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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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아리스 시리즈. <46번째 밀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이고, 얼마 전 나온 <주홍색 연구>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주홍색 연구>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달리의 고치>를 읽으며 은근히 <주홍색 연구>가 생각났다. 같은 작가에 같은 시리즈면서도 느낌이 다소 다르다.

 

  줄거리 : 주얼리 도죠의 사장 도죠 슈이치가 롯코 별장에서 살해된다. 발견 당시 슈이치의 시체는 알몸으로 프로트캡슐에 들어있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달리 수염은 깨끗이 밀려 있었다. 시체의 옷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속옷만 담긴 바구니는 엎어져 있고, 범행현장으로 추정되는 거실의 핏자국은 꼼꼼히 지워진 상태. 범인의 윤곽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죽은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품고 있는 수수께끼는 많다. 범인은 왜 사장의 수염을 밀었을까? 범인은 왜 사장의 옷을 벗겨 프로트캡슐에 넣었을까? 범인은 왜 금방 도망치지 않고 흔적을 꼼꼼히 지웠을까? 프로트캡슐의 타이머는 왜 40분이 아닌 50분으로 맞춰져 있었을까? 사장의 옷은 어디로 갔을까?

 

  이 수수께끼들은 '현장에 있던 제 3자'의 등장으로 반전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등장하는 또다른 수수께끼들이 있다. 50분 사이 절묘하게 사장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흉기는 어째서 디자이너가 구입한 조악한 조각상과 같은 물건인가? 흉기에는 왜 디자인 실장의 지문이 묻어 있는가?

 

  <달리의 고치>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나 뿐이지만, 이런저런 수수께끼들이 끊임없이 던져지며 긴장을 유지시킨다. 그래서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왜 이렇게 됐지? 누구지?'하고 되물으며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에 모든 수수께끼의 답을 작가가 내미는 순간, '아!'하고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점이 좋았다(약간의 발상의 전환만 있다면 쉽게 알아맞출 수 있을 듯도 한데, 그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 어려웠다;).

 

  <달리의 고치>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수수께끼 뿐만이 아니다. 도죠 슈이치 살인사건에는 단순한 수수께끼만 있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이미지가 더 겹쳐 있다. 그 중 하나는 '살바토르 달리'이고, 다른 하나는 '고치'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피해자 도죠 슈이치가 달리를 숭배한 덕분이다. 그러나 묘한 것은 '고치'라는 단어의 존재다. 이 단어는 무려 띠지에도 등장한다. "당신의 고치는 무엇입니까?"

 

  책에 등장하는 용의자들은 하나같이 사건 당시의 알리바이가 없다. 언뜻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알리바이가 등장하면서 '고치'라는 단어는 단순한 단어 이상의 의미가 된다.

 

  그날 밤 그들은 일상을 떠나 안락한 자신만의 '고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고치'라는 단어는 피해자와 용의자들을 한 카테고리에 묶는 동시에 탐정인 히무라 히데오와 조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묶어낸다(히무라의 고치는 필드워크, 아리스의 고치는 추리소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와 히무라 히데오의 과거 얘기가 나오는데, 이러한 과거들을 가지면서 전작 <46번째 밀실>보다 캐릭터에 입체감이 생긴 듯 하다. 이런 이야기를 무리하게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와 잘 맞물려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의 고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다소 뜬금없어보였다. 그러나 책을 다 덮고 나서 다시 띠지를 보았을 때, "나의 고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수수께끼가 풀리고 나자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형상이랄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은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하고 스스로에게 성실하게 물으며 쓰는 느낌이라 좋은데, <달리의 고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노골적으로가 아닌, 언뜻, 스쳐 지나가듯이. '고치'라는 단어를 빌려서.

 

  히무라의 추리로 밝혀진 범인은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범행 과정은 예상밖이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피해자가 가엾은 건, 책을 읽어나가며 도죠 슈이치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결말 때문에 남은 여운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주홍색 연구>를 읽고 얼마 안 되어 <달리의 고치>를 읽었기 때문에 읽으며 비교가 좀 되었다. 서술의 매끄러움이나 묘사, 그리고 분위기는 <주홍색 연구> 쪽이 좋았지만, 논리의 매끄러움이나 반전, 그리고 여운 쪽은 <달리의 고치> 쪽이 나았다는 게 전체적 인상이다.

