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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 야수를 믿다 >
▪️<책 소개>
✔ ‘곰이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고 나는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짧게 자란 풀들로 뒤덮인 평원은 붉고, 내 손도 빨갛고, 부풀고 찢긴 얼굴은 더는 전과 같지 않다.’ _ p.13 (첫 문장)
- 저자인 나스타샤 마르탱은 인류학자이다. 2009년 알래스카에서 그위친인들과 생활하며 그 시간을 바탕으로 <야생의 영혼들>을 출간했다.
그 후, 2015년 시베리아 북동부에 거주하는 에벤인을 대상으로 연구하던 중 캄차카 화산 지대에서 곰의 습격을 받는다.
작가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곰의 습격과 그 이후의 삶을 담은 에세이가 바로 <야수를 믿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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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얼굴에 맞닿은 곰의 키스를, 정면으로 닫히던 곰의 이빨을, 부서진 내 턱을, 부서진 내 머리를, 그의 입안의 어둠을, 축축한 열기로 훅 끼쳐온 숨결을, 엄습하던 이빨이 느슨해지던 순간을, 나를 끝장내지 않은 그 이빨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불현 듯 생각을 바꿔 끝내 나를 잡아먹지 않은 나의 곰을 생각한다.’ _ p.27
- 저자는 턱과 광대뼈가 부서지고, 피부가 찢기고, 다리까지 물리는 부상을 입게 된다.
함께 생활하던 에벤인에게 극적으로 발견되어 러시아 클리우치의 군사기지 병원으로 이송되어 턱을 삽입하는 대수술을 받게 된다.
✔ ‘나는 고통의 어느 단계를 넘어섰고, 더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여전히 의식이 있고, 의식이 있는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내 육체에서 분리되고도 동시에 여전히 그 안에 존재할 정도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의식이 선명하다.’ _ p.17
- 부상을 입고, 상처를 꿰매고, 수술하고, 회복하는 그 과정은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정도였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낸 저자가 존경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저자의 괴로움은 이게 끝이 아닌데, 프랑스로 돌아간 이후 러시아의 의학을 믿지 못하는 프랑스의 의료진은 재수술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 재수술로 인해 또다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게 끝일까, 아니다.
구경거리 보듯 쳐다보는 사람들, 이전과는 달라진 친구들의 시선.
이것들에 벗어나 인류학자로 살기 위해 다시 캄차카반도로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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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무나도 다른 짐승의 세계를, 병원에선 너무나도 인간적인 세계를 봤다. 나는 내 자리를 잃었고, 그 중간을 찾는다. 나를 재구성하기 위한 공간. 이 피정은 내 영혼이 다시 회복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_ p.125
- 다시 향한 그곳에서 그녀는 에벤인들로부터 ‘미에드카’, 즉 ‘반은 인간, 반은 곰’인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이후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경계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하기에 이른다.
마르탱의 사유를 엿보면서 독자 또한 인간/자연, 문명/비문명의 관계와 경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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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은 곰 한 마리와 한 여자가 만나고 세상의 경계가 파열한 것이다.’ _ p.160
- 단순히 ‘곰에게 습격당한 인류학자’라는 타이틀에 흥미를 느꼈었는데, 생존기만 쓴 책은 아니었다.
글이 몽환적으로 꿈꾸는 듯한 느낌이 들고,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사실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상징적이고 시적인 요소들이 많이 섞여 있어 술술 읽을 수 있는 글이라기보다 문학적 깊이와 매력이 충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읽기보다 충분히 사유하며, 음미해 가며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