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작가 아리스 시리즈. <46번째 밀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이고, 얼마 전 나온 <주홍색 연구>보다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주홍색 연구>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달리의 고치>를 읽으며 은근히 <주홍색 연구>가 생각났다. 같은 작가에 같은 시리즈면서도 느낌이 다소 다르다.

 

  줄거리 : 주얼리 도죠의 사장 도죠 슈이치가 롯코 별장에서 살해된다. 발견 당시 슈이치의 시체는 알몸으로 프로트캡슐에 들어있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달리 수염은 깨끗이 밀려 있었다. 시체의 옷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속옷만 담긴 바구니는 엎어져 있고, 범행현장으로 추정되는 거실의 핏자국은 꼼꼼히 지워진 상태. 범인의 윤곽이 잡히지 않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죽은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품고 있는 수수께끼는 많다. 범인은 왜 사장의 수염을 밀었을까? 범인은 왜 사장의 옷을 벗겨 프로트캡슐에 넣었을까? 범인은 왜 금방 도망치지 않고 흔적을 꼼꼼히 지웠을까? 프로트캡슐의 타이머는 왜 40분이 아닌 50분으로 맞춰져 있었을까? 사장의 옷은 어디로 갔을까?

 

  이 수수께끼들은 '현장에 있던 제 3자'의 등장으로 반전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등장하는 또다른 수수께끼들이 있다. 50분 사이 절묘하게 사장을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흉기는 어째서 디자이너가 구입한 조악한 조각상과 같은 물건인가? 흉기에는 왜 디자인 실장의 지문이 묻어 있는가?

 

  <달리의 고치>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나 뿐이지만, 이런저런 수수께끼들이 끊임없이 던져지며 긴장을 유지시킨다. 그래서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지 않아도 '왜 이렇게 됐지? 누구지?'하고 되물으며 몰입하게 된다. 마지막에 모든 수수께끼의 답을 작가가 내미는 순간, '아!'하고 딱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점이 좋았다(약간의 발상의 전환만 있다면 쉽게 알아맞출 수 있을 듯도 한데, 그 약간의 발상의 전환이 어려웠다;).

 

  <달리의 고치>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는 수수께끼 뿐만이 아니다. 도죠 슈이치 살인사건에는 단순한 수수께끼만 있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이미지가 더 겹쳐 있다. 그 중 하나는 '살바토르 달리'이고, 다른 하나는 '고치'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것은, 피해자 도죠 슈이치가 달리를 숭배한 덕분이다. 그러나 묘한 것은 '고치'라는 단어의 존재다. 이 단어는 무려 띠지에도 등장한다. "당신의 고치는 무엇입니까?"

 

  책에 등장하는 용의자들은 하나같이 사건 당시의 알리바이가 없다. 언뜻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알리바이가 등장하면서 '고치'라는 단어는 단순한 단어 이상의 의미가 된다.

 

  그날 밤 그들은 일상을 떠나 안락한 자신만의 '고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고치'라는 단어는 피해자와 용의자들을 한 카테고리에 묶는 동시에 탐정인 히무라 히데오와 조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도 묶어낸다(히무라의 고치는 필드워크, 아리스의 고치는 추리소설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와 히무라 히데오의 과거 얘기가 나오는데, 이러한 과거들을 가지면서 전작 <46번째 밀실>보다 캐릭터에 입체감이 생긴 듯 하다. 이런 이야기를 무리하게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와 잘 맞물려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기 전에 "당신의 고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다소 뜬금없어보였다. 그러나 책을 다 덮고 나서 다시 띠지를 보았을 때, "나의 고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수수께끼가 풀리고 나자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형상이랄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은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하고 스스로에게 성실하게 물으며 쓰는 느낌이라 좋은데, <달리의 고치>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묻고 있는 것 같다. 노골적으로가 아닌, 언뜻, 스쳐 지나가듯이. '고치'라는 단어를 빌려서.

 

  히무라의 추리로 밝혀진 범인은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범행 과정은 예상밖이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피해자가 가엾은 건, 책을 읽어나가며 도죠 슈이치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결말 때문에 남은 여운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주홍색 연구>를 읽고 얼마 안 되어 <달리의 고치>를 읽었기 때문에 읽으며 비교가 좀 되었다. 서술의 매끄러움이나 묘사, 그리고 분위기는 <주홍색 연구> 쪽이 좋았지만, 논리의 매끄러움이나 반전, 그리고 여운 쪽은 <달리의 고치> 쪽이 나았다는 게 전체적 인상이다.

 

 

 

2012.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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