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타의 키 에단 게이지 모험 시리즈 2
윌리엄 디트리히 지음, 이창식 옮김 / 예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 이은 에단 게이지 두 번째 시리즈, <로제타의 키>. 

  전작보다 재미있다. 책장이 휙휙 넘어가고 흥미도 있다. 인디애나 존스나 007시리즈를 보는 듯한 속도감이 있고, 전쟁 묘사는 박진감이 넘친다. 에단 게이지가 전작보다는 적극적으로 토트의 서를 찾아다니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에단이 '전기 기사'라는 특기를 십분 발휘해서, 주인공 활약을 보는 것도 쏠쏠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껄적지근했다. 

  에단은 껄덕대는데다가 거들먹거린다. 보고 있자면 얘가 아스티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스티자가 튕겨서 오기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상식으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사랑을 말하지 못한달까. 아스티자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에단은 미리암을 만나는데, 아스티자의 생사를 모를 때부터 미리암에게 껄덕거린다. 그리고 미리암과 마음이 통해 잔 날 저녁,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미리암에게 아무 말 없이 나간다. 에단 나름으로는 이런저런 변명을 하지만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냥 개자식이다. 

  작가는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는 아스티자, <로제타의 키>에서는 미리암을 영리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용감한 미인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작가는 그녀들이 활약할 공간을 책에서 조금도 남겨주지 않는다. 

  미리암이 한 일은 히암 파리를 소개한 것, 그리고 성전 산 지하에서 잠긴 문을 연 것 정도다. 그 외에 그녀의 지식을 발휘할 곳은 없다. 그나마 성전 산에서도 수확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미리암은 아스티자가 없을 때 여자가 없으면 팍팍하니까 등장시킨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아스티자의 쪽지를 받고 갔던 에단이 토트의 서를 들고 돌아왔을 때, 다시 말해서 에단이 아스티자냐 미리암이냐의 선택에 직면했을 때 미리암은 다른 남자랑 이미 약혼한 뒤였다. 교활한 방법으로 여주인공 역할에서 제거했다고 해야하나. 

  아스티자의 경우는 더 고약하다. 아스티자는 에단을 꼬여내고 백작에게 협력하게 만드는 수단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여성관은 아주 고루하다. 보고 있자면 기분이 묘해지고 조금 더 지나면 불쾌해진다.
 
  모험물에서 여자는 그냥 감초 역할만 맞는 게 정석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부분은 일단 넘어가고 생각해 봐도 이 책은 껄적지근하다.
 
  <나폴레옹의 피라미드>에서 에단 게이지는 이상한 메달 때문에 사건에 휘말려서 책을 찾아다녔다. 아스티자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을 비롯한 다른 이에게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유해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들의 책을 찾아다닌 이유는, 가만 두면 실라노가 찾아낼 거 같아서였다. 

  <로제타의 키>에서 이들의 행동은 좀 이상하다. 에단은 그 책을 조용히 지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라노 백작의 아가리로 들어간다. 책의 내용이 궁금하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아스티자는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 백작과 협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그 책을 지키려고 하고 숨기려고 한다면 굳이 그 책의 내용을 알 필요가 있을까? 로제타 석을 깨면서 왜 베껴뒀을까? 그 내용을 꼭 알아야 그들이 말한 목적(실라노의 야욕을 저지하고 안전하게 지식을 지키는 것)이 지켜진단 말인가?? 그 시점에서 나는 에단과 아스티자가 실라노 백작과 다른 이유를 모르게 되었다. 실라노 백작이 에단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에단은 계속 거기 붙어있었을 테고, 실라노 백작을 없애는 과정에서 휘말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토트의 서를 없애지 않았을 거다.
 
  일단 인물에 대한 의문은 이 정도다. 사건에 대한 의문으로 들어가면 한층 고약하다.
 
  에단은 전작에서 그레이트 피라미드에 들어가서 '모세의 지팡이'를 발견하고 거기서 순금으로 된 천사장식물을 떼어냈다. <로제타의 키>에서는 천사장식물이, 템플 기사단이 토트의 서를 숨겨둔 곳을 가리키는 단서가 된다(에단의 피보나치 수열도 그걸 기준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러려면 1. 템플 기사단이 이집트에 가서 그레이트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그 단서를 놓고 나왔다 / 2. 모세가 몇천년 전 놓고 나온 것과 똑같은 장식물을 그들은 만들었고 그걸 이용할 방법을 찾다가 열쇠로 이용하기로 했다 / 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없고, 솔직히 있음직하지도 않다. 천사장식물이 해답이 될 유일한 길은 성전산 지하에서 그걸 발견해서 가지고 나왔다는 것인데, 그건 명명백백하게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 나왔으며 성전산 지하에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왜 나폴레옹은 마지막 순간 에단과 아스티자를 총살에서 구해냈을까? 그가 그렇게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 솔직히 있음직하지 않다. 토트의 서를 이용해 사람 마음을 바꿨으면 모를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다. 아슈라프는 어떻게 그렇게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타났을까? 그가 에단을 찾아다닌 이유는 뭐란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개미굴에 빠지는 느낌이다.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실라노는 로제타 석을 어디서 발견했을까? 우연히? 

  이건 사건이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보물을 찾는 두뇌싸움이 아니라, 그냥 보이는 사건을 생각없이 즐기는 것에 가깝다. 작가도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몰아가는 것만 생각하지, 글 자체의 짜임에는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1부에서는 토트의 서를 실라노 백작에게 뺏기고 / 2부에서는 실라노 백작이 해석할 수 없게 로제타 석을 파괴하고 토트의 서를 되찾아 숨기는 내용이 나왔으면 짜임새가 있어 보였을 듯 하다. 이 시리즈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 작가 편의적으로 돌아간다. 왜 그렇게 예전에는 단서도 없었던 얘기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건지. 게다가 600페이지에 걸쳐 얘기를 쫓아갔더니 토트의 서는 없었다, 는 급한 결말의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토트의 서가 사실 42권이고 그들이 찾아낸 건 1권 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변심으로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처음에 차근차근 진행한 얘기가 끝에 가면 설명도 없이 반전만 틱틱틱틱 빠른 속도로 던져진다.
 
  이런 이유들로 이 글은 재미있지만 짜증나고 허무하다.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읽는 자세가 처음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드라마 보듯이 아무 생각 없이, 작가가 주는 떡밥을 물고 쫓아갔다면 그냥 스트레스 확 날리는 재미있는 오락책으로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쨌든 별은 세 개다.
 
 
p.s. 전작의 지루하고 쓸데없어보이는 설명이 줄은 건 다행인데, 그 대신 곳곳에 전작 홍보가 들어가 있다. 1인칭 주인공 주제에 '전작 <나폴레옹의 피라미드>를 보면 다 나와있다.' 식의 이야기를 하다니... 조금만 있으면 자신이 책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자각할지도. 
  
   

2011.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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