 

 

 

201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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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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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야지....... 우리는 제대로 뼈와 살이 붙어있는 한 인간을 상대로 하고 있는 거야. 그 녀석 역시 우리와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는 없는 거지. 그러니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아귀가 들어맞게 될 거야!" (p.120 중에서 인용)

 

 

  <노란 방의 비밀>은 이런저런 곳에서 많이 들어본 작품이다. 그래서 벼르고 있다가 이번에 읽었다. 이 책은 최초의 장편밀실미스터리라고 한다. 특히 이전에 다른 작가들이 만들었던 '어딘가 틈이 있는' 불완전한 밀실이 아닌 '완벽한 밀실'을 제시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제시된 수수께끼 중 대표적인 것 두 개는 이렇다.

 

1.  노란 방은 방문이 두 개 있고(하나는 복도, 하나는 연구실) 창이 하나 있다. 창에는 촘촘한 쇠창살이 쳐 있어서 사람은 커녕 동물도 드나들기 힘들다. 노란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든 스탕제르송 양이 "아버지 살려주세요! 이 살인마!"라는 비명을 질렀을 때(그리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총소리가 들렸을 때) 연구실 쪽 문은 빗장이 걸려 닫혀 있었고 스탕제르송 박사가 바로 문 밖에서 닫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자크 영감이 달려나간 복도 쪽 문 또한 잠겨 있었고, 네 명의 사람이 마구 부딪혀서 문을 부쉈어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습격당한 스탕제르송 양은 쓰러져 있고 범행 흔적은 역력했으나 범인은 없었다.

 

2. T자 복도의 세 끝에 세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상태에서, 탐정이 범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범인은 T자 복도로 도망쳤다. 그러나 T자 복도의 세 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범인은 없어지고 애초에 대기하고 있었던 사람(+탐정)끼리 서로 부딪혔다!

 

 

  언뜻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범인은 유령이나 귀신이 아닐까? (물론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인 만큼 범인은 유령이라던가 귀신이라던가 괴물이 아니다.)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스탕제르송 양 습격사건이 벌어졌을 때 파리가 이 수수께끼에 들썩인 것은 당연해보인다.

 

  <노란 방의 비밀>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한 탐정을 두 명 등장시킨다. 경찰청 소속의 명탐정 프레드릭 라르상과 에포크 지의 청년기자 조셉 룰르타뷰이다(이 두 명 중에 누가 사건을 해결했는지는 이미 밝혀져 있다. 이 소설이 회고문 형식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탐정은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이 아주 다른데, 관찰로 찾아낸 몇 가지 사항에는 동의하지만, 지목하는 범인도 다르고 노란 방의 비밀을 설명하는 방식도 다르다. 귀납 vs. 연역의 대결이랄까. 이들의 추리대결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러나 <노란 방의 비밀>에서 가스통 르루는 작가 vs. 독자의 추리게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르루는 룰르타뷰가 보고 들은 것을 독자에게 공정하게 노출하지 않고 있다.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만큼, 룰르타뷰가 친구에게 말해주는 만큼의 정보만을 독자는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룰르타뷰와 함께 하는 두뇌싸움이라기보다는 룰르타뷰의 활약을 즐기는 이야기에 가깝다.

  ( 예를 들어 룰르타뷰가 사건 지역에 도착했을 때 들었다고 말한 여인숙 망루 주인장의 말-"이제 쇠고기나 먹어야겠군!"-은, 정작 소설 속 룰르타뷰와 생클레르가 사건 지역에 도착했던 부분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흥미롭다. 시종일관 수수께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사건 현장인 노란 방이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점, 등장한 두 명의 탐정이 각자 다른 추리를 펼친다는 점이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들자면, 피해자인 스탕제르송 양이 '죽지 않았으며' '증언을 할 수 있지만' '범인을 드러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피해자라고나 할까. 범인이 '어떻게' 노란 방과 T자 복도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등장인물 중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짚어내는 과정에서 스탕제르송 양이 '신뢰할 수 없는 피해자'라는 것은 꽤 큰 단서를 제공한다.

