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은 나의 뇌를 어떻게 점령했는가
니클라스 브렌보르 지음, 김성훈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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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오늘도 유튜브 쇼츠를 보다가 한 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분명히 딱 하나만 보려 했는데. 감자칩 봉지를 열면서 몇 개만 먹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신 차려보면 바닥이 보입니다. 인스타그램을 닫았다가 5분 후에 다시 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 걸까. 책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의지가 약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구조 안에 있었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중독을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 보는 시각을 해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특정 자극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달고 기름진 음식, 새로운 정보, 사회적 인정. 이것들에 끌리는 것은 수만 년의 진화가 만들어낸 생존 본능이라고요. 문제는 현대 산업이 그 본능을 정조준해서 자연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강도의 자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초자극'이라고 부르는 것들. 지방과 탄수화물의 완벽한 비율로 설계된 초가공식품, 끝없이 이어지는 숏폼 알고리즘, 도파민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도록 설계된 플랫폼들. 검은머리물떼새가 진짜 알보다 훨씬 큰 가짜 알에 더 강하게 끌리는 것처럼, 인간의 뇌도 자연적 자극보다 훨씬 강한 인위적 자극 앞에서 본능적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죠.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가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붙잡혀 있었던 대목은 '원함(wanting)'과 '좋아함(liking)'을 구분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뭔가를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뇌과학은 다르게 말합니다. 욕망을 만드는 회로와 쾌락을 느끼는 회로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욕망은 커지지만, 실제 쾌락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인스타나 유트브 숏폼을 한 시간 보고 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 감자칩을 다 먹고 나서 뿌듯함보다 공허함이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했지만, 정작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 역설이 중독의 본질입니다. 뇌가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서는 악순환은, 의지를 더 강하게 불태운다고 끊어지지 않습니다.

강한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의지력만으로 버티는 것은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입니다. 대신 저자는 물리적 차단, 지루함의 회복, 몰입 활동으로의 에너지 전환을 제안합니다.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 독서나 악기 같이 즉각적 보상이 없는 활동에 다시 익숙해지는 것.

책을 덮고 나서 스마트폰을 침대 밖으로 꺼냈습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가장 작은 첫 번째 단계. 중독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나면, 자책 대신 환경을 바꾸는 데 에너지를 쏟게 됩니다. 그것이 이 책이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사 전우치 : 숏폼, 데이팅 앱, 초가공식품은 나의 뇌를 어떻게 점령했는가를 알 수 있음.

악마 전우치 : 초자극 환경의 문제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만큼, 그 환경에서 실제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상대적으로 얇게 다뤄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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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해킹 - 소비심리를 지배하는 아주 작은 행동과학
리처드 쇼튼.마이클아론 플리커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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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리처드 쇼튼과 마이클아론 플리커의 책은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설계되어 있었다고요.

이 책이 여느 마케팅 서적과 다르게 느껴진 이유는, 저자들이 소비자를 설득하는 방법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을 설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비자는 광고의 경제적 동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게 저를 설득하려는 것이라는 걸 눈치채는 순간, 방어막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영리한 브랜드들은 설득을 포기합니다. 대신 무의식이 자연스럽게 특정 방향으로 흐르도록 환경을 설계합니다.

22년 경력의 마케팅 전문가인 저자들이 꺼내드는 사례들이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가 희소성과 추억으로 가격 저항을 무력화하는 방식, 애플이 익숙한 것을 새롭게,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전략, 리퀴드 데스가 제품의 괴상함을 개성으로 전환한 방법. 읽다 보면 우리가 그동안 브랜드에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여왔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불쾌하기보다는 신기한 방식으로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 중 하나는 갓밀크 캠페인 분석이었습니다. 우유가 몸에 좋다는 메시지는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정보가 아니라 신뢰, 논리가 아니라 공감. 마케팅에서 메시지의 내용보다 전달자의 맥락이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 책을 읽고 나니 주변의 광고들이 전혀 다른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AI가 정교한 타깃팅과 개인화 광고를 가능하게 만든 시대에도, 저자들의 메시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AI는 논리적 선택지를 줄 수 있어도 확신을 줄 수는 없다는 것. 결국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심리적 전환점이라는 것.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는 역설이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최근에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것들을 떠올려보는 것이었습니다. 한정판이라는 말에 움직였던 것, 지인이 쓴다고 해서 관심이 생겼던 것, 패키지가 예뻐서 샀다가 별로였던 것. 그것들이 모두 이 책에서 설명하는 행동과학의 원리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속았다는 기분보다는, 인간의 마음이 원래 이렇게 작동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는 기분이었습니다.

