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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주관적인 감상을 적었습니다.
나진은 고모의 부탁으로 할머니를 보살피러 광주로 향한다. 오랜만에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나진은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어쩐지 그 기억은 쓸쓸하고, 아픈 구석이 있지만,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기억이 스며들어 있다.
나진의 시선 끝에는 늘 고모가 있었다. 어쩐지 자신처럼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존재인 고모가. 둘이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서로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짧은 대화에도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모의 무심한 것 같은 행동 안에도 나진을 향한 애정이 있다. 나진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떠나던 날, 무심하게 건넨 봉투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기억에 남은 장면은 고모의 얼굴과 할머니의 손길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장면이었다. 그 모든 순간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진을 있게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가장 애정했던 존재인 경은. 모두가 알지만, 쉽게 잊는 당연한 말을 뱉어내는 경은의 존재가 너무 든든했다. 나진이 납작해져 버릴 때마다 일어나게 만드는 경은은 나진에게 찾아온 구원자와 다름없었으니까.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선망하던 막내 고모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고모를 뺏기는 것처럼 서운했던 나를 보았고,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나진의 모습에서 나의 할머니의 손길을 보았다. 명절에 찾아오는 손주의 등을 하염없이 쓸어내리던 다정한 손길을, 할머니의 집을 떠나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할머니의 모습을, 늘 이별의 순간이 오면 눈물을 글썽이던 나의 할머니를 보게 됐다. 그렇게 소설 속에서 오늘의 나를 만든 얼굴들을 보게 된다. 이런 게 바로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