 

  이러한 색다른 점이 그저 색다른 점에만 멈추지 않고 사건을 풀 하나의 단서이자 반전의 장치가 된다는 점이 좋았다. 만약 밀실에 허점이 있다거나 스탕제르송 양이 신뢰할 수 있는 피해자였다면 밀실 수수께끼는 신비감을 잃고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고, 탐정이 한 명이었다면 사건이 흘러갈 때의 그 독특한 긴장감도 없을 뿐더러 반전에서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범인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 사람밖에 범인이 될 사람이 없긴 하지만,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 범인이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후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 범인의 정체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공정하지 못한 단서 제시로 인해 추리를 함께 풀어나가는 재미는 놓쳤지만 수수께끼에 대한 룰르타뷰의 해답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간다. 그 전에는 귀신이나 유령의 소행으로 보인 노란 방에서의 도주와 T자 복도에서의 도주의 해명은 좋았다. 다만 세 번째의 습격과 룰르타뷰의 미국행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넣은 것 같아서 별로였다.

 

  가스통 르루는 룰르타뷰의 이름을 빌려 "그 논리적이라는 건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처럼 누가 봐도 논리적이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노란 방의 비밀>은 독자에게 제대로 된 공정한 게임을 제시하지는 않았고 그만큼 거친 구석이 눈에 띄었지만, 제시된 밀실과 그 밀실을 풀어낸 논리는 과연 고전이 될 만 했다. 조셉 룰르타뷰는 꽤 잘난척을 하는 캐릭터라 정이 가지는 않지만, 얘 나이가 18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 정도 치기는 당연해 보이기는 한다.

 

 

  다만 이 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건 번역과 편집이 나쁘다는 것이다. 번역 때문에 가끔 한 문장을 몇 번 읽기도 하고, 오타나 편집오류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것만 7개다). 번역과 편집에 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1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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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굴레 - 경성탐정록 두 번째 이야기 경성탐정록 2
한동진 지음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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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탐정록>을 구입한 이유는 그 책이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셜록 홈즈 패스티쉬였기 때문이다. 1930년 경성에서 활약하는 조선 버젼의 셜록 홈즈라니 얼마나 독특한가! 그래서 망설임없이 구입해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고, 그래서 2년 뒤 <피의 굴레>가 출간되었을 때 즉시 집어들었다.

 

  제목이 '피의 굴레'라서 혹시 장편인가 두근두근했는데, 중단편 4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이었다.

 

 

* 외과의

: 이와테 요시토모는 약혼녀에게 우리 관계를 밝히겠다 협박하는 기생 이월향을 모르핀 주사로 살해한다. 그리고 포르말린을 넣어 썩는 걸 방지한 뒤 시체를 해부, 토막내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한 곳에 유기한다. 그 때 월향의 행방을 알아본다며 설홍주라는 탐정이 이와테의 주변을 맴도는데......

 

-> 살인자의 일기로 중반까지 서술하는 형식. 제일 재미있었던 단편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설홍주의 모습이 무척 재미있다.

  이와테의 일기가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어서 범인이나 수법이 다 드러난 상황이다. 그래서 이 글의 핵심은 "이 녀석이 탐정에게 잡힐까, 잡히지 않을까"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살인범의 속임수가 탐정에게 먹힐까 먹히지 않을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완전범죄가 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설홍주가 어디서 단서를 잡을까 조마조마. 듣고보니 단서는 생각보다 여러곳에 있었으나 죄다 정황증거라, 이와테가 잡히고 나서도 조마조마.

  의기양양해서 자기자랑하는 이와테를 볼 때마다 '야 임마 그런 데 발휘할 창의성이 있으면 의학의 발전을 위해 써라'라는 말이 목까지 솟았다. 계속해서 후미코 얘기를 하는 것이 혈압의 상승에 한 몫 보탠다. 그런 점에서 이와테는 참 흔한 타입의 악당이지만 그만큼 잘 만들어진 캐릭터 같다.

  외과 지식이 많아서 보면서 즐거웠다.

p.13. 살인은 저지른 뒤에서 세 가지 증거가 남는다. 하나는 현장, 하나는 흉기, 마지막 하나는 시체다.

p.57. "사람을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 얼간이들이나 하는 생각이거든. 그리고 이 세상은 그런 얼간이가 언제까지나 활개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만만치가 않아."

p.58. "감히 내 옷차림을 혼마치의 건달들과 비교하다니....... 그 따위 소릴 한 놈은 죽어도 싸!"

 

 

* 안개 낀 거리

: 신의택(신타로)라는 미두 계의 거성이 종로 골목길에서 뒷머리를 가격당해 살해당한다. 피해자의 평소 평판은 최악이지만 그를 죽일만한 원한을 가진 이들은 모두 확고한 알리바이가 있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설홍주도 누가 범인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 예전에 한 번 읽었던 단편이다.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에 올라왔던 것 같다. 수정을 더 했는지 흐름이 더 부드럽다(아니면 웹과 종이의 차이일까?).

