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지음, 양혜윤 옮김 / 세시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그래야지....... 우리는 제대로 뼈와 살이 붙어있는 한 인간을 상대로 하고 있는 거야. 그 녀석 역시 우리와 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는 없는 거지. 그러니가 언젠가는 모든 것이 다 아귀가 들어맞게 될 거야!" (p.120 중에서 인용)

 

 

  <노란 방의 비밀>은 이런저런 곳에서 많이 들어본 작품이다. 그래서 벼르고 있다가 이번에 읽었다. 이 책은 최초의 장편밀실미스터리라고 한다. 특히 이전에 다른 작가들이 만들었던 '어딘가 틈이 있는' 불완전한 밀실이 아닌 '완벽한 밀실'을 제시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에서 제시된 수수께끼 중 대표적인 것 두 개는 이렇다.

 

1.  노란 방은 방문이 두 개 있고(하나는 복도, 하나는 연구실) 창이 하나 있다. 창에는 촘촘한 쇠창살이 쳐 있어서 사람은 커녕 동물도 드나들기 힘들다. 노란방에 들어가 잠자리에 든 스탕제르송 양이 "아버지 살려주세요! 이 살인마!"라는 비명을 질렀을 때(그리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총소리가 들렸을 때) 연구실 쪽 문은 빗장이 걸려 닫혀 있었고 스탕제르송 박사가 바로 문 밖에서 닫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자크 영감이 달려나간 복도 쪽 문 또한 잠겨 있었고, 네 명의 사람이 마구 부딪혀서 문을 부쉈어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습격당한 스탕제르송 양은 쓰러져 있고 범행 흔적은 역력했으나 범인은 없었다.

 

2. T자 복도의 세 끝에 세 명의 사람들이 서 있는 상태에서, 탐정이 범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범인은 T자 복도로 도망쳤다. 그러나 T자 복도의 세 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범인은 없어지고 애초에 대기하고 있었던 사람(+탐정)끼리 서로 부딪혔다!

 

 

  언뜻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범인은 유령이나 귀신이 아닐까? (물론 이 소설의 장르가 추리소설인 만큼 범인은 유령이라던가 귀신이라던가 괴물이 아니다.) 아니라면 어떻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스탕제르송 양 습격사건이 벌어졌을 때 파리가 이 수수께끼에 들썩인 것은 당연해보인다.

 

  <노란 방의 비밀>은 이 비밀을 풀기 위한 탐정을 두 명 등장시킨다. 경찰청 소속의 명탐정 프레드릭 라르상과 에포크 지의 청년기자 조셉 룰르타뷰이다(이 두 명 중에 누가 사건을 해결했는지는 이미 밝혀져 있다. 이 소설이 회고문 형식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탐정은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이 아주 다른데, 관찰로 찾아낸 몇 가지 사항에는 동의하지만, 지목하는 범인도 다르고 노란 방의 비밀을 설명하는 방식도 다르다. 귀납 vs. 연역의 대결이랄까. 이들의 추리대결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그러나 <노란 방의 비밀>에서 가스통 르루는 작가 vs. 독자의 추리게임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르루는 룰르타뷰가 보고 들은 것을 독자에게 공정하게 노출하지 않고 있다. 스토리 진행에 필요한 만큼, 룰르타뷰가 친구에게 말해주는 만큼의 정보만을 독자는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룰르타뷰와 함께 하는 두뇌싸움이라기보다는 룰르타뷰의 활약을 즐기는 이야기에 가깝다.

  ( 예를 들어 룰르타뷰가 사건 지역에 도착했을 때 들었다고 말한 여인숙 망루 주인장의 말-"이제 쇠고기나 먹어야겠군!"-은, 정작 소설 속 룰르타뷰와 생클레르가 사건 지역에 도착했던 부분에서 제시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흥미롭다. 시종일관 수수께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사건 현장인 노란 방이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점, 등장한 두 명의 탐정이 각자 다른 추리를 펼친다는 점이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하나 더 들자면, 피해자인 스탕제르송 양이 '죽지 않았으며' '증언을 할 수 있지만' '범인을 드러내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피해자라고나 할까. 범인이 '어떻게' 노란 방과 T자 복도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논리적으로 밝히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등장인물 중 과연 '누가' 범인인지를 짚어내는 과정에서 스탕제르송 양이 '신뢰할 수 없는 피해자'라는 것은 꽤 큰 단서를 제공한다.

 

  이러한 색다른 점이 그저 색다른 점에만 멈추지 않고 사건을 풀 하나의 단서이자 반전의 장치가 된다는 점이 좋았다. 만약 밀실에 허점이 있다거나 스탕제르송 양이 신뢰할 수 있는 피해자였다면 밀실 수수께끼는 신비감을 잃고 엉망진창이 되었을 것이고, 탐정이 한 명이었다면 사건이 흘러갈 때의 그 독특한 긴장감도 없을 뿐더러 반전에서도 그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범인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고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그 사람밖에 범인이 될 사람이 없긴 하지만,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 범인이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후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보아도 이 범인의 정체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공정하지 못한 단서 제시로 인해 추리를 함께 풀어나가는 재미는 놓쳤지만 수수께끼에 대한 룰르타뷰의 해답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간다. 그 전에는 귀신이나 유령의 소행으로 보인 노란 방에서의 도주와 T자 복도에서의 도주의 해명은 좋았다. 다만 세 번째의 습격과 룰르타뷰의 미국행은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넣은 것 같아서 별로였다.

 

  가스통 르루는 룰르타뷰의 이름을 빌려 "그 논리적이라는 건 2 더하기 2는 4라는 것처럼 누가 봐도 논리적이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면서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노란 방의 비밀>은 독자에게 제대로 된 공정한 게임을 제시하지는 않았고 그만큼 거친 구석이 눈에 띄었지만, 제시된 밀실과 그 밀실을 풀어낸 논리는 과연 고전이 될 만 했다. 조셉 룰르타뷰는 꽤 잘난척을 하는 캐릭터라 정이 가지는 않지만, 얘 나이가 18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 정도 치기는 당연해 보이기는 한다.

 

 

  다만 이 책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건 번역과 편집이 나쁘다는 것이다. 번역 때문에 가끔 한 문장을 몇 번 읽기도 하고, 오타나 편집오류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책을 읽으면서 눈에 띈 것만 7개다). 번역과 편집에 더 신경을 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1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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