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독서 에세이
박지훈 지음 / 생각의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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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출판 담당 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독서 에세이라고 해서 읽었다. 곽아람 기자의 추천사도 이 책을 읽게 하는 데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독서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들의 독서 내공에 놀란다. 어느 한 권의 책을 소개하며, 다른 책을 인용하고, 인용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져 결국 한 권의 독서 에세이를 읽고 나면 담겨 있는 내용의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의 책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런 독서력을 가진 이들의 에세이는 놓칠 수 없다.

이동진 평론가의 책을 소개하며, 저자가 출판 기자로 일할 당시를 회고하는데 ‘당시 매일 사무실 책상에 쏟아지던 신간은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가다가 받아먹었다는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와도 같았다’(p.15)라고 비유한다. 애서가들에게는 너무나 탐나는 직업이 아닐 수 없겠다. 저자는 매일 쏟아지는 신간의 축복 속에서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열독하는 것이 자신의 직업윤리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독서 분야의 폭은 다채롭다. 이 책 한 권만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에세이가 가진 장점이다.

이 독서 에세이에는 서른네 권의 책이 소개되어 있으나 꼬리를 잇는 책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오십 권 이상은 소개가 됐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 미국에 있어서 전자책에 의지해야 했다는 점이 아쉽다고 했으나 충분히 다양한 책을 소개받은 느낌이라 좋았다. 소설부터 여러 분야의 논픽션까지 소개되므로, 독서 편식이 심해 독서의 폭을 넓히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 만한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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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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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화려한 꽃일수록 가시가 많은 것처럼 예쁜 표지와 달리 안에 담긴 내용은 가시가 많다. 특히 욕+받이 채널을 운영하는 장면이 그렇다. 소설 속 장면의 수많은 가시 돋친 댓글을 읽으면서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묘사된 댓글들이 너무 적나라하고 현실적이었으니까. 익명에 기대어 타인에 대한 혐오를 거침없이 뱉어내는 현실을 텍스트로 재확인하고 있자니 환멸이 났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나는 둘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자기 파괴를 일삼는 인물을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해 장면을 보면서 눈살을 여러 번 찌푸리게 됐다.

‘차별금지법’을 다루는 소설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저자가 서사를 구축하는 방식을 온전하게 따라가진 못했다. 저자가 만든 파도에 휩쓸리고 휩쓸리다가 결말에 이르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내가 지금 읽은 게 맞을까?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머리에 물음표만 두둥실 떠 있었다. 코멘터리 북에 담긴 편집자의 편집 일기에 써진 대로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 여러 번 나를 시험에 빠지게 만든 소설이었다. 나는 저자가 만든 파도 속에서 영영 길을 잃고 만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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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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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나진은 고모의 부탁으로 할머니를 보살피러 광주로 향한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나진은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어쩐지 그 기억은 쓸쓸하고, 아픈 구석이 있지만,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나진의 시선 끝에는 늘 고모가 있었다. 어쩐지 자신처럼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존재인 고모가. 둘이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서로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짧은 대화에도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모의 무심한 것 같은 행동 안에도 나진을 향한 애정이 있다. 나진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떠나던 날, 무심하게 건넨 봉투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은 고모의 얼굴과 할머니의 손길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그 모든 순간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진을 있게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가장 애정했던 존재인 경은. 모두가 알지만, 쉽게 잊는 당연한 말을 뱉어내는 경은의 존재가 너무 든든했다. 나진이 납작해져 버릴 때마다 일어나게 만드는 경은은 나진에게 찾아온 구원자와 다름없었으니까.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선망하던 막내 고모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고모를 뺏기는 것처럼 서운했던 나를 보았고,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나진의 모습에서 나의 할머니의 손길을 보았다. 명절에 찾아오는 손주의 등을 하염없이 쓸어내리던 다정한 손길을, 할머니의 집을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할머니의 모습을, 늘 이별의 순간이 오면 눈물을 글썽이던 나의 할머니를 보게 됐다. 그렇게 소설 속에서 오늘의 나를 만든 얼굴들을 보게 된다. 이런 게 바로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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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갖춘마디 사계절 1318 문고 150
채기성 지음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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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빠가 시설 관리원으로 일하는 상가에서 불이 났고, 사람들을 구조하다가 돌아가셨다. 사람들은 아빠를 의인이라고 부르지만, 소이는 아빠가 세상을 그렇게 떠났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이런 상처를 품고 있는 소이가 랩을 통해 상처를 세상 밖으로 꺼내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이가 유일하게 마음을 꺼낼 수 있는 순간은 랩 가사를 만들 때다. 그러나 한겹 둘러싸인 내면의 이야기는 좀처럼 쉽게 꺼내지지 않는다. 내면의 상처를 마주하고, 꺼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런 소이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시은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이별은 마음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 있음을 알려준다고, 헤어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 덕분에 소이는 선생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불안정하게 시작하는 못갖춘마디처럼 소이의 출발도 조금은 불안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상처를 마주하고 세상 밖으로 꺼내는 소이의 성장은 불안정하지 않다. 마지막 마디에 남은 박자를 채우듯이, 소이도 마지막 마디를 채워가게 되니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꺼내 놓으면서 조금씩 치유의 길로 나아간다. 서로의 슬픔을 끌어안으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게 되는 이들의 연대가 눈부신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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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 싶은 동네 - 늙고 혼자여도 괜찮은 돌봄의 관계망 만들기
유여원.추혜인 지음 / 반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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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의료 복지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다. 작은 의원으로 시작해서 한 건물에 치과와 한의원을 확장 개원하기까지 많은 사람의 의지와 참여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봄 문제가 공공의 일이 되어 서로 돌보고 돌봄 받는 것이 현실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보게 되면서 왜 정부 차원에서 하지 못하는가 되묻게 된다. 점점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이고, 가족에게 돌봄을 의탁할 수 없는 가구가 점차 늘어난다면 이것은 더 이상 개인 차원의 일이 아니지 않을까. 사회적 문제로 이 현상을 바라본다면 그 답은 이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케어B&B라는 도전이 그렇다. 상급 병원에서 수술이 끝나고 퇴원한 환자들이 당장 돌봄을 받기 어려워 돌봄 공백이 생겼을 때 잠시 머물면서 통합 사례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좋은 사례였다. 이런 지역사회 돌봄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면 홀로 나이 들지 모를 사람들도 더 안심하고 노년기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의료인과 환자와의 관계를 평등하게 바라보며, 병원 방문이 어려운 이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의료를 실천한다. 이러한 실천은 의료 서비스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 밀착형 돌봄으로 이어진다. 간병으로 지친 가족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고, 쉴 공간이 되어준다. 서로서로 돌봄을 통해 돌봄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다.

돌봄이 가능한 지역 사회를 막연하게 상상만 했는데 현실에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제목 그대로 이곳은 ‘누구나 나이 들고 싶은 동네’이자, 마음 편하게 나이 들 수 있는 동네가 아닐까. 누구나 이러한 환경에서 나이 들고 싶지 않을까? 나다움을 지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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