  아무도 없는 골목, 새벽, 둔기로 뒤통수 가격이라는 범행은 뭔가 건질 여지가 없어보인다. 어쩐지 무차별 살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단서랄게 없으니 설홍주도 앞뒤가 꽉 막힌 듯 답답해한다. 힌트는 '신타로의 이름 옆에 찍힌 붉은 점'. 이런 사소한 걸 잡아서 사건을 해결하다니 굉장하달까. 다만, 딱히 용의자로 떠오른 사람들이 없어서 제 3의 인물이 범인으로 등장해도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서 좀 아쉬웠다. 수사의 기본은 피해자 주변 파악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사실 이 단편은 살인사건보다는 1932년 경성의 모습에 더 눈이 간다.

  그나저나 설홍주 이 남자, 대체 인간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야쿠자에게도 설렁설렁 찾아가다니 orz

 

 

* 피의 굴레

: 극장 명수관의 사장 김명수가 독이 든 라무네를 마시고 죽는다. 자살로 결론지어질 뻔 했으나 설홍주는 의문을 품고 타살 가능성을 추적한다. 그 와중 임마리아라는 배우가 부사장이 공금을 횡령해 극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었다며 밀고한다. 다들 부사장에게 시선이 쏠린 가운데, 설홍주는 임마리아를 주시하는데.......

 

-> 중편. 용의자는 한정되어 있고 뜻밖의 반전도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니라 '범인이 왜 살인했는가'와 '어떻게 살인을 했는가'이다.

  이 중편에서 제일 눈이 가는 것은 김명수가 잡지사에 맞긴 전위시다. 어디를 봐도 암호 냄새가 풀풀 나는 이 시는 참 복잡하다. 암호가 복잡해서 실제로 풀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듯 하다. 3단계를 거쳐야 해독되니까 그런 것 같다. 힌트는 전위시를 쓴 사람이 수학자라는 것 / 그리고 최신 수학논문집 / 가로쓰기.

  나는 이 암호가 이야기에서 조금 더 비중이 있었다면 했는데, 설홍주의 짐작을 확신으로 뒷받침하는 역할 정도에 그쳐서 아쉬웠다. 전위시 암호, 라무네 병 트릭, 알리바이 트릭 등 동원된 트릭이 꽤 많아서 그런 걸까. 그래서인지 조금 산만한 인상도 있다. 장편이었다면 더 깔끔하고 인상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날개 없는 추락

: 한때 독립군이었다가 변절해 동료를 밀고하고 살아남은 백청만(사이고 지로)이 옹벽 밑 길에서 머리가 깨진 시체로 발견된다. 처음에는 옹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진 사고사로 보였으나 검시의 손다익 박사의 의견으로 타살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 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조선인 청년 현준건이 용의자로 체포되는데......

 

-> 1932년이기 때문에 성립 가능한 사건이다. 독립군, 변절자, 특고 등 그 시절의 퍽퍽한 분위기가 유감없이 배어있다. '경찰은 혐의를 말해주고 때리고 특고는 일단 때린다'는 서술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설홍주가 '죄수의 딜레마'를 사용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ㅂ= 그런데 일본 유도에 대해 잘 몰랐다면 범인에 대한 단서가 나왔을 때도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듯 하다. ㅎㅎ 힌트는 동명이인.

  이 단편은 언뜻 설홍주의 형에 대해 언급한다. 김구 선생의 비서라고 한다. 경성탐정록 시리즈의 설홍주는 이제 내 안에서 '조선판 셜록 홈즈'가 아니라 그냥 '설홍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이렇게 묘하게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와 겹치는 점을 발견하면 괜히 유쾌해진다. 시리즈가 계속되면 언젠가 모리아티 교수도 나오는 걸까?

 

 

  <경성탐정록>이 나온지도 한참 지나서 설홍주는 한 권으로 끝인가 하고 포기한 참인데, 뒷편이 출간되어 반가웠다.

 

  책을 읽다 걸리는 부분 없이 술술 읽히는 점이 일단 좋다. 1932년의 경성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독특한 즐거움이고, 셜록 홈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냥 설홍주가 되어가는 설홍주의 모습도 좋다.