마케터나 브랜드 매니저가 아니어도, 이 책은 소비자로서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충분히 유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느꼈던 것처럼요. 내가 왜 이것을 샀는지, 왜 저 브랜드가 좋아 보이는지를 알게 되는 것. 그 이해가 쌓이면 더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더 깊이 보게 될 것입니다.


천사 전우치 : 파이브가이즈부터 리퀴드 데스까지 17가지 실제 브랜드 사례들이 행동과학 원리와 맞물려 설명되어 설득되었음.

악마 전우치 : 사례들이 압도적으로 미국과 서구 브랜드 중심이라, 한국 시장의 맥락에서 적용하려는 분이라면 조금 다른 측면으로 볼 필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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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 동화 ㅣ 클래식 리이매진드
야코프 그림.빌헬름 그림 지음, 얀 르장드르 그림, 민지현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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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의 도움으로 마녀를 피해 왕자의 키스로 깨어났습니다. 빨간 모자는 할머니와 함께 늑대에게서 무사히 구출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동화들입니다. 그런데 그림 형제가 실제로 기록한 이야기들은 조금, 아니 꽤 많이 다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 읽었다고 생각했던 동화들이 사실은 많이 다듬어진 버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디즈니가 세상에 퍼뜨린 알록달록한 버전에 익숙한 저 같은 사람들에게, 원작 그림형제 동화의 분위기는 첫 장부터 조금은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신데렐라의 못된 언니들은 유리구두를 신으려고 발가락을 자릅니다. 백설공주를 질투한 왕비의 결말은 디즈니 버전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기괴하고 잔혹한 장면들이 아이들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그 서늘함이 불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진짜 이야기구나, 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그림 형제가 유럽 각지의 민담을 수집해 기록한 이 이야기들은 사실 인간 본성과 욕망, 두려움을 담은 민속학적 기록으로 보입니다. 착한 사람이 반드시 이기고, 나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 깔끔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실의 불안과 욕망이 그대로 녹아든 이야기들이죠. 그 날것의 질감이,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 더 와닿았습니다.

이 책이 단순한 원작 복원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얀 르장드르의 그림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패턴과 색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삽화는 원작의 서늘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 줍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화려하지만 동시에 어둡습니다. 삽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각 이야기의 분위기가 몸으로 느껴지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그림이 함께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또한, 이 책의 숨겨진 즐거움은 유명한 이야기들 사이에 끼어 있는 덜 알려진 동화들이었습니다. '유리병 속의 정령', '요술 식탁과 황금 당나귀, 자루 속의 몽둥이'.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들이 낯설었지만 그래도 금방 이야기 안으로 저을 끌어당겼습니다.지혜로 위기를 극복하는 주인공, 악인을 통쾌하게 혼내주는 결말, 서민의 소박한 욕망을 투영한 요술 식탁. 이 이야기들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은 리뷰가 가장 많은 스테디셀러라고도 하죠.

책을 다 읽고 나서 동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오랫동안 품어온 두려움과 욕망과 희망의 기록. 그 기록을 다시 읽는 일은, 어른이 된 지금 오히려 더 풍부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천사 전우치 : 순화되지 않은 원작의 날 것 그대로의 분위기와 얀 르장드르의 현대적 삽화가 만나 새롭게 다가옴

