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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현대화 그리고 가치투자와 중국
리루 지음, 이철.주봉의 옮김, 홍진채 감수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우리 근현대사는 요즘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모든 역사에 대해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언제나 있게 마련이지만,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입장들이 극단적으로 계속 충돌하는 원인 중 하나는 근본적으로 그것이 아쉬운 지점을 많이 갖고있기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은 어느 순간부터 지배층이 수구적인 이념에 매몰되어 닫힌 사회가 되어갔으며 그것을 깨부수려 하는 노력들이 여러 불행한 우연과 의도에 의해 번번이 무산되었다. 그 결과 세계문명의 흐름에서 완전히 뒤쳐지다 못해 퇴행한 수준으로 갑작스레 열강들의 강력함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런 역사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명권이 전반적으로 겪은 현상이다. 서구 문명은 과학적 사고와 인본주의를 무기로 지구상에 전례없는 속도로 빠른 기술과 문화적 발전을 시작했고, 주변국들끼리 경쟁적으로 부딪히면서 확장하며 세계를 지배해나갔다. 그런데 사실은 15세기까지만 해도 동양 문명의 발전이 서양에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어떤면에서는 오히려 앞서있었다. 15세기 초는 대략 우리나라의 세종대왕 재위 시기이고, 중국은 명나라 초기였다. 한나라에서 사마천의 사기가 편찬된 것이 이미 기원전 100년전으로, 동아시아 문명은 한때 서양문명을 압도하는 발전을 하였으나 15세기 이후로는 서양문명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으며, 그 끝에는 아시아 대륙의 맹주였던 청나라가 동양의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으며 서구열강에 물어 뜯기는 신세가 된다.
리루(LI LU)는 중국 출신의 글로벌 투자가로써 세상에 대한 다양한 공부와 사색 끝에 자신만의 관점으로 문명과 근현대의 중국을 분석하였다. 그는 중국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한 후 미국에 망명하였다. 히말라야 캐피탈을 설립하고 투자가로써 성공을 거두면서 워렌버핏과 찰리멍거의 인정을 받은 것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한때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요 후계자로 여겨졌을 정도라고 한다. 리루의 서적 <문명, 현대화 그리고 가치투자와 중국>에도 찰리멍거가 리루를 극찬하였던 인터뷰가 머릿말 추천사로 실려있다. 버핏과 멍거 같이 빈말안하는 까다로운 노인들의 극찬을 받았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명확한 보증이 된다.
일찍이 수재였고 지식탐구에 몰두하였기에 좋은 조건으로 학업을 이어나가 세계적인 투자자가 된 인물인만큼,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갖고있다. 이 책은 단지 가치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라기보다는 리루라는 인물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그 사이 중국의 낙후와 발전과제, 투자자로서의 강의까지 그의 모든 세계관이 담겨있다. 2013년에 중국의 온라인 매체에 연재되었던 <리루가 현대화를 말하다>와 리루의 강연, 그리고 그가 쓴 서평과 짧은 에세이들을 모두 모은 책이다. 가치투자라고는 하지만 결국 투자의 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고, 가치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이 세계의 발전과 자본의 흐름에 관심있는 모두가 읽어볼만한 책이다. 투자의 성패여부는 결국 이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였는지에 달려있고, 투자란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현금으로 바꾸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리루가 중국의 근현대사와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한국의 사정과 비교해보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분명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많은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세계사의 흐름에서 크게 뒤쳐졌다가 최근 몇십년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낸 동아시아 국가라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한국어판 서문이 특별히 추가되었는데, 그가 외환위기 이후 한국시장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하면서도 한국시장에 대해서 영 애매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에 미국시장에서 발전해온 가치투자 이론을 곧이 곧대로 적용해서는 안되고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말 속에도 유사한 의문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