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모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이기원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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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소설을 접하다 보면 계속해 듣게 되는 이름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엘러리 퀸이다. 엘러리 퀸은 추리소설작가의 이름이자(실제로는 사촌형제가 함께 만들어낸 작가의 필명이지만) 명탐정이자 추리소설가인 등장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엘러리 퀸의 명성은 누누히 들었지만 책을 직접 접한 적은 의외로 없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유명해서 이미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럴까.

 

  다시금 엘러리 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엘러리 퀸 전집이 검은숲 브랜드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이다. 그래도 엘러리 퀸인데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에서다. 기왕 시작할 거, 엘러리 퀸의 등장을 알리는 <로마 모자 미스터리>부터 읽어보자 싶었다.

 

  일단 책의 디자인이 깔끔하면서도 옛스런 느낌이 풍겨서 좋았다(책이 오래되어서 낡아 바랜 것처럼 여백 부분이 염색 처리되어 있다. 이런 디자인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그런데 띠지의 Q자 안에 있는 작가의 사진은 왠지 무섭다 ㅠㅠ 배경이 빨개서 그런가).

 

  변호사 몬테 필드가 로마 극장에서 연극을 보던 중 살해당한다. 흉기는 술병 안에 들어있던 독극물이고, 약간의 지식만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어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 특이점이라면 몬테 필드의 실크모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극장 안에 있는 누구도 여분의 모자를 가지고 나가지 않았으며, 극장 내에서 실크 모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실크모자는 어디로 갔으며, 범인은 누구일까?

 

  범행이 일어나자마자 문을 닫아걸고 수사했기 때문에 '분명 범인은 그 안에 있는' 상태지만, 극장은 만석이었고 용의자들은 너무 많았다. 범행 흉기는 특이했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몬테 필드의 살인범을 찾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몇 가지 핵심적인 의문을 놓치지 않는 솜씨와 의문점을 해결할 만큼의 논리다. 작가는 친절하게 키워드를 제목에 명시해 놓았다. "모자".

 

  책 앞에는 사건 관련 인명 일람이 있고, 로마극장 평면도가 그려져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이 것을 보면 왠지 질리는 기분이 든다(사람도 너무 많아보이고, 극장도 너무 복잡해보인다). 그러나 본문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건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다.

 

  수수께끼는 매력적이고 수수께끼가 어이없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작가가 고심한 흔적도 보이지만, 그리고 해답은 납득할 만한 것이었지만, 다 읽은 후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사람을 몰입시키는 가독성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것이고(한 번에 쭉 읽지 않고 여러 번을 끊어 읽었다), 다른 하나는 범인의 동기가 다소 터무니없어보인다는 사실이다(옛날 미국임을 감안하더라도 썩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역시 작가가 '독자에게 도전'할 만한 수수께끼이며 자신있게 내놓을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길게 이끌어온 수수께끼였지만 몇 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는 단순해지고, 그래서 명쾌하다. 그것이 엘러리 퀸의 이름이 지금껏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이유일 것이다. 다음에는 엘러리 퀸이 또 어떤 문제를 들고 와서 도전할지 알아봐야겠다.

 

 

201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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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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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이다. 오랜만에 히가시노 게이고를 읽는 것 같다. 유명세를 탄 작가의 글은 굳이 찾아보지 않게 되는데(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들어서 이미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딱히 읽으려 마음먹은 책이 없을 때 꺼내들기 좋다. 단편집은 한번에 몰아 읽지 않아도 흐름에 방해를 받지 않아서 특히 좋다.

 

  내 경우, 책을 고를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제목이다. 이 책은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이 인상깊다. 책을 읽고 난 뒤,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각각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느낌이 대체로 비슷하다. 다루고 있는 것이 '범죄지만 범죄가 아닌' 범죄들이기 때문에 그런 듯 싶다.

 

  범죄지만 범죄가 아니라는 점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등장인물들이 떠올랐다.

