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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구경꾼들>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이 책에서는 8명(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삼촌, 고모, 나)이 함께 사는 이층집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씩 가족이 사라지고, 그 때마다 가족들은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나'의 가족 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 혹은 거창한 일들에서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이야기 끝에 있는 사람들 또한 삶의 주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기이한,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그런 일들을 겪는다. 그러니 <구경꾼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삶의 주인공일까, 하고 의문을 가진 것은 당연한 수순인 것 같다.
p.236.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여행을 하는 동안 보았던 기적같은 일들이 실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에는 너무 많은 사고와 갑작스런 죽음이 있고 너무 많은 기적이 있다. 같은 사고를 당해도 살아나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다. <구경꾼들>에서 큰삼촌은 39중 추돌사고에서 다리 하나 부러지고 살아났지만, 병원에서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혀 죽었다. 그러나 바다 건넌편에서의 어떤 남자는 투신자살하는 사람과 부딪혔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가 이처럼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생각하게 된다. 만약, 어쩌면, 그랬다면.
살다가 갑작스런 일을 하나도 안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무난하게 살아온 나도 네 번 정도의 경험이 있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했을 때 찾아온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일 인사를 건네야지 하고 생각했을 때, 친구와 만나느라 집 생각은 하나도 안 하고 있을 때, 하늘을 보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섬뜩한 예감이 든다더니만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고를 떠올리면서, 내가 이랬다면, 내가 저랬다면, 하는 생각을 하는 한편으로 내가 그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이 들곤 한다. 그 사고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일이, 나에게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내 옆에서 한 사람을 빼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아야 한다. 그 중요한 순간에 내 의지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데 나는 내 삶의 주인일 수 있을까. 그냥 구경꾼은 아닐까.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신의 주사위 속에서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p.88.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아침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큰삼촌이 얼마나 늦게 걸음을 걷기 시작했는지, 어머니가 얼마나 늦게까지 젖을 먹엇는지에 대해.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거예요." 전화를 끊기 전에 외할머니가 말했다.
p.237. 부모님은 아들의 카메라에 당신들의 모습이 어떻게 담길지 궁금했다. 부모님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라볼 것이다. 구경을 하는 동안 부모님은 자신을 잊을 것이다. 그러니 부모님을 구경할 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구경꾼이라는 말에, 나는 맨 처음 제노비스 신드롬을 떠올렸다. 범인이 제노비스를 찌르고, 제노비스가 비명을 지르고, 다시 범인이 돌아와 제노비스를 살해할 때가지 신고하지 않았던 인근 주민들. <구경꾼들>의 구도도 일견 같다. 죽음이 소중한 사람을 끌고가도 그저 볼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구경꾼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해서 못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해 통곡하지 않는다. 그건 칼로 길게 찢은 얕고 긴 상처라기보다는 송곳으로 깊게 찌른 상처에 가깝다. 그 상처는 아주 오래가서 시들시들하게 사람을 말라 죽이거나, 아니면 천천히 모습을 바꾸게 만든다. 사람은 갔지만 기억은 남아있다. 삶의 구경꾼인 우리가 죽음에 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일지도 모르겠다.
p.269. 나는 햇볕에 그을린 작은삼촌의 얼굴을 보았다.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 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떻게 견뎠을까? 내겐 이제 삼촌이 한 명 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일이,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증거이고, 내가 그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위안한다고 해도, 갈비뼈가 붙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구경꾼으로 남아야 하는 상처도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