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 완주 듣는 소설 1
김금희 지음 / 무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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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무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할아버지에게 영화 <마스크>의 자막을 소리 내 읽어주다가 열매는 성우가 되었다. 룸메이트인 수미에게 돈을 뜯기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직업의 위기를 맞은 열매는 설상가상 우울증 진단까지 받는다. 열매는 결국 수미의 행방을 찾기 위해 완주 마을로 향하게 되는데...

책을 읽는 동안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책 속에 담긴 장면 장면이 아날로그 사진처럼 그려지는 것 같았달까. 무엇보다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사의 말맛이 좋았는데, 가장 좋았던 건 할아버지와 열매의 사투리 대화였다. 흡사 이미 만들어진 드라마의 각본집을 보는 느낌이 이런 걸까? 김금희 작가의 역량은 어디까지인 걸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삶은 다 자기만의 슬픔이 있다. 각자가 드러내지 않을 뿐. 이 소설 속 인물들도 그렇다. 그러나 작가는 구태여 슬픈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독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때로는 웃고 때론 울기도 하는 우리 삶처럼.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니 초록빛 여름을 열매와 함께 통과한 기분이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따듯해서 좋았지만, 열매와 양미의 케미가 (어저귀와 열매의 케미보다 더) 너무 좋았다.
한 편의 청춘 드라마 같기도, 웰메이드 드라마 같기도 한 이 소설을 읽어보시기를. 그리하여 열매가 보낸 완주 마을에서의 첫 여름을, 독자분들도 함께 완주하시기를 바란다. 기대한 만큼, 아니 기대한 것보다 더 좋았던 소설. 오디오북으로 한 번 더 즐기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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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 그래픽노블
데이비드 마추켈리 외 그림, 황보석 외 옮김,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식 각색 / 미메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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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책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은 각각 다른 이야기지만, 어떤 면에선 같다. <유리의 도시>의 퀸은 피터 스틸먼이라는 인물을, <유령들>의 블루는 블랙을, <잠겨 있는 방>의 나는 친구 팬쇼를 쫓는다. 이들은 모두 한 인물을 쫓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블랙의 눈물을 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가 필요한 겁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 시선이 필요한 거예요.'(P.202)라는 문장은 읽는 독자에게 어떤 공허감을 느끼게 한다. 이 문장은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인걸요.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지요. 어떻게 보면 작가는 자기만의 삶이 없다고 할 수도 있어요. 어딘가에 존재할 때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P.195)의 문장과 같은 궤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폴 오스터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는 작가라는 정체성으로 온전히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자신의 작품이 책으로 완성되어 독자에게 가닿아야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었을지, 폴 오스터는 작가로서 행복했을까?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작품 속 이야기를 통해 수많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등장인물이 온전히 ‘나’일 순 없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는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삶이란 작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의 삶일뿐더러, 작가 본인의 삶과도 같았던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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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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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저자의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알라딘에서 출간 소식을 보고 위시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감사하게도 출판사에서 보내주셨다.


법의학자로서 누구보다 죽음을 자주 접하는 저자가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전작보다 더 깊이 있게 서술한 책이다.

인간의 삶은 무한하지 않기에 우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를 극복하게 돕는다”(P.22)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 년에 한 번씩 유언을 쓴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저자가 작년에 작성한 유서의 전문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을 읽으며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삶에 대한 아쉬움 없이 작성된 글은 그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귀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죽음 앞에서 어떠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늘 성찰하면서 지내왔다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글이었달까. 가족에게 하는 당부부터 장례식에 대한 준비까지 모든 내용이 간결하면서도 부족하지 않도록 적혀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죽음이라는 것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기에 불안하고 두려운 일로만 느껴지는데 저자의 글을 접할수록 준비되지 않은 죽음이 더 불안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죽었을 때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라도 나의 죽음을 늘 준비하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책이라 한 번쯤 읽어보길 추천한다.

나를 탐구하고 돌아볼 수 있는 “더 잘 살기 위한 30일 유언 노트”를 초판 한정 증정하고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바라며, 안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니 나를 탐구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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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우정은 첫사랑이다 - 세상 가장 다정하고 복잡한 관계에 대하여
릴리 댄시거 지음, 송섬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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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이 책은 사촌 사비나와의 우정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사비나에게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 사춘기의 방황을 함께 했던 헤일리와의 절연, 서로를 돌봐주던 사이였던 헤더의 죽음을 회고하며, 반짝이던 시간과 어두웠던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과의 우정뿐만 아니라 돌봄의 양태, 엄마 됨의 사유로까지 주제를 폭넓게 확장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제는 멀어진 친구 S와 J가 떠올랐다. 여전히 그들과 나눈 우정은 좋은 기억으로 내 안에 남아있다. 지금은 멀어져 서로의 소식을 모르지만,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돌보았던 그 시간만큼은 유효한 상태로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건넨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에 사춘기를 무탈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소원해진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가길 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문장을 소개해 본다. “타인에게 자양분을 주고 돌보는 일, 그 사람에게 다정함을, 그리고 대체로 그 사람에게 일말의 신경조차 쓰지 않는 세계에서 정서적 쉼터를 내주는 일, 사랑받는 사람이 그 사랑이 자기 삶을 지탱한다고 느낄 만큼, 세상에서 혼자가 된 기분이 절대 들지 않을 만큼, 맹렬하게, 무한하게 사랑을 쏟아붓는 일.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내게 해주는 일이자 내가 그들에게 해주고자 하는 일은 바로 그런 것이다.”(P.194)


이 책 덕분에 여전히 나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친구들의 든든함을 느낀다. 나의 비상구가 되어준 소중한 친구들을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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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크림빵 새소설 19
우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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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고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허자은 교수의 부고로 포문을 여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입이 썼다.

소설은 날 것 자체의 세계를 그린다. 개인의 탐욕 때문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교수, 지도 교수의 흠결을 묵인하고 수습해야 하는 대학원 연구생, 문학을 대하는 태도만은 진심이었으나 그 속에서 끝없는 부조리와 만나게 되는 졸업반 대학생 등이 등장하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부패를 직설적으로 담아낸다.


자신이 갖지 못한 아름다움을 좇는 허자은의 이야기가 제일 안타까웠다. 누구에게도 채울 수 없었던 마음의 구멍을 끝끝내 메우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구멍을 발견한 유일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더더욱 안타깝다.


오랜만에 냉소적인 글을 만난 것 같다. 읽는 내내 머리가 멍했고, 마음이 불편했다. 온통 거북한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다. 부패한 세계를 직시하게 만드는 소설이라서. 불편한 세계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가를 만날 때마다 정신이 번쩍 난다. 환멸로만 가득한 세상을 마주 보게 하니까.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 같으니까. 그러니 여러분, 죽음과 크림빵... 일단 한 번 잡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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