 

 

( 미리니름 있습니다 )

 

 

*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

: 옥상에서 떨어진 친구의 죽음이 자살인가, 사고사인가, 타살인가를 추적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 다쓰야는 왜 옥상에 올라갔을까? 갑자기 휘청거린 이유는 무엇일까?

 

-> 범인과 범행방법은 거의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래서 섬뜩함이라던가 충격, 반전의 묘미 또한 별로 없었다. 하지만 범인이 한 일이 과연 "작은 고의"인가에 대해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작은 고의는 살인이 아닌가? 어디선가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순간 이미 살인은 일어난" 거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때는 오버라고 생각했는데, 그 문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단편이었다.

 

 

* 어둠 속의 두 사람

:  아이가 살해당했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와 아이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범인은 어떻게 그 날 창문이 열려있다는 걸 알았을까?

 

-> 끝까지 읽으면 이 글에서 '진짜 범인'은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보다 한층 은밀하게 동기와 범인이 숨어있다. 아기를 죽인 범인도 나쁘지만, 범인이 아기를 죽이게끔 하는 동기를 제공한 사람 쪽이 보다 나쁘다. 단편을 읽으며 가만 생각해보면 한층 범인이 가엾게 느껴지는데, 희곡 <오이디푸스 왕>처럼 '범인이 믿었던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범인의 아이라는 사실은 객관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며 범인이 가진 일종의 심증이다. 따라서 아이는 범인의 아기일 수도 있겠지만 범인의 동생이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가벼운 마음으로 청소년을 추행한 계모는 나쁜 여자다.

 

 

* 춤추는 아이

: 다카시는 수요일마다 S여고의 체육관에서 리듬체조를 하는 여학생을 발견하고 한눈에 반한다. 다카시는 그녀에게 팬인 척 메모를 남기고 그녀가 자신을 찾아줄 것을 기대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체육관에 나타나지 않는데.......

 

-> 나의 호의가 상대에게 꼭 호의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단편. 실질적으로 여학생은 자살했지만, 그 배후에는 S여고 리듬체조부가 있고, 또 그 배후에는 다카시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가 죽다니 아이러니하다. 그 아이러니함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 끝없는 밤

: 일 때문에 오사카에서 머물던 남편 요이치가 살해당했다. 아쓰코는 남편의 부고를 듣고 오사카로 간다. 형사는 남편의 시체가 반듯하게 쓰러져 있었다며 의문점을 알려주는데......

 

-> <작은 고의에 관한 이야기>, <어둠 속의 두 사람>, <춤추는 아이>에서 '숨겨진 범인'이 객관적으로 존재했다면, <끝없는 밤>에서는 조금 더 심리적인 쪽으로 옮겨간다. 이 경우에는 범인이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과거의 경험이다. 옛일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볼 수 있는 소설......이지만 뜬금없다는 느낌이 좀 강했다. 읽는 내내 미스터리라는 느낌이 약했다.

 

 

* 하얀 흉기

: A식품회사 건물에서 아베 고조가 추락해 사망한다. 자살로 보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상태. 곧이어 같은 부서의 사노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경찰은 둘의 공통점을 찾는다.

 

-> <끝없는 밤>에서 진정한 범인이 과거의 경험 혹은 트라우마였다면, <하얀 흉기>에서의 범인은 잘못된 믿음(망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살짝 들었다. 다만 망상을 가지게 된 이유(과정?)가 설득력이 좀 약한 것 같아서 임팩트가 좀 약했다. 게다가 범인을 대놓고 알려주는 시점의 변화 때문에 긴장감이 빠졌다.

 

 

* 굿바이, 코치

: 양궁선수인 나오미가 죽기 전의 독백을 찍은 비디오를 남긴 채 사망한다. 첫 발견자는 그녀의 코치. 경찰은 그에게서 시신을 발견하게 된 내막을 듣는다.

