이 존 페리에게 새로운 행성 개척민의 대표가 되어주기를 요청한다. 기존의 개척행성처럼 지구에서 개척민을 받는 게 아니라, 이미 개척된 10개의 행성에서 250명씩 모은 개척민 집단이라서 전혀 새로운 사람을 총대표로 삼는 수밖엔 없었기 때문이다. 존은 수락한다. 그러나 2500명의 개척민들이 막상 도착한 행성은 미리 보았던 행성이 아닌 전혀 모르는 미지의 행성. 우주개척연맹은 개척민들에게 콘클라베에게 이 개척지를 들키면 모두 살해당한다고 설명하고, 무선장비를 끄고 숨어서 이 행성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사건은 단순하지 않게 흘러가고 행성 로아노크는 콘클라베와 우주개척연맹의 대립의 중심이 되는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휙휙 반전이 일어난다. 다음 일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우주 개척에 관한 전우주적인 이야기인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로아노크라는 행성에서 벌어진다. 어떻게 이 변두리 행성을 중심으로 이 거대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지 신기한 솜씨다. 억지 없이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게 더 신기하다.
 
  우주적인 음모도 재미있지만 로아노크의 개척 이야기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사회의 형성과 의사소통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마냥 합리적이지도 않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그들 사이에서 최선의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뭘까? 가끔 로아노크를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 존과 제인이 조금 독단적일지라도 '현명한 방향'으로 끌고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려고 정보를 통제하고 강제로 끌어가는 우주개척연맹과 다를 게 뭘까? 그들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했을 것이다.
 
  우주개척연맹이 로아노크를 가지고 노는 모습은 비열해보였다. 로아노크 개척민들은 그저 '포기해도 되는' 숫자일 뿐이고 그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이 로아노크를 걸고 사용한 방법은 사실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었다. 그들이 그 결과를 의도하지 않고 그저 콘클라베의 해체를 의도했을 뿐이더라도 말이다. 행성들과 우주개척연맹의 관계, 그리고 로아노크 사람들의 사회를 보면서 개인과 사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무엇이 최선일까?
 
  생각할수록 복잡해진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되는 게임 같다. 그래도 존과 제인은 룰 안에서 잘 헤쳐나왔다고 생각한다. 로아노크는 파괴되지 않았고 인류는 멸절되지 않았고 존과 제인도 반역죄에서 벗어났고 지구도 우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멋진 해피엔딩이다. 읽을 때는 이 사태가 어떻게 해결은 되나 좀 깜깜한 기분이었는데 내 걱정이 무색했다.
 
  나는 전작을 읽지 않았지만 <마지막 행성>은 그 자체만으로 위화감 없이 훌륭했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런데 살펴보니 이 책은 전작이 뿌려놓은 떡밥을 훌륭하게 회수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렇다는 건 전작을 읽고 읽으면 더 재밌다는 뜻인데, <노인의 전쟁>과 <유령여단>을 안 읽고 이 책을 읽은 게 조금 아쉽다. 전작을 읽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이다.
 
 

p.s.
  책에서 오류가 좀 눈에 띄었다. 단어가 빠진다거나 따옴표가 빠진다거나 달라야 할 숫자가 똑같다거나... 좀 아쉬웠다.  

 

 201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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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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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소설.
 
  매그레 반장은 벨기에에 출장을 갔다가 거액을 소포로 부치는 초라한 행색의 남자를 본다. 매그레 반장은 호기심이 들어 남자의 뒤를 밟고, 그가 가지고 다니는 낡은 가방을 바꿔치기한다. 남자는 자신이 가방을 잃어버렸음을 알고 자살한다. 매그레 반장은 루이 죄네라는 그의 이름이 가짜이고, 아주 오랫동안 가명으로 살았으며,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자살하게 만든 가방 안에서는 한 벌의 피묻고 찢어진 낡은 양복 한 벌만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미스터리를 쫓기 시작한다. 루이 죄네의 시신을 보러 온 의문의 사업가 조제프 반 담, 그리고 그의 친구인 부유한 은행원 모리스 벨루아르와 친구들..... 사건의 단서는 자꾸만 사라지고, 매그레 반장은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위협을 받는데.....
 
  3만 벨기에 프랑은 어디서 났을까? -> 루이 죄네(가명)은 왜 양복을 잃어버렸다고 죽었을까? -> 조제프 반 담은 어떻게 루이 죄네를 알고 있는 것일까? -> 등등으로 자꾸만 의문이 깊어진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굉장히 이상해 보이던 사건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확 풀린다. 단서는 '생폴리앵'. 이번 사건이 벨기에, 독일, 프랑스를 넘나들며 일어나서 제목의 생폴리앵도 지명인가 했는데 교회 이름이었다.
 
