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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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리틀독’으로 불리는 화자가 영어를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소설이다. 베트남 이민자이자 성소수자인, 겹으로 둘러싸인 소수의 정체성, 베트남 전쟁이 가족에게 남긴 트라우마, 가난한 이민자의 삶 등의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전달된다.

아무래도 파편적인 이야기의 나열이라 흐름을 온전히 따라가기 쉽지 않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소설이 아닐까) 비유적 표현도 많아서 내가 생각한 게 맞나 싶어 아리송한 부분들도 많다고 느껴질 만큼 시적인 표현이 많았다. (원문으로 보면 더 전달이 잘 되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장이 많아서 소설보다는 아주 긴 산문시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소설의 설정이 <기쁨의 황제>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저자의 글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보게 된 것 같다.

단절된 언어로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어쩌면 무용한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하지 못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고백을 하고 있지만, 끝내 수신자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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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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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엘리 출판사에서 제인 오스틴 탄생 250년 기념으로 출간한 오스틴 에디션 3권 중에 한 권이다. 이 책을 읽는다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미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를 읽을 때 새삼 느꼈지만, 이 에세이에서도 그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단어의 의미를 헤아림에 있어서 그 시대에 단어가 어떤 뉘앙스로 사용되었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지극한 제인 오스틴에 대한 사랑을 볼 수 있기도 했다. 어쨌든 번역서를 읽는 독자들은 번역가를 통해 작품의 목소리를 전달받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이토록 지극한 사랑으로 번역한 작품이면 믿고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더 풍성하게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저자가 번역한 <오만과 편견>과 <이성과 감성>이 더 궁금해졌다. 각주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알고 있는데 더 기대가 크다. 내년 제인 오스틴의 생일에 출간될 작품들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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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작별
김화진 외 지음 / 책깃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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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담긴 작품 중에 뚜렷하게 ‘작별’이라는 주제가 드러난 소설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친했던 사촌과 멀어지게 된 <우연한 작별>,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사망한 아들 우현을 VR로 구현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 <에버 어게인>이 좋았고, <에버 어게인>은 특히 결말까지 완벽하게 느껴졌다.

가상 현실 공간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페페>는 사람을 NPC처럼 대한다는 요즘 세대들의 특징이 떠오르는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하나도 나질 않아서 새롭게 읽었음)


아무래도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김화진 작가의 글이었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 같아서 좋았다. 순간의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잡아내는 김화진 작가의 글은 읽을 때마다 인간의 조금 치사한 마음을 보게 되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에이저>와 <너에게 맞는 속도>는 뭔가 소재가 비슷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꽃님 작가는 장편이 훨씬 완성도 있게 느껴지는 것 같달까.


공교롭게도 해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 ‘작별’이라는 주제가 담긴 글을 읽으니까 정말 한 해를 보내는 느낌이 난다. 그래서일까. 주제가 더 또렷하게 보인 단편들이 눈에 들어온 것 같다. 화려한 라인업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어떤 작품은 기대한 만큼 좋았고, 어떤 작품은 조금 아쉬움이 남은 소설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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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하미나 지음 / 물결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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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이 책은 그 어둠, 가려진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처음 책 제목만 보고 간략한 소개만 보았을 때는 어떤 개인의 내밀한 사유가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자는 역사뿐만 아니라 철학사와 과학 분야까지 여성이 지워지고 가려졌던 부분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전한다. 지구환경과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부전공한 저자의 이력 덕분일까. 꽤 지식이 탄탄하고 방대해서 놀랐다. 탐구자들의 에세이를 읽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물론 저자의 내밀한 이야기도 일부 담겨 있지만, 개인사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오래 곪아온 부분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다른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궁금해졌다. 아니, 이런 에세이는 아묻따 읽어야 한다. 진짜.

1. 이 책을 읽으며 오래 간직한 질문이 떠올랐다. 장례식에서 관을 드는 것은 왜 남성만의 영역이어야 하는가. 여성이 들지 못할 이유가 뭘까. 무거워서는 아닐 터인데.
2. 여성 향수 광고 중에 볼 수 있는데 레퍼토리인데 남성이 다가와서 향이 뭐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을 어필하는 내용이다. 여성 향수의 컨펌을 마치 남성에게 받는 느낌. 어째서일까? 누군가에게 성적 매력을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본인 만족으로 뿌리는 것일 뿐인데. 업계에서 아직도 저런 구식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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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잔해를 줍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6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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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부아소바주에 거주하는 바티스테 집안의 이야기로 그 집의 유일한 여성, 열다섯 살 소녀 에시가 화자인 소설이다. 이들 앞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다가오고, 소설은 그 전후 12일의 시간을 다룬다.

소설에서는 이 가족에게 닥칠 불행을 암시하는 복선이 몇 차례 드러난다. 스키타가 애지중지 여기는 투견 차이나가 새끼를 물어뜯어 버렸을 때 아버지에게 일어나는 사고라든가. 허리케인이 비껴갈 것이라 낙관한 것과 달리 동네를 강타하고 지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허리케인 장면은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잔혹한 일이 이 가족을 비껴갈 리 난무하리란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이들이 재난 속에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그만큼 묘사가 아주 생생했달까.

그러나 이 소설이 불행만을 나열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모든 과정을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버텨냈기 때문이 아닐까.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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