 

-> 제일 재미있었던 단편. '처벌할 수 없는 숨겨진 범인'이라는 점에서 위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지만, 위의 단편들과는 달리 말 그대로 '미스터리'라는 느낌이 확 든다. 읽는 동안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가 계속 떠올랐는데, 피해자가 죽은 수법은 물론이고 동기는 치정사건이라는 점도, 피해자가 죽기 전에 피해자가 쓴 종이 등을 범인이 활용한 점도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자살(1단계) -> 타살(2단계) -> 제2의 범행(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견고하다.

 

 

* 범인 없는 살인의 밤

: 한 여자가 죽고, 그 여자가 죽은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 한 가족 + 가정교사 두 명이 합심해 시체를 유기한다. 여자의 오빠가 찾아오고, 시체가 발견되고, 형사가 찾아오면서 거짓말은 위기를 맞는데......

 

-> '밤'과 '현재'를 1인칭 화자 두 명이 번갈아 서술하는 형식. 반전이 제일 인상깊었다.

 

 

  전체적으로 범행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범인(혹은 숨겨진 범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럼으로써 두드러지는 건 범죄의 모호성이다. 읽기는 쉽게 읽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을 읽으면 느껴지는 찜찜함이 어김없이 이 글에도 스며 있어서, '좋다'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단점을 꼽자면, 범죄 외의 다른 요소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미스터리가 약하다. 대부분 범인이며 방법을 쉽게 짐작할 수 있어서 작가와의 두뇌싸움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맥이 빠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201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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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단편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0. 헨리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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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부터 깜찍돋는 오 헨리 단편선. 유명한 작품과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섞여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 20년 후, 경찰관과 찬송가 등은 이전에 읽어보았던 단편이고, 그 외의 다른 단편은 처음 접했다.  처음 읽어본 단편도 이전에 본 듯 친숙한 느낌을 받았던 건, 오 헨리가 쓴 글에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 헨리의 글은 서민이라 부르는 이들이나 범죄자가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고, 돈과 돈없음에 대한 고충도 많이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오 헨리는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적인 따스함이 스며 있다. 읽다 보면 그저 돈은 재제일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또한, 오 헨리는 아이러니를 매우 사랑한 것 같다. 대부분의 작품이 반전을 가지고 있고, 그 반전 중 상당수가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겨울을 감옥에서 나기 위해 말썽을 부릴 때는 늘 경찰관이 외면하다가 앞으로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하자 경찰관이 잡아간' 단편, <경찰관과 찬송가>이다.

 

  단편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오 헨리가 보았던 세상을 어렴풋이 경험하게 된다.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합리한 일도 물론 많지만, 세상은 재미있고 살 만 한 곳이라고 오 헨리가 조근조근 말하는 것 같다. 때로 오 헨리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촌스럽고, 가끔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현실에서는 있을 법 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편 한 편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건 글자 사이사이 스며있는 오 헨리의 따듯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자기 전에 읽으면 아주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를 사르르 풀어주는 따듯함과 유쾌함이 있는 책이다.

 

 

201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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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임희선 옮김 / 지식여행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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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카가와 시 시리즈 1편.

 

  줄거리 :

  도무라 류헤이는 선배 모로 고사쿠의 집에서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다. 그 밤, 류헤이의 전 여자친구 곤노 유키가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는다. 등에 입은 자상을 볼 때 타살임이 명확한 상황. 그 소식을 듣고 싱숭생숭하던 류헤이는 욕실에서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모로 선배를 찾으러 갔다가 그만 시체를 발견하고 기절한다! 반나절 뒤 깨어난 류헤이는 집의 문에는 체인이 걸려있고 창문도 잠긴, 완전한 밀실 상태였다는 걸 알고 패닉에 빠진다. 범인은 어떻게 빠져나간 걸까?

 

  시리즈 3편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가 상당히 재미있어서 기억하고 있던 차에, 같은 시리즈인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유머 미스터리들과 비교할 때, 다소 얌전한 느낌이다. '웃겨야 해!' 하고 잔뜩 힘을 넣은 부분이 없어서 읽기 편했다.