  나는 범죄의 공소시효라는 게 없어지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왠지 범인이 그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다. 십 년이든 백 년이든, 죄를 지었으면 죄를 갚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책을 보고서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한 달 남긴 공소시효 전에 기소되는 건 여러모로 잔인하다 싶긴 한데 루이 죄네가 아니었다면 그들이 과연 범죄를 기억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살았을까 생각도 든다. 그래도 또 생각해보면, 그들도 기억하고 있었던 듯 하다. 사진인화가가 목 매달린 사람의 그림을 그렇게 많이 그린 걸 보면....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이 복잡해지는 소설이었다. 매그레의 인간적인 면도 많이 부각이 된 듯 하고^^ 지금까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누런 개>가 제일 인상 깊었었는데 이번에 <생폴리앵에 지다>로 바뀌었다.
 
 
** 이번 이야기 읽고 든 엉뚱한 생각
1. 매그레 차비 많이 나왔겠다
2. 매그레 부인 외롭겠다... 남편이 만날 나가 ㅠㅠ 
  
   

201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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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피라미드 에단 게이지 모험 시리즈 1
윌리엄 디트리히 지음, 이창식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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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에 구입했다가 100p 읽고 내버려뒀었다. 다른 책에 치여 잊고 있다가 이번에 기억이 나서 꺼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닌데 재미가 있지도 않은 묘한 책.
 
  모험물이니 속도와 긴장감이 중요할 것 같은데 250p가 넘어서야 뭔가 좀 움직이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 전에 200페이지가 매우 재미있어야 할 텐데 소소한 재미는 있어도 큰 긴장감도 없고 큰 재미도 등장인물의 매력도 없어서 좀 힘들다. (그래서 2008년에 100p 읽고 내버려둔 듯 하다). 애초에 메달의 비밀에 별 흥미가 안 생긴다...... 사실 에단도 처음에 메달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건 오기이니 내가 흥미가 안 생긴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에단이 제 입으로 "정중하게 메달 달라고 하면 줄 수도 있는데. 그런 요청을 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라고 투덜거릴 정도니까.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은 300p~500p 사이였다. 장면을 꼽자면 에단이 모두에게 쫓기면서 아슈라프와 함께 시라노 백작을 추격하는 부분. 조마조마 두근두근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부분은 이 부분 정도. 

  게다가 이 책, 600페이지 가량 나를 끌고와 놓고 "헛짓했다 ㅋㅋ"라고 친절하게 말해준다. 사건이 끝나려면 <로제타의 키>까지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어휴 얼른 2부를 읽어야지 두근두근 하기에는 600페이지가 너무 길었다. 사건과 관련이 없는 역사적 설명은 과감히 쳐내고, "이 사람이 나를 앞으로 피라미드로 인도할 사람 블라블라"라는 식의 미리니름을 없앴다면 500p까지 양이 줄 수 있었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반전에 반전과 신비함을 추구하느라 꼬인 부분을 명쾌하게 만들면 400p도 가능했을지도. 400p 정도였다면 훨씬 사건이 농밀해지고 속도감도 있을 테니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에단 게이지는 명랑하긴 한데 능력 없으면서 허세와 자존심 쩔고 상당히 철이 없어서 15~18세의 소년이라는 느낌이 들어 가끔 한숨이 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뒤통수를 계속 맞는 걸 보면 묘하게 순진한 부분도 있고. 미국인 전기기사라고 하지만 에단이 전기를 다루는 모습은 전혀 네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말 잘하고 운빨 좋은 걸 보면 가끔 귀엽기도 하고... 

  여주인공인 아스티자는 처음에는 봐도 별 생각이 안 드는 무매력을 자랑했는데, 이시스 신전 부분에서부터 확 비호감으로 돌아섰다. 아스티자의 정체가 2번 반전까지는 그렇다고 치는데, 3번 4번 반전되니까 그냥 가증스러워보인다. 에단에게 계속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다 들켜서야 변명하면서 이해해달라고 하다니,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게다가 아스티자가 활약한 것은 1. 메달은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집트 신에 대해서 말해준 것. 2. 에단의 침실에 온 뱀 퇴치. 이 정도 뿐이다. 도통 이 여자가 메달의 비밀을 푸는데 활약한 것도 없으면서 사람 뒤통수만 치고 그러면서도 진지하지 않은 에단의 태도를 비난하고(그렇다고 에단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메달의 비밀을 풀 만한 대세를 가늠하며 여기 협력 저기 협력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아스티자는 자기 능력이 안 되는데 메달의 비밀을 풀고 중요한 걸 자기 손에 넣고 싶으니 이 남자 저 남자 이용하는 걸로 보인다. 여사제니까 최소한 이시스 신전 위치 정도는 얘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시라노 백작이 알아낸 거라니... ㄱ-;; 차라리 아스티자가 이시스 신전에서부터 메달을 손에 넣으려는 제 3 세력으로 부각해 시라노 백작과 대립, 일시적으로 에단과 협력하거나 혹은 에단을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였다면 매력적이었을 거다. 하지만 전후사정 거짓말 다 밝혀진 후에도 에단의 조력자이며 조언자인 신비하고 청초한 여인의 위치를 고수하려 하니 그냥 비호감일 뿐. 