 

  내가 느끼기에 설홍주는 단편이 거듭될 수록 조금씩 셜록 홈즈와 다른 개성을 확립해가는데, 이건 대영제국 시대에 영국에서 태어난 셜록 홈즈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의 인텔리 청년 설홍주라는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온도차 때문인 것 같다. 사회적 불합리성과 차별, 장벽들과 그것에 대한 설홍주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관심있는 건 범죄와 나'뿐이라고 주장하는 셜록 홈즈의 이미지와 묘한 괴리가 있다. 일단 설홍주가 셜록 홈즈처럼 100% 행동하면 특고에 잡혀 죽을 듯... ㅠㅠ

 

  다만 아쉬운 것은 살인사건 / 납치사건 / 보물찾기 / 일상 미스터리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전작과 달리 이번 책은 살인사건으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특히 '안개 낀 거리'와 '날개 없는 추락'은 여러 모로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경성탐정록>이 싹틔운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피의 굴레>가 조금 더 키워주었다. 설홍주가 등장하는 세 번째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장편이었으면 하는 사소한 바람이 있다.

 

 

 

2012.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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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집의 살인 집의 살인 시리즈 2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우타노 쇼고의 "집의 살인" 시리즈 중 두 번째.

 

  줄거리 :

  이츠키 가 사람들은 신년을 별장에서 보내는 것이 관례. 새해를 앞둔 어느 저녁, 쿵 소리가 울리고, 밀실이 된 방 안에서 이츠키 시즈카가 교살된 채 발견된다. 발견 당시 시체는 거꾸로 매달려 있었고, 왼쪽 손목에는 3m정도의 자일이 묶여 있었다. 이츠키 가문 사람들은 경찰에 사건을 알리지 않고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시츠카의 가정교사 이치노세는 자신의 친구인 탐정 시나노 조지를 소개한다. 그러나 시나노 조지가 도착하기 전, 2차 살인이 일어난다!

 

  눈 속의 별장, 연속 살인, 밀실, 수상한 종교(라고 하면 조로아스터 교에게 실례지만 어쨌든), 경찰의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자발적으로 경찰을 배제한 거지만 어쨌든), 정체와 동기를 알 수 없는 범인 등 익숙해보이는 아이템이 많이 등장하여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에서 던진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1. 방이 밀실이 된 이유

  2.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놓은 이유와 손목에 감긴 자일의 의미

  3. 모두 함께 마신 커피에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던 방법 (커피의 반은 가정부가 돌렸으나 나머지 커피의 반은 서로의 손을 징검다리처럼 건너 돌아갔고, 피해자는 '서로의 서로 전달한' 커피를 마시고 사망했다) 또는 범인이 피해자의 잔에 어떻게 독을 넣을 수 있었는가

  4. 별장 창문 앞, 발자국 없는 눈밭 한가운데서 발견된 교살시체. 별장에서 시체를 내던진 게 아니라면 시체는 어떻게 그 앞에 떨어졌을까?

 

  처음 부분은 살짝 지루했는데, 다나베의 억지 추리가 등장하면서부터 재미있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흰 집의 살인>의 관람 포인트는 바로 의사 다나베와 가정교사 이치노세의 억측 퍼레이드다. 때려맞추기에 가까운 그들의 추리는 보면 볼수록 웃음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익숙하다. 왜냐하면 내가 추리소설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범인은 XX다! 근거는 aa와 bb인 듯 한데 왜 그렇게 됐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범인은 XX!"라고 추측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ㅜ 그래서 보면서 따끔따끔 아팠다. 마치 작가가 소설 속에서 놀리듯 '너 지금 XX라고 추리했지? 땡!'하고 말하는 기분이다.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억측을 활발히 털어놓는 것에 비해 탐정으로 초빙된 시나노 조지는 조용하기 짝이 없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뒤에도 동기를 모르니 안 알려준다는 그의 태도가 인상깊었다. 그렇다고 시나노 조지가 과묵한 신사 타입은 아니고, 아무래도 이 사람도 좀 개성적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웃사이더?

  (p.138. "부정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아." 라는 시나노의 대사가 꽤 기억에 남는다.)

 

  사건은 복잡한 듯 하면서도 한 꺼풀 벗겨보면 단순하다. 무엇보다도 예기치 못한 우연이 사건의 수수께끼가 성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독특하다. 용의자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범인을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단지 동기가 매우 오리무중이다. 책 처음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독백 또한 사건의 진상을 흐리는 데 한 몫을 한다. 이 독백은 처음에는 범인을 다른 사람으로 짐작하게 만들지만, 범행 동기가 밝혀진 뒤에 읽으면 전혀 다른 맥락으로 보여서 좋았다.