 

  <완전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에서 나왔던 탐정 우카이 모리오, 그 조수 도무라 류헤이, 스나가와 경부, 시키 형사, 그리고 집주인 니노미야 아케미까지 모두 나와서 반가웠다. 이런 반가움이 '~~시리즈'의 장점인 것 같다(가끔은 이 익숙함이 발목을 잡지만).

 

  우카이 탐정과 스나가와 경부가 사이좋게 반씩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완전 범죄에 고양이는 몇 마리 필요한가>와 똑같다. 탐정의 독주가 아니라는 점이 이 시리즈의 특징이면서 사랑스러운 점이다. 왠지 "경찰도 꽤 머리가 있다구!"하고 대변해주는 느낌이랄까.

 

  도무라 류헤이(탐정 측 사람)가 용의자로 몰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가벼운 듯 서술한 부분들은 꽤 재미있었지만, <완전범죄~~>에 비해서 사건이 너무 쉬웠다는 게 아쉽다. 초반부터 트릭의 절반 이상을 눈치채 버려서, 등장인물들이 사건의 진상을 모르고 갈팡질팡 하는 부분들이 꽤 지루했다. 앞에서 단서를 너무 많이 주지 않았나 싶다. 이카가와 시 시리즈를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부터 시작했다면 다음 편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을 것 같다.

 

  시리즈 1편과 시리즈 3편 사이에 존재하는 등장인물의 태도변화 때문에, 2편도 읽어보고 싶다. 2편에서는 어떤 사건/사고가 있을지 기대된다.

 

 

201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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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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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오르골이 하나 있었다. 그 오르골은 빨간 하트 모양이었고, 열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이 차이콥스키(그때는 차이코프스키라고 표기했었는데)의 '백조의 호수' 서장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그 때부터 차이콥스키는 왠지 친근한 음악가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친근하게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차이콥스키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했다.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러시아 작곡가, 그리고 그 외 아는 것 없음. 땡땡땡.

 

  그 후 클래식에 관한 교양책을 몇 권인가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음악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으로 어떤 느낌이 들고~~ 하는 설명이 대부분이라서 차이콥스키가 설혹 등장하더라도 내가 차이콥스키에 대해 아는 건 1g도 늘어나지 않았다(차이콥스키만을 다룬 책이 아니어서 그럴까).

 

  그래서인지 <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이 특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원래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게다가 유명한 작곡가라면 그에 관한 이런저런 숙덕거림을 듣는 게 더 재밌는 게 당연하다.

 

  이 책은 차이콥스키라는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그의 음악을 곁들여 말한다. 차이콥스키는 법대생이었고,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다소 늦은 나이에 작곡가로 전향했다. 그 후로 음악인생에는 큰 굴곡 없이(실패한 곡도 꽤 많았지만 그로 인해 곤란을 겪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에 비해서 그가 가진 감정은 아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기복이 심했는데) 세간에 인정받고 대가가 된 것 같다. 그는 기존 작곡가들과 음악장르에 대해 대해 아주 신랄한 평가를 보여주었는데, 지는 얼마나 잘났기에 이런 말을 하나 싶으면서도 투정하는게 귀엽네 하고 피식 웃게 하는 그런 힘이 있다. 책에서는 이런 차이콥스키의 매력에 대해 여러 차례 서술한다.

 

  막간에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음악을 장르별로 정리한 부분이 있는데, 책에 같이 수록된 CD 2장과 같이 들으면 특히 좋다. 클래식에 별 취미가 없어서 생소한 곡이 많고,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도 있지만 이건 뭐야 싶은 음악도 있다. 배경음악처럼 깔아놓고 책을 읽는 재미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

 

  이 책이 시리즈 7권이라고 하는데 다른 책도 한 번 읽어봐야지 싶다.

 

 

2012.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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