  제일 좋았던 건 아슈라프. 이집트 출신 맘루크 전사인 아슈라프의 캐릭터는 단순명쾌해서 마음에 들었다. 에단보다 철이 들었는데 묘하게 강직한 소년같은 느낌이다. 제일 캐릭터에 맞는 역할과 성격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 에단과 있으면 사고뭉치 친구 두 명이 모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하지만 아슈라프는 등장인물 소개에도 나오지 않고...
  
  600페이지가 나를 너무 지치게 하고 아스티자가 싫어서 그렇지, 기본 줄거리는 꽤 흥미롭다. 

  파리의 도박판에서 우연히 조잡한 메달을 딴 에단 게이지는 괴한에게 습격당하고 살인 누명까지 쓴다. 에단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리메이슨에 찾아가고, 그들은 이집트 원정을 떠나는 나폴레옹 학자팀에 합류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한다. 선상에서도 에단의 메달은 위협받는다.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 에단은 거기서 아스티자를 만나 메달과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폴레옹은 단숨에 카이로까지 정복하고, 에단은 맘루크 전사 아슈라프를 포로로 잡고 그의 형 에녹을 소개받는다.  에단은 선상에서 학자들이 보여준 원판이 어떤 의미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알렉산드리아로 떠나고, 때마침 넬슨의 함대가 공격을 해 와 죽을 뻔하다 살아난다. 돌아온 카이로에는 시라노 백작이 와 있고, 나폴레옹은 에단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대충 이런 줄거리.
 
  2부인 <로제타의 키>를 읽어야 할까 고민중이다. 그것도 만만찮은 페이지던데... o-<-< 
  
   


201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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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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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구경꾼들>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8명(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이 함께 사는 이층집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씩 가족이 사라지고, 그 때마다 가족들은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나'의 가족 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 혹은 거창한 일들에서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끝에 있는 사람들 또한 삶의 주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이한,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런 일들을 겪는다. 그러니 <구경꾼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하고 의문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p.236.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여행을 하는 동안 보았던 기적같은 일들이 실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는 너무 많은 사고와 갑작스런 죽음이 있고 너무 많은 기적이 있다. 같은 사고를 당해도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다. <구경꾼들>에서 큰삼촌은 39중 추돌사고에서 다리 하나 부러지고 살아났지만, 병원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혀 죽었다. 그러나 바다 건넌편에서의 어떤 남자는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혔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이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만약, 어쩌면, 그랬다면.
 
  살다가 갑작스런 일을 하나도 안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무난하게 살아온 나도 네 번 정도의 경험이 있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했을 때 찾아온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일 인사를 건네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친구와 만나느라 집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있을 때, 하늘을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섬뜩한 예감이 든다더니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고를 떠올리면서, 내가 이랬다면, 내가 저랬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내가 그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이 들곤 한다. 그 사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일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내 옆에서 한 사람을 빼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아야 한다. 그 중요한 순간에 내 의지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나는 내 삶의 주인일 수 있을까. 그냥 구경꾼은 아닐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의 주사위 속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88.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큰삼촌이 얼마나 늦게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늦게까지 젖을 먹엇는지에 대해.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기 전에 외할머니가 말했다.
 
  p.237. 부모님은 아들의 카메라에 당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구경꾼이라는 말에, 나는 맨 처음 제노비스 신드롬을 떠올렸다. 범인이 제노비스를 찌르고, 제노비스가 비명을 지르고, 다시 범인이 돌아와 제노비스를 살해할 때가지 신고하지 않았던 인근 주민들. <구경꾼들>의 구도도 일견 같다.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끌고가도 그저 볼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구경꾼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통곡하지 않는다. 그건 칼로 길게 찢은 얕고 긴 상처라기보다는 송곳으로 깊게 찌른 상처에 가깝다. 그 상처는 아주 오래가서 시들시들하게 사람을 말라 죽이거나, 아니면 천천히 모습을 바꾸게 만든다. 사람은 갔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삶의 구경꾼인 우리가 죽음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일지도 모르겠다.
 
  p.269. 나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삼촌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 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떻게 견뎠을까? 내겐 이제 삼촌이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일이,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한다고 해도, 갈비뼈가 붙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구경꾼으로 남아야 하는 상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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