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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옥 -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ㅣ 두레아이들 인물 읽기 9
박세경 지음, 김세진 그림 / 두레아이들 / 2021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띵똥~~ 택배가 왔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책!!
독립운동가였던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일대기가 실린 책입니다.
"택배아저씨~~ 감사합니다."
일제 강점기 비밀결사대를 만들어 독립운동 기금 모금하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우리나라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그녀의 일대기가 담긴 책을 정독했습니다.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애쓴 사람들을 독립운동가로 부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한국애국부인회 사교부장을 지낸 독립운동가입니다.
권기옥은 1난 4녀중 둘째로 1901년 1월 11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했습니다.
아들을 바라는 아버지는 기옥을 "날래 가라(빨리 가라)" 라는 뜻을 가진 "갈네"로 불렀습니다.
갈네로 컸던 기옥은 1913년 숭현소학교에 입학하여 1916년 졸업했습니다.
학교에 입학하고 기옥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됩니다.
기옥이 10살 되던 해
1910년 한국은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었습니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나라를 잃은 국민들은 매우 슬펐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기옥은 남동생 기복의 교과서에서 지도책에서 세계지도를 봤습니다.
기옥은 세계를 곳곳 누비고 싶어졌습니다.
17살이 되던 해 평양 하늘을 수놓는 미국인 비행사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본 기옥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야자인 내가 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돈도 없는 내가 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나라도 없는 식민지에서 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최초 비행사 권기옥 >책 내용에서
숭의여학교 졸업반 때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권기옥은 교사 박현숙과 정일성의 영향으로 태극기를 만들어 3·1운동을 준비하였고,
직접 거리에 나가 만세 시위를 하다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위해 활동하다 잡혀 모진고문을 당하다 학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권기옥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1살이던 기옥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배울 목적으로
서양선교사가 경영하는 항주의 홍도여학교 중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했습니다.
1924년 원난항공학교에 입학한 기옥은 어려운 관문을 모두 통과했습니다.
판단이 빠르고 침착하고 용감한 기옥은 9시간의 훈련비행을 마치고
교관으로부터 단독 비행을 허락받아 비행기를 조종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 비행사가 된 권기옥!!
드디어 꿈을 이뤘습니다.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해오던 권기옥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시인 이상화 형인 이상정과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계속해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다 여러번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1945년 우리나라는 일본으로 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망으로 먼저 귀국한 남편은 뇌일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동생 기복에게 듣게 됩니다.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온 권기옥은 1950∼1955년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하였고,
신익희를 만나 정계에도 입문했습니다.
1956년 신익희의 사망과 함께 정계를 떠났습니다.
1968년 3월1일 대한민국 대통령 훈장,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은
기옥은 모든 재산을 정리해 장학회에 전달했습니다.
1988년 4월 19일 생을 마감한 권기옥을 국가보훈처는 기옥을 "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온갖 고초를 견뎌온 권기옥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실현한 철인입니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딸을 뒷바라지한 부모님과
독립운동을 도운 동생 권기복님도 애국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주관적 견해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