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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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써 내려간 증언이자 회고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첫 장에서 그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며, 가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지만 이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피해자인 저자가 묘사하는 가해자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더 끔찍하다. 트라우마가 남긴 기억이 이토록 선명하다는 사실이 마음을 더 찢어지게 만든다고 해야 할까.

저자는 1986년부터 91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전반적으로 흐릿한 다른 기억들과 달리 학대의 기억들은 선명하게 남았다. 저자는 장소와 세부 사항까지 “무서울 정도로 선명(p.186)하게 기억이 난다고 전한다. 성적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는 시간이 흐른다고 잊힐 수 없고, 피해자의 인격 형성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철저히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런 사고방식도 피해자가 지녀야 할 태도로 강요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자는 “내가 역경을 딛고 회복하는 것 역시 그에게 도움을 주는 요소, 그가 저지른 일에서 그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요소”(p.258)라고 말하며,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p.259)라고 이야기한다. 트라우마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그의 글을 읽으며 외부의 시선에서 가타부타 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느꼈다.

그가 이 회고록을 쓰기까지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내가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은 이유>에 충분히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저자는 이 책을 쓴 확신을 찾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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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행복 톤 텔레헨의 어른을 위한 철학 동화
톤 텔레헨 지음, 김고둥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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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고슴도치라는 동물을 통해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있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다. 현실로 치면 불안정형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때론 그런 모습이 답답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부족한 면을 부각해서 보기도 하니까 이해는 됐다.

우화의 형태로 쓰인 이 책을 읽으며 나다움이 무엇인가를 고찰하게 되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나를 나로 인정하는 것, 나를 조금 더 아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이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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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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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천리포 수목원의 나무 의사가 된 저자가 수목원의 사계절을 담은 에세이다. 식물의 생장을 가까이에서 볼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식물마다 자라는 환경이 다르고, 꽃이 피는 계절도, 과정도 다르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외에도, 어렴풋이 이름만 알고 있던 나무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퀄리티 좋은 사진까지 더해져 종종 보아왔던 나무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읽을수록 인간이 자연에 얼마나 해로운가를 보게 되기도 한다. 도심의 환경에서 자라기 힘든 소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사업을 진행한 서울 도심의 수목 사업 이야기도 그렇고, 저자가 목격한 화살나무 순을 따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다. 수목원의 열매를 따가거나 화단의 식물을 캐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안에 있는 다른 식물원은 가봤지만, 여태 천리포 식물원만 못 가봤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번 해에는 꼭 천리포 수목원에 다녀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의 글을 통해서 겨울 식물원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식물원은 늘 봄꽃이 필 무렵이나 가을의 단풍이 질 무렵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지 못했던 겨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도심의 회사 생활을 접고, 수목원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은 글이었다. 자연이 주는 위로와 평온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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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
앤 패칫 지음, 정소영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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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외국 작가의 에세이는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앤 패칫의 소설이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된 에세이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도주 차량>에 담긴 내용이었다. 첫 문장이 “나는 언제나 작가가 될 사람이었다.”(p.37)인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그만큼 확신이 차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타입이 바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알고, 한 가지 길을 꾸준히 걸어온 사람’이니까. 나는 여전히 나의 재능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 중 하나라서 작가의 단단한 고백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작가의 글 중에 가장 좋았던 문장은 “독서는 사적인 행위이고, 그 책의 저자조차 들어갈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이다. 일단 소설이 나오면 저자는 이제 중심이 아니다. 이제는 독자와 책이 각자의 관계를 맺게 되니, 둘이 알아서 해나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p.280)라는 문장이었다. 사실 책을 읽을 때 내가 느낀 대로 생각하고 싶어도 ‘작가의 의도가 이게 맞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의무감을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문장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나와 책이 각자의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리뷰를 써야 하는 일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덜어낼 수 있게 해줬달까.

가장 따듯하게 느껴졌던 꼭지는 <자비들>이었다. 니나 수녀님과의 관계와 시간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이라 좋았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가 글을 쓰며 쌓아온 시간을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이런 확신을 가진 사람의 소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제 저자의 소설을 만나볼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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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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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 소설집으로 7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좋았던 작품은 나약한 인물들이 우리가 되기 위해 애썼던 순간을 다룬 <너와 나쁜 무리>, 조금은 어긋나 있고 구겨져 있는 인물들의 관계를 다룬 <소란한 속삭임>, 돌봄 노동의 모습을 담은 <아무 사이>, 완전히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실수임을 인정하게 되는 <뜰의 미래>가 가장 인상 깊었다.

사실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을 읽을 때 그 책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에 깊이 있게 공감하지 못했고, 결함보다는 결핍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게 그려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소설집도 취향이 아닐지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작가의 말을 읽고 보니, <사랑과 결함>의 등장인물들이 왜 자신을 그렇게 미워했는지 알 것도 같다. 이제 조금은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낼 줄 알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은 작품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듯했다. 이번 소설집에도 관계 맺기가 서툰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조심스럽게 관계를 이어간다. 여전히 서툴지만, 이상한 관계를 조금씩 이어 나가는 인물들로 조금씩 나아간다고 해야 할까.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다 조금씩 서툴고, 각자의 문제를 안고 살아갈 뿐. 그래서 이 이상한 관계 맺기가 서툴지만,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여러 모습으로 그려낸 게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내게 된 작가의 조금은 달라진 관계의 변주곡을 만나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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