 

  제시된 동기는 왜 사람을 셋이나 죽였는지에 대한 해답으로 충분하면서도 어쩐지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기도 하다. 마치 아침드라마 같달까.

 

  다만, 세 번째 살인이 등장한 게 아쉽다. 이 세 번째 살인은 트릭도 매우 쉬워서, 눈을 전면에 등장시키기 위해 만든 살인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부분에서 집중력도 흐트러진 느낌이고.

 

  어찌되었든 꽤 재미있었다. <흰 집의 살인>을 읽고 나니 시리즈 앞편과 뒷편도 읽고 싶다. 특히 <움직이는 집의 살인>에서는 시나노 조지가 죽는다던데,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다.

 

 

201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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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7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첫 장편 <주홍색 연구>와 같은 제목이라 더 흥미가 갔다. (비록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 내용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제목을 살려주는 표지가 매우 인상깊다.

 

  <주홍색 연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품 전체를 주홍색의 이미지가 채우고 있다. 이번 글에서 돋보인 것은 단연 노을에 대한 묘사다. 글 속의 그 주홍색 노을이 내 눈 앞을 확 물들이는 것 같은 기분을 몇 번 느꼈다. 주홍색이라는 색깔이 작품에 압도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줄거리 : 히무라 히데오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 기지마 아케미로부터 2년 전의 살인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 날 새벽 아리스의 집으로 히무라를 찾는 전화가 오고, "오랑제 유히가오카 806호로 가라"는 정체불명의 지시를 받는다. 히무라와 아리스는 806호에서 2년 전 사건의 관계자였던 아케미 외삼촌의 시체를 발견한다. 히무라는 맨션에 들어가기 전 스쳐지나간 인물에 대해 경찰에 진술하고, 용의자가 된 그는 기묘한 증언을 하는데.......

 

  <주홍색 연구>의 서두를 보고 막연히 연속살인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년 전의 살인사건들이라 깜짝 놀랐다.

 

  아케미가 15세일 때 일어난 방화살인사건(아케미 이모부 사망), 2년 전의 절벽살인사건(아케미 외삼촌의 전 애인 사망), 그리고 유령맨션에서의 살인사건이 얽히는데, 각 사건이 다른 사건의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제일 비중이 높은 건 유령맨션에서의 살인이고 그 다음이 2년 전 살인사건, 마지막인 방화살인사건은 거의 비중이 없다. 2건의 사건을 해결하다 엉겁결에 걸려들었다는 느낌. 방화살인사건이 조금 더 비중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최소한 악몽이라는 형식으로 범인이 짐작되는 것은 좀.......; ).

 

  하나의 범인이 각각 시기가 다른 세 개의 사건에 연결되어있는 것은 재미있었다. 단지 용의자가 너무 한정되어 있고(조금 더 다른 사람들을 의심시켰으면 좋겠는데), 살인사건의 동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심지어 범인이 제 입으로 동기를 말한 뒤에도. 트릭이나 단서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는데, 동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1. 아케미가 2년 전 살인사건을 의뢰하러 온 이유는? (유우코와 그렇게 친했나?)

  2. 범인이 히무라에게 도전장을 던진 이유는? (왜 굳이 방해꾼을 끌어들였나?)

  3. 범인이 유우코를 살해한 이유는?

 

  이 세 가지가 명확하지 않아서 찜찜하다. 그 중에서 3번이 가장 이해가 안 갔는데, 마지막에 범인이 해명한 말도 그다지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처음에 찬찬히 진행된 것과 달리 끝 부분의 흐름이 빨라져서, 급히 마무리지었다는 인상도 다소 있다.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읽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의 장점은 무엇보다 가독성이 좋다는 점이다. 중간에 멈칫하는 일 없이 한번에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특유의 추리소설을 대하는 모범생같은 자세도 좋다. 개인적으로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흐름과 동기를 가다듬었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무라와 아리스 콤비는 여전히 사이좋다. <주홍색 연구>에서는 히무라의 악몽이 살짝 언급되는데, 대체 히무라가 죽이고 싶어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다시 생겼다. 언젠가는 그 이야기도 나오려나.

 

 

201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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