악마 전우치 : 어린 자녀에게 읽어주려는 부모라면 어느 대목에서 잠깐 멈추고 이야기를 나눠야 할 순간이 예상보다 자주 찾아올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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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평생 연금을 설계할 마지막 타이밍
최윤영(황금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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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른다섯. 어떤 사람에게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나이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벌써 이렇게 됐나 싶은 나이일 것입니다. 저자는 35세를 연금 설계의 골든타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미 이 나이가 지났기 때문인지 좀 과장된 표현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그렇게 과장은 아니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빨리 설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이 책이 첫 장부터 건드리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숫자들이었습니다. 인구 고령화, 재정 악화, 수령 시기 연장 논의. 국민연금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것만으로 노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 어렴풋한 불안을 구체적인 숫자로 이야기하며, 그래서 지금 당신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연금은 상품이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저자의 관점이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연금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현금흐름이 들어오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 1,000만 원 종잣돈으로 시작해 배당금을 재투자하며 자산을 불려가는 과정, 35세에 1억 원으로 시작해 40세에 2억 원을 만드는 시뮬레이션, 45세에 고배당 ETF로 은퇴를 준비하는 포트폴리오까지. 숫자들이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좋았습니다.

미국 ETF와 배당 ETF를 중심으로 한 전략은 주가 상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배당을 통해 꾸준한 현금흐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월급처럼 들어오는 배당금. 그 개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ETF 선택 기준과 위험 관리까지 꼼꼼하게 짚어주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엑셀로 기록하고 계산하고 싶어졌습니다. 고배당 ETF의 함정, 커버드콜 전략의 한계, 환율 변동과 세금 부담까지 솔직하게 짚어주어 더욱 좋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지금 제 나이에서 은퇴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막연하게 '나중에'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숫자가 되는 순간, 뭔가 달라지는 게 있었습니다. 지금 조금 늦었나 하는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35세가 지났다고 이 책이 의미 없는 건 아닙니다. 30대 초반이라면 더 유리한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고, 40대라면 지금 이 순간이 또 다른 골든타임일지 모르겠습니다. 노후를 막연히 걱정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걱정을 계획으로 바꾸는 첫 번째 도구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천사 전우치 : 막연했던 노후 준비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과 포트폴리오로 그려줌.
악마 전우치 : 너무 나이를 콕 박아놓으니, 더 불안한 마음도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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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그라운드, 완투에서 불펜까지 - 야구광 철학자의 한국 야구 50년 관전기
탁석산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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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앤프리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 야구장에 가면 이상한 기분을 경험할 것입니다. 초록 잔디 위로 펼쳐지는 넓은 공간, 규칙적이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경기의 흐름, 그리고 9회 말 2아웃에서 느껴지는 그 이상한 긴장감.

책의 제목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완투에서 불펜까지. 예전 야구에서는 선발 투수가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완투가 미덕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끝까지 버티는 것. 그것이 프로의 자세였고, 팬들은 그 뒷모습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현대 야구는 달라졌습니다 선발은 대개 5회까지, 중간 계투가 받고, 마무리가 닫습니다. 완투는 이제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드문 일이 됐습니다.

철학자인 저자는 이 변화를 단순히 야구 전술의 진화를 넘어서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던 시대에서, 분업과 협력이 강조되는 시대로의 이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 글로벌화가 그 변화와 나란히 걸어왔다는 시각은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다가,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야구장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욕망과 불안, 희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단어는 '낭만'이었습니다. 제목에서도 나왔듯이요. 저자가 말하는 낭만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상적 향수가 아닙니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즐기는 태도, 승부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읽는 눈, 그리고 지는 날에도 다음 경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힘. 야구는 그 낭만을 가장 잘 담아내는 스포츠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9이닝이라는 구조, 삼진과 볼넷, 병살타와 끝내기 안타. 야구의 규칙들이 인간 존재와 공동체의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적 언어로 변환되는 과정은, 야구팬이라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고, 야구를 잘 모르는 분이라도 삶의 은유로 느껴질듯 합니다. 경기는 지더라도 시즌은 계속된다는 것. 어제의 패배가 오늘의 선발 라인업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 야구가 가르쳐주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다음 야구 중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5회까지 잘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선발 투수의 뒷모습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자기 역할을 다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것. 완투의 시대가 아름다웠다면, 불펜의 시대는 다른 방식으로 아름답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분라면 더없이 반가울 책이고, 야구에 낯선 독자라도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인간 공동체의 이야기로 충분히 읽힐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사 전우치 : 철학자의 시선으로 본 50년 야구 관전기

악마 전우치 : 70-80년대 이야기는 별